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만삭의 위안부’ 영상 첫 발굴…구출되자 “만세, 만세”
입력 2020.05.28 (17:45)
수정 2020.05.2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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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9월, 중국 윈난성 쑹산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미·중 연합군에 의해 구출되는 영상을 KBS가 발굴했습니다. 이 영상에는 '만삭의 위안부'로 잘 알려진 고(故) 박영심 할머니의 모습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문서나 사진은 있는 편이지만, 영상은 정말 희귀합니다. 지금까지 존재하던 영상은 2017년 서울대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발굴한 18초 분량이 유일했습니다. 박영심 할머니 일행이 중국 쑹산에서 구출된 이후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번에 KBS가 발굴한 영상은 박영심 할머니 일행이 미·중 연합군에 의해 발견되는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54초 분량으로 길이도 더 깁니다.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이 더 생생하게 담겨 있어, 학술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 영상으로 처음 만나는 '만삭의 위안부'
영상이 촬영된 날은 1944년 9월 7일로 추정됩니다. 미·중 연합군이 중국 윈난성 쑹산에서 100일간의 전투 끝에 일본군 진지를 함락하던 날입니다. 당시 진지에 남아있던 일본군들이 대부분 자결한 뒤, 위안소에 남아있던 박영심 할머니 일행이 탈출했다가 연합군에게 발견되는 상황입니다.
이번 영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만삭의 위안부' 사진으로 잘 알려진 박영심 할머니입니다. 박 할머니는 2000년 '만삭의 위안부' 사진 속 인물이 자신이라고 밝힌 뒤, 북한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 앞장서다 2006년 평양에서 돌아가신 분입니다.
박 할머니는 1921년 평안남도 남포에서 태어나 17살이던 1939년, 잡부를 모집한다는 일본 경찰의 말에 속아 중국 난징으로 갔습니다. 그때부터 미얀마와 윈난성 등 전장에 끌려다니며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습니다. 잘 웃고 명랑했던 소녀는 모진 고통에 아편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상태로 변해갔습니다.
1944년 9월 윈난성 쑹산에서 발견될 당시에는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미·중 연합군의 공격이 점차 치열해지자, 박 할머니는 다른 위안부들과 일본군 진지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산 아래로 목숨 건 탈출을 하다 미·중 연합군에게 발견됐는데, 바로 그때 촬영한 영상이 이번에 발굴된 겁니다.
■ 연합군 보고 어리둥절해 하다가 "만세, 만세"
영상 속 박 할머니는 당시 22살이었습니다. 앳된 얼굴이지만, 배는 만삭으로 불러있습니다. 박 할머니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박 할머니는 일본군과 함께 있을 때 연합군에게 붙잡히면 죽임을 당할 것이란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연합군이 여러 차례 "만세"를 외치며 즐거워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자 조금씩 안도하는 듯해 보입니다. 그리고 할머니도 이내 표정을 풀고 "만세"라고 따라 외칩니다. 만세를 부를 때 할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여러 가지 감정이 휘몰아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상이 찍힌 직후, 박 할머니는 출혈을 시작했고, 결국 사산을 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위안부들이 일본 군인을 위해 기꺼이 봉사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영상을 보면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목숨을 건 탈출을 한 박 할머니가 일본군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만세"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일본 사료가 얼마나 일본의 시각에서 쓰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최근 이른바 '윤미향 사태' 이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번 영상을 보면, 일본군 위안부가 실존했고, 그 본질은 피해를 당한 분들의 삶과 우리의 아픈 역사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습니다.
■ 맨발에 피투성이…처참한 모습의 위안부들
영상에는 박영심 할머니 이외의 다른 위안부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한 위안부 여성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가 연합군에 의해 일으켜 세워졌는데, 얼굴이 피투성이에 한쪽 눈이 심하게 부어 있습니다. 전투 중 크게 다친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당시 중국 쑹산에서 위안부가 24명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생존한 위안부는 10명입니다. 대부분 조선인 위안부로 추정됩니다. 당시 위안부들은 모두 맨발에 남루한 차림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식 '기모노' 형태를 한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의 모습도 보입니다. 박영심 할머니는 "모두 너무 굶주린 상태였고, 생과 사를 넘나들던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증언한 바 있습니다.
