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K] ‘멍든’ 정신건강…위태로운 대한민국

입력 2020.11.10 (19:40) 수정 2020.11.1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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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트렁크를 연 채 편의점으로 돌진하는 승용차 한 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닥치는 대로 물건을 부수더니, 더 깊숙이 차를 몰아세웁니다.

["내가 ○○버릴꺼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제지에도 20분 넘게 계속된 난동은 공포탄 한 발이 터지고 나서야 겨우 수습됐습니다.

["나오시라고요!"]

[인근 주민/음성변조 : "(당시 주변에) 사람이 많이 있었어요. 경찰들도 왔는데 경찰도 못 들어가고 나중에는 사람들이 총으로 쏴라 (라고까지 얘기했어요)."]

우울증과 조현병, 분노 조절 장애 등 정신질환이 원인이 된 사건과 사고들.

그리고 10년 넘게 이어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오명.

올 상반기 국내 정신 질환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가까이 급증한 가운데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최말례/예수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주임과장 : "최근에도 희극인에 해당하시는 분이 자살하셔서 사회적인 파장이 상당히 크잖아요. (일주일에) 대략 한 백여 명 가까이 보고 있는 환자 중에서 한 40% 이상에 해당하는 분들이 우울증 환자입니다."]

정신 질환자들의 재활을 돕는 한 기관.

40대 남성 A 씨는 직장 생활을 하다 마음의 병을 얻었습니다.

[A 씨/음성변조 : "첫 발병은 2003년도예요. 환청이 심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잠을 못 자겠더라고요."]

호전됐다가도 다시 반복되는 증상에,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A 씨/음성변조 : "약을 끊다 보니까 재발해서 더 심하더라고요. 6~7개월 동안 입원했다가 병원에서 치료받으니까 효과가 나타나더라고요."]

B 씨는 어릴 때 겪은 아픔이 마음의 병을 키웠습니다.

학창시절 또래에게 따돌림을 당한 일이 트라우마가 돼 극심한 우울증을 겪게 됐습니다.

[B 씨/음성변조 : "제가 생각이 좀 망상 그쪽으로 그래서…. (그만하고 싶단 생각이 어떤 부분 때문에?) 제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그렇게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 깊숙이 박힌 과도한 경쟁 구도로 인한 스트레스, 남의 이목을 중시하는 문화 등을 정신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평범한 사람도 언제든 정신 질환을 앓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수인/전북연구원 여성정책연구소장 : "경제적 성공을 강조하는 문화에서 이를 실현할 수단이 없을 때 느끼는 절망감이나 상실감, 방향 감각 없음, 이런 것들이 자살률을 높인다는 거죠. (또) 고립이나 소외된 사람들,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사회적 혜택에서 배제됐다고 느끼는 사람들. 개인들이 사회에 결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실제, 올해 들어 전북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접수된 위기상담 전화는 5천백여 건.

최근 3년 동안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어떨까, 평일 오후, 사람들이 붐비는 곳으로 나가봤습니다.

취재진이 조심스럽게 우울증 경험 여부를 묻자, 시민 열에 여섯이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합니다.

[시민/음성변조 : "(우울할 때는, 어떤 것 때문에?) 사람 관계가 많아요."]

[시민/음성변조 : "저도 인간관계 같아요."]

우울감에서 나아가, 나쁜 생각까지 했다는 말도 어렵지 않게 들려옵니다.

[시민/음성변조 : "(죽고 싶다 이런 생각을 어떨 때 하세요?) 계속 겹쳐올 때요. 집안일, 일하는 거, 주변 상황? 하나가 해결된다 싶으면 또 오고…. 감당이 안 돼요. 감정이 풀려야 할 때 다시 또 그러니까…. 차곡차곡 쌓이는 거죠. 그걸 풀 여유가 없는 거죠."]

[시민/음성변조 : "(우울증을 경험하거나 나도 죽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없으세요?) 많죠. 몸이 아프니까. 그것 때문에 일도 다 그만두고 포기하잖아요, 삶을…."]

