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내놔도 안 사…“日 온천 절반 사라질 것”

입력 2021.01.09 (22:30) 수정 2021.01.09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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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온천의 나라', 일본에서 온천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시설 전체를 '공짜'로 내놔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데요.

왜 그런 건지, 도쿄 연결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황현택 특파원, 먼저 일본의 코로나19 상황부터 알아볼까요?

[기자]

네, 일본은 어제부터 도쿄 등 수도권 4개 지역에 긴급사태가 발령된 상태입니다.

오늘도 신규 확진자가 사흘째 7천 명대를 기록했고, 누적 사망자는 4천 명을 넘었습니다.

지난해 4월, 1차 긴급사태 때와 비교하면 하루 확진자, 20배가 넘습니다.

그런데도 이번에 상업시설들은 전면 휴업이 아닌 오후 8시까지 단축 영업에 그쳤고, 일제 휴교 조치도 없습니다.

긴급사태 기한인 한 달 안에 확산세를 꺾기 힘들어 보이는 상황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럼 본격적으로 온천 얘기를 해 볼까요.

"앞으로 일본 온천의 절반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있다고요?

[기자]

네, 코로나19 이후 일본 관광 산업 역시 크게 위축됐는데요.

그중에서도 이미 몇 년 전부터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일본 온천업은 더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한때 잘나갔던 일본의 온천, 어쩌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는지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50년 만의 폭설이 내린 이와테현 니시와카마치.

마을 주민들이 공동 운영하는 온천 시설이 10곳 있습니다.

한때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모래 온천'도 그중 한 곳입니다.

['모래 온천' 관리자 : "전에는 손님들이 기다려야 했었죠. 여기가 꽉 차고, 옆 시설까지도 사용하고요. 지금은 (하루) 10명이 채 안 될 때도 많아요."]

온천 10곳의 연간 유지 비용은 우리 돈 15억여 원.

마을 주민들이 공동 부담해 왔는데, 최근 적자가 심해지자 10곳 중 7곳이 매물로 나왔습니다.

'모래 온천'의 매각액은 1억 4천여만 원.

건물 노후화 등을 고려해 가격을 낮췄는데, 더 놀라운 가격에 나온 물건도 있습니다.

남탕과 여탕, 휴게실과 매점, 여기에 주차장까지 갖춘 이 온천 시설의 매각 가격은 '0원'.

온천 전체를 '공짜'로 주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입찰에 참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구입 후 5년 동안 온천 영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조건이 결국 걸림돌이 된 겁니다.

실제로 이 마을의 고령화 비율은 51%,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입니다.

이와테현 33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고령화 비율 1위입니다.

온천의 주 고객인 마을 주민 수 역시 2005년 7천4백 명에서 지금은 5천4백 명으로 줄었습니다.

시설을 민간에 넘겨도 적자 탈출이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사토 타로/니시와카마치 관광상공과 과장 : "민간이라면 흑자를 당연히 원하겠죠. 다만 민간 사업자는 여러 방식의 도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힘으로 흑자 반전을 이루는 시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일본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이데 토시오/온천 전문가 : "일본 정부가 (1980년 후반에) '고향 살리기' 명목으로 각 지자체에 10억 원씩 뿌렸어요. 그 돈으로 많은 지자체가 온천을 팠죠. 그래서 단번에 온천 수가 늘었습니다."]

하지만 특색 없이 우후죽순 늘어난 온천들은 이용객을 붙들 수 없었습니다.

일본의 온천 이용자는 1992년을 정점으로 1천2백만 명 이상 감소했고, 온천 시설 역시 97년을 정점으로 3천 개 가까이 줄었습니다.

일본 정부의 공식 통계 이후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2년 전부터는 수출 규제에 따라 한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겼고, 특히 지난해 터진 코로나19 사태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큰 이 온천 여관의 경우 예약자는 취재팀뿐.

