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10년 이상 장기실종 아동 600명 가까이…끝나지 않는 고통
입력 2020.05.07 (08:33)
수정 2020.05.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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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여기 전단지를 한 번 봐주시기 바랍니다.
4살 조하늘양 6살 최준원양 15살 김도연군.
실종된 지 적게는 19년, 길게는 25년이 지난 장기실종아동들입니다.
강산이 두 번은 바뀐다는 긴 시간 동안 아이를 찾아 헤맨 가족들, 주변의 포기하라는 말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데요.
가족의 의미가 깊어지는 가정의 달 5월.
수십년째 가족을 찾아 헤매는 이들의 아픈 사연을 뉴스따라잡기가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신발장 안 낡은 실내화. 김도연이라는 석자가 또렷합니다.
19년 전 사라진 아들의 이름입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세상에……. 새것이었는데 세월이 너무 지나서 이렇게 삭았어요."]
형체를 잃어가는 신발에 엄마의 가슴은 또 다시 무너져 내립니다.
지적장애 1급으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해 보살핌이 필요했던 도연이 그런 도연이가 사라진 건 2001년 1월 29일,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사회 적응훈련 차 학원에서 1박 2일로 경주 보문단지에 여행을 갔던 거죠. 우리 도연이를 1층하고 2층 있는 계단에 혼자 뒀더라고요."]
부부는 아들을 찾아 전국의 장애인 시설과 정신병원을 찾아다녔습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계속 도연이를 찾아다녔던 기록들이에요. 미인가 시설을 찾아다니면서 주소하고 기록을 여기에 다 남겨뒀어요."]
그렇게 보낸 시간이 무려 19년. 그래도 아들의 모습은 선명하기만 합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12개월 때 뇌수종으로 수술을 했기 때문에 오른쪽에 머리만 살짝 들춰보면 여기서 이만큼 10cm가량 흉터 자국이 있어요. 화가 난다든지 그러면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이렇게 목 성대를 툭툭 쳤어요."]
40대였던 어머닌 이제 환갑이 됐지만 도연이를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19년이 지나도 그리움은 절대 작아지지를 않더라고요. 혹시나 우리 도연이를 만났을 때 제가 건강하지 않아서 도연이를 못 보살필까 봐 그게 최고 걱정이에요."]
그런가하면 20년째 딸의 흔적을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이 낙서들, 그림들. 이런 것들이 우리 준원이가 한 거예요."]
갸름한 얼굴에 유달리 총명했던 6살 준원이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집 앞 놀이터였습니다.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2000년 4월 4일 날 오후 3시 반경에 이 놀이터에 준원이가 놀고 있었어요. 많은 아이들이 여기서 놀고 있었는데 우리 준원이만 사라진 거예요."]
풀이 무성한 놀이터는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지만 아버지의 시간은 20년 전 그날에 멈춰 서 있습니다.
준원이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아빠 휴대전화 번호도 다 알고 있고 동네 골목골목을 다 누비고 다녔고 지리를 모르는 애는 아니에요. 누군가 아는 사람이 데려갔겠다.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동안 아이를 찾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다는 최용진씨.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앵벌이로 데려가지 않을까 해서 서울역이나 청량리 쪽에서 노숙도 많이 해봤고요. 미친 듯이 전국을 찾아 헤맸었죠. 아이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다 보니까 자동으로 회사에서 해고가 되는 거죠."]
직장도 관두고 가정 형편도 어려워졌지만 버티게 하는 건 준원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준원아 벌써 20년이 흘렀다. 이제는 네가 엄마 아빠를 찾아야 될 상황이 됐어. 엄마 아빠는 DNA, 유전자를 경찰에 등록했거든. 너도 유전자 검사를 한다면 어디에 있든 미국에 있어도 상관없어. (유전자 검사를) 하면 만날 수 있어. 이제 네가 찾았으면 좋겠어."]
커버린 아이의 모습을 행여 놓칠세라 컴퓨터가 그려준 아이의 변한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모두 25년 전 실종된 딸 하늘이의 몽타주라는데요.
