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식량난이라는데…“통일쌀, 북녘에 닿기를”
입력 2020.06.13 (08:19)
수정 2020.06.1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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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주민 천만 명 이상이 인도주의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유엔 세계식량계획이 북한의 식량난 사태를 경고했습니다.
유엔 인권보고관은 대북제재를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지금 당장은 길이 막혀 있지만 언젠가 북에 보내지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쌀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있습니다.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인도적 지원을 위해 18년째 명맥을 잇고 있는 통일쌀 운동을 채유나 리포터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예로부터 땅이 기름지고 수리시설이 잘돼있어 농산물 생산지로 유명한 경북 영천.
한 작은 마을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집니다.
본격적인 모내기 철을 맞아 올 한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인근 농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였습니다.
[이영수/영천시 농민 : "농사는 하늘의 도움 없이는 안 됩니다. 본격적인 농사철 전에 농민들이 모여서 하늘에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염원을 드리는 것입니다."]
정성껏 재배한 농산물과 돼지머리, 모판 등을 제사상에 올렸는데요.
[권효락/영천시 농민 : "정성을 들여야죠. 정성이 최고지. (돼지머리를 앞으로) 농사꾼이 별다른 소망이 있습니까."]
[권효락/영천시 농민 : "농산물 가격 잘 받고 풍년 들면 되죠. 농민들 웃을 수 있도록 정성 들여야죠."]
풍년 기원제는 그 자체로도 농민들에게 한해 농사의 첫 단추와도 같은 중요한 의식이죠.
특히, 이번 기원제는 북한 주민들을 위한 통일쌀이 하루빨리 북으로 보내지길 염원하는 마음을 함께 담아 의미를 더했습니다.
노랫가락까지 더해지면서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모자와 장화를 착용하고 드디어 모심기에 나섭니다.
["자! 통일로 가자! 통일로!"]
모내기 시기는 딱 정해진 날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고품질 쌀을 생산하기 위해선 날씨가 따뜻해지는 알맞은 시점을 골라 하는 게 중요한데요.
일렬로 서서 모를 심는 농민들.
맨발로 논에 들어간 농민도 보입니다.
오랜만에 전통방식으로 하다 보니 새록새록 추억도 떠오릅니다.
[김병운/영천시농업기술센터 소장 : "수작업한 지가 한 30년 전에 이렇게 해보고 처음 하는 것 같아서 옛날 생각도 나고 그렇습니다."]
한쪽에선 모판에 있는 모를 뜯어, 논에다 던지기 시작합니다.
[최우승/영천시 농민 : "옛날에는 모를 다 뜯어서 묶어 놨어요. 뭉텅이로 묶어 던져 놓거든요. 그럼 풀어서 하나씩 심었어요."]
오늘 모를 심어야 할 논의 면적은 약 3300제곱미터.
적지 않은 작업량이지만, 수확의 그 날을 기약하고 언젠가 북한 주민들도 이 쌀을 함께 먹을 날을 떠올리면 힘이 절로 납니다.
[최명재/영천시 농민 : "옛날에 그런 말이 있죠.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거 하고 논에 물들어 가는 거 하고 풍년 농사가 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즐겁죠. 당연히."]
[성찬기/영천시 농민 : "더운데 힘들어도 통일 기원하면서 손모심기 행사하니까 좋은 거 같습니다."]
고된 노동 뒤 찾아온 새참 시간.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을 새도 없이 허기를 달랩니다.
["모심고 나니까 배가 고파서 잘 넘어갑니다."]
[최기문/영천시장 : "모심기했는데 맛있게 드십시오. 근데 제대로 밥값을 못한 거 같아."]
꿀맛 같은 새참을 제쳐두고 심은 모를 바라보는 농민도 보입니다.
[이진우/영천시 농민 : "마음이 뿌듯합니다. 이 모가 커서 생산해서 못 먹고 힘든 우리 이북 한민족한테 약간의 양식이 된다면 저는 그것으로써 만족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쌀이 자라날 이 논은 이상무 씨가 소유한 땅을 개간해 마련했습니다.
