‘아들 왔네’ 빨간 차마다 쌈짓돈…팔순 할머니의 사연

입력 2020.04.21 (08:22) 수정 2020.04.2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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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년 여성이 경찰 지구대에 들어와 손에 쥔 물건을 내려놓습니다.

돌돌 말린 돈뭉친데 모두 21만 원입니다.

여성의 신고 내용은 이렇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빨간색 차에 자꾸 돈과 음식을 걸어두고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일이 지난 2월부터 5번이나 반복됐다고 했습니다.

대체 누가 왜 그랬던 것일까?

사연의 전말은 마을 주변 CCTV 영상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주차된 빨간색 승용차에 다가가 무언가를 놓고 가는 바로 저 장면인데요.

경찰 조사 결과 이 분은 마을에 혼자 사는 86살, 치매를 앓는 할머니로 확인됐습니다.

비록 치매에 걸렸지만 아들의 차 색깔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던 할머니.

집 주변에 빨간 차가 주차될 때마다 아들의 차로 착각해 용돈이며 군것질거리를 두고 갔던 것입니다.

차량 손잡이에는 꼬깃꼬깃 접은 지폐와 함께 비닐봉지로 겹겹이 싼 과자와 떡, 때론 족발이 걸려 있었습니다.

모두 아들이 좋아했던 주전부리였습니다.

할머니는 어려운 형편 탓에 아들에게 초등학교 공부밖에 시키지 못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평생의 아픔으로 간직하고 있었다고 이웃들은 전했습니다.

["무조건 빨간 차만 보이면 자기 아들 차로 알고 아이고 얘야 내려와라, 덥다고 말해요. 아무도 없는데..."]

한 주민이 전한 당시 할머니의 혼잣말입니다.

아들은 몇 년 전까지 어머니 집 근처에 살았지만 현재는 타지에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치매 할머니의 애틋한 모정은 여러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자식사랑은 끝이 없네요, 치매걸려서까지 자식에게 잘해주려는거 보면.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다.

공감 댓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인구 고령화에 접어들면서 이렇게 '치매'와 관련된 가슴 먹먹한 사연들이 자주 들려옵니다.

지난해에는 배우 윤정희 씨가 5년째 치매를 앓고 있단 사실이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의 고백으로 알려졌죠.

남편 백 씨는 부인 윤정희 씨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분간 못 하고 왜 거기 있는지도 모른다고 전했습니다.

딸에게는 "나를 왜 엄마라고 부르느냐"고 하고 요즘도 "오늘 촬영은 몇 시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스물두 살에 데뷔해 영화 330여 편을 찍으며 사랑받았던 여배우의 안타까운 근황입니다.

윤정희 씨는 과거 인터뷰에서 "그레타 가르보처럼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다가 스톱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드리 헵번같이, 잉그리드 버그만같이 세월 흐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삶이라는 게 젊을 때도 아름답지만 나이 들어도 근사한 것 아니에요? 추하지 않고 의연하고 건강하게 늙고 싶어요"라고도 했습니다.

이런 사연들 접하면서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다... 하는 분들 많을 것 같습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60세 이상 인구 중 7%인 약 80만 명이 치매 진단을 받았습니다.

여성이 61.5%로 남성(38.5%)의 1.6배였습니다.

치매 증상은 초·중·말기로 나눕니다.

초기는 약속이나 물건, 단어 등을 자주 잊어버리는 정도, 중기가 되면 돈 계산이나 가전제품 조작을 제대로 못하고 화장실 이용도 서툴러진다고 하죠.

말기로 악화되면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단곕니다.

정부가 '치매 국가책임제’를 시행하며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치매는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두려운 병입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더라도, '제발 이 병 만은 걸리지 않았으면'하는 지구촌 노인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이 됐습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아무르’에서 노부부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주범은 치매였습니다.

배우 김혜자 씨가 주인공으로 열연한 드라마 '눈이 부시게'도 치매에 걸린 노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을 그렸습니다.

며느리를 엄마라고 부르는 장면 등 여러 대사들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난 무조건 엄마 편이야. 어떤 선택을 하든 난 엄마 편이야, 엄마."]

치매, 한자로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자를 씁니다.

이 치명적인 병을 막는 최고의 백신은 바로 건강할 때 이를 예방하는 현명함이라고 전문의들조차 입을 모읍니다.

우선 치매학회가 제시한 일명 ‘진인사대천명 수칙’이 유용할 듯 합니다.

‘진’땀나게 운동하고, ‘인’정사정없이 담배를 끊고,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대’뇌 활성화를 위한 독서· 신문읽기·글쓰기에 힘쓰고, ‘천’박하게 술 마시지 말며, ‘명’을 늘리는 음식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아는 것보다 실행에 옮기는 것이겠죠.

