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이경해 씨, 한평생 농민 운동
입력 2003.09.11 (21:00)
수정 2018.08.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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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고 이경해 씨는 농민운동에 매진해 온 인물로 지난 90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때도 시장 개방에 반대해서 할복을 시도했었습니다.
박석호 기자입니다.
⊙기자: 1947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난 이경해 씨는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자마자 고향에 내려와 농장을 시작했습니다.
현장을 배울 실습장이 없던 농업계 고교생 등에게 배움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82년에는 농어민 후계자로 선정되었고 이후 지금의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한농연 설립을 주도했습니다.
⊙이인화(고 이경해 씨 친구): 평소에 농민을 위해서 외로운 싸움을 많이 했죠.
가진 것도 없고 평소 행동으로...
⊙기자: 제2대 한농연 회장을 역임한 이 씨는 농업시장 개방 반대운동에 적극적이었고 지난 90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때는 할복을 시도했습니다.
올해 2월에는 스위스 제네바의 WTO 사무국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장충열(장수군 한농연 회장):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이대로는 못 가겠다는 완강한 그런 의지를 보이셔서 저희들이 참 같이 모시고 오면서 굉장히 힘들었었습니다.
⊙기자: 말보다는 행동으로 농촌운동을 벌여왔던 이 씨는 둘째 딸의 결혼식을 10여 일 남겨놓고 멕시코 칸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고은(고 이경해 씨 차녀): 항상 자신을 버리고 대의를 위해 운동하셨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기자: 장수군 한농연은 장수군민회관에 분향소를 마련해 고인의 뜻을 기리기로 했습니다.
KBS뉴스 박석호입니다.
박석호 기자입니다.
⊙기자: 1947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난 이경해 씨는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자마자 고향에 내려와 농장을 시작했습니다.
현장을 배울 실습장이 없던 농업계 고교생 등에게 배움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82년에는 농어민 후계자로 선정되었고 이후 지금의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한농연 설립을 주도했습니다.
⊙이인화(고 이경해 씨 친구): 평소에 농민을 위해서 외로운 싸움을 많이 했죠.
가진 것도 없고 평소 행동으로...
⊙기자: 제2대 한농연 회장을 역임한 이 씨는 농업시장 개방 반대운동에 적극적이었고 지난 90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때는 할복을 시도했습니다.
올해 2월에는 스위스 제네바의 WTO 사무국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장충열(장수군 한농연 회장):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이대로는 못 가겠다는 완강한 그런 의지를 보이셔서 저희들이 참 같이 모시고 오면서 굉장히 힘들었었습니다.
⊙기자: 말보다는 행동으로 농촌운동을 벌여왔던 이 씨는 둘째 딸의 결혼식을 10여 일 남겨놓고 멕시코 칸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고은(고 이경해 씨 차녀): 항상 자신을 버리고 대의를 위해 운동하셨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기자: 장수군 한농연은 장수군민회관에 분향소를 마련해 고인의 뜻을 기리기로 했습니다.
KBS뉴스 박석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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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 이경해 씨, 한평생 농민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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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8-08-29 15:00:00

⊙앵커: 고 이경해 씨는 농민운동에 매진해 온 인물로 지난 90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때도 시장 개방에 반대해서 할복을 시도했었습니다.
박석호 기자입니다.
⊙기자: 1947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난 이경해 씨는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자마자 고향에 내려와 농장을 시작했습니다.
현장을 배울 실습장이 없던 농업계 고교생 등에게 배움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82년에는 농어민 후계자로 선정되었고 이후 지금의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한농연 설립을 주도했습니다.
⊙이인화(고 이경해 씨 친구): 평소에 농민을 위해서 외로운 싸움을 많이 했죠.
가진 것도 없고 평소 행동으로...
⊙기자: 제2대 한농연 회장을 역임한 이 씨는 농업시장 개방 반대운동에 적극적이었고 지난 90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때는 할복을 시도했습니다.
올해 2월에는 스위스 제네바의 WTO 사무국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장충열(장수군 한농연 회장):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이대로는 못 가겠다는 완강한 그런 의지를 보이셔서 저희들이 참 같이 모시고 오면서 굉장히 힘들었었습니다.
⊙기자: 말보다는 행동으로 농촌운동을 벌여왔던 이 씨는 둘째 딸의 결혼식을 10여 일 남겨놓고 멕시코 칸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고은(고 이경해 씨 차녀): 항상 자신을 버리고 대의를 위해 운동하셨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기자: 장수군 한농연은 장수군민회관에 분향소를 마련해 고인의 뜻을 기리기로 했습니다.
KBS뉴스 박석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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