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전쟁의 아픔을 동화로

입력 2020.11.14 (08:30) 수정 2020.11.1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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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흘렀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한창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에게 ‘전쟁’은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이야기인 게 사실인데요.

남북 접경 지역인 경기도 파주에서 10대 자녀를 둔 엄마들이 ‘전쟁의 아픔’을 담은 동화책을 발간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엄마들이 손수 만든 동화 이야기가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채유나 리포터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어둠이 내려앉은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 하나둘씩 작은 책방에 모여듭니다.

오늘은 ‘북 토크’가 열리는 날인데요.

엄마들이 6개월간 동고동락하며 만든 동화 ‘두루미 구출 작전’이 2주 전에 발간됐습니다.

비대면 방식인 온라인으로 진행되지만 현장은 시작부터 훈훈하네요.

'두루미 구출 작전’의 소재는 한국전쟁입니다.

8가지 이야기를 묶어 한 권의 동화책으로 펴냈습니다.

동화작가인 장경선 씨의 주도로 주변 이웃들과 함께 발간 작업이 시작됐다고 하는데요.

[장경선/동화 작가 : "전쟁이랑 평화 이런 부분들이 우리 어린이 친구들이 꼭 알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엄마가 전쟁에 대해 글을 썼을 때 아이들이 정말 평화가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머니들이랑 동화를 같이해보고 싶었어요. 접경 지역인 파주에서 살면서 '임진강 너머는 어디인지, 왜 갈 수 없냐'고 아이들이 질문할 때마다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하나 이런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의 폭력적인 부분보다는 전쟁이 남긴 ‘비극적인 삶’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박경희/작가/ ‘바카껌’ 저자 : "친구도 어느 날 그냥 갑자기 만날 수 없고 가족도 그렇고 우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얘기해 줬을 때 오히려 더 전쟁이란 것, 남과 북이 분단돼서 이런 걸 겪었다는 거에 쉽게 접근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엄마들의 본격적인 동화 낭독이 시작됩니다.

해외 입양 자매의 이별 순간.

전쟁고아의 고된 삶.

도병이 된 소년의 눈물.

각각의 동화엔 전쟁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정민영 씨가 쓴 동화 ‘제니’는 미군 기지촌의 혼혈아가 엄마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파주 연풍리 지역의 미군 기지촌을 방문했을 때 혼혈아에 대한 동화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하는데요.

[정민영/작가/‘제니’ 저자 : "아이에 대해 직접 쓰고 싶었어요, 그 시절에 살았던 아이. 당당할 수도 있고, 혼혈아지만 나의 정체성이나 나에 대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여느 아이와 똑같은 아이로 쓰고 싶었어요."]

동화 제작과정에는 온 가족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남편과 아들이 손수 그린 그림도 동화에 들어갔습니다.

[이세언/정민영 작가 아들 : "이 사람이 '프랭크'고 이게 '제니' 이게 '훈이'에요. 이 프랭크가 아주 나쁜 짓을 벌였는데 그걸 제니랑 친구인 훈이가 복수를 하는 장면을 그렸어요."]

엄마가 동화로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들의 마음속에도 와닿았습니다.

[이세언/정민영 작가 아들 : "엄마의 작품이 이해하기 쉬웠고 제일 재밌었던 거 같아요. (전쟁은) 아직도 안 끝났으니까, 휴전 중인데 언제 또다시 생길지도 모르니까 살짝 무섭기도 하고 처참하고 황폐한 일인 거 같아요."]

한국전쟁 당시 ‘설마리 전투’가 벌어졌던 파주 칠중성.

대표작품 ‘두루미 구출 작전’은 이곳에서 시작됐습니다.

두루미를 살리기 위해 총을 내린 북한군과 영국군, 그리고 남한 소년의 만남을 그려냈는데요.

[이희분/작가/‘두루미 구출 작전’ 저자 : "저 너머 임진강 북쪽에는 중국군과 그리고 중국군의 길을 안내하는 북한군이 그곳에 집결해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남한과 북한에 모두 두루미가 찾아온다는 사실이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해주었습니다.

