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꿀벌과 동고동락…탈북민 부부의 달콤한 꿈
입력 2020.07.25 (08:17)
수정 2020.07.2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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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많은 탈북민들이 남한으로 와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안정된 경제생활까지 이어가기엔 어려움이 상당하다고 호소하는데요.
북한에서 양봉을 하던 농민이 남한에서도 같은 일을 시작해 지금은 3백여 개의 벌통을 가진 어엿한 양봉업자로 정착했다고 합니다.
이맘때는 양봉 농가들에게 한해 농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라고 하는데요.
오늘 ‘통일로 미래로’에선 탈북민이면서, 남한에서 활발하게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유성씨가 그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굽이굽이 산맥이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중심, 경상북도 문경시입니다.
수려한 계곡과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이곳에 보금자리를 튼 탈북민 부부가 있다는데요.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북한에서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온 남자 북한 남자 박유성입니다. 제가 오늘은 경상북도 문경시에 와있는데요. 여기 온 이유가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여기에 꿀의 대가 양봉의 달인이 여기 있다고 해서 만나 뵈러 왔거든요. 여러분 저와 함께 허니 찾으러 갈까요. 허니~"]
깊은 숲길을 따라 30여 분 들어가자 탈북민 이도윤 씨와 김미경 씨가 운영하는 양봉장에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들어가도 되죠? (네.) 딱 맞춰 온 거죠? (우리 조금만 늦었으면 갈 뻔했어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작업을 한다는데요.
일손을 돕기로 한만큼 벌에 쏘이지 않기 위해 완전무장을 해야겠죠!
[이도윤/탈북민 : "(지금 무슨 작업 하는 거예요?) 내검을 하는 건데요. (벌이) 병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다가 그 (병 있는)통만 체크하는 거죠. (장마철에는) 습기 건조를 잘 해줘야 하고요. 안에는 되게 시원해요. (벌들도 더위를 먹으면 안되나 보네요) 벌들이 따가우면 일을 안 하고 바깥으로 다 나오거든요."]
탈북 9년차인 이도윤 씨는 북한에서도 10년 간 양봉 일을 해왔습니다.
[이도윤/탈북민 : "이북에서도 (양봉을) 좀 했어요. (양봉 일을 하셨어요? 북한에서 양봉 일할 때랑 여기랑 환경이 다른가요? 아니면 비슷했어요?) 좀 많이 다르죠."]
북한과 남한의 양봉작업은 다른 점이 많다고 하는데요,
[이도윤/탈북민 : "이북에서는 수분 농축기 이런 시설이 없어서 눈짐작으로 수분을 측정해서 하거든요. (양봉하려면) 이북엔 (산속) 깊숙이 들어가요. 많은 골짜기로 들어가서 해야지, 물 맑고 이런 데 들어가서, 쌀을 다 가지고 들어가서 거기서 밥을 해 먹으면서 밤나무 철이면 밤나무 철, 아카시아 철이면 아카시아 철하면서 사는 거죠. 살면서 꿀을 떠서 나오는 거죠."]
실제로, 북한의 양봉업은 시기별 피어나는 꽃을 찾아다니며 긴 산행을 합니다.
["성장발육과 벌떼 늘이기 지장을 받습니다. 무밀기를 거치지 않으려고 금강군으로 갑니다. 거기에 나무딸기도 있고 다른 식물들도 있기 때문에 금강군으로 가려고 합니다."]
꿀은 북한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데요,
[김미경/가명/탈북민 : "(북한에서 꿀) 말은 들었어도 본 적 먹어본 적 없어요. 지금 내가 채취하면서 먹어보니까 아카시아 꿀은 향이 있고요. 잡꿀은 뒤끝이 고소하더라고요. (전문가 다 되셨네요.)"]