특히 당시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의 보급품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전투지에서 고립되면 자결할 것을 강요받는 상황이었습니다. 지옥 같은 상황에서 탈출한 위안부들이 연합군이라는 새로운 대상을 맞닥뜨렸을 때의 당혹감도 영상에 생생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 희귀 자료, 어디서 어떻게 구했나
이번 영상은 KBS 다큐인사이트 제작팀이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굴한 자료입니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과거 한국사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굴했습니다.
파일의 제목은 "1947-1964 군사 활동 관련 동영상(Moving Images Relating to Military Activities, 1947 - 1964)"입니다. 파일의 이름만 봐서는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내용일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영상은 1944년 당시 미군 164통신대 사진대 소속 사진병이었던 에드워드 페이 병장이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키나와 등 다른 장소에서 찍힌 영상에 섞여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KBS 취재팀은 권위 있는 전문가들에게 고증을 받아 영상 속 인물이 박영심 할머니 일행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영상을 처음 본 박정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왈칵 눈물을 흘렸습니다. 평생을 바쳐 추적했던 일본군위안부의 생생한 영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 박사는 "위안부 자료는 제목에도 '위안부'라고 표시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조각조각 있어서 찾기가 정말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2017년 당시 서울대 연구팀에서 세계 최초로 조선인 위안부 영상을 발굴했던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도 이 영상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강 교수는 "이번 영상 발굴은 공영방송으로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KBS이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 영상은 목록화되거나 디지털화된 것이 많지 않아서 연구자가 일일이 발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 사실상 '모래에서 바늘찾은 격'…추가 발굴 필요성 절실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박사는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파편화된 조각을 찾아 모아서 증언과 함께 기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번에 발굴한 영상은 매우 중요한 사료라고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영상 발굴은 사실상 '모래에서 우연히 바늘을 찾은 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엔 한국사와 관련한 수많은 자료가 남아 있지만, 상당수 자료가 필름 형태로 존재하는 데다 분류가 체계적이지 않아 발굴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연관기사]
[영상] KBS 발굴 ‘만삭의 위안부’ 구출 당시 영상 최초 공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문서나 사진은 있는 편이지만, 영상은 정말 희귀합니다. 지금까지 존재하던 영상은 2017년 서울대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발굴한 18초 분량이 유일했습니다. 박영심 할머니 일행이 중국 쑹산에서 구출된 이후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번에 KBS가 발굴한 영상은 박영심 할머니 일행이 미·중 연합군에 의해 발견되는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54초 분량으로 길이도 더 깁니다.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이 더 생생하게 담겨 있어, 학술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 영상으로 처음 만나는 '만삭의 위안부'
영상이 촬영된 날은 1944년 9월 7일로 추정됩니다. 미·중 연합군이 중국 윈난성 쑹산에서 100일간의 전투 끝에 일본군 진지를 함락하던 날입니다. 당시 진지에 남아있던 일본군들이 대부분 자결한 뒤, 위안소에 남아있던 박영심 할머니 일행이 탈출했다가 연합군에게 발견되는 상황입니다.
이번 영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만삭의 위안부' 사진으로 잘 알려진 박영심 할머니입니다. 박 할머니는 2000년 '만삭의 위안부' 사진 속 인물이 자신이라고 밝힌 뒤, 북한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 앞장서다 2006년 평양에서 돌아가신 분입니다.
박 할머니는 1921년 평안남도 남포에서 태어나 17살이던 1939년, 잡부를 모집한다는 일본 경찰의 말에 속아 중국 난징으로 갔습니다. 그때부터 미얀마와 윈난성 등 전장에 끌려다니며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습니다. 잘 웃고 명랑했던 소녀는 모진 고통에 아편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상태로 변해갔습니다.
