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K] 초록빛 짙어가는 해팔마을의 봄…군산 흰찰쌀보리

입력 2021.04.05 (19:26) 수정 2021.04.0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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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보리의 초록빛이 드넓은 들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군산의 한 시골마을.

짙어지는 색깔만큼 깊어지는 보리 내음이 살랑살랑 봄바람을 타고 온 마을을 적십니다.

["(보리, 잘 됐지?) 시장 확보가 어려워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열심히 한번 노력해봐야 될 것 같아요."]

현재 보리 경작을 하고 있는 30여 가구 주민들의 마음은 넘실거리는 보리 물결과 달리 무겁기만 합니다.

예년 같으면 ‘꽁당보리축제’ 준비로 분주할 때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온 피해가 해팔마을 보리밭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유덕호/군산시 해팔마을 농민 : "지금 2년 동안 축제를 중단하다 보니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도 없고, 농사를 지어가지고 판로가 걱정되는 상황이에요."]

해팔마을이 있는 지금의 미성동에서부터 회현면, 옥구읍에 걸쳐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대규모 간척평야.

염기를 가진 개펄이라 다른 작물은 재배가 어려워도 보리가 자라는 데는 최적의 조건이 형성된 곳입니다.

[이연식/군산시 해팔마을 전 통장 : "개간지가 아닌 땅은 겨울에 얼잖아요, 땅이. 얼면 쑥 올라와. 살얼음이 쑥 올라와가지고 보리가 다 죽어. 그런데 여기는 개간지이기 때문에 (땅이) 딱 가라앉아버려. 그리니까 안 죽어, 보리가."]

'흰찰쌀보리'라는 보리 품종 개발에 성공한 군산시는 종자 보급을 위해 1997년 전국에서 최초로 시험재배하면서 찰보리 주산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원래 명칭은 ‘흰찰쌀보리’지만 쌀을 섞지 않은 꽁보리밥이란 뜻에서 붙은 또 다른 이름, '꽁당보리'.

일반 쌀보리에 비해 알은 작아도 노란 빛을 띠는 게 특징인 이 보리는, 특유의 찰기와 부드러움으로 ‘보리계의 찹쌀’로 불려왔습니다.

가용성 식이섬유가 일반 쌀의 7배나 많고, 밀에 비해서는 3.7배나 높은 함량을 지니고 있어 건강식품으로도 인기를 얻었습니다.

[박종성/군산시 해팔마을 통장 : "말 그대로 찹쌀보리라고 해서 찰기가 많이 있어가지고 불리지 않아도 물을 잘 먹고, 밥해도, 보리밥을 해도 잘 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순창 고추장', '고창 복분자'처럼 '군산 흰찰쌀보리'도 우수 농산물과 가공품에 지역명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하여 장기적으로 지역 특산물을 육성하는 '지리적표시 제49호'로 등록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농민들의 시름이 커진 건 정부가 지난 2012년, 수요 부족을 이유로 보리 수매를 전면 중단하면서 부텁니다.

[이연식/군산시 해팔마을 전 통장 : "지금은 정부에서 수매를 않거든, 보리를. 정부에서 안 가져가면 갈아봤자 소용없어. 인건비도 안 나와. 그것이 제일 문제야."]

이후 흰찰쌀보리는 값 싼 쌀보리나 겉보리 등에 밀리고, 렌틸콩 같은 외국산 잡곡의 유입으로 경쟁력에서 뒤처지게 됩니다.

급기야 파종을 하는 면적이 점점 줄면서 2017년 2,680ha에서 2020년 1,848ha로 몇 년 새 부쩍 줄었습니다.

[박종성/군산시 해팔마을 통장 : "40Kg 한 가마니에 35,000원 가던 보리쌀이 지금 18,000원으로 떨어져가지고, 지금 농민들이 원가 대비 수익이 창출이 안 되니까 보리 경작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애써 농사지은 보리밭을 갈아엎거나, 경작을 하지 않고 비워둔 밭도 많습니다.

외지인들이 땅을 사들여 건물이나 공장을 짓느라 농지가 줄어드는 것도 가슴 아픈 현실로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땅도 전에는 여기와 같이 평지로 돼 있었는데, 외지인이 이 땅을 사가지고 이 높이로 성토를 했거든요. 결국에는 이런 땅들에 건물이 들어서게 되거든요."]

푸른 보리밭 속에서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가는 해팔마을의 봄.

설상가상으로 마을 한가운데 놓인 철도와 산업도로, 송전탑 등으로 마을 경관이 피폐해진 것은 물론, 108가구나 되는 마을과 그에 딸린 전답이 길을 사이에 두고 두 동강이가 난 상태입니다.

[이연식/군산시 해팔마을 전 통장 : "농사짓는 사람이 저쪽에 가서 갈고 또 넘어와 가지고 이쪽에 와서 하고…. 그러니까 많이 불편하지. 굉장히 불편하지. 물도 잘 안 빠지고. 농사짓는 데 애로가 많아."]

이래저래 설움 많고 한도 많은 봄이지만, 해팔마을 꽁당보리는 꿋꿋하게 계절을 이겨가고 있습니다.