이들 부부가 가진 벌통은 모두 300여 개.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도 벌통 관리를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앉아서 왕벌을 찾아보세요.) 제가 왕벌을 찾으라고요? 제가 왕벌을 어떻게 찾아요. 하루 종일 들여다봐도 모르겠는데... 이거 어떻게 알아요? (뒤에 봐요. 뒤에) (난 찾았어요. 우린 찾았어요.) 어 얘다! 다른 애들보다 꽁지가 3분의 1 크네요."]
벌통 내부 검사 때 가장 중요한 건 여왕벌의 상태라고 하는데요.
[이도윤/탈북민 : "왕벌은 날개 상태도 봐야 하고 산란을 하는 정도에 따라서 이것이 내년까지 갈 것인가 올해 산란을 잘 안 하면 지금 당장 새 왕으로 교체를 해줘야 하거든요."]
부단한 노력으로 얻어낸 산물, 갓 채취한 꿀을 한번 먹어봤는데요,
["와~ 진짜 맛있다. 꿀 사탕 같아요. 꿀맛이 계속 나와. 와플. 진짜 와플 같아요. 와플! 이걸 보고 와플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은데..."]
양봉을 위해서는 벌에게 사료를 주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김미경/가명/탈북민 : "사료를 줘야만 왕벌이 알을 많이 낳아서 씨가 많아야만 겨울을 나서 내년 봄까지 벌을 가둬 놓을 수 있는 거예요. (도사가 다 됐어요) 제일 무거운 걸 옮겨야 해요. (진짜 어휴! 너무 무거워) 무거운 걸 한 장 옮기는 거예요."]
꿀 뿐 아니라 로열젤리를 생산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는데요,
여왕벌은 로열젤리를 먹고 하루 2천 개 정도의 알을 낳습니다.
로열젤리가 여왕벌의 힘의 원천인거죠.
["맛이 이상한데요! 아무리 몸에 좋아도 와 맛이 이상하네... 이게 왜 이래요? 맛이 텁텁해요. (맞아요. 약간 텁텁하고 새콤하고 맛이) 풀잎을 씹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미경 씨는 북한에서 해왔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의 일은 마냥 즐겁기만 하답니다.
[김미경/가명/탈북민 : "한국분들은 안 믿더라고요. 여자가 뭔 그런 일을 하느냐고 (북한에선) 상하수도에 다녔어요. 학교 16살에 졸업해서 오기 전까지 십몇 년을 한 곳에서 일했으니까..."]
벌처럼 부지런한 이 부부의 노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합니다.
[황은미/탈북민/인천 서구 : "(어디서 오시는 길?) 저는 인천에서 (인천에서 꿀 사러 오셨다고요?) 그렇죠. 여기 직접 와서 사가요. 벌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요만큼을 생산하는 그게 이만큼 되는데 그 벌들처럼 두 분이 마음을 합쳐서 하는 그 모습이 너무 정말 사랑스럽고 그 모습에 반해서 더 이곳을 찾는 것 같아요."]
[진남진/문경 경찰서 보안계장 : "(부부가) 남들보다 성실하고 부지런합니다. 이런 분들이 꼭 성공하셔서 우리 탈북민들에게 귀감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하는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온 김에 힘이 되게 몇 통 사가시겠습니까?) 어... (말을 왜 더듬으시죠?) 제가 한 달 전에 20통을 사 갔습니다. (벌써 이미 20통을 샀어요?) (한 달 전에 20통을 사 갔으니까 오늘은 5통만 사서 갑시다.) 알겠습니다."]
지금은 무료로 양봉 재료를 나눠주거나 기술을 전수해주기도 하지만, 안정적인 수입을 내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이도윤/탈북민 : "맨 처음에는 한 통도 못 팔았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이도윤/탈북민 : "이북에서부터 (양봉은) 해왔던 일이고 (벌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잖아요. 벌 보는 재미가 남들은 모르겠지만 저희는 정말 재밌어요."]
[김미경/탈북민 : "재미없으면 못해요. 재미없으면 힘들거든요. 재밌으니까 힘들어도 견디고 열심히 하는 거예요."]