객실 20여 곳이 텅 비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사와 사치코/온천 여관 운영자 :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은 이익이 전혀 나지 않아요. 이 일을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도쿄에서 차로 6시간 달려 도착한 또 다른 온천.

1905년 문을 열어 올해로 개업 116년을 맞았습니다.

개업 초기, 인근에 스키장도 문을 열면서 사업은 번창했습니다.

일본 왕실이 묵고 간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소우카와 요시카즈/온천 운영자 : "1923년에 오셨어요. 지금으로 치면 귀빈이 오셨던 거죠. 중요한 손님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그 당시에는."]

가업을 물려받은 소우카와 씨가 여관을 운영한 지 어느덧 40년.

인근 스키장은 20여 년 전 문을 닫았고, 이어 2011년에는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에서 오던 관광객도 줄었습니다.

숙박객은 연간 1천 명 정도로, 한창때에 비해 10분의 1로 급감했습니다.

여기에 가업을 이을 후계자마저 끊기면서 100년 넘게 유지했던 여관 문을 닫게 됐습니다.

결국 마지막 영업일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어서 오세요!"]

마지막 추억을 남기기 위해 단골손님이 찾았습니다.

[온천 이용자 : "함께 사진 찍지 않으실래요? (그럽시다.) 마지막으로 온천에 몸을 담그러 왔어요. 매우 안타깝네요. 정말로 좋은 온천이었어요."]

영업이 종료된 오후 5시.

["정말 고마웠습니다."]

[소우카와 요시카즈/온천 운영자 :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슬프네요. 제 세대에서 문을 닫게 돼 면목이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한 전문가는 온천이 과잉 공급된 상황에서 코로나19까지 들이닥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합니다.

[이이데 토시오/온천 전문가 : "인구 그 자체가 크게 줄고 있어요. 게다가 금전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던 '전후 베이비붐 세대'도 곧 없어질 거고요. 온천 절반 정도가 사라질지 모르겠어요."]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에도 늦었던 일본의 온천 산업.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시작됐습니다.

야마가타에서 황현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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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짜’로 내놔도 안 사…“日 온천 절반 사라질 것”
    • 입력 2021-01-09 22:30:03
    • 수정2021-01-09 22: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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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온천의 나라', 일본에서 온천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시설 전체를 '공짜'로 내놔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데요.

왜 그런 건지, 도쿄 연결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황현택 특파원, 먼저 일본의 코로나19 상황부터 알아볼까요?

[기자]

네, 일본은 어제부터 도쿄 등 수도권 4개 지역에 긴급사태가 발령된 상태입니다.

오늘도 신규 확진자가 사흘째 7천 명대를 기록했고, 누적 사망자는 4천 명을 넘었습니다.

지난해 4월, 1차 긴급사태 때와 비교하면 하루 확진자, 20배가 넘습니다.

그런데도 이번에 상업시설들은 전면 휴업이 아닌 오후 8시까지 단축 영업에 그쳤고, 일제 휴교 조치도 없습니다.

긴급사태 기한인 한 달 안에 확산세를 꺾기 힘들어 보이는 상황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럼 본격적으로 온천 얘기를 해 볼까요.

"앞으로 일본 온천의 절반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있다고요?

[기자]

네, 코로나19 이후 일본 관광 산업 역시 크게 위축됐는데요.

그중에서도 이미 몇 년 전부터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일본 온천업은 더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한때 잘나갔던 일본의 온천, 어쩌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는지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50년 만의 폭설이 내린 이와테현 니시와카마치.

마을 주민들이 공동 운영하는 온천 시설이 10곳 있습니다.

한때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모래 온천'도 그중 한 곳입니다.

['모래 온천' 관리자 : "전에는 손님들이 기다려야 했었죠. 여기가 꽉 차고, 옆 시설까지도 사용하고요. 지금은 (하루) 10명이 채 안 될 때도 많아요."]

온천 10곳의 연간 유지 비용은 우리 돈 15억여 원.

마을 주민들이 공동 부담해 왔는데, 최근 적자가 심해지자 10곳 중 7곳이 매물로 나왔습니다.