[조병세/조하늘 양 아버지/1995년 실종 당시 4살 : "유치원 원복을 입고 하늘이가 실종이 됐거든요. 이런 식으로 (현재 예측 몽타주를 넣어서) 전단지를 만들어서 계속 뿌리게 됐죠."]
하늘이가 실종된 건 1995년 6월 15일 저녁이었습니다..
[조병세/조하늘 양 아버지/1995년 실종 당시 4살 : "집 앞 골목에서 아이가 실종이 됐거든요.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 줄 알고 밖에 데리러 나갔는데 하늘이가 안 보인 거죠."]
아이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전국을 떠돌았던 하늘이 아빠.
사람들의 무관심에 상처도 많았습니다.
[조병세/조하늘 양 아버지/1995년 실종 당시 4살 : "전단지를 길거리에서 나눠주잖아요. 받는 즉시 그냥 비벼서 바닥에 버리고 발로 짓이기고 뭉개고 가고 아이들의 그 전단지를……. 그게 최고 가슴이 많이 아팠던 거예요."]
무심하게 흐른 25년의 시간 주변에선 포기하라고 하지만 조병세 씨 역시 유전자 검사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부터 국내에서 유전자 대조를 통해 가족을 되찾은 아동만 무려 360여 명.
아동 보호시설에 입소한 무연고 아동과 장기실종아동 가족의 유전자를 비교한 결괍니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해외 입양자들까지 유전자 등록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실종아동의 가족들 기대도 더 커졌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엔 유전자 등록 시스템을 통해 해외 입양됐던 아들과 어머니가 30년 만에 만나기도 했는데요.
[이건수/백석대학교 경찰학부 교수 : "장기 실종아동은 대부분 그 아이들이 어리고 (실종된 지) 10년 이상 된 그 아이들을 한눈에 알아보긴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찾을만한 단서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부모에게 인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전자를 검사하는 방법이거든요."]
현재 10년 이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장기실종 아동은 598명.
가정의 달 5월에, 더 많은 아이들이 가족을 되찾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여기 전단지를 한 번 봐주시기 바랍니다.
4살 조하늘양 6살 최준원양 15살 김도연군.
실종된 지 적게는 19년, 길게는 25년이 지난 장기실종아동들입니다.
강산이 두 번은 바뀐다는 긴 시간 동안 아이를 찾아 헤맨 가족들, 주변의 포기하라는 말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데요.
가족의 의미가 깊어지는 가정의 달 5월.
수십년째 가족을 찾아 헤매는 이들의 아픈 사연을 뉴스따라잡기가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신발장 안 낡은 실내화. 김도연이라는 석자가 또렷합니다.
19년 전 사라진 아들의 이름입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세상에……. 새것이었는데 세월이 너무 지나서 이렇게 삭았어요."]
형체를 잃어가는 신발에 엄마의 가슴은 또 다시 무너져 내립니다.
지적장애 1급으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해 보살핌이 필요했던 도연이 그런 도연이가 사라진 건 2001년 1월 29일,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사회 적응훈련 차 학원에서 1박 2일로 경주 보문단지에 여행을 갔던 거죠. 우리 도연이를 1층하고 2층 있는 계단에 혼자 뒀더라고요."]
부부는 아들을 찾아 전국의 장애인 시설과 정신병원을 찾아다녔습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계속 도연이를 찾아다녔던 기록들이에요. 미인가 시설을 찾아다니면서 주소하고 기록을 여기에 다 남겨뒀어요."]
그렇게 보낸 시간이 무려 19년. 그래도 아들의 모습은 선명하기만 합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12개월 때 뇌수종으로 수술을 했기 때문에 오른쪽에 머리만 살짝 들춰보면 여기서 이만큼 10cm가량 흉터 자국이 있어요. 화가 난다든지 그러면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이렇게 목 성대를 툭툭 쳤어요."]