고향에 가서 남한의 양봉 기술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달콤한 꿀을 맛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꿈이라는데요,
이 부부가 꾸는 달콤한 꿈! 꼭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많은 탈북민들이 남한으로 와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안정된 경제생활까지 이어가기엔 어려움이 상당하다고 호소하는데요.
북한에서 양봉을 하던 농민이 남한에서도 같은 일을 시작해 지금은 3백여 개의 벌통을 가진 어엿한 양봉업자로 정착했다고 합니다.
이맘때는 양봉 농가들에게 한해 농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라고 하는데요.
오늘 ‘통일로 미래로’에선 탈북민이면서, 남한에서 활발하게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유성씨가 그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굽이굽이 산맥이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중심, 경상북도 문경시입니다.
수려한 계곡과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이곳에 보금자리를 튼 탈북민 부부가 있다는데요.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북한에서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온 남자 북한 남자 박유성입니다. 제가 오늘은 경상북도 문경시에 와있는데요. 여기 온 이유가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여기에 꿀의 대가 양봉의 달인이 여기 있다고 해서 만나 뵈러 왔거든요. 여러분 저와 함께 허니 찾으러 갈까요. 허니~"]
깊은 숲길을 따라 30여 분 들어가자 탈북민 이도윤 씨와 김미경 씨가 운영하는 양봉장에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들어가도 되죠? (네.) 딱 맞춰 온 거죠? (우리 조금만 늦었으면 갈 뻔했어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작업을 한다는데요.
일손을 돕기로 한만큼 벌에 쏘이지 않기 위해 완전무장을 해야겠죠!
[이도윤/탈북민 : "(지금 무슨 작업 하는 거예요?) 내검을 하는 건데요. (벌이) 병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다가 그 (병 있는)통만 체크하는 거죠. (장마철에는) 습기 건조를 잘 해줘야 하고요. 안에는 되게 시원해요. (벌들도 더위를 먹으면 안되나 보네요) 벌들이 따가우면 일을 안 하고 바깥으로 다 나오거든요."]
탈북 9년차인 이도윤 씨는 북한에서도 10년 간 양봉 일을 해왔습니다.
[이도윤/탈북민 : "이북에서도 (양봉을) 좀 했어요. (양봉 일을 하셨어요? 북한에서 양봉 일할 때랑 여기랑 환경이 다른가요? 아니면 비슷했어요?) 좀 많이 다르죠."]
북한과 남한의 양봉작업은 다른 점이 많다고 하는데요,
[이도윤/탈북민 : "이북에서는 수분 농축기 이런 시설이 없어서 눈짐작으로 수분을 측정해서 하거든요. (양봉하려면) 이북엔 (산속) 깊숙이 들어가요. 많은 골짜기로 들어가서 해야지, 물 맑고 이런 데 들어가서, 쌀을 다 가지고 들어가서 거기서 밥을 해 먹으면서 밤나무 철이면 밤나무 철, 아카시아 철이면 아카시아 철하면서 사는 거죠. 살면서 꿀을 떠서 나오는 거죠."]
실제로, 북한의 양봉업은 시기별 피어나는 꽃을 찾아다니며 긴 산행을 합니다.
["성장발육과 벌떼 늘이기 지장을 받습니다. 무밀기를 거치지 않으려고 금강군으로 갑니다. 거기에 나무딸기도 있고 다른 식물들도 있기 때문에 금강군으로 가려고 합니다."]
꿀은 북한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데요,
[김미경/가명/탈북민 : "(북한에서 꿀) 말은 들었어도 본 적 먹어본 적 없어요. 지금 내가 채취하면서 먹어보니까 아카시아 꿀은 향이 있고요. 잡꿀은 뒤끝이 고소하더라고요. (전문가 다 되셨네요.)"]
이들 부부가 가진 벌통은 모두 300여 개.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도 벌통 관리를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앉아서 왕벌을 찾아보세요.) 제가 왕벌을 찾으라고요? 제가 왕벌을 어떻게 찾아요. 하루 종일 들여다봐도 모르겠는데... 이거 어떻게 알아요? (뒤에 봐요. 뒤에) (난 찾았어요. 우린 찾았어요.) 어 얘다! 다른 애들보다 꽁지가 3분의 1 크네요."]
