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북한 태생 아니라는 이유로…차별에 우는 아이들

입력 2021.03.13 (08:09) 수정 2021.03.1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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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중 접경을 넘어 북한을 탈출한 여성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중국 남성들과 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네.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낳아 기르다가 한국으로 데려온 아이들을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라고 부릅니다.

최효은 리포터! 그런데 이런 아이들이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요.

[답변]

네. 그렇습니다.

북한 태생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인데요.

한국어도 서툴러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학생들도 많더라고요.

[앵커]

그렇다면 학교생활 적응도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따로 있다고요?

[답변]

네. 남북사랑학교라는 곳인데요.

직접 찾아가 봤더니 탈북민 학생 38명 중에 22명이 중국에서 태어났더라고요.

차별 속에서 그래도 꿈을 잃지 않는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들의 이야기,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시끌벅적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곳.

서울 구로구에 있는 남북사랑학교입니다.

탈북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로 2016년 문을 열었습니다.

["x+3y=11이다. 얘들아 당황하지마. 그저 적혀 있는 걸 그대로 썼을 뿐이란다."]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데요.

30대의 나이에 이일미 씨는 한국에 오고 나서야 학교를 처음 와봤습니다.

[이일미/탈북 학생/30살 : "전 북한에서 학력이 없거든요. 그래서 여기 와서 초등학교 졸업부터 검정고시 보는데 대한민국 사회에서 보통 사람들이랑 수준을 같이 맞춰갈 수 있는 정도 그래서 한두 개는 자격증 쥐고 싶거든요."]

수업 내용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모든 학생이 집중하고 있는데요.

["그럼 5가 되는 거야. 얼마나 잘하니~ 아주 좋아!"]

[신하윤/탈북 학생 : "(어렵지 않아요?) 괜찮아요. 선생님께서 간단하게 가르쳐줘요."]

[권민재/남북사랑학교 강사 : "일단은 말(학습 용어) 자체가 달랐잖아요. 미지수, 변수, 승(제곱)이라든가 언어들에서 차이가 발생해서 그래도 수업을 최대한 따라오려고 하는 의지가 있고 잘 따라오는 거 같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위해 야외로 나온 학생들.

카메라를 손에 쥐고 이것저것 찍어보기 바쁜데요.

["오 괜찮은데 대박이다."]

직접 찍은 사진을 가지고 선생님에게 다가갑니다.

["(어때요? 친구 어때요?) 너 이 손을 이렇게 올리는 자세로 해야지 이렇게 하면 할아버지 같아요."]

학습 격차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남북사랑학교에선 한국어가 서툴러 한국 생활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학교에선 수준별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바늘이 갑자기 뚝 부러져서) 침이 부러졌어요. 원래 많았는데 마지막 하나 부러져서."]

[유정민/남북사랑학교 교사 : "단어 자체가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가 많이 있고요. 문화나 정서가 같이 이해해야 할 때에 더 어려워하죠."]

중국에서 태어나 지난 2015년 한국에 온 이진호 학생.

연락이 끊긴 아버지는 중국인, 어머니는 탈북민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 한국어에 능숙해졌지만, 처음 와서는 친구들의 놀림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이진호/탈북 학생 : "처음에는 말도 통하지 않고 제3국 신분으로 차별 같은 거 학교폭력도 받았고요. 그거에 대해서 많이 힘들었던 거 같아요."]

진호 학생은 비슷한 처지의 제3국 출생 탈북민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차츰 한국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취미도 생겼는데요.

["이게 더 맛있어요. 파는 떡볶이보다 얘가 만들어준 떡볶이가 더 맛있어요. (낼부터 레스토랑 만든다.)"]

이제 어설픈 한국어로 친구들과도 소통할 수 있어졌습니다.

북한이 아니라 중국 등 제3국에서 태어난 탈북민 학생들은 한국에 온 이후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도 하는데요.

[심양섭/남북사랑학교 교장 : "정체성의 문제. 자긴 중국 사람이다. 중국에서 살아야 한다는 그런 것도 있고 내가 왜 한국의 군대에 가야 하냐 그런 문제도 있고 우리가 더 잘 품고 돌보지 못한 측면도 있어요."]

쉽지 않았던 한국 생활.