이 씨는 6.25 전쟁통에 아버지와 헤어진 이산가족인데요.
북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북한 주민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선뜻 땅을 내놨습니다.
[이상무/영천시 농민 : "손 모내기 이렇게 힘든 걸 아직도 북한에서는 할 거 아닙니까. 금강산에서 모내기 일손 돕기 하러 많이 갔었는데..."]
[이상무/영천시 농민 : "그분들하고 같이 일하면서 느낀 게 많아요. (통일이) 좀 빨리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씨와 같은 마음들이 모여 통일쌀 운동은 경북 지역은 물론 충북과 전북, 경기 강원 등 전국적인 행사가 됐는데요.
우리 농민들의 정성이 담긴 통일쌀 손 모내기 행사는 지금까지 13년 동안 진행돼왔습니다.
농민들은 모내기뿐 아니라 북한을 돕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는데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우리 정부가 북한에 처음 쌀을 지원한 건 지난 1995년.
한국전쟁 45년 만이었습니다.
우리 쌀 2천 톤을 실은 배가 북한으로 출항했는데요.
이후 정부의 북한 지원이 잇따르면서 전국농민회 총연맹에서도 2002년부터 통일쌀 운동을 시작했고, 5년 뒤에는 손 모내기 행사를 하는 등 직접 농사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농민들로만 시작해 일반인들까지 참여하며 규모가 커졌다고 합니다.
[양정석/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 "모를 심을 수 있는 나이면 다 가능합니다. 유치원생도 오고 그러더라고요."]
[양정석/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 "체험만의 의미를 뛰어넘어서 ‘여기서 생산되는 것이 북측에 갈 수 있다. 통일의 하나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으로 하는 거라 봅니다."]
쌀을 실은 배를 타고 북한에 다녀온 적이 있다는 양정석 씨.
그때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첫 출항 행사 때 40킬로 포대로 1028가마를 보냈거든요. 2,000분이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쌀과 못자리용 비닐 등을 북한에 지원했는데요.
하지만,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얼어붙은 뒤부터는 통일쌀 운동을 통해 재배된 쌀을 북한에 보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대신 쌀을 팔아 기금을 조성해왔지만 이마저도 보내지 못했고 혹시나 하는 기대에 쌀을 담은 포대를 제작했다, 폐기하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북한의 쌀 생산량을 높여주기 위해 2018년 통일쌀 기금으로 마련한 트랙터들도 결국 보내지 못했습니다.
농민들이 농업을 통해 통일을 염원하는 데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양정석 씨는 말합니다.
[양정석/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 "(남한은) 식량 곡물 작업률이 사실은 쌀을 빼고 나면 4%밖에 안 됩니다. 북측이 (쌀이) 모자라기 때문에 (쌀을) 지원하고, 남측에서 모자라는 옥수수나 다른 부분들을 가져온다면 농업의 장단점을 서로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평화의 마음을 담은 통일쌀이 다시 북녘땅에 도착해 남과 북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할 날이 다가오길 고대해봅니다.
북한 주민 천만 명 이상이 인도주의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유엔 세계식량계획이 북한의 식량난 사태를 경고했습니다.
유엔 인권보고관은 대북제재를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지금 당장은 길이 막혀 있지만 언젠가 북에 보내지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쌀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있습니다.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인도적 지원을 위해 18년째 명맥을 잇고 있는 통일쌀 운동을 채유나 리포터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예로부터 땅이 기름지고 수리시설이 잘돼있어 농산물 생산지로 유명한 경북 영천.
한 작은 마을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집니다.
본격적인 모내기 철을 맞아 올 한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인근 농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였습니다.
[이영수/영천시 농민 : "농사는 하늘의 도움 없이는 안 됩니다. 본격적인 농사철 전에 농민들이 모여서 하늘에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염원을 드리는 것입니다."]
정성껏 재배한 농산물과 돼지머리, 모판 등을 제사상에 올렸는데요.