벌통 내부 검사 때 가장 중요한 건 여왕벌의 상태라고 하는데요.
[이도윤/탈북민 : "왕벌은 날개 상태도 봐야 하고 산란을 하는 정도에 따라서 이것이 내년까지 갈 것인가 올해 산란을 잘 안 하면 지금 당장 새 왕으로 교체를 해줘야 하거든요."]
부단한 노력으로 얻어낸 산물, 갓 채취한 꿀을 한번 먹어봤는데요,
["와~ 진짜 맛있다. 꿀 사탕 같아요. 꿀맛이 계속 나와. 와플. 진짜 와플 같아요. 와플! 이걸 보고 와플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은데..."]
양봉을 위해서는 벌에게 사료를 주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김미경/가명/탈북민 : "사료를 줘야만 왕벌이 알을 많이 낳아서 씨가 많아야만 겨울을 나서 내년 봄까지 벌을 가둬 놓을 수 있는 거예요. (도사가 다 됐어요) 제일 무거운 걸 옮겨야 해요. (진짜 어휴! 너무 무거워) 무거운 걸 한 장 옮기는 거예요."]
꿀 뿐 아니라 로열젤리를 생산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는데요,
여왕벌은 로열젤리를 먹고 하루 2천 개 정도의 알을 낳습니다.
로열젤리가 여왕벌의 힘의 원천인거죠.
["맛이 이상한데요! 아무리 몸에 좋아도 와 맛이 이상하네... 이게 왜 이래요? 맛이 텁텁해요. (맞아요. 약간 텁텁하고 새콤하고 맛이) 풀잎을 씹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미경 씨는 북한에서 해왔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의 일은 마냥 즐겁기만 하답니다.
[김미경/가명/탈북민 : "한국분들은 안 믿더라고요. 여자가 뭔 그런 일을 하느냐고 (북한에선) 상하수도에 다녔어요. 학교 16살에 졸업해서 오기 전까지 십몇 년을 한 곳에서 일했으니까..."]
벌처럼 부지런한 이 부부의 노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합니다.
[황은미/탈북민/인천 서구 : "(어디서 오시는 길?) 저는 인천에서 (인천에서 꿀 사러 오셨다고요?) 그렇죠. 여기 직접 와서 사가요. 벌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요만큼을 생산하는 그게 이만큼 되는데 그 벌들처럼 두 분이 마음을 합쳐서 하는 그 모습이 너무 정말 사랑스럽고 그 모습에 반해서 더 이곳을 찾는 것 같아요."]
[진남진/문경 경찰서 보안계장 : "(부부가) 남들보다 성실하고 부지런합니다. 이런 분들이 꼭 성공하셔서 우리 탈북민들에게 귀감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하는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온 김에 힘이 되게 몇 통 사가시겠습니까?) 어... (말을 왜 더듬으시죠?) 제가 한 달 전에 20통을 사 갔습니다. (벌써 이미 20통을 샀어요?) (한 달 전에 20통을 사 갔으니까 오늘은 5통만 사서 갑시다.) 알겠습니다."]
지금은 무료로 양봉 재료를 나눠주거나 기술을 전수해주기도 하지만, 안정적인 수입을 내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이도윤/탈북민 : "맨 처음에는 한 통도 못 팔았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이도윤/탈북민 : "이북에서부터 (양봉은) 해왔던 일이고 (벌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잖아요. 벌 보는 재미가 남들은 모르겠지만 저희는 정말 재밌어요."]
[김미경/탈북민 : "재미없으면 못해요. 재미없으면 힘들거든요. 재밌으니까 힘들어도 견디고 열심히 하는 거예요."]