40대였던 어머닌 이제 환갑이 됐지만 도연이를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19년이 지나도 그리움은 절대 작아지지를 않더라고요. 혹시나 우리 도연이를 만났을 때 제가 건강하지 않아서 도연이를 못 보살필까 봐 그게 최고 걱정이에요."]
그런가하면 20년째 딸의 흔적을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이 낙서들, 그림들. 이런 것들이 우리 준원이가 한 거예요."]
갸름한 얼굴에 유달리 총명했던 6살 준원이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집 앞 놀이터였습니다.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2000년 4월 4일 날 오후 3시 반경에 이 놀이터에 준원이가 놀고 있었어요. 많은 아이들이 여기서 놀고 있었는데 우리 준원이만 사라진 거예요."]
풀이 무성한 놀이터는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지만 아버지의 시간은 20년 전 그날에 멈춰 서 있습니다.
준원이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아빠 휴대전화 번호도 다 알고 있고 동네 골목골목을 다 누비고 다녔고 지리를 모르는 애는 아니에요. 누군가 아는 사람이 데려갔겠다.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동안 아이를 찾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다는 최용진씨.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앵벌이로 데려가지 않을까 해서 서울역이나 청량리 쪽에서 노숙도 많이 해봤고요. 미친 듯이 전국을 찾아 헤맸었죠. 아이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다 보니까 자동으로 회사에서 해고가 되는 거죠."]
직장도 관두고 가정 형편도 어려워졌지만 버티게 하는 건 준원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준원아 벌써 20년이 흘렀다. 이제는 네가 엄마 아빠를 찾아야 될 상황이 됐어. 엄마 아빠는 DNA, 유전자를 경찰에 등록했거든. 너도 유전자 검사를 한다면 어디에 있든 미국에 있어도 상관없어. (유전자 검사를) 하면 만날 수 있어. 이제 네가 찾았으면 좋겠어."]
커버린 아이의 모습을 행여 놓칠세라 컴퓨터가 그려준 아이의 변한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모두 25년 전 실종된 딸 하늘이의 몽타주라는데요.
[조병세/조하늘 양 아버지/1995년 실종 당시 4살 : "유치원 원복을 입고 하늘이가 실종이 됐거든요. 이런 식으로 (현재 예측 몽타주를 넣어서) 전단지를 만들어서 계속 뿌리게 됐죠."]
하늘이가 실종된 건 1995년 6월 15일 저녁이었습니다..
[조병세/조하늘 양 아버지/1995년 실종 당시 4살 : "집 앞 골목에서 아이가 실종이 됐거든요.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 줄 알고 밖에 데리러 나갔는데 하늘이가 안 보인 거죠."]
아이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전국을 떠돌았던 하늘이 아빠.
사람들의 무관심에 상처도 많았습니다.
[조병세/조하늘 양 아버지/1995년 실종 당시 4살 : "전단지를 길거리에서 나눠주잖아요. 받는 즉시 그냥 비벼서 바닥에 버리고 발로 짓이기고 뭉개고 가고 아이들의 그 전단지를……. 그게 최고 가슴이 많이 아팠던 거예요."]
무심하게 흐른 25년의 시간 주변에선 포기하라고 하지만 조병세 씨 역시 유전자 검사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부터 국내에서 유전자 대조를 통해 가족을 되찾은 아동만 무려 360여 명.
아동 보호시설에 입소한 무연고 아동과 장기실종아동 가족의 유전자를 비교한 결괍니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해외 입양자들까지 유전자 등록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실종아동의 가족들 기대도 더 커졌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엔 유전자 등록 시스템을 통해 해외 입양됐던 아들과 어머니가 30년 만에 만나기도 했는데요.
[이건수/백석대학교 경찰학부 교수 : "장기 실종아동은 대부분 그 아이들이 어리고 (실종된 지) 10년 이상 된 그 아이들을 한눈에 알아보긴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찾을만한 단서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부모에게 인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전자를 검사하는 방법이거든요."]
현재 10년 이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장기실종 아동은 598명.
