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급식 농가 돕자고 시작한 ‘급식 꾸러미’…열어보니 기업선물 세트?

입력 2020.06.17 (08:30) 수정 2020.06.1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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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아이들 개학이 연기되면서 급식 농가가 직격탄을 맞았단 소식, 지난 3월 전해드렸는데요.

이후 각 시도교육청이 이들 농가들을 위해 '급식 꾸러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피해 농가의 농작물을 하나의 꾸러미로 만들어 직접 각 학생들의 가정에 보내주는 건데요.

그런데 일부 학교에선 급식 농가의 농작물 대신 대기업의 가공식품들로 채워진 꾸러미를 보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걸까요? 뉴스따라잡기에서 취재헀습니다,

[리포트]

초등학교 2학년 딸을 키우고 있는 이 학부모는 최근, 아이가 다니는 학교로부터 택배 하나를 받았습니다

'급식 꾸러미'라고 적힌 상자에 든 건 다름 아닌 부침가루와 된장, 고추장 등 전부 가공식품들이었는데요.

[초등학교 2학년 학부모/음성변조 : "급식 농가가 많이 힘들고 업체도 많이 힘든데 상당히 좋은 정책인 것 같다며 기대를 많이 했었죠. 신선한 농산물이 올 줄 알았는데 막상 상자를 열어보니까 가공식품(이 들어 있더라고요)"]

학교 급식에 납품된다던 친환경 농산물을 기대했던 만큼 다소 황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급식 꾸러미를 받은 학부모들, 한둘이 아니라는데요.

라면과 햄은 물론 각종 냉동 식품까지..

대기업 제품들로 채워진 꾸러미들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학부모/음성변조 : "이게 무슨 구호 물품입니까? 솔직히 마트에 가면 다 살 수 있는 거잖아요? 급식재료에 라면이 들어가는 게 있을까요? 되게 황당한 거죠. "]

'급식 꾸러미' 사업이 시작된 건 지난 4월 말.

코로나 19로 직격탄을 맞은 급식 농가 지원을 위해서인데요.

대부분의 지자체는 쓰지 못한 급식 경비로 각 가정마다 친환경 농산물을 넣은 급식 꾸러미를 보냈습니다.

[00시교육청 관계자 : "양파, 당근, 감자하고 버섯 종류 중에서는 팽이버섯, 그다음에 표고버섯 이런 버섯 종류도 조달이 가능해서 그런 품목으로 구성하게 됐습니다. 친환경 농산물은 학교 급식이 아니면 일반 가정에는 공급이 많이 안 됐던 품목들이었기 때문에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품목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덕분에 해당 지자체들의 납품 농가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경기도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꾸러미에 넣을 내용물 선택을 일선 학교들 자율에 맡긴 건데요.

그런데 일선 학교들이 하루 이틀이면 상하는 채소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가공식품들만 선택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음성변조 : "채소 같은 건 엽채류들, 상추 아욱 이런 종류들이잖아요. 이게 하루만 지나서 상자에 들어가면 상하니까 염려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학부모들도 해당 학교도 그런 걱정을 할 수 있었을 것 같고요."]

문제는 급식 꾸러미만 바라보던 급식 농가들입니다.

[함병갑/급식 계약재배 농민 : "여기 보이는 연근이 다 썩은 겁니다."]

지난 3월, 지자체로부터 꾸러미사업을 위해 연근 3만 개를 확보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이 농가.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주문 연락은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함병갑/급식 계약재배 농민 : "지금까지 단 1개도 주문을 안 해갔어요. 최고 스트레스받는 게 연근은 하루하루 신선도가 떨어지는데 계속 주문한다고 해놓고 주문을 안 해가니까 그게 최고 속상하죠."]

두 달 동안 피해액만 2천만 원!

꾸러미 주문을 기다리느라 다른 판로는 알아보지도 않았는데요.

[함병갑/급식 계약재배 농민 : "교육청에서 하는 거라 믿고 물량 확보하고 사이트도 내리고 일반 판매하는 것도 올해는 끝났다고 오지 말라고 하고 안 팔고 그 물량을 최대한 맞춰주려고 했는데…. 제가 15년 (연근 농사를) 지었는데 올해같이 허탈한 기분이 든 적은 진짜 없었어요."]