[이희분/작가/‘두루미 구출 작전’ 저자 : "영국 군인의 입장에선 두루미를 보는 순간 자기가 떠나온 고향을 생각했을 것 같고 전쟁 이전의 평화로운 삶을 의미하지 않을까 해서 두루미를 설정하게 됐거든요."]

설마리전투 추모공원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영국군의 영혼이 잠들어 있습니다.

동화 주인공 ‘토마스 달’은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희분/작가/‘두루미 구출 작전’ 저자 : ‘글로스터셔’라는 마을에서 이곳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파병을 와서 땅을 지키려고 했었던 그분들의 희생정신에 굉장히 가슴이 아프죠."]

이름 모를 묘지에선 북한 군인 ‘송일문’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이희분/작가/‘두루미 구출 작전’ 저자 : "(무명인, 무명인, 무명인.다 무명인으로 되어있네요?) 맞아요."]

그분들의 신원을 어떻게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다 무명인으로 되어있어요.

작가로 변신한 엄마들에게 찬사와 응원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박경희/작가/‘바카껌’ 저자 : "‘진짜 경희 이모, 민영 이모, 소향 이모, 희분 이모가 쓴 거야?’ 이러면서 ‘진짜 이런 일이 있었어?’ 물어보면서 반응한다는 게 뿌듯하더라고요."]

어린 세대들에게 분단의 현실을 느끼게 해준 엄마들의 동화!

[이정란/작가/‘하얀 손수건’ 저자 : "전쟁은 저희한테도 큰 숙제지만 앞으로 남은 세대들에게도 어마어마한 숙제인 거 같아서 제가 좀 더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아이들에게 이런 상처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이소향/작가/‘달빛 박꽃’ 저자 : "이 땅의 평화와 함께 북쪽에 있는 아이들 그리고 겨레가 모두 하나라는 사실, 언젠간 다 함께 우리가 손잡고 평화를 노래할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다음 동화에선 또 다른 한반도의 역사를 다뤄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요.

이들이 들려줄 새로운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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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전쟁의 아픔을 동화로
    • 입력 2020-11-14 08:30:52
    • 수정2020-11-14 08:38:35
    남북의 창
[앵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흘렀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한창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에게 ‘전쟁’은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이야기인 게 사실인데요.

남북 접경 지역인 경기도 파주에서 10대 자녀를 둔 엄마들이 ‘전쟁의 아픔’을 담은 동화책을 발간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엄마들이 손수 만든 동화 이야기가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채유나 리포터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어둠이 내려앉은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 하나둘씩 작은 책방에 모여듭니다.

오늘은 ‘북 토크’가 열리는 날인데요.

엄마들이 6개월간 동고동락하며 만든 동화 ‘두루미 구출 작전’이 2주 전에 발간됐습니다.

비대면 방식인 온라인으로 진행되지만 현장은 시작부터 훈훈하네요.

'두루미 구출 작전’의 소재는 한국전쟁입니다.

8가지 이야기를 묶어 한 권의 동화책으로 펴냈습니다.

동화작가인 장경선 씨의 주도로 주변 이웃들과 함께 발간 작업이 시작됐다고 하는데요.

[장경선/동화 작가 : "전쟁이랑 평화 이런 부분들이 우리 어린이 친구들이 꼭 알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엄마가 전쟁에 대해 글을 썼을 때 아이들이 정말 평화가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머니들이랑 동화를 같이해보고 싶었어요. 접경 지역인 파주에서 살면서 '임진강 너머는 어디인지, 왜 갈 수 없냐'고 아이들이 질문할 때마다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하나 이런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의 폭력적인 부분보다는 전쟁이 남긴 ‘비극적인 삶’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박경희/작가/ ‘바카껌’ 저자 : "친구도 어느 날 그냥 갑자기 만날 수 없고 가족도 그렇고 우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얘기해 줬을 때 오히려 더 전쟁이란 것, 남과 북이 분단돼서 이런 걸 겪었다는 거에 쉽게 접근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엄마들의 본격적인 동화 낭독이 시작됩니다.

해외 입양 자매의 이별 순간.

