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 너머의 여순]① 여수·순천 아닌 구례에서…72년 만의 합동 위령제
입력 2020.10.19 (21:50)
수정 2020.10.19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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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꼭 72년이 지났습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14연대는 제주 4.3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무장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군대의 봉기, 그리고 진압.
오랫동안 '여순 반란'이라 불렸고 지금은 여수·순천 10·19, 또는 여순항쟁이라고도 하는 현대사의 비극, 여순사건입니다.
어떻게 지칭하든 '여순'은 여수와 순천이라는 지역적인 사건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례·보성 등 전남 동부는 물론 화순, 영암 등 전남 중서부 지역을 비롯해 경남 서부와 전북에서까지 여순사건과 직결된 참혹한 학살이 자행됐습니다.
6.25 직후 발생한 전국의 형무소 학살과 보도연맹 (학살)사건도 여순사건과 뗄 수 없고,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여순사건 72주년을 맞아 KBS는 지역에 갇혀 있던 여순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들여다보고, 여순을 기억해야 할 이유를 확인하는 기획 보도 <여순 너머의 여순>을 마련했습니다.
첫 번째 순서로 여수나 순천이 아닌 구례에서 72년 만에 열린 첫 합동 위령제 현장을 곽선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해방직후 현대사의 비극으로 출발한 여순사건.
72년이 지나서야 여수, 순천 뿐만 아니라 전남 각 지역 유족들이 한데 모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립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행사 규모는 줄었지만 백발의 유족들은 어김없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여순사건은 여수와 순천을 넘어 구례와 광양 보성 그리고 전북과 경남까지 광범위하게 희생이 발생했지만, 이제껏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조차 되지 않아 지역별로 유족들끼리 위령제를 지내온 겁니다.
[이규종/여순항쟁 전국유족연합회장 : "산자락 곳곳에서 강가의 모래사장에서 무참히 학살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유족들은 아직도 어디에서 어떻게 돌아가셔야 했는지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유족들은 진실 규명을 위한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거듭 촉구했습니다.
[김영록/전라남도지사 : "오랜시간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연좌제가 두려워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가슴에 멍울을 담고 살아야 했습니다.이제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한편 여수에서 열린 추념식에는 72년만에 처음으로 순직경찰 유족들이 참석했습니다.
[남중옥/순직경찰 유족 대표 : "진실규명을 통하여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 차원의 현실적인 보상과 사과가 이뤄지는데 일조하고자 합니다."]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비극적인 역사 여순사건.
실체적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큽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꼭 72년이 지났습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14연대는 제주 4.3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무장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군대의 봉기, 그리고 진압.
오랫동안 '여순 반란'이라 불렸고 지금은 여수·순천 10·19, 또는 여순항쟁이라고도 하는 현대사의 비극, 여순사건입니다.
어떻게 지칭하든 '여순'은 여수와 순천이라는 지역적인 사건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례·보성 등 전남 동부는 물론 화순, 영암 등 전남 중서부 지역을 비롯해 경남 서부와 전북에서까지 여순사건과 직결된 참혹한 학살이 자행됐습니다.
6.25 직후 발생한 전국의 형무소 학살과 보도연맹 (학살)사건도 여순사건과 뗄 수 없고,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여순사건 72주년을 맞아 KBS는 지역에 갇혀 있던 여순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들여다보고, 여순을 기억해야 할 이유를 확인하는 기획 보도 <여순 너머의 여순>을 마련했습니다.
첫 번째 순서로 여수나 순천이 아닌 구례에서 72년 만에 열린 첫 합동 위령제 현장을 곽선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해방직후 현대사의 비극으로 출발한 여순사건.
72년이 지나서야 여수, 순천 뿐만 아니라 전남 각 지역 유족들이 한데 모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립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행사 규모는 줄었지만 백발의 유족들은 어김없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여순사건은 여수와 순천을 넘어 구례와 광양 보성 그리고 전북과 경남까지 광범위하게 희생이 발생했지만, 이제껏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조차 되지 않아 지역별로 유족들끼리 위령제를 지내온 겁니다.
[이규종/여순항쟁 전국유족연합회장 : "산자락 곳곳에서 강가의 모래사장에서 무참히 학살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유족들은 아직도 어디에서 어떻게 돌아가셔야 했는지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유족들은 진실 규명을 위한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거듭 촉구했습니다.
[김영록/전라남도지사 : "오랜시간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연좌제가 두려워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가슴에 멍울을 담고 살아야 했습니다.이제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한편 여수에서 열린 추념식에는 72년만에 처음으로 순직경찰 유족들이 참석했습니다.
[남중옥/순직경찰 유족 대표 : "진실규명을 통하여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 차원의 현실적인 보상과 사과가 이뤄지는데 일조하고자 합니다."]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비극적인 역사 여순사건.