오이 농사를 짓는 이 농가 역시 사정은 비슷합니다.

이번 달 수확한 오이 대부분을 폐기 처분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전해숙/급식 계약재배 농민 : "이거는 한 5일에서 일주일 된 상품입니다. 이런 거는 이제 아이들 밥상에 올라가지 못해요."]

아이들 급식을 위해 친환경으로 키우다 보니 생산비는 더 든 상황.

피해액이 4천만 원이 훌쩍 넘습니다.

[전해숙/급식 계약재배 농민 : "매일매일 150kg, 200kg 따서 기간이 지나면 이런 식으로 버렸으니까…. 계속 반복해서."]

이렇게 급식 꾸러미만 믿고 기다리다 버려진 친환경 농산물만 1600여 톤.

피해액은 70억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홍안나/경기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정책실장 : "농가들은 이번 사업에서 (그동안의) 피해를 조금이나마 보존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정작 꾸러미사업이 시작됐는데 농산물꾸러미가 외면당하고 선택이 안 됐고요. 6월 12일 기준으로 한 17,700여 개 정도 주문이 들어온 상황입니다. 169만 명이니까, (경기도) 학생 수가. 1% 약간 넘는 수준으로 발주 난 상황이에요."]

참다못한 농민들, 결국 직접 나섰는데요.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농가 책임만 강조하는 급식체계 개선하라!"]

["개선하라 ! 개선하라!"]

해당 교육청은 농가를 외면했다는 건 오해라며 다른 식자재 납품업체들의 입장도 고려한 것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음성변조 : "코로나 시대에 농민들도 어렵지만 다른 분도 모두 어렵잖아요. 쉽게 말해서 계약해놓고 납품 못 하는 분들 되게 많습니다. 축산도 있고 수산도 있고 농산도 있고 가공도 있고 쌀도 있고 김치도 있고 등등 다 있습니다."]

하지만 급식 농가들 피해에 대해선 조만간 지자체와 협의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급식 계약에 꾸러미 주문까지 지자체와의 약속만 믿고 농사를 지어왔던 급식 농가들.

더 이상 피해가 없도록 빠른 해결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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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급식 농가 돕자고 시작한 ‘급식 꾸러미’…열어보니 기업선물 세트?
    • 입력 2020-06-17 08:30:45
    • 수정2020-06-17 08: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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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아이들 개학이 연기되면서 급식 농가가 직격탄을 맞았단 소식, 지난 3월 전해드렸는데요.

이후 각 시도교육청이 이들 농가들을 위해 '급식 꾸러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피해 농가의 농작물을 하나의 꾸러미로 만들어 직접 각 학생들의 가정에 보내주는 건데요.

그런데 일부 학교에선 급식 농가의 농작물 대신 대기업의 가공식품들로 채워진 꾸러미를 보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걸까요? 뉴스따라잡기에서 취재헀습니다,

[리포트]

초등학교 2학년 딸을 키우고 있는 이 학부모는 최근, 아이가 다니는 학교로부터 택배 하나를 받았습니다

'급식 꾸러미'라고 적힌 상자에 든 건 다름 아닌 부침가루와 된장, 고추장 등 전부 가공식품들이었는데요.

[초등학교 2학년 학부모/음성변조 : "급식 농가가 많이 힘들고 업체도 많이 힘든데 상당히 좋은 정책인 것 같다며 기대를 많이 했었죠. 신선한 농산물이 올 줄 알았는데 막상 상자를 열어보니까 가공식품(이 들어 있더라고요)"]

학교 급식에 납품된다던 친환경 농산물을 기대했던 만큼 다소 황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급식 꾸러미를 받은 학부모들, 한둘이 아니라는데요.

라면과 햄은 물론 각종 냉동 식품까지..

대기업 제품들로 채워진 꾸러미들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학부모/음성변조 : "이게 무슨 구호 물품입니까? 솔직히 마트에 가면 다 살 수 있는 거잖아요? 급식재료에 라면이 들어가는 게 있을까요? 되게 황당한 거죠. "]

'급식 꾸러미' 사업이 시작된 건 지난 4월 말.

코로나 19로 직격탄을 맞은 급식 농가 지원을 위해서인데요.

대부분의 지자체는 쓰지 못한 급식 경비로 각 가정마다 친환경 농산물을 넣은 급식 꾸러미를 보냈습니다.