[권효락/영천시 농민 : "정성을 들여야죠. 정성이 최고지. (돼지머리를 앞으로) 농사꾼이 별다른 소망이 있습니까."]
[권효락/영천시 농민 : "농산물 가격 잘 받고 풍년 들면 되죠. 농민들 웃을 수 있도록 정성 들여야죠."]
풍년 기원제는 그 자체로도 농민들에게 한해 농사의 첫 단추와도 같은 중요한 의식이죠.
특히, 이번 기원제는 북한 주민들을 위한 통일쌀이 하루빨리 북으로 보내지길 염원하는 마음을 함께 담아 의미를 더했습니다.
노랫가락까지 더해지면서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모자와 장화를 착용하고 드디어 모심기에 나섭니다.
["자! 통일로 가자! 통일로!"]
모내기 시기는 딱 정해진 날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고품질 쌀을 생산하기 위해선 날씨가 따뜻해지는 알맞은 시점을 골라 하는 게 중요한데요.
일렬로 서서 모를 심는 농민들.
맨발로 논에 들어간 농민도 보입니다.
오랜만에 전통방식으로 하다 보니 새록새록 추억도 떠오릅니다.
[김병운/영천시농업기술센터 소장 : "수작업한 지가 한 30년 전에 이렇게 해보고 처음 하는 것 같아서 옛날 생각도 나고 그렇습니다."]
한쪽에선 모판에 있는 모를 뜯어, 논에다 던지기 시작합니다.
[최우승/영천시 농민 : "옛날에는 모를 다 뜯어서 묶어 놨어요. 뭉텅이로 묶어 던져 놓거든요. 그럼 풀어서 하나씩 심었어요."]
오늘 모를 심어야 할 논의 면적은 약 3300제곱미터.
적지 않은 작업량이지만, 수확의 그 날을 기약하고 언젠가 북한 주민들도 이 쌀을 함께 먹을 날을 떠올리면 힘이 절로 납니다.
[최명재/영천시 농민 : "옛날에 그런 말이 있죠.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거 하고 논에 물들어 가는 거 하고 풍년 농사가 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즐겁죠. 당연히."]
[성찬기/영천시 농민 : "더운데 힘들어도 통일 기원하면서 손모심기 행사하니까 좋은 거 같습니다."]
고된 노동 뒤 찾아온 새참 시간.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을 새도 없이 허기를 달랩니다.
["모심고 나니까 배가 고파서 잘 넘어갑니다."]
[최기문/영천시장 : "모심기했는데 맛있게 드십시오. 근데 제대로 밥값을 못한 거 같아."]
꿀맛 같은 새참을 제쳐두고 심은 모를 바라보는 농민도 보입니다.
[이진우/영천시 농민 : "마음이 뿌듯합니다. 이 모가 커서 생산해서 못 먹고 힘든 우리 이북 한민족한테 약간의 양식이 된다면 저는 그것으로써 만족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쌀이 자라날 이 논은 이상무 씨가 소유한 땅을 개간해 마련했습니다.
이 씨는 6.25 전쟁통에 아버지와 헤어진 이산가족인데요.
북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북한 주민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선뜻 땅을 내놨습니다.
[이상무/영천시 농민 : "손 모내기 이렇게 힘든 걸 아직도 북한에서는 할 거 아닙니까. 금강산에서 모내기 일손 돕기 하러 많이 갔었는데..."]
[이상무/영천시 농민 : "그분들하고 같이 일하면서 느낀 게 많아요. (통일이) 좀 빨리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씨와 같은 마음들이 모여 통일쌀 운동은 경북 지역은 물론 충북과 전북, 경기 강원 등 전국적인 행사가 됐는데요.
우리 농민들의 정성이 담긴 통일쌀 손 모내기 행사는 지금까지 13년 동안 진행돼왔습니다.
농민들은 모내기뿐 아니라 북한을 돕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는데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우리 정부가 북한에 처음 쌀을 지원한 건 지난 1995년.
한국전쟁 45년 만이었습니다.