1944년 9월 윈난성 쑹산에서 발견될 당시에는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미·중 연합군의 공격이 점차 치열해지자, 박 할머니는 다른 위안부들과 일본군 진지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산 아래로 목숨 건 탈출을 하다 미·중 연합군에게 발견됐는데, 바로 그때 촬영한 영상이 이번에 발굴된 겁니다.
■ 연합군 보고 어리둥절해 하다가 "만세, 만세"
영상 속 박 할머니는 당시 22살이었습니다. 앳된 얼굴이지만, 배는 만삭으로 불러있습니다. 박 할머니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박 할머니는 일본군과 함께 있을 때 연합군에게 붙잡히면 죽임을 당할 것이란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연합군이 여러 차례 "만세"를 외치며 즐거워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자 조금씩 안도하는 듯해 보입니다. 그리고 할머니도 이내 표정을 풀고 "만세"라고 따라 외칩니다. 만세를 부를 때 할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여러 가지 감정이 휘몰아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상이 찍힌 직후, 박 할머니는 출혈을 시작했고, 결국 사산을 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위안부들이 일본 군인을 위해 기꺼이 봉사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영상을 보면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목숨을 건 탈출을 한 박 할머니가 일본군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만세"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일본 사료가 얼마나 일본의 시각에서 쓰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최근 이른바 '윤미향 사태' 이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번 영상을 보면, 일본군 위안부가 실존했고, 그 본질은 피해를 당한 분들의 삶과 우리의 아픈 역사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습니다.
■ 맨발에 피투성이…처참한 모습의 위안부들
영상에는 박영심 할머니 이외의 다른 위안부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한 위안부 여성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가 연합군에 의해 일으켜 세워졌는데, 얼굴이 피투성이에 한쪽 눈이 심하게 부어 있습니다. 전투 중 크게 다친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당시 중국 쑹산에서 위안부가 24명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생존한 위안부는 10명입니다. 대부분 조선인 위안부로 추정됩니다. 당시 위안부들은 모두 맨발에 남루한 차림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식 '기모노' 형태를 한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의 모습도 보입니다. 박영심 할머니는 "모두 너무 굶주린 상태였고, 생과 사를 넘나들던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증언한 바 있습니다.
특히 당시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의 보급품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전투지에서 고립되면 자결할 것을 강요받는 상황이었습니다. 지옥 같은 상황에서 탈출한 위안부들이 연합군이라는 새로운 대상을 맞닥뜨렸을 때의 당혹감도 영상에 생생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 희귀 자료, 어디서 어떻게 구했나
이번 영상은 KBS 다큐인사이트 제작팀이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굴한 자료입니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과거 한국사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굴했습니다.
파일의 제목은 "1947-1964 군사 활동 관련 동영상(Moving Images Relating to Military Activities, 1947 - 1964)"입니다. 파일의 이름만 봐서는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내용일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영상은 1944년 당시 미군 164통신대 사진대 소속 사진병이었던 에드워드 페이 병장이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키나와 등 다른 장소에서 찍힌 영상에 섞여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KBS 취재팀은 권위 있는 전문가들에게 고증을 받아 영상 속 인물이 박영심 할머니 일행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영상을 처음 본 박정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왈칵 눈물을 흘렸습니다. 평생을 바쳐 추적했던 일본군위안부의 생생한 영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 박사는 "위안부 자료는 제목에도 '위안부'라고 표시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조각조각 있어서 찾기가 정말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2017년 당시 서울대 연구팀에서 세계 최초로 조선인 위안부 영상을 발굴했던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도 이 영상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강 교수는 "이번 영상 발굴은 공영방송으로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KBS이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 영상은 목록화되거나 디지털화된 것이 많지 않아서 연구자가 일일이 발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 사실상 '모래에서 바늘찾은 격'…추가 발굴 필요성 절실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박사는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파편화된 