하지만 우울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쉽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시민/음성변조 : "(따로 치료는 안 받으세요?) 그런 생각 못 했죠. 이런 데를 가봤어야지. 돈 때문에 빚 때문에…. (여유가 없으니까…)."]

정신과 치료 자체를 꺼리는 사회적 편견도 문제지만, 우울증을 비롯한 대부분 정신 질환의 경우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의료 체계도 개선해야 합니다.

[최말례/예수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주임과장 : "우울증도 경도, 중등도, 심한 상태 이렇게 분류를 해서 저희가 치료를 하는데 나라에서 인정해주는 중증질환에 우울증이 들어가는 게 없어요. 국가적으로 뭔가 도움을 받고 하는 건 아직까지는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또, 지자체 단위로 운영하는 공공 의료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비용 부담도 줄여 접근성을 높이자는 겁니다.

[김지연/완주군 정신건강복지센터 팀장 : "약물 복용이 1차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저희가 한 달에 대상자들에게 1주일에 한 번, 혹은 2주에 한 번씩 가정 방문해서 약물 복용 관리를 하고 있는데 보통 한 2년 정도가 평균 근무 연속 기간인 것 같아요. 서비스가 지속되다가 단절되기도 하고요."]

암이나 당뇨 등과 같이 정신 질환도 하나의 질병으로 인식하고,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대처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김형준/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첫 번째 징후가 뭐냐면 자기가 해야할 직장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거나 학생들 같으면 학교 나가는 게 정말 힘들어진다거나 이렇게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다면 조금은 위험신호고요. 그 단계를 넘어서 스스로가 이제 어떤 고통을 느끼고 있다든지 이런 경우에는 전문가와 상의를 분명히 해야겠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신 질환, 적절하게 치료하면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감기'이지만, 가볍게 여겨 내버려 두면 개인은 물론 사회의 안전도 위협할 수 있습니다.

KBS 뉴스 길금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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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10 19:40:21
    • 수정2020-11-10 19:57:05
    뉴스7(전주)
["어~!!"]

트렁크를 연 채 편의점으로 돌진하는 승용차 한 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닥치는 대로 물건을 부수더니, 더 깊숙이 차를 몰아세웁니다.

["내가 ○○버릴꺼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제지에도 20분 넘게 계속된 난동은 공포탄 한 발이 터지고 나서야 겨우 수습됐습니다.

["나오시라고요!"]

[인근 주민/음성변조 : "(당시 주변에) 사람이 많이 있었어요. 경찰들도 왔는데 경찰도 못 들어가고 나중에는 사람들이 총으로 쏴라 (라고까지 얘기했어요)."]

우울증과 조현병, 분노 조절 장애 등 정신질환이 원인이 된 사건과 사고들.

그리고 10년 넘게 이어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오명.

올 상반기 국내 정신 질환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가까이 급증한 가운데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최말례/예수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주임과장 : "최근에도 희극인에 해당하시는 분이 자살하셔서 사회적인 파장이 상당히 크잖아요. (일주일에) 대략 한 백여 명 가까이 보고 있는 환자 중에서 한 40% 이상에 해당하는 분들이 우울증 환자입니다."]

정신 질환자들의 재활을 돕는 한 기관.

40대 남성 A 씨는 직장 생활을 하다 마음의 병을 얻었습니다.

[A 씨/음성변조 : "첫 발병은 2003년도예요. 환청이 심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잠을 못 자겠더라고요."]

호전됐다가도 다시 반복되는 증상에,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A 씨/음성변조 : "약을 끊다 보니까 재발해서 더 심하더라고요. 6~7개월 동안 입원했다가 병원에서 치료받으니까 효과가 나타나더라고요."]

B 씨는 어릴 때 겪은 아픔이 마음의 병을 키웠습니다.

학창시절 또래에게 따돌림을 당한 일이 트라우마가 돼 극심한 우울증을 겪게 됐습니다.