실체적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큽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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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꼭 72년이 지났습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14연대는 제주 4.3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무장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군대의 봉기, 그리고 진압.
오랫동안 '여순 반란'이라 불렸고 지금은 여수·순천 10·19, 또는 여순항쟁이라고도 하는 현대사의 비극, 여순사건입니다.
어떻게 지칭하든 '여순'은 여수와 순천이라는 지역적인 사건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례·보성 등 전남 동부는 물론 화순, 영암 등 전남 중서부 지역을 비롯해 경남 서부와 전북에서까지 여순사건과 직결된 참혹한 학살이 자행됐습니다.
6.25 직후 발생한 전국의 형무소 학살과 보도연맹 (학살)사건도 여순사건과 뗄 수 없고,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여순사건 72주년을 맞아 KBS는 지역에 갇혀 있던 여순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들여다보고, 여순을 기억해야 할 이유를 확인하는 기획 보도 <여순 너머의 여순>을 마련했습니다.
첫 번째 순서로 여수나 순천이 아닌 구례에서 72년 만에 열린 첫 합동 위령제 현장을 곽선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해방직후 현대사의 비극으로 출발한 여순사건.
72년이 지나서야 여수, 순천 뿐만 아니라 전남 각 지역 유족들이 한데 모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립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행사 규모는 줄었지만 백발의 유족들은 어김없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여순사건은 여수와 순천을 넘어 구례와 광양 보성 그리고 전북과 경남까지 광범위하게 희생이 발생했지만, 이제껏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조차 되지 않아 지역별로 유족들끼리 위령제를 지내온 겁니다.
[이규종/여순항쟁 전국유족연합회장 : "산자락 곳곳에서 강가의 모래사장에서 무참히 학살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유족들은 아직도 어디에서 어떻게 돌아가셔야 했는지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유족들은 진실 규명을 위한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거듭 촉구했습니다.
[김영록/전라남도지사 : "오랜시간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연좌제가 두려워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가슴에 멍울을 담고 살아야 했습니다.이제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한편 여수에서 열린 추념식에는 72년만에 처음으로 순직경찰 유족들이 참석했습니다.
[남중옥/순직경찰 유족 대표 : "진실규명을 통하여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 차원의 현실적인 보상과 사과가 이뤄지는데 일조하고자 합니다."]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비극적인 역사 여순사건.
실체적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큽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꼭 72년이 지났습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14연대는 제주 4.3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무장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군대의 봉기, 그리고 진압.
오랫동안 '여순 반란'이라 불렸고 지금은 여수·순천 10·19, 또는 여순항쟁이라고도 하는 현대사의 비극, 여순사건입니다.
어떻게 지칭하든 '여순'은 여수와 순천이라는 지역적인 사건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례·보성 등 전남 동부는 물론 화순, 영암 등 전남 중서부 지역을 비롯해 경남 서부와 전북에서까지 여순사건과 직결된 참혹한 학살이 자행됐습니다.
6.25 직후 발생한 전국의 형무소 학살과 보도연맹 (학살)사건도 여순사건과 뗄 수 없고,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여순사건 72주년을 맞아 KBS는 지역에 갇혀 있던 여순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들여다보고, 여순을 기억해야 할 이유를 확인하는 기획 보도 <여순 너머의 여순>을 마련했습니다.
첫 번째 순서로 여수나 순천이 아닌 구례에서 72년 만에 열린 첫 합동 위령제 현장을 곽선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해방직후 현대사의 비극으로 출발한 여순사건.
72년이 지나서야 여수, 순천 뿐만 아니라 전남 각 지역 유족들이 한데 모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립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행사 규모는 줄었지만 백발의 유족들은 어김없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여순사건은 여수와 순천을 넘어 구례와 광양 보성 그리고 전북과 경남까지 광범위하게 희생이 발생했지만, 이제껏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조차 되지 않아 지역별로 유족들끼리 위령제를 지내온 겁니다.
[이규종/여순항쟁 전국유족연합회장 : "산자락 곳곳에서 강가의 모래사장에서 무참히 학살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유족들은 아직도 어디에서 어떻게 돌아가셔야 했는지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유족들은 진실 규명을 위한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거듭 촉구했습니다.
[김영록/전라남도지사 : "오랜시간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연좌제가 두려워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가슴에 멍울을 담고 살아야 했습니다.이제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한편 여수에서 열린 추념식에는 72년만에 처음으로 순직경찰 유족들이 참석했습니다.
[남중옥/순직경찰 유족 대표 : "진실규명을 통하여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 차원의 현실적인 보상과 사과가 이뤄지는데 일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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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정 기자 coolsu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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