조각을 찾아 모아서 증언과 함께 기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번에 발굴한 영상은 매우 중요한 사료라고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영상 발굴은 사실상 '모래에서 우연히 바늘을 찾은 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엔 한국사와 관련한 수많은 자료가 남아 있지만, 상당수 자료가 필름 형태로 존재하는 데다 분류가 체계적이지 않아 발굴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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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0-05-28 23:30:36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9월, 중국 윈난성 쑹산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미·중 연합군에 의해 구출되는 영상을 KBS가 발굴했습니다. 이 영상에는 '만삭의 위안부'로 잘 알려진 고(故) 박영심 할머니의 모습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문서나 사진은 있는 편이지만, 영상은 정말 희귀합니다. 지금까지 존재하던 영상은 2017년 서울대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발굴한 18초 분량이 유일했습니다. 박영심 할머니 일행이 중국 쑹산에서 구출된 이후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번에 KBS가 발굴한 영상은 박영심 할머니 일행이 미·중 연합군에 의해 발견되는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54초 분량으로 길이도 더 깁니다.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이 더 생생하게 담겨 있어, 학술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 영상으로 처음 만나는 '만삭의 위안부'
영상이 촬영된 날은 1944년 9월 7일로 추정됩니다. 미·중 연합군이 중국 윈난성 쑹산에서 100일간의 전투 끝에 일본군 진지를 함락하던 날입니다. 당시 진지에 남아있던 일본군들이 대부분 자결한 뒤, 위안소에 남아있던 박영심 할머니 일행이 탈출했다가 연합군에게 발견되는 상황입니다.
이번 영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만삭의 위안부' 사진으로 잘 알려진 박영심 할머니입니다. 박 할머니는 2000년 '만삭의 위안부' 사진 속 인물이 자신이라고 밝힌 뒤, 북한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 앞장서다 2006년 평양에서 돌아가신 분입니다.
박 할머니는 1921년 평안남도 남포에서 태어나 17살이던 1939년, 잡부를 모집한다는 일본 경찰의 말에 속아 중국 난징으로 갔습니다. 그때부터 미얀마와 윈난성 등 전장에 끌려다니며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습니다. 잘 웃고 명랑했던 소녀는 모진 고통에 아편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상태로 변해갔습니다.
1944년 9월 윈난성 쑹산에서 발견될 당시에는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미·중 연합군의 공격이 점차 치열해지자, 박 할머니는 다른 위안부들과 일본군 진지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산 아래로 목숨 건 탈출을 하다 미·중 연합군에게 발견됐는데, 바로 그때 촬영한 영상이 이번에 발굴된 겁니다.
■ 연합군 보고 어리둥절해 하다가 "만세, 만세"
영상 속 박 할머니는 당시 22살이었습니다. 앳된 얼굴이지만, 배는 만삭으로 불러있습니다. 박 할머니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박 할머니는 일본군과 함께 있을 때 연합군에게 붙잡히면 죽임을 당할 것이란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연합군이 여러 차례 "만세"를 외치며 즐거워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자 조금씩 안도하는 듯해 보입니다. 그리고 할머니도 이내 표정을 풀고 "만세"라고 따라 외칩니다. 만세를 부를 때 할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여러 가지 감정이 휘몰아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상이 찍힌 직후, 박 할머니는 출혈을 시작했고, 결국 사산을 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위안부들이 일본 군인을 위해 기꺼이 봉사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영상을 보면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목숨을 건 탈출을 한 박 할머니가 일본군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만세"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일본 사료가 얼마나 일본의 시각에서 쓰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최근 이른바 '윤미향 사태' 이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번 영상을 보면, 일본군 위안부가 실존했고, 그 본질은 피해를 당한 분들의 삶과 우리의 아픈 역사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습니다.
■ 맨발에 피투성이…처참한 모습의 위안부들
영상에는 박영심 할머니 이외의 다른 위안부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한 위안부 여성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가 연합군에 의해 일으켜 세워졌는데, 얼굴이 피투성이에 한쪽 눈이 심하게 부어 있습니다. 전투 중 크게 다친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당시 중국 쑹산에서 위안부가 24명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생존한 위안부는 10명입니다. 대부분 조선인 위안부로 추정됩니다. 당시 위안부들은 모두 맨발에 남루한 차림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식 '기모노' 형태를 한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의 모습도 보입니다. 박영심 할머니는 "모두 너무 굶주린 상태였고, 생과 사를 넘나들던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증언한 바 있습니다.