고향에 가서 남한의 양봉 기술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달콤한 꿀을 맛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꿈이라는데요,
이 부부가 꾸는 달콤한 꿈! 꼭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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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0-07-25 08:22:20
- 수정2020-07-26 15:14:11

[앵커]
많은 탈북민들이 남한으로 와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안정된 경제생활까지 이어가기엔 어려움이 상당하다고 호소하는데요.
북한에서 양봉을 하던 농민이 남한에서도 같은 일을 시작해 지금은 3백여 개의 벌통을 가진 어엿한 양봉업자로 정착했다고 합니다.
이맘때는 양봉 농가들에게 한해 농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라고 하는데요.
오늘 ‘통일로 미래로’에선 탈북민이면서, 남한에서 활발하게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유성씨가 그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굽이굽이 산맥이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중심, 경상북도 문경시입니다.
수려한 계곡과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이곳에 보금자리를 튼 탈북민 부부가 있다는데요.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북한에서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온 남자 북한 남자 박유성입니다. 제가 오늘은 경상북도 문경시에 와있는데요. 여기 온 이유가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여기에 꿀의 대가 양봉의 달인이 여기 있다고 해서 만나 뵈러 왔거든요. 여러분 저와 함께 허니 찾으러 갈까요. 허니~"]
깊은 숲길을 따라 30여 분 들어가자 탈북민 이도윤 씨와 김미경 씨가 운영하는 양봉장에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들어가도 되죠? (네.) 딱 맞춰 온 거죠? (우리 조금만 늦었으면 갈 뻔했어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작업을 한다는데요.
일손을 돕기로 한만큼 벌에 쏘이지 않기 위해 완전무장을 해야겠죠!
[이도윤/탈북민 : "(지금 무슨 작업 하는 거예요?) 내검을 하는 건데요. (벌이) 병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다가 그 (병 있는)통만 체크하는 거죠. (장마철에는) 습기 건조를 잘 해줘야 하고요. 안에는 되게 시원해요. (벌들도 더위를 먹으면 안되나 보네요) 벌들이 따가우면 일을 안 하고 바깥으로 다 나오거든요."]
탈북 9년차인 이도윤 씨는 북한에서도 10년 간 양봉 일을 해왔습니다.
[이도윤/탈북민 : "이북에서도 (양봉을) 좀 했어요. (양봉 일을 하셨어요? 북한에서 양봉 일할 때랑 여기랑 환경이 다른가요? 아니면 비슷했어요?) 좀 많이 다르죠."]
북한과 남한의 양봉작업은 다른 점이 많다고 하는데요,
[이도윤/탈북민 : "이북에서는 수분 농축기 이런 시설이 없어서 눈짐작으로 수분을 측정해서 하거든요. (양봉하려면) 이북엔 (산속) 깊숙이 들어가요. 많은 골짜기로 들어가서 해야지, 물 맑고 이런 데 들어가서, 쌀을 다 가지고 들어가서 거기서 밥을 해 먹으면서 밤나무 철이면 밤나무 철, 아카시아 철이면 아카시아 철하면서 사는 거죠. 살면서 꿀을 떠서 나오는 거죠."]
실제로, 북한의 양봉업은 시기별 피어나는 꽃을 찾아다니며 긴 산행을 합니다.
["성장발육과 벌떼 늘이기 지장을 받습니다. 무밀기를 거치지 않으려고 금강군으로 갑니다. 거기에 나무딸기도 있고 다른 식물들도 있기 때문에 금강군으로 가려고 합니다."]
꿀은 북한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데요,
[김미경/가명/탈북민 : "(북한에서 꿀) 말은 들었어도 본 적 먹어본 적 없어요. 지금 내가 채취하면서 먹어보니까 아카시아 꿀은 향이 있고요. 잡꿀은 뒤끝이 고소하더라고요. (전문가 다 되셨네요.)"]
이들 부부가 가진 벌통은 모두 300여 개.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도 벌통 관리를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앉아서 왕벌을 찾아보세요.) 제가 왕벌을 찾으라고요? 제가 왕벌을 어떻게 찾아요. 하루 종일 들여다봐도 모르겠는데... 이거 어떻게 알아요? (뒤에 봐요. 뒤에) (난 찾았어요. 우린 찾았어요.) 어 얘다! 다른 애들보다 꽁지가 3분의 1 크네요."]