누구라도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인 만큼, 치매 예방을 위한 생활 속 실천은 개인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 전체를 살리는 종합백신인지도 모릅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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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 왔네’ 빨간 차마다 쌈짓돈…팔순 할머니의 사연
    • 입력 2020-04-21 08:22:46
    • 수정2020-04-21 08:53:15
    아침뉴스타임
한 중년 여성이 경찰 지구대에 들어와 손에 쥔 물건을 내려놓습니다.

돌돌 말린 돈뭉친데 모두 21만 원입니다.

여성의 신고 내용은 이렇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빨간색 차에 자꾸 돈과 음식을 걸어두고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일이 지난 2월부터 5번이나 반복됐다고 했습니다.

대체 누가 왜 그랬던 것일까?

사연의 전말은 마을 주변 CCTV 영상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주차된 빨간색 승용차에 다가가 무언가를 놓고 가는 바로 저 장면인데요.

경찰 조사 결과 이 분은 마을에 혼자 사는 86살, 치매를 앓는 할머니로 확인됐습니다.

비록 치매에 걸렸지만 아들의 차 색깔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던 할머니.

집 주변에 빨간 차가 주차될 때마다 아들의 차로 착각해 용돈이며 군것질거리를 두고 갔던 것입니다.

차량 손잡이에는 꼬깃꼬깃 접은 지폐와 함께 비닐봉지로 겹겹이 싼 과자와 떡, 때론 족발이 걸려 있었습니다.

모두 아들이 좋아했던 주전부리였습니다.

할머니는 어려운 형편 탓에 아들에게 초등학교 공부밖에 시키지 못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평생의 아픔으로 간직하고 있었다고 이웃들은 전했습니다.

["무조건 빨간 차만 보이면 자기 아들 차로 알고 아이고 얘야 내려와라, 덥다고 말해요. 아무도 없는데..."]

한 주민이 전한 당시 할머니의 혼잣말입니다.

아들은 몇 년 전까지 어머니 집 근처에 살았지만 현재는 타지에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치매 할머니의 애틋한 모정은 여러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자식사랑은 끝이 없네요, 치매걸려서까지 자식에게 잘해주려는거 보면.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다.

공감 댓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인구 고령화에 접어들면서 이렇게 '치매'와 관련된 가슴 먹먹한 사연들이 자주 들려옵니다.

지난해에는 배우 윤정희 씨가 5년째 치매를 앓고 있단 사실이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의 고백으로 알려졌죠.

남편 백 씨는 부인 윤정희 씨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분간 못 하고 왜 거기 있는지도 모른다고 전했습니다.

딸에게는 "나를 왜 엄마라고 부르느냐"고 하고 요즘도 "오늘 촬영은 몇 시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스물두 살에 데뷔해 영화 330여 편을 찍으며 사랑받았던 여배우의 안타까운 근황입니다.

윤정희 씨는 과거 인터뷰에서 "그레타 가르보처럼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다가 스톱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드리 헵번같이, 잉그리드 버그만같이 세월 흐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삶이라는 게 젊을 때도 아름답지만 나이 들어도 근사한 것 아니에요? 추하지 않고 의연하고 건강하게 늙고 싶어요"라고도 했습니다.

이런 사연들 접하면서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다... 하는 분들 많을 것 같습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60세 이상 인구 중 7%인 약 80만 명이 치매 진단을 받았습니다.

여성이 61.5%로 남성(38.5%)의 1.6배였습니다.

치매 증상은 초·중·말기로 나눕니다.

초기는 약속이나 물건, 단어 등을 자주 잊어버리는 정도, 중기가 되면 돈 계산이나 가전제품 조작을 제대로 못하고 화장실 이용도 서툴러진다고 하죠.

말기로 악화되면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단곕니다.

정부가 '치매 국가책임제’를 시행하며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치매는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두려운 병입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더라도, '제발 이 병 만은 걸리지 않았으면'하는 지구촌 노인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이 됐습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아무르’에서 노부부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주범은 치매였습니다.

배우 김혜자 씨가 주인공으로 열연한 드라마 '눈이 부시게'도 치매에 걸린 노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을 그렸습니다.

며느리를 엄마라고 부르는 장면 등 여러 대사들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난 무조건 엄마 편이야. 어떤 선택을 하든 난 엄마 편이야, 엄마."]

치매, 한자로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자를 씁니다.

이 치명적인 병을 막는 최고의 백신은 바로 건강할 때 이를 예방하는 현명함이라고 전문의들조차 입을 모읍니다.

우선 치매학회가 제시한 일명 ‘진인사대천명 수칙’이 유용할 듯 합니다.

‘진’땀나게 운동하고, ‘인’정사정없이 담배를 끊고,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대’뇌 활성화를 위한 독서· 신문읽기·글쓰기에 힘쓰고, ‘천’박하게 술 마시지 말며, ‘명’을 늘리는 음식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아는 것보다 실행에 옮기는 것이겠죠.

누구라도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인 만큼, 치매 예방을 위한 생활 속 실천은 개인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 전체를 살리는 종합백신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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