특히 당시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의 보급품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전투지에서 고립되면 자결할 것을 강요받는 상황이었습니다. 지옥 같은 상황에서 탈출한 위안부들이 연합군이라는 새로운 대상을 맞닥뜨렸을 때의 당혹감도 영상에 생생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 희귀 자료, 어디서 어떻게 구했나
이번 영상은 KBS 다큐인사이트 제작팀이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굴한 자료입니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과거 한국사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굴했습니다.
파일의 제목은 "1947-1964 군사 활동 관련 동영상(Moving Images Relating to Military Activities, 1947 - 1964)"입니다. 파일의 이름만 봐서는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내용일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영상은 1944년 당시 미군 164통신대 사진대 소속 사진병이었던 에드워드 페이 병장이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키나와 등 다른 장소에서 찍힌 영상에 섞여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KBS 취재팀은 권위 있는 전문가들에게 고증을 받아 영상 속 인물이 박영심 할머니 일행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영상을 처음 본 박정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왈칵 눈물을 흘렸습니다. 평생을 바쳐 추적했던 일본군위안부의 생생한 영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 박사는 "위안부 자료는 제목에도 '위안부'라고 표시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조각조각 있어서 찾기가 정말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2017년 당시 서울대 연구팀에서 세계 최초로 조선인 위안부 영상을 발굴했던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도 이 영상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강 교수는 "이번 영상 발굴은 공영방송으로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KBS이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 영상은 목록화되거나 디지털화된 것이 많지 않아서 연구자가 일일이 발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 사실상 '모래에서 바늘찾은 격'…추가 발굴 필요성 절실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박사는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파편화된 조각을 찾아 모아서 증언과 함께 기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번에 발굴한 영상은 매우 중요한 사료라고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영상 발굴은 사실상 '모래에서 우연히 바늘을 찾은 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엔 한국사와 관련한 수많은 자료가 남아 있지만, 상당수 자료가 필름 형태로 존재하는 데다 분류가 체계적이지 않아 발굴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연관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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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KBS가 발굴한 영상은 박영심 할머니 일행이 미·중 연합군에 의해 발견되는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54초 분량으로 길이도 더 깁니다.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이 더 생생하게 담겨 있어, 학술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 영상으로 처음 만나는 '만삭의 위안부'
영상이 촬영된 날은 1944년 9월 7일로 추정됩니다. 미·중 연합군이 중국 윈난성 쑹산에서 100일간의 전투 끝에 일본군 진지를 함락하던 날입니다. 당시 진지에 남아있던 일본군들이 대부분 자결한 뒤, 위안소에 남아있던 박영심 할머니 일행이 탈출했다가 연합군에게 발견되는 상황입니다.
이번 영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만삭의 위안부' 사진으로 잘 알려진 박영심 할머니입니다. 박 할머니는 2000년 '만삭의 위안부' 사진 속 인물이 자신이라고 밝힌 뒤, 북한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 앞장서다 2006년 평양에서 돌아가신 분입니다.
박 할머니는 1921년 평안남도 남포에서 태어나 17살이던 1939년, 잡부를 모집한다는 일본 경찰의 말에 속아 중국 난징으로 갔습니다. 그때부터 미얀마와 윈난성 등 전장에 끌려다니며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습니다. 잘 웃고 명랑했던 소녀는 모진 고통에 아편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상태로 변해갔습니다.
1944년 9월 윈난성 쑹산에서 발견될 당시에는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미·중 연합군의 공격이 점차 치열해지자, 박 할머니는 다른 위안부들과 일본군 진지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산 아래로 목숨 건 탈출을 하다 미·중 연합군에게 발견됐는데, 바로 그때 촬영한 영상이 이번에 발굴된 겁니다.