가정의 달 5월에, 더 많은 아이들이 가족을 되찾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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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조하늘양 6살 최준원양 15살 김도연군.
실종된 지 적게는 19년, 길게는 25년이 지난 장기실종아동들입니다.
강산이 두 번은 바뀐다는 긴 시간 동안 아이를 찾아 헤맨 가족들, 주변의 포기하라는 말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데요.
가족의 의미가 깊어지는 가정의 달 5월.
수십년째 가족을 찾아 헤매는 이들의 아픈 사연을 뉴스따라잡기가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신발장 안 낡은 실내화. 김도연이라는 석자가 또렷합니다.
19년 전 사라진 아들의 이름입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세상에……. 새것이었는데 세월이 너무 지나서 이렇게 삭았어요."]
형체를 잃어가는 신발에 엄마의 가슴은 또 다시 무너져 내립니다.
지적장애 1급으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해 보살핌이 필요했던 도연이 그런 도연이가 사라진 건 2001년 1월 29일,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사회 적응훈련 차 학원에서 1박 2일로 경주 보문단지에 여행을 갔던 거죠. 우리 도연이를 1층하고 2층 있는 계단에 혼자 뒀더라고요."]
부부는 아들을 찾아 전국의 장애인 시설과 정신병원을 찾아다녔습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계속 도연이를 찾아다녔던 기록들이에요. 미인가 시설을 찾아다니면서 주소하고 기록을 여기에 다 남겨뒀어요."]
그렇게 보낸 시간이 무려 19년. 그래도 아들의 모습은 선명하기만 합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12개월 때 뇌수종으로 수술을 했기 때문에 오른쪽에 머리만 살짝 들춰보면 여기서 이만큼 10cm가량 흉터 자국이 있어요. 화가 난다든지 그러면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이렇게 목 성대를 툭툭 쳤어요."]
40대였던 어머닌 이제 환갑이 됐지만 도연이를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19년이 지나도 그리움은 절대 작아지지를 않더라고요. 혹시나 우리 도연이를 만났을 때 제가 건강하지 않아서 도연이를 못 보살필까 봐 그게 최고 걱정이에요."]
그런가하면 20년째 딸의 흔적을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이 낙서들, 그림들. 이런 것들이 우리 준원이가 한 거예요."]
갸름한 얼굴에 유달리 총명했던 6살 준원이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집 앞 놀이터였습니다.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2000년 4월 4일 날 오후 3시 반경에 이 놀이터에 준원이가 놀고 있었어요. 많은 아이들이 여기서 놀고 있었는데 우리 준원이만 사라진 거예요."]
풀이 무성한 놀이터는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지만 아버지의 시간은 20년 전 그날에 멈춰 서 있습니다.
준원이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아빠 휴대전화 번호도 다 알고 있고 동네 골목골목을 다 누비고 다녔고 지리를 모르는 애는 아니에요. 누군가 아는 사람이 데려갔겠다.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동안 아이를 찾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다는 최용진씨.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앵벌이로 데려가지 않을까 해서 서울역이나 청량리 쪽에서 노숙도 많이 해봤고요. 미친 듯이 전국을 찾아 헤맸었죠. 아이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다 보니까 자동으로 회사에서 해고가 되는 거죠."]
직장도 관두고 가정 형편도 어려워졌지만 버티게 하는 건 준원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준원아 벌써 20년이 흘렀다. 이제는 네가 엄마 아빠를 찾아야 될 상황이 됐어. 엄마 아빠는 DNA, 유전자를 경찰에 등록했거든. 너도 유전자 검사를 한다면 어디에 있든 미국에 있어도 상관없어. (유전자 검사를) 하면 만날 수 있어. 이제 네가 찾았으면 좋겠어."]
커버린 아이의 모습을 행여 놓칠세라 컴퓨터가 그려준 아이의 변한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모두 25년 전 실종된 딸 하늘이의 몽타주라는데요.