우리 쌀 2천 톤을 실은 배가 북한으로 출항했는데요.
이후 정부의 북한 지원이 잇따르면서 전국농민회 총연맹에서도 2002년부터 통일쌀 운동을 시작했고, 5년 뒤에는 손 모내기 행사를 하는 등 직접 농사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농민들로만 시작해 일반인들까지 참여하며 규모가 커졌다고 합니다.
[양정석/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 "모를 심을 수 있는 나이면 다 가능합니다. 유치원생도 오고 그러더라고요."]
[양정석/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 "체험만의 의미를 뛰어넘어서 ‘여기서 생산되는 것이 북측에 갈 수 있다. 통일의 하나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으로 하는 거라 봅니다."]
쌀을 실은 배를 타고 북한에 다녀온 적이 있다는 양정석 씨.
그때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첫 출항 행사 때 40킬로 포대로 1028가마를 보냈거든요. 2,000분이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쌀과 못자리용 비닐 등을 북한에 지원했는데요.
하지만,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얼어붙은 뒤부터는 통일쌀 운동을 통해 재배된 쌀을 북한에 보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대신 쌀을 팔아 기금을 조성해왔지만 이마저도 보내지 못했고 혹시나 하는 기대에 쌀을 담은 포대를 제작했다, 폐기하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북한의 쌀 생산량을 높여주기 위해 2018년 통일쌀 기금으로 마련한 트랙터들도 결국 보내지 못했습니다.
농민들이 농업을 통해 통일을 염원하는 데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양정석 씨는 말합니다.
[양정석/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 "(남한은) 식량 곡물 작업률이 사실은 쌀을 빼고 나면 4%밖에 안 됩니다. 북측이 (쌀이) 모자라기 때문에 (쌀을) 지원하고, 남측에서 모자라는 옥수수나 다른 부분들을 가져온다면 농업의 장단점을 서로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평화의 마음을 담은 통일쌀이 다시 북녘땅에 도착해 남과 북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할 날이 다가오길 고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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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0-06-13 08:47:22
- 수정2020-06-13 08:58:14

[앵커]
북한 주민 천만 명 이상이 인도주의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유엔 세계식량계획이 북한의 식량난 사태를 경고했습니다.
유엔 인권보고관은 대북제재를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지금 당장은 길이 막혀 있지만 언젠가 북에 보내지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쌀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있습니다.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인도적 지원을 위해 18년째 명맥을 잇고 있는 통일쌀 운동을 채유나 리포터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예로부터 땅이 기름지고 수리시설이 잘돼있어 농산물 생산지로 유명한 경북 영천.
한 작은 마을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집니다.
본격적인 모내기 철을 맞아 올 한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인근 농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였습니다.
[이영수/영천시 농민 : "농사는 하늘의 도움 없이는 안 됩니다. 본격적인 농사철 전에 농민들이 모여서 하늘에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염원을 드리는 것입니다."]
정성껏 재배한 농산물과 돼지머리, 모판 등을 제사상에 올렸는데요.
[권효락/영천시 농민 : "정성을 들여야죠. 정성이 최고지. (돼지머리를 앞으로) 농사꾼이 별다른 소망이 있습니까."]
[권효락/영천시 농민 : "농산물 가격 잘 받고 풍년 들면 되죠. 농민들 웃을 수 있도록 정성 들여야죠."]
풍년 기원제는 그 자체로도 농민들에게 한해 농사의 첫 단추와도 같은 중요한 의식이죠.
특히, 이번 기원제는 북한 주민들을 위한 통일쌀이 하루빨리 북으로 보내지길 염원하는 마음을 함께 담아 의미를 더했습니다.
노랫가락까지 더해지면서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모자와 장화를 착용하고 드디어 모심기에 나섭니다.
["자! 통일로 가자! 통일로!"]
모내기 시기는 딱 정해진 날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고품질 쌀을 생산하기 위해선 날씨가 따뜻해지는 알맞은 시점을 골라 하는 게 중요한데요.