■ 연합군 보고 어리둥절해 하다가 "만세, 만세"
영상 속 박 할머니는 당시 22살이었습니다. 앳된 얼굴이지만, 배는 만삭으로 불러있습니다. 박 할머니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박 할머니는 일본군과 함께 있을 때 연합군에게 붙잡히면 죽임을 당할 것이란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연합군이 여러 차례 "만세"를 외치며 즐거워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자 조금씩 안도하는 듯해 보입니다. 그리고 할머니도 이내 표정을 풀고 "만세"라고 따라 외칩니다. 만세를 부를 때 할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여러 가지 감정이 휘몰아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상이 찍힌 직후, 박 할머니는 출혈을 시작했고, 결국 사산을 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위안부들이 일본 군인을 위해 기꺼이 봉사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영상을 보면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목숨을 건 탈출을 한 박 할머니가 일본군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만세"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일본 사료가 얼마나 일본의 시각에서 쓰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최근 이른바 '윤미향 사태' 이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번 영상을 보면, 일본군 위안부가 실존했고, 그 본질은 피해를 당한 분들의 삶과 우리의 아픈 역사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습니다.
■ 맨발에 피투성이…처참한 모습의 위안부들
영상에는 박영심 할머니 이외의 다른 위안부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한 위안부 여성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가 연합군에 의해 일으켜 세워졌는데, 얼굴이 피투성이에 한쪽 눈이 심하게 부어 있습니다. 전투 중 크게 다친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당시 중국 쑹산에서 위안부가 24명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생존한 위안부는 10명입니다. 대부분 조선인 위안부로 추정됩니다. 당시 위안부들은 모두 맨발에 남루한 차림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식 '기모노' 형태를 한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의 모습도 보입니다. 박영심 할머니는 "모두 너무 굶주린 상태였고, 생과 사를 넘나들던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증언한 바 있습니다.
특히 당시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의 보급품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전투지에서 고립되면 자결할 것을 강요받는 상황이었습니다. 지옥 같은 상황에서 탈출한 위안부들이 연합군이라는 새로운 대상을 맞닥뜨렸을 때의 당혹감도 영상에 생생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 희귀 자료, 어디서 어떻게 구했나
이번 영상은 KBS 다큐인사이트 제작팀이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굴한 자료입니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과거 한국사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굴했습니다.
파일의 제목은 "1947-1964 군사 활동 관련 동영상(Moving Images Relating to Military Activities, 1947 - 1964)"입니다. 파일의 이름만 봐서는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내용일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영상은 1944년 당시 미군 164통신대 사진대 소속 사진병이었던 에드워드 페이 병장이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키나와 등 다른 장소에서 찍힌 영상에 섞여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KBS 취재팀은 권위 있는 전문가들에게 고증을 받아 영상 속 인물이 박영심 할머니 일행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영상을 처음 본 박정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왈칵 눈물을 흘렸습니다. 평생을 바쳐 추적했던 일본군위안부의 생생한 영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 박사는 "위안부 자료는 제목에도 '위안부'라고 표시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조각조각 있어서 찾기가 정말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2017년 당시 서울대 연구팀에서 세계 최초로 조선인 위안부 영상을 발굴했던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도 이 영상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강 교수는 "이번 영상 발굴은 공영방송으로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KBS이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 영상은 목록화되거나 디지털화된 것이 많지 않아서 연구자가 일일이 발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 사실상 '모래에서 바늘찾은 격'…추가 발굴 필요성 절실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박사는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파편화된 조각을 찾아 모아서 증언과 함께 기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번에 발굴한 영상은 매우 중요한 사료라고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영상 발굴은 사실상 '모래에서 우연히 바늘을 찾은 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엔 한국사와 관련한 수많은 자료가 남아 있지만, 상당수 자료가 필름 형태로 존재하는 데다 분류가 체계적이지 않아 발굴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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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KBS 발굴 ‘만삭의 위안부’ 구출 당시 영상 최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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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kj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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