'모래 온천'의 매각액은 1억 4천여만 원.

건물 노후화 등을 고려해 가격을 낮췄는데, 더 놀라운 가격에 나온 물건도 있습니다.

남탕과 여탕, 휴게실과 매점, 여기에 주차장까지 갖춘 이 온천 시설의 매각 가격은 '0원'.

온천 전체를 '공짜'로 주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입찰에 참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구입 후 5년 동안 온천 영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조건이 결국 걸림돌이 된 겁니다.

실제로 이 마을의 고령화 비율은 51%,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입니다.

이와테현 33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고령화 비율 1위입니다.

온천의 주 고객인 마을 주민 수 역시 2005년 7천4백 명에서 지금은 5천4백 명으로 줄었습니다.

시설을 민간에 넘겨도 적자 탈출이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사토 타로/니시와카마치 관광상공과 과장 : "민간이라면 흑자를 당연히 원하겠죠. 다만 민간 사업자는 여러 방식의 도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힘으로 흑자 반전을 이루는 시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일본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이데 토시오/온천 전문가 : "일본 정부가 (1980년 후반에) '고향 살리기' 명목으로 각 지자체에 10억 원씩 뿌렸어요. 그 돈으로 많은 지자체가 온천을 팠죠. 그래서 단번에 온천 수가 늘었습니다."]

하지만 특색 없이 우후죽순 늘어난 온천들은 이용객을 붙들 수 없었습니다.

일본의 온천 이용자는 1992년을 정점으로 1천2백만 명 이상 감소했고, 온천 시설 역시 97년을 정점으로 3천 개 가까이 줄었습니다.

일본 정부의 공식 통계 이후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2년 전부터는 수출 규제에 따라 한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겼고, 특히 지난해 터진 코로나19 사태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큰 이 온천 여관의 경우 예약자는 취재팀뿐.

객실 20여 곳이 텅 비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사와 사치코/온천 여관 운영자 :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은 이익이 전혀 나지 않아요. 이 일을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도쿄에서 차로 6시간 달려 도착한 또 다른 온천.

1905년 문을 열어 올해로 개업 116년을 맞았습니다.

개업 초기, 인근에 스키장도 문을 열면서 사업은 번창했습니다.

일본 왕실이 묵고 간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소우카와 요시카즈/온천 운영자 : "1923년에 오셨어요. 지금으로 치면 귀빈이 오셨던 거죠. 중요한 손님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그 당시에는."]

가업을 물려받은 소우카와 씨가 여관을 운영한 지 어느덧 40년.

인근 스키장은 20여 년 전 문을 닫았고, 이어 2011년에는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에서 오던 관광객도 줄었습니다.

숙박객은 연간 1천 명 정도로, 한창때에 비해 10분의 1로 급감했습니다.

여기에 가업을 이을 후계자마저 끊기면서 100년 넘게 유지했던 여관 문을 닫게 됐습니다.

결국 마지막 영업일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어서 오세요!"]

마지막 추억을 남기기 위해 단골손님이 찾았습니다.

[온천 이용자 : "함께 사진 찍지 않으실래요? (그럽시다.) 마지막으로 온천에 몸을 담그러 왔어요. 매우 안타깝네요. 정말로 좋은 온천이었어요."]

영업이 종료된 오후 5시.

["정말 고마웠습니다."]

[소우카와 요시카즈/온천 운영자 :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슬프네요. 제 세대에서 문을 닫게 돼 면목이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한 전문가는 온천이 과잉 공급된 상황에서 코로나19까지 들이닥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합니다.

[이이데 토시오/온천 전문가 : "인구 그 자체가 크게 줄고 있어요. 게다가 금전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던 '전후 베이비붐 세대'도 곧 없어질 거고요. 온천 절반 정도가 사라질지 모르겠어요."]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에도 늦었던 일본의 온천 산업.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시작됐습니다.

야마가타에서 황현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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