일렬로 서서 모를 심는 농민들.
맨발로 논에 들어간 농민도 보입니다.
오랜만에 전통방식으로 하다 보니 새록새록 추억도 떠오릅니다.
[김병운/영천시농업기술센터 소장 : "수작업한 지가 한 30년 전에 이렇게 해보고 처음 하는 것 같아서 옛날 생각도 나고 그렇습니다."]
한쪽에선 모판에 있는 모를 뜯어, 논에다 던지기 시작합니다.
[최우승/영천시 농민 : "옛날에는 모를 다 뜯어서 묶어 놨어요. 뭉텅이로 묶어 던져 놓거든요. 그럼 풀어서 하나씩 심었어요."]
오늘 모를 심어야 할 논의 면적은 약 3300제곱미터.
적지 않은 작업량이지만, 수확의 그 날을 기약하고 언젠가 북한 주민들도 이 쌀을 함께 먹을 날을 떠올리면 힘이 절로 납니다.
[최명재/영천시 농민 : "옛날에 그런 말이 있죠.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거 하고 논에 물들어 가는 거 하고 풍년 농사가 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즐겁죠. 당연히."]
[성찬기/영천시 농민 : "더운데 힘들어도 통일 기원하면서 손모심기 행사하니까 좋은 거 같습니다."]
고된 노동 뒤 찾아온 새참 시간.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을 새도 없이 허기를 달랩니다.
["모심고 나니까 배가 고파서 잘 넘어갑니다."]
[최기문/영천시장 : "모심기했는데 맛있게 드십시오. 근데 제대로 밥값을 못한 거 같아."]
꿀맛 같은 새참을 제쳐두고 심은 모를 바라보는 농민도 보입니다.
[이진우/영천시 농민 : "마음이 뿌듯합니다. 이 모가 커서 생산해서 못 먹고 힘든 우리 이북 한민족한테 약간의 양식이 된다면 저는 그것으로써 만족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쌀이 자라날 이 논은 이상무 씨가 소유한 땅을 개간해 마련했습니다.
이 씨는 6.25 전쟁통에 아버지와 헤어진 이산가족인데요.
북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북한 주민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선뜻 땅을 내놨습니다.
[이상무/영천시 농민 : "손 모내기 이렇게 힘든 걸 아직도 북한에서는 할 거 아닙니까. 금강산에서 모내기 일손 돕기 하러 많이 갔었는데..."]
[이상무/영천시 농민 : "그분들하고 같이 일하면서 느낀 게 많아요. (통일이) 좀 빨리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씨와 같은 마음들이 모여 통일쌀 운동은 경북 지역은 물론 충북과 전북, 경기 강원 등 전국적인 행사가 됐는데요.
우리 농민들의 정성이 담긴 통일쌀 손 모내기 행사는 지금까지 13년 동안 진행돼왔습니다.
농민들은 모내기뿐 아니라 북한을 돕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는데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우리 정부가 북한에 처음 쌀을 지원한 건 지난 1995년.
한국전쟁 45년 만이었습니다.
우리 쌀 2천 톤을 실은 배가 북한으로 출항했는데요.
이후 정부의 북한 지원이 잇따르면서 전국농민회 총연맹에서도 2002년부터 통일쌀 운동을 시작했고, 5년 뒤에는 손 모내기 행사를 하는 등 직접 농사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농민들로만 시작해 일반인들까지 참여하며 규모가 커졌다고 합니다.
[양정석/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 "모를 심을 수 있는 나이면 다 가능합니다. 유치원생도 오고 그러더라고요."]
[양정석/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 "체험만의 의미를 뛰어넘어서 ‘여기서 생산되는 것이 북측에 갈 수 있다. 통일의 하나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으로 하는 거라 봅니다."]
쌀을 실은 배를 타고 북한에 다녀온 적이 있다는 양정석 씨.
그때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첫 출항 행사 때 40킬로 포대로 1028가마를 보냈거든요. 2,000분이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쌀과 못자리용 비닐 등을 북한에 지원했는데요.