전쟁고아의 고된 삶.

도병이 된 소년의 눈물.

각각의 동화엔 전쟁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정민영 씨가 쓴 동화 ‘제니’는 미군 기지촌의 혼혈아가 엄마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파주 연풍리 지역의 미군 기지촌을 방문했을 때 혼혈아에 대한 동화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하는데요.

[정민영/작가/‘제니’ 저자 : "아이에 대해 직접 쓰고 싶었어요, 그 시절에 살았던 아이. 당당할 수도 있고, 혼혈아지만 나의 정체성이나 나에 대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여느 아이와 똑같은 아이로 쓰고 싶었어요."]

동화 제작과정에는 온 가족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남편과 아들이 손수 그린 그림도 동화에 들어갔습니다.

[이세언/정민영 작가 아들 : "이 사람이 '프랭크'고 이게 '제니' 이게 '훈이'에요. 이 프랭크가 아주 나쁜 짓을 벌였는데 그걸 제니랑 친구인 훈이가 복수를 하는 장면을 그렸어요."]

엄마가 동화로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들의 마음속에도 와닿았습니다.

[이세언/정민영 작가 아들 : "엄마의 작품이 이해하기 쉬웠고 제일 재밌었던 거 같아요. (전쟁은) 아직도 안 끝났으니까, 휴전 중인데 언제 또다시 생길지도 모르니까 살짝 무섭기도 하고 처참하고 황폐한 일인 거 같아요."]

한국전쟁 당시 ‘설마리 전투’가 벌어졌던 파주 칠중성.

대표작품 ‘두루미 구출 작전’은 이곳에서 시작됐습니다.

두루미를 살리기 위해 총을 내린 북한군과 영국군, 그리고 남한 소년의 만남을 그려냈는데요.

[이희분/작가/‘두루미 구출 작전’ 저자 : "저 너머 임진강 북쪽에는 중국군과 그리고 중국군의 길을 안내하는 북한군이 그곳에 집결해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남한과 북한에 모두 두루미가 찾아온다는 사실이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해주었습니다.

[이희분/작가/‘두루미 구출 작전’ 저자 : "영국 군인의 입장에선 두루미를 보는 순간 자기가 떠나온 고향을 생각했을 것 같고 전쟁 이전의 평화로운 삶을 의미하지 않을까 해서 두루미를 설정하게 됐거든요."]

설마리전투 추모공원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영국군의 영혼이 잠들어 있습니다.

동화 주인공 ‘토마스 달’은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희분/작가/‘두루미 구출 작전’ 저자 : ‘글로스터셔’라는 마을에서 이곳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파병을 와서 땅을 지키려고 했었던 그분들의 희생정신에 굉장히 가슴이 아프죠."]

이름 모를 묘지에선 북한 군인 ‘송일문’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이희분/작가/‘두루미 구출 작전’ 저자 : "(무명인, 무명인, 무명인.다 무명인으로 되어있네요?) 맞아요."]

그분들의 신원을 어떻게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다 무명인으로 되어있어요.

작가로 변신한 엄마들에게 찬사와 응원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박경희/작가/‘바카껌’ 저자 : "‘진짜 경희 이모, 민영 이모, 소향 이모, 희분 이모가 쓴 거야?’ 이러면서 ‘진짜 이런 일이 있었어?’ 물어보면서 반응한다는 게 뿌듯하더라고요."]

어린 세대들에게 분단의 현실을 느끼게 해준 엄마들의 동화!

[이정란/작가/‘하얀 손수건’ 저자 : "전쟁은 저희한테도 큰 숙제지만 앞으로 남은 세대들에게도 어마어마한 숙제인 거 같아서 제가 좀 더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아이들에게 이런 상처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이소향/작가/‘달빛 박꽃’ 저자 : "이 땅의 평화와 함께 북쪽에 있는 아이들 그리고 겨레가 모두 하나라는 사실, 언젠간 다 함께 우리가 손잡고 평화를 노래할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다음 동화에선 또 다른 한반도의 역사를 다뤄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요.

이들이 들려줄 새로운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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