벌통 내부 검사 때 가장 중요한 건 여왕벌의 상태라고 하는데요.
[이도윤/탈북민 : "왕벌은 날개 상태도 봐야 하고 산란을 하는 정도에 따라서 이것이 내년까지 갈 것인가 올해 산란을 잘 안 하면 지금 당장 새 왕으로 교체를 해줘야 하거든요."]
부단한 노력으로 얻어낸 산물, 갓 채취한 꿀을 한번 먹어봤는데요,
["와~ 진짜 맛있다. 꿀 사탕 같아요. 꿀맛이 계속 나와. 와플. 진짜 와플 같아요. 와플! 이걸 보고 와플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은데..."]
양봉을 위해서는 벌에게 사료를 주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김미경/가명/탈북민 : "사료를 줘야만 왕벌이 알을 많이 낳아서 씨가 많아야만 겨울을 나서 내년 봄까지 벌을 가둬 놓을 수 있는 거예요. (도사가 다 됐어요) 제일 무거운 걸 옮겨야 해요. (진짜 어휴! 너무 무거워) 무거운 걸 한 장 옮기는 거예요."]
꿀 뿐 아니라 로열젤리를 생산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는데요,
여왕벌은 로열젤리를 먹고 하루 2천 개 정도의 알을 낳습니다.
로열젤리가 여왕벌의 힘의 원천인거죠.
["맛이 이상한데요! 아무리 몸에 좋아도 와 맛이 이상하네... 이게 왜 이래요? 맛이 텁텁해요. (맞아요. 약간 텁텁하고 새콤하고 맛이) 풀잎을 씹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미경 씨는 북한에서 해왔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의 일은 마냥 즐겁기만 하답니다.
[김미경/가명/탈북민 : "한국분들은 안 믿더라고요. 여자가 뭔 그런 일을 하느냐고 (북한에선) 상하수도에 다녔어요. 학교 16살에 졸업해서 오기 전까지 십몇 년을 한 곳에서 일했으니까..."]
벌처럼 부지런한 이 부부의 노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합니다.
[황은미/탈북민/인천 서구 : "(어디서 오시는 길?) 저는 인천에서 (인천에서 꿀 사러 오셨다고요?) 그렇죠. 여기 직접 와서 사가요. 벌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요만큼을 생산하는 그게 이만큼 되는데 그 벌들처럼 두 분이 마음을 합쳐서 하는 그 모습이 너무 정말 사랑스럽고 그 모습에 반해서 더 이곳을 찾는 것 같아요."]
[진남진/문경 경찰서 보안계장 : "(부부가) 남들보다 성실하고 부지런합니다. 이런 분들이 꼭 성공하셔서 우리 탈북민들에게 귀감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하는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온 김에 힘이 되게 몇 통 사가시겠습니까?) 어... (말을 왜 더듬으시죠?) 제가 한 달 전에 20통을 사 갔습니다. (벌써 이미 20통을 샀어요?) (한 달 전에 20통을 사 갔으니까 오늘은 5통만 사서 갑시다.) 알겠습니다."]
지금은 무료로 양봉 재료를 나눠주거나 기술을 전수해주기도 하지만, 안정적인 수입을 내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이도윤/탈북민 : "맨 처음에는 한 통도 못 팔았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이도윤/탈북민 : "이북에서부터 (양봉은) 해왔던 일이고 (벌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잖아요. 벌 보는 재미가 남들은 모르겠지만 저희는 정말 재밌어요."]
[김미경/탈북민 : "재미없으면 못해요. 재미없으면 힘들거든요. 재밌으니까 힘들어도 견디고 열심히 하는 거예요."]