[조병세/조하늘 양 아버지/1995년 실종 당시 4살 : "유치원 원복을 입고 하늘이가 실종이 됐거든요. 이런 식으로 (현재 예측 몽타주를 넣어서) 전단지를 만들어서 계속 뿌리게 됐죠."]
하늘이가 실종된 건 1995년 6월 15일 저녁이었습니다..
[조병세/조하늘 양 아버지/1995년 실종 당시 4살 : "집 앞 골목에서 아이가 실종이 됐거든요.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 줄 알고 밖에 데리러 나갔는데 하늘이가 안 보인 거죠."]
아이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전국을 떠돌았던 하늘이 아빠.
사람들의 무관심에 상처도 많았습니다.
[조병세/조하늘 양 아버지/1995년 실종 당시 4살 : "전단지를 길거리에서 나눠주잖아요. 받는 즉시 그냥 비벼서 바닥에 버리고 발로 짓이기고 뭉개고 가고 아이들의 그 전단지를……. 그게 최고 가슴이 많이 아팠던 거예요."]
무심하게 흐른 25년의 시간 주변에선 포기하라고 하지만 조병세 씨 역시 유전자 검사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부터 국내에서 유전자 대조를 통해 가족을 되찾은 아동만 무려 360여 명.
아동 보호시설에 입소한 무연고 아동과 장기실종아동 가족의 유전자를 비교한 결괍니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해외 입양자들까지 유전자 등록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실종아동의 가족들 기대도 더 커졌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엔 유전자 등록 시스템을 통해 해외 입양됐던 아들과 어머니가 30년 만에 만나기도 했는데요.
[이건수/백석대학교 경찰학부 교수 : "장기 실종아동은 대부분 그 아이들이 어리고 (실종된 지) 10년 이상 된 그 아이들을 한눈에 알아보긴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찾을만한 단서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부모에게 인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전자를 검사하는 방법이거든요."]
현재 10년 이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장기실종 아동은 598명.
가정의 달 5월에, 더 많은 아이들이 가족을 되찾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여기 전단지를 한 번 봐주시기 바랍니다.
4살 조하늘양 6살 최준원양 15살 김도연군.
실종된 지 적게는 19년, 길게는 25년이 지난 장기실종아동들입니다.
강산이 두 번은 바뀐다는 긴 시간 동안 아이를 찾아 헤맨 가족들, 주변의 포기하라는 말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데요.
가족의 의미가 깊어지는 가정의 달 5월.
수십년째 가족을 찾아 헤매는 이들의 아픈 사연을 뉴스따라잡기가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신발장 안 낡은 실내화. 김도연이라는 석자가 또렷합니다.
19년 전 사라진 아들의 이름입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세상에……. 새것이었는데 세월이 너무 지나서 이렇게 삭았어요."]
형체를 잃어가는 신발에 엄마의 가슴은 또 다시 무너져 내립니다.
지적장애 1급으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해 보살핌이 필요했던 도연이 그런 도연이가 사라진 건 2001년 1월 29일,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사회 적응훈련 차 학원에서 1박 2일로 경주 보문단지에 여행을 갔던 거죠. 우리 도연이를 1층하고 2층 있는 계단에 혼자 뒀더라고요."]
부부는 아들을 찾아 전국의 장애인 시설과 정신병원을 찾아다녔습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계속 도연이를 찾아다녔던 기록들이에요. 미인가 시설을 찾아다니면서 주소하고 기록을 여기에 다 남겨뒀어요."]
그렇게 보낸 시간이 무려 19년. 그래도 아들의 모습은 선명하기만 합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12개월 때 뇌수종으로 수술을 했기 때문에 오른쪽에 머리만 살짝 들춰보면 여기서 이만큼 10cm가량 흉터 자국이 있어요. 화가 난다든지 그러면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이렇게 목 성대를 툭툭 쳤어요."]
40대였던 어머닌 이제 환갑이 됐지만 도연이를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인숙/김도연 군 어머니/2001년 실종 당시 15세 : "19년이 지나도 그리움은 절대 작아지지를 않더라고요. 혹시나 우리 도연이를 만났을 때 제가 건강하지 않아서 도연이를 못 보살필까 봐 그게 최고 걱정이에요."]