그나마 학교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다 보니 졸업 후에도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최근 한국 국적을 취득한 정희옥 학생은 올해 대학 신입생이 됐습니다.

여전히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정희옥/탈북 학생 : "전 다문화 쪽에 관심이 있는데 그쪽으로 가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도 고민되고..."]

[심양섭/남북사랑학교 교장 :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기 때문에 아주 훌륭한 진로를 이미 정한 거예요."]

희옥 학생은 중국 옌지에서 조선족 아버지와 북한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중국 태생이라는 이유로 한국 정부는 탈북민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심양섭/남북사랑학교 교장 : "북한 여성들이 중국으로 팔려가서 중국 남성과 살면서 낳은 아이들이죠. 그래서 대학 입시에서도 그렇고요. 그다음에 대학교 다니면서 내는 등록금에서도 그렇고요. 탈북 북한 출신 청소년들이 받는 혜택을 전혀 못 받고 있습니다."]

희옥 학생의 어머니는 중국에서도 항상 공안에 쫓기면서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7살 때 어머니는 돈을 벌러 간다며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정희옥/탈북 학생 : "많은 북한분들이 결혼하고 한국에 가면 무소식으로 사라지는 상황이 많이 벌어지니까 저희 아빠도 엄마가 나를 버린 거 아닌가 이런 걱정에 잠들기 전에 엄마가 보고 싶고 그래서..."]

한국에 와서 꿈에 그리던 어머니를 만나기까지 무려 12년이 걸렸습니다.

어린 나이의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정희옥/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 : "(엄마가) 대중 앞에서 자유롭게 생활을 못했어요. 엄마랑 집에 있는데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서 저희를 경찰서에 잡아간 기억이 남아있거든요."]

낯선 땅에 와서 언어 장벽과 이중의 차별 속에 힘겹게 살아가는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들.

이 학생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품어야 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심양섭/남북사랑학교 교장 : "남한 사람들하고 북한 사람들하고 만나서 알아야 된다 그게 중요한 거죠. 그게 통합이에요. 서로가 접촉하고 만나서 작은 모임을 통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거 이것이 작은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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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북한 태생 아니라는 이유로…차별에 우는 아이들
    • 입력 2021-03-13 08:09:07
    • 수정2021-03-13 08: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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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중 접경을 넘어 북한을 탈출한 여성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중국 남성들과 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네.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낳아 기르다가 한국으로 데려온 아이들을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라고 부릅니다.

최효은 리포터! 그런데 이런 아이들이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요.

[답변]

네. 그렇습니다.

북한 태생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인데요.

한국어도 서툴러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학생들도 많더라고요.

[앵커]

그렇다면 학교생활 적응도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따로 있다고요?

[답변]

네. 남북사랑학교라는 곳인데요.

직접 찾아가 봤더니 탈북민 학생 38명 중에 22명이 중국에서 태어났더라고요.

차별 속에서 그래도 꿈을 잃지 않는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들의 이야기,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시끌벅적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곳.

서울 구로구에 있는 남북사랑학교입니다.

탈북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로 2016년 문을 열었습니다.

["x+3y=11이다. 얘들아 당황하지마. 그저 적혀 있는 걸 그대로 썼을 뿐이란다."]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데요.

30대의 나이에 이일미 씨는 한국에 오고 나서야 학교를 처음 와봤습니다.

[이일미/탈북 학생/30살 : "전 북한에서 학력이 없거든요. 그래서 여기 와서 초등학교 졸업부터 검정고시 보는데 대한민국 사회에서 보통 사람들이랑 수준을 같이 맞춰갈 수 있는 정도 그래서 한두 개는 자격증 쥐고 싶거든요."]

수업 내용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모든 학생이 집중하고 있는데요.

["그럼 5가 되는 거야. 얼마나 잘하니~ 아주 좋아!"]

[신하윤/탈북 학생 : "(어렵지 않아요?) 괜찮아요. 선생님께서 간단하게 가르쳐줘요."]

[권민재/남북사랑학교 강사 : "일단은 말(학습 용어) 자체가 달랐잖아요. 미지수, 변수, 승(제곱)이라든가 언어들에서 차이가 발생해서 그래도 수업을 최대한 따라오려고 하는 의지가 있고 잘 따라오는 거 같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위해 야외로 나온 학생들.