고향에 가서 남한의 양봉 기술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달콤한 꿀을 맛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꿈이라는데요,
이 부부가 꾸는 달콤한 꿈! 꼭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많은 탈북민들이 남한으로 와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안정된 경제생활까지 이어가기엔 어려움이 상당하다고 호소하는데요.
북한에서 양봉을 하던 농민이 남한에서도 같은 일을 시작해 지금은 3백여 개의 벌통을 가진 어엿한 양봉업자로 정착했다고 합니다.
이맘때는 양봉 농가들에게 한해 농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라고 하는데요.
오늘 ‘통일로 미래로’에선 탈북민이면서, 남한에서 활발하게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유성씨가 그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굽이굽이 산맥이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중심, 경상북도 문경시입니다.
수려한 계곡과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이곳에 보금자리를 튼 탈북민 부부가 있다는데요.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북한에서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온 남자 북한 남자 박유성입니다. 제가 오늘은 경상북도 문경시에 와있는데요. 여기 온 이유가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여기에 꿀의 대가 양봉의 달인이 여기 있다고 해서 만나 뵈러 왔거든요. 여러분 저와 함께 허니 찾으러 갈까요. 허니~"]
깊은 숲길을 따라 30여 분 들어가자 탈북민 이도윤 씨와 김미경 씨가 운영하는 양봉장에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들어가도 되죠? (네.) 딱 맞춰 온 거죠? (우리 조금만 늦었으면 갈 뻔했어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작업을 한다는데요.
일손을 돕기로 한만큼 벌에 쏘이지 않기 위해 완전무장을 해야겠죠!
[이도윤/탈북민 : "(지금 무슨 작업 하는 거예요?) 내검을 하는 건데요. (벌이) 병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다가 그 (병 있는)통만 체크하는 거죠. (장마철에는) 습기 건조를 잘 해줘야 하고요. 안에는 되게 시원해요. (벌들도 더위를 먹으면 안되나 보네요) 벌들이 따가우면 일을 안 하고 바깥으로 다 나오거든요."]
탈북 9년차인 이도윤 씨는 북한에서도 10년 간 양봉 일을 해왔습니다.
[이도윤/탈북민 : "이북에서도 (양봉을) 좀 했어요. (양봉 일을 하셨어요? 북한에서 양봉 일할 때랑 여기랑 환경이 다른가요? 아니면 비슷했어요?) 좀 많이 다르죠."]
북한과 남한의 양봉작업은 다른 점이 많다고 하는데요,
[이도윤/탈북민 : "이북에서는 수분 농축기 이런 시설이 없어서 눈짐작으로 수분을 측정해서 하거든요. (양봉하려면) 이북엔 (산속) 깊숙이 들어가요. 많은 골짜기로 들어가서 해야지, 물 맑고 이런 데 들어가서, 쌀을 다 가지고 들어가서 거기서 밥을 해 먹으면서 밤나무 철이면 밤나무 철, 아카시아 철이면 아카시아 철하면서 사는 거죠. 살면서 꿀을 떠서 나오는 거죠."]
실제로, 북한의 양봉업은 시기별 피어나는 꽃을 찾아다니며 긴 산행을 합니다.
["성장발육과 벌떼 늘이기 지장을 받습니다. 무밀기를 거치지 않으려고 금강군으로 갑니다. 거기에 나무딸기도 있고 다른 식물들도 있기 때문에 금강군으로 가려고 합니다."]
꿀은 북한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데요,
[김미경/가명/탈북민 : "(북한에서 꿀) 말은 들었어도 본 적 먹어본 적 없어요. 지금 내가 채취하면서 먹어보니까 아카시아 꿀은 향이 있고요. 잡꿀은 뒤끝이 고소하더라고요. (전문가 다 되셨네요.)"]
이들 부부가 가진 벌통은 모두 300여 개.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도 벌통 관리를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앉아서 왕벌을 찾아보세요.) 제가 왕벌을 찾으라고요? 제가 왕벌을 어떻게 찾아요. 하루 종일 들여다봐도 모르겠는데... 이거 어떻게 알아요? (뒤에 봐요. 뒤에) (난 찾았어요. 우린 찾았어요.) 어 얘다! 다른 애들보다 꽁지가 3분의 1 크네요."]