그런가하면 20년째 딸의 흔적을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이 낙서들, 그림들. 이런 것들이 우리 준원이가 한 거예요."]
갸름한 얼굴에 유달리 총명했던 6살 준원이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집 앞 놀이터였습니다.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2000년 4월 4일 날 오후 3시 반경에 이 놀이터에 준원이가 놀고 있었어요. 많은 아이들이 여기서 놀고 있었는데 우리 준원이만 사라진 거예요."]
풀이 무성한 놀이터는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지만 아버지의 시간은 20년 전 그날에 멈춰 서 있습니다.
준원이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아빠 휴대전화 번호도 다 알고 있고 동네 골목골목을 다 누비고 다녔고 지리를 모르는 애는 아니에요. 누군가 아는 사람이 데려갔겠다.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동안 아이를 찾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다는 최용진씨.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앵벌이로 데려가지 않을까 해서 서울역이나 청량리 쪽에서 노숙도 많이 해봤고요. 미친 듯이 전국을 찾아 헤맸었죠. 아이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다 보니까 자동으로 회사에서 해고가 되는 거죠."]
직장도 관두고 가정 형편도 어려워졌지만 버티게 하는 건 준원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최용진/최준원 양 아버지/2000년 실종 당시 6세 : "준원아 벌써 20년이 흘렀다. 이제는 네가 엄마 아빠를 찾아야 될 상황이 됐어. 엄마 아빠는 DNA, 유전자를 경찰에 등록했거든. 너도 유전자 검사를 한다면 어디에 있든 미국에 있어도 상관없어. (유전자 검사를) 하면 만날 수 있어. 이제 네가 찾았으면 좋겠어."]
커버린 아이의 모습을 행여 놓칠세라 컴퓨터가 그려준 아이의 변한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모두 25년 전 실종된 딸 하늘이의 몽타주라는데요.
[조병세/조하늘 양 아버지/1995년 실종 당시 4살 : "유치원 원복을 입고 하늘이가 실종이 됐거든요. 이런 식으로 (현재 예측 몽타주를 넣어서) 전단지를 만들어서 계속 뿌리게 됐죠."]
하늘이가 실종된 건 1995년 6월 15일 저녁이었습니다..
[조병세/조하늘 양 아버지/1995년 실종 당시 4살 : "집 앞 골목에서 아이가 실종이 됐거든요.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 줄 알고 밖에 데리러 나갔는데 하늘이가 안 보인 거죠."]
아이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전국을 떠돌았던 하늘이 아빠.
사람들의 무관심에 상처도 많았습니다.
[조병세/조하늘 양 아버지/1995년 실종 당시 4살 : "전단지를 길거리에서 나눠주잖아요. 받는 즉시 그냥 비벼서 바닥에 버리고 발로 짓이기고 뭉개고 가고 아이들의 그 전단지를……. 그게 최고 가슴이 많이 아팠던 거예요."]
무심하게 흐른 25년의 시간 주변에선 포기하라고 하지만 조병세 씨 역시 유전자 검사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부터 국내에서 유전자 대조를 통해 가족을 되찾은 아동만 무려 360여 명.
아동 보호시설에 입소한 무연고 아동과 장기실종아동 가족의 유전자를 비교한 결괍니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해외 입양자들까지 유전자 등록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실종아동의 가족들 기대도 더 커졌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엔 유전자 등록 시스템을 통해 해외 입양됐던 아들과 어머니가 30년 만에 만나기도 했는데요.
[이건수/백석대학교 경찰학부 교수 : "장기 실종아동은 대부분 그 아이들이 어리고 (실종된 지) 10년 이상 된 그 아이들을 한눈에 알아보긴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찾을만한 단서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부모에게 인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전자를 검사하는 방법이거든요."]
현재 10년 이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장기실종 아동은 598명.
가정의 달 5월에, 더 많은 아이들이 가족을 되찾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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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기자 winepar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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