카메라를 손에 쥐고 이것저것 찍어보기 바쁜데요.

["오 괜찮은데 대박이다."]

직접 찍은 사진을 가지고 선생님에게 다가갑니다.

["(어때요? 친구 어때요?) 너 이 손을 이렇게 올리는 자세로 해야지 이렇게 하면 할아버지 같아요."]

학습 격차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남북사랑학교에선 한국어가 서툴러 한국 생활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학교에선 수준별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바늘이 갑자기 뚝 부러져서) 침이 부러졌어요. 원래 많았는데 마지막 하나 부러져서."]

[유정민/남북사랑학교 교사 : "단어 자체가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가 많이 있고요. 문화나 정서가 같이 이해해야 할 때에 더 어려워하죠."]

중국에서 태어나 지난 2015년 한국에 온 이진호 학생.

연락이 끊긴 아버지는 중국인, 어머니는 탈북민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 한국어에 능숙해졌지만, 처음 와서는 친구들의 놀림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이진호/탈북 학생 : "처음에는 말도 통하지 않고 제3국 신분으로 차별 같은 거 학교폭력도 받았고요. 그거에 대해서 많이 힘들었던 거 같아요."]

진호 학생은 비슷한 처지의 제3국 출생 탈북민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차츰 한국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취미도 생겼는데요.

["이게 더 맛있어요. 파는 떡볶이보다 얘가 만들어준 떡볶이가 더 맛있어요. (낼부터 레스토랑 만든다.)"]

이제 어설픈 한국어로 친구들과도 소통할 수 있어졌습니다.

북한이 아니라 중국 등 제3국에서 태어난 탈북민 학생들은 한국에 온 이후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도 하는데요.

[심양섭/남북사랑학교 교장 : "정체성의 문제. 자긴 중국 사람이다. 중국에서 살아야 한다는 그런 것도 있고 내가 왜 한국의 군대에 가야 하냐 그런 문제도 있고 우리가 더 잘 품고 돌보지 못한 측면도 있어요."]

쉽지 않았던 한국 생활.

그나마 학교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다 보니 졸업 후에도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최근 한국 국적을 취득한 정희옥 학생은 올해 대학 신입생이 됐습니다.

여전히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정희옥/탈북 학생 : "전 다문화 쪽에 관심이 있는데 그쪽으로 가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도 고민되고..."]

[심양섭/남북사랑학교 교장 :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기 때문에 아주 훌륭한 진로를 이미 정한 거예요."]

희옥 학생은 중국 옌지에서 조선족 아버지와 북한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중국 태생이라는 이유로 한국 정부는 탈북민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심양섭/남북사랑학교 교장 : "북한 여성들이 중국으로 팔려가서 중국 남성과 살면서 낳은 아이들이죠. 그래서 대학 입시에서도 그렇고요. 그다음에 대학교 다니면서 내는 등록금에서도 그렇고요. 탈북 북한 출신 청소년들이 받는 혜택을 전혀 못 받고 있습니다."]

희옥 학생의 어머니는 중국에서도 항상 공안에 쫓기면서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7살 때 어머니는 돈을 벌러 간다며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정희옥/탈북 학생 : "많은 북한분들이 결혼하고 한국에 가면 무소식으로 사라지는 상황이 많이 벌어지니까 저희 아빠도 엄마가 나를 버린 거 아닌가 이런 걱정에 잠들기 전에 엄마가 보고 싶고 그래서..."]

한국에 와서 꿈에 그리던 어머니를 만나기까지 무려 12년이 걸렸습니다.

어린 나이의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정희옥/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 : "(엄마가) 대중 앞에서 자유롭게 생활을 못했어요. 엄마랑 집에 있는데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서 저희를 경찰서에 잡아간 기억이 남아있거든요."]

낯선 땅에 와서 언어 장벽과 이중의 차별 속에 힘겹게 살아가는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들.

이 학생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품어야 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심양섭/남북사랑학교 교장 : "남한 사람들하고 북한 사람들하고 만나서 알아야 된다 그게 중요한 거죠. 그게 통합이에요. 서로가 접촉하고 만나서 작은 모임을 통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거 이것이 작은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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