하지만,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얼어붙은 뒤부터는 통일쌀 운동을 통해 재배된 쌀을 북한에 보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대신 쌀을 팔아 기금을 조성해왔지만 이마저도 보내지 못했고 혹시나 하는 기대에 쌀을 담은 포대를 제작했다, 폐기하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북한의 쌀 생산량을 높여주기 위해 2018년 통일쌀 기금으로 마련한 트랙터들도 결국 보내지 못했습니다.
농민들이 농업을 통해 통일을 염원하는 데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양정석 씨는 말합니다.
[양정석/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 "(남한은) 식량 곡물 작업률이 사실은 쌀을 빼고 나면 4%밖에 안 됩니다. 북측이 (쌀이) 모자라기 때문에 (쌀을) 지원하고, 남측에서 모자라는 옥수수나 다른 부분들을 가져온다면 농업의 장단점을 서로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평화의 마음을 담은 통일쌀이 다시 북녘땅에 도착해 남과 북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할 날이 다가오길 고대해봅니다.
북한 주민 천만 명 이상이 인도주의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유엔 세계식량계획이 북한의 식량난 사태를 경고했습니다.
유엔 인권보고관은 대북제재를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지금 당장은 길이 막혀 있지만 언젠가 북에 보내지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쌀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있습니다.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인도적 지원을 위해 18년째 명맥을 잇고 있는 통일쌀 운동을 채유나 리포터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예로부터 땅이 기름지고 수리시설이 잘돼있어 농산물 생산지로 유명한 경북 영천.
한 작은 마을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집니다.
본격적인 모내기 철을 맞아 올 한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인근 농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였습니다.
[이영수/영천시 농민 : "농사는 하늘의 도움 없이는 안 됩니다. 본격적인 농사철 전에 농민들이 모여서 하늘에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염원을 드리는 것입니다."]
정성껏 재배한 농산물과 돼지머리, 모판 등을 제사상에 올렸는데요.
[권효락/영천시 농민 : "정성을 들여야죠. 정성이 최고지. (돼지머리를 앞으로) 농사꾼이 별다른 소망이 있습니까."]
[권효락/영천시 농민 : "농산물 가격 잘 받고 풍년 들면 되죠. 농민들 웃을 수 있도록 정성 들여야죠."]
풍년 기원제는 그 자체로도 농민들에게 한해 농사의 첫 단추와도 같은 중요한 의식이죠.
특히, 이번 기원제는 북한 주민들을 위한 통일쌀이 하루빨리 북으로 보내지길 염원하는 마음을 함께 담아 의미를 더했습니다.
노랫가락까지 더해지면서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모자와 장화를 착용하고 드디어 모심기에 나섭니다.
["자! 통일로 가자! 통일로!"]
모내기 시기는 딱 정해진 날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고품질 쌀을 생산하기 위해선 날씨가 따뜻해지는 알맞은 시점을 골라 하는 게 중요한데요.
일렬로 서서 모를 심는 농민들.
맨발로 논에 들어간 농민도 보입니다.
오랜만에 전통방식으로 하다 보니 새록새록 추억도 떠오릅니다.
[김병운/영천시농업기술센터 소장 : "수작업한 지가 한 30년 전에 이렇게 해보고 처음 하는 것 같아서 옛날 생각도 나고 그렇습니다."]
한쪽에선 모판에 있는 모를 뜯어, 논에다 던지기 시작합니다.
[최우승/영천시 농민 : "옛날에는 모를 다 뜯어서 묶어 놨어요. 뭉텅이로 묶어 던져 놓거든요. 그럼 풀어서 하나씩 심었어요."]
오늘 모를 심어야 할 논의 면적은 약 3300제곱미터.
적지 않은 작업량이지만, 수확의 그 날을 기약하고 언젠가 북한 주민들도 이 쌀을 함께 먹을 날을 떠올리면 힘이 절로 납니다.