[B 씨/음성변조 : "제가 생각이 좀 망상 그쪽으로 그래서…. (그만하고 싶단 생각이 어떤 부분 때문에?) 제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그렇게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 깊숙이 박힌 과도한 경쟁 구도로 인한 스트레스, 남의 이목을 중시하는 문화 등을 정신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평범한 사람도 언제든 정신 질환을 앓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수인/전북연구원 여성정책연구소장 : "경제적 성공을 강조하는 문화에서 이를 실현할 수단이 없을 때 느끼는 절망감이나 상실감, 방향 감각 없음, 이런 것들이 자살률을 높인다는 거죠. (또) 고립이나 소외된 사람들,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사회적 혜택에서 배제됐다고 느끼는 사람들. 개인들이 사회에 결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실제, 올해 들어 전북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접수된 위기상담 전화는 5천백여 건.

최근 3년 동안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어떨까, 평일 오후, 사람들이 붐비는 곳으로 나가봤습니다.

취재진이 조심스럽게 우울증 경험 여부를 묻자, 시민 열에 여섯이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합니다.

[시민/음성변조 : "(우울할 때는, 어떤 것 때문에?) 사람 관계가 많아요."]

[시민/음성변조 : "저도 인간관계 같아요."]

우울감에서 나아가, 나쁜 생각까지 했다는 말도 어렵지 않게 들려옵니다.

[시민/음성변조 : "(죽고 싶다 이런 생각을 어떨 때 하세요?) 계속 겹쳐올 때요. 집안일, 일하는 거, 주변 상황? 하나가 해결된다 싶으면 또 오고…. 감당이 안 돼요. 감정이 풀려야 할 때 다시 또 그러니까…. 차곡차곡 쌓이는 거죠. 그걸 풀 여유가 없는 거죠."]

[시민/음성변조 : "(우울증을 경험하거나 나도 죽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없으세요?) 많죠. 몸이 아프니까. 그것 때문에 일도 다 그만두고 포기하잖아요, 삶을…."]

하지만 우울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쉽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시민/음성변조 : "(따로 치료는 안 받으세요?) 그런 생각 못 했죠. 이런 데를 가봤어야지. 돈 때문에 빚 때문에…. (여유가 없으니까…)."]

정신과 치료 자체를 꺼리는 사회적 편견도 문제지만, 우울증을 비롯한 대부분 정신 질환의 경우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의료 체계도 개선해야 합니다.

[최말례/예수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주임과장 : "우울증도 경도, 중등도, 심한 상태 이렇게 분류를 해서 저희가 치료를 하는데 나라에서 인정해주는 중증질환에 우울증이 들어가는 게 없어요. 국가적으로 뭔가 도움을 받고 하는 건 아직까지는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또, 지자체 단위로 운영하는 공공 의료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비용 부담도 줄여 접근성을 높이자는 겁니다.

[김지연/완주군 정신건강복지센터 팀장 : "약물 복용이 1차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저희가 한 달에 대상자들에게 1주일에 한 번, 혹은 2주에 한 번씩 가정 방문해서 약물 복용 관리를 하고 있는데 보통 한 2년 정도가 평균 근무 연속 기간인 것 같아요. 서비스가 지속되다가 단절되기도 하고요."]

암이나 당뇨 등과 같이 정신 질환도 하나의 질병으로 인식하고,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대처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김형준/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첫 번째 징후가 뭐냐면 자기가 해야할 직장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거나 학생들 같으면 학교 나가는 게 정말 힘들어진다거나 이렇게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다면 조금은 위험신호고요. 그 단계를 넘어서 스스로가 이제 어떤 고통을 느끼고 있다든지 이런 경우에는 전문가와 상의를 분명히 해야겠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신 질환, 적절하게 치료하면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감기'이지만, 가볍게 여겨 내버려 두면 개인은 물론 사회의 안전도 위협할 수 있습니다.

KBS 뉴스 길금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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