벌통 내부 검사 때 가장 중요한 건 여왕벌의 상태라고 하는데요.
[이도윤/탈북민 : "왕벌은 날개 상태도 봐야 하고 산란을 하는 정도에 따라서 이것이 내년까지 갈 것인가 올해 산란을 잘 안 하면 지금 당장 새 왕으로 교체를 해줘야 하거든요."]
부단한 노력으로 얻어낸 산물, 갓 채취한 꿀을 한번 먹어봤는데요,
["와~ 진짜 맛있다. 꿀 사탕 같아요. 꿀맛이 계속 나와. 와플. 진짜 와플 같아요. 와플! 이걸 보고 와플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은데..."]
양봉을 위해서는 벌에게 사료를 주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김미경/가명/탈북민 : "사료를 줘야만 왕벌이 알을 많이 낳아서 씨가 많아야만 겨울을 나서 내년 봄까지 벌을 가둬 놓을 수 있는 거예요. (도사가 다 됐어요) 제일 무거운 걸 옮겨야 해요. (진짜 어휴! 너무 무거워) 무거운 걸 한 장 옮기는 거예요."]
꿀 뿐 아니라 로열젤리를 생산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는데요,
여왕벌은 로열젤리를 먹고 하루 2천 개 정도의 알을 낳습니다.
로열젤리가 여왕벌의 힘의 원천인거죠.
["맛이 이상한데요! 아무리 몸에 좋아도 와 맛이 이상하네... 이게 왜 이래요? 맛이 텁텁해요. (맞아요. 약간 텁텁하고 새콤하고 맛이) 풀잎을 씹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미경 씨는 북한에서 해왔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의 일은 마냥 즐겁기만 하답니다.
[김미경/가명/탈북민 : "한국분들은 안 믿더라고요. 여자가 뭔 그런 일을 하느냐고 (북한에선) 상하수도에 다녔어요. 학교 16살에 졸업해서 오기 전까지 십몇 년을 한 곳에서 일했으니까..."]
벌처럼 부지런한 이 부부의 노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합니다.
[황은미/탈북민/인천 서구 : "(어디서 오시는 길?) 저는 인천에서 (인천에서 꿀 사러 오셨다고요?) 그렇죠. 여기 직접 와서 사가요. 벌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요만큼을 생산하는 그게 이만큼 되는데 그 벌들처럼 두 분이 마음을 합쳐서 하는 그 모습이 너무 정말 사랑스럽고 그 모습에 반해서 더 이곳을 찾는 것 같아요."]
[진남진/문경 경찰서 보안계장 : "(부부가) 남들보다 성실하고 부지런합니다. 이런 분들이 꼭 성공하셔서 우리 탈북민들에게 귀감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하는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온 김에 힘이 되게 몇 통 사가시겠습니까?) 어... (말을 왜 더듬으시죠?) 제가 한 달 전에 20통을 사 갔습니다. (벌써 이미 20통을 샀어요?) (한 달 전에 20통을 사 갔으니까 오늘은 5통만 사서 갑시다.) 알겠습니다."]
지금은 무료로 양봉 재료를 나눠주거나 기술을 전수해주기도 하지만, 안정적인 수입을 내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이도윤/탈북민 : "맨 처음에는 한 통도 못 팔았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이도윤/탈북민 : "이북에서부터 (양봉은) 해왔던 일이고 (벌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잖아요. 벌 보는 재미가 남들은 모르겠지만 저희는 정말 재밌어요."]
[김미경/탈북민 : "재미없으면 못해요. 재미없으면 힘들거든요. 재밌으니까 힘들어도 견디고 열심히 하는 거예요."]
고향에 가서 남한의 양봉 기술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달콤한 꿀을 맛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꿈이라는데요,
이 부부가 꾸는 달콤한 꿈! 꼭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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