[최명재/영천시 농민 : "옛날에 그런 말이 있죠.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거 하고 논에 물들어 가는 거 하고 풍년 농사가 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즐겁죠. 당연히."]
[성찬기/영천시 농민 : "더운데 힘들어도 통일 기원하면서 손모심기 행사하니까 좋은 거 같습니다."]
고된 노동 뒤 찾아온 새참 시간.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을 새도 없이 허기를 달랩니다.
["모심고 나니까 배가 고파서 잘 넘어갑니다."]
[최기문/영천시장 : "모심기했는데 맛있게 드십시오. 근데 제대로 밥값을 못한 거 같아."]
꿀맛 같은 새참을 제쳐두고 심은 모를 바라보는 농민도 보입니다.
[이진우/영천시 농민 : "마음이 뿌듯합니다. 이 모가 커서 생산해서 못 먹고 힘든 우리 이북 한민족한테 약간의 양식이 된다면 저는 그것으로써 만족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쌀이 자라날 이 논은 이상무 씨가 소유한 땅을 개간해 마련했습니다.
이 씨는 6.25 전쟁통에 아버지와 헤어진 이산가족인데요.
북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북한 주민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선뜻 땅을 내놨습니다.
[이상무/영천시 농민 : "손 모내기 이렇게 힘든 걸 아직도 북한에서는 할 거 아닙니까. 금강산에서 모내기 일손 돕기 하러 많이 갔었는데..."]
[이상무/영천시 농민 : "그분들하고 같이 일하면서 느낀 게 많아요. (통일이) 좀 빨리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씨와 같은 마음들이 모여 통일쌀 운동은 경북 지역은 물론 충북과 전북, 경기 강원 등 전국적인 행사가 됐는데요.
우리 농민들의 정성이 담긴 통일쌀 손 모내기 행사는 지금까지 13년 동안 진행돼왔습니다.
농민들은 모내기뿐 아니라 북한을 돕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는데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우리 정부가 북한에 처음 쌀을 지원한 건 지난 1995년.
한국전쟁 45년 만이었습니다.
우리 쌀 2천 톤을 실은 배가 북한으로 출항했는데요.
이후 정부의 북한 지원이 잇따르면서 전국농민회 총연맹에서도 2002년부터 통일쌀 운동을 시작했고, 5년 뒤에는 손 모내기 행사를 하는 등 직접 농사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농민들로만 시작해 일반인들까지 참여하며 규모가 커졌다고 합니다.
[양정석/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 "모를 심을 수 있는 나이면 다 가능합니다. 유치원생도 오고 그러더라고요."]
[양정석/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 "체험만의 의미를 뛰어넘어서 ‘여기서 생산되는 것이 북측에 갈 수 있다. 통일의 하나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으로 하는 거라 봅니다."]
쌀을 실은 배를 타고 북한에 다녀온 적이 있다는 양정석 씨.
그때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첫 출항 행사 때 40킬로 포대로 1028가마를 보냈거든요. 2,000분이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쌀과 못자리용 비닐 등을 북한에 지원했는데요.
하지만,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얼어붙은 뒤부터는 통일쌀 운동을 통해 재배된 쌀을 북한에 보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대신 쌀을 팔아 기금을 조성해왔지만 이마저도 보내지 못했고 혹시나 하는 기대에 쌀을 담은 포대를 제작했다, 폐기하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북한의 쌀 생산량을 높여주기 위해 2018년 통일쌀 기금으로 마련한 트랙터들도 결국 보내지 못했습니다.
농민들이 농업을 통해 통일을 염원하는 데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양정석 씨는 말합니다.
[양정석/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 "(남한은) 식량 곡물 작업률이 사실은 쌀을 빼고 나면 4%밖에 안 됩니다. 북측이 (쌀이) 모자라기 때문에 (쌀을) 지원하고, 남측에서 모자라는 옥수수나 다른 부분들을 가져온다면 농업의 장단점을 서로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평화의 마음을 담은 통일쌀이 다시 북녘땅에 도착해 남과 북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할 날이 다가오길 고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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