[00시교육청 관계자 : "양파, 당근, 감자하고 버섯 종류 중에서는 팽이버섯, 그다음에 표고버섯 이런 버섯 종류도 조달이 가능해서 그런 품목으로 구성하게 됐습니다. 친환경 농산물은 학교 급식이 아니면 일반 가정에는 공급이 많이 안 됐던 품목들이었기 때문에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품목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덕분에 해당 지자체들의 납품 농가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경기도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꾸러미에 넣을 내용물 선택을 일선 학교들 자율에 맡긴 건데요.

그런데 일선 학교들이 하루 이틀이면 상하는 채소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가공식품들만 선택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음성변조 : "채소 같은 건 엽채류들, 상추 아욱 이런 종류들이잖아요. 이게 하루만 지나서 상자에 들어가면 상하니까 염려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학부모들도 해당 학교도 그런 걱정을 할 수 있었을 것 같고요."]

문제는 급식 꾸러미만 바라보던 급식 농가들입니다.

[함병갑/급식 계약재배 농민 : "여기 보이는 연근이 다 썩은 겁니다."]

지난 3월, 지자체로부터 꾸러미사업을 위해 연근 3만 개를 확보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이 농가.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주문 연락은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함병갑/급식 계약재배 농민 : "지금까지 단 1개도 주문을 안 해갔어요. 최고 스트레스받는 게 연근은 하루하루 신선도가 떨어지는데 계속 주문한다고 해놓고 주문을 안 해가니까 그게 최고 속상하죠."]

두 달 동안 피해액만 2천만 원!

꾸러미 주문을 기다리느라 다른 판로는 알아보지도 않았는데요.

[함병갑/급식 계약재배 농민 : "교육청에서 하는 거라 믿고 물량 확보하고 사이트도 내리고 일반 판매하는 것도 올해는 끝났다고 오지 말라고 하고 안 팔고 그 물량을 최대한 맞춰주려고 했는데…. 제가 15년 (연근 농사를) 지었는데 올해같이 허탈한 기분이 든 적은 진짜 없었어요."]

오이 농사를 짓는 이 농가 역시 사정은 비슷합니다.

이번 달 수확한 오이 대부분을 폐기 처분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전해숙/급식 계약재배 농민 : "이거는 한 5일에서 일주일 된 상품입니다. 이런 거는 이제 아이들 밥상에 올라가지 못해요."]

아이들 급식을 위해 친환경으로 키우다 보니 생산비는 더 든 상황.

피해액이 4천만 원이 훌쩍 넘습니다.

[전해숙/급식 계약재배 농민 : "매일매일 150kg, 200kg 따서 기간이 지나면 이런 식으로 버렸으니까…. 계속 반복해서."]

이렇게 급식 꾸러미만 믿고 기다리다 버려진 친환경 농산물만 1600여 톤.

피해액은 70억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홍안나/경기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정책실장 : "농가들은 이번 사업에서 (그동안의) 피해를 조금이나마 보존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정작 꾸러미사업이 시작됐는데 농산물꾸러미가 외면당하고 선택이 안 됐고요. 6월 12일 기준으로 한 17,700여 개 정도 주문이 들어온 상황입니다. 169만 명이니까, (경기도) 학생 수가. 1% 약간 넘는 수준으로 발주 난 상황이에요."]

참다못한 농민들, 결국 직접 나섰는데요.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농가 책임만 강조하는 급식체계 개선하라!"]

["개선하라 ! 개선하라!"]

해당 교육청은 농가를 외면했다는 건 오해라며 다른 식자재 납품업체들의 입장도 고려한 것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음성변조 : "코로나 시대에 농민들도 어렵지만 다른 분도 모두 어렵잖아요. 쉽게 말해서 계약해놓고 납품 못 하는 분들 되게 많습니다. 축산도 있고 수산도 있고 농산도 있고 가공도 있고 쌀도 있고 김치도 있고 등등 다 있습니다."]

하지만 급식 농가들 피해에 대해선 조만간 지자체와 협의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급식 계약에 꾸러미 주문까지 지자체와의 약속만 믿고 농사를 지어왔던 급식 농가들.

더 이상 피해가 없도록 빠른 해결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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