그 푸른빛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건 우리 모두의 몫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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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K] 초록빛 짙어가는 해팔마을의 봄…군산 흰찰쌀보리
    • 입력 2021-04-05 19:26:54
    • 수정2021-04-05 20:09:36
    뉴스7(전주)
싱그러운 보리의 초록빛이 드넓은 들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군산의 한 시골마을.

짙어지는 색깔만큼 깊어지는 보리 내음이 살랑살랑 봄바람을 타고 온 마을을 적십니다.

["(보리, 잘 됐지?) 시장 확보가 어려워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열심히 한번 노력해봐야 될 것 같아요."]

현재 보리 경작을 하고 있는 30여 가구 주민들의 마음은 넘실거리는 보리 물결과 달리 무겁기만 합니다.

예년 같으면 ‘꽁당보리축제’ 준비로 분주할 때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온 피해가 해팔마을 보리밭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유덕호/군산시 해팔마을 농민 : "지금 2년 동안 축제를 중단하다 보니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도 없고, 농사를 지어가지고 판로가 걱정되는 상황이에요."]

해팔마을이 있는 지금의 미성동에서부터 회현면, 옥구읍에 걸쳐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대규모 간척평야.

염기를 가진 개펄이라 다른 작물은 재배가 어려워도 보리가 자라는 데는 최적의 조건이 형성된 곳입니다.

[이연식/군산시 해팔마을 전 통장 : "개간지가 아닌 땅은 겨울에 얼잖아요, 땅이. 얼면 쑥 올라와. 살얼음이 쑥 올라와가지고 보리가 다 죽어. 그런데 여기는 개간지이기 때문에 (땅이) 딱 가라앉아버려. 그리니까 안 죽어, 보리가."]

'흰찰쌀보리'라는 보리 품종 개발에 성공한 군산시는 종자 보급을 위해 1997년 전국에서 최초로 시험재배하면서 찰보리 주산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원래 명칭은 ‘흰찰쌀보리’지만 쌀을 섞지 않은 꽁보리밥이란 뜻에서 붙은 또 다른 이름, '꽁당보리'.

일반 쌀보리에 비해 알은 작아도 노란 빛을 띠는 게 특징인 이 보리는, 특유의 찰기와 부드러움으로 ‘보리계의 찹쌀’로 불려왔습니다.

가용성 식이섬유가 일반 쌀의 7배나 많고, 밀에 비해서는 3.7배나 높은 함량을 지니고 있어 건강식품으로도 인기를 얻었습니다.

[박종성/군산시 해팔마을 통장 : "말 그대로 찹쌀보리라고 해서 찰기가 많이 있어가지고 불리지 않아도 물을 잘 먹고, 밥해도, 보리밥을 해도 잘 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순창 고추장', '고창 복분자'처럼 '군산 흰찰쌀보리'도 우수 농산물과 가공품에 지역명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하여 장기적으로 지역 특산물을 육성하는 '지리적표시 제49호'로 등록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농민들의 시름이 커진 건 정부가 지난 2012년, 수요 부족을 이유로 보리 수매를 전면 중단하면서 부텁니다.

[이연식/군산시 해팔마을 전 통장 : "지금은 정부에서 수매를 않거든, 보리를. 정부에서 안 가져가면 갈아봤자 소용없어. 인건비도 안 나와. 그것이 제일 문제야."]

이후 흰찰쌀보리는 값 싼 쌀보리나 겉보리 등에 밀리고, 렌틸콩 같은 외국산 잡곡의 유입으로 경쟁력에서 뒤처지게 됩니다.

급기야 파종을 하는 면적이 점점 줄면서 2017년 2,680ha에서 2020년 1,848ha로 몇 년 새 부쩍 줄었습니다.

[박종성/군산시 해팔마을 통장 : "40Kg 한 가마니에 35,000원 가던 보리쌀이 지금 18,000원으로 떨어져가지고, 지금 농민들이 원가 대비 수익이 창출이 안 되니까 보리 경작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애써 농사지은 보리밭을 갈아엎거나, 경작을 하지 않고 비워둔 밭도 많습니다.

외지인들이 땅을 사들여 건물이나 공장을 짓느라 농지가 줄어드는 것도 가슴 아픈 현실로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땅도 전에는 여기와 같이 평지로 돼 있었는데, 외지인이 이 땅을 사가지고 이 높이로 성토를 했거든요. 결국에는 이런 땅들에 건물이 들어서게 되거든요."]

푸른 보리밭 속에서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가는 해팔마을의 봄.

설상가상으로 마을 한가운데 놓인 철도와 산업도로, 송전탑 등으로 마을 경관이 피폐해진 것은 물론, 108가구나 되는 마을과 그에 딸린 전답이 길을 사이에 두고 두 동강이가 난 상태입니다.

[이연식/군산시 해팔마을 전 통장 : "농사짓는 사람이 저쪽에 가서 갈고 또 넘어와 가지고 이쪽에 와서 하고…. 그러니까 많이 불편하지. 굉장히 불편하지. 물도 잘 안 빠지고. 농사짓는 데 애로가 많아."]

이래저래 설움 많고 한도 많은 봄이지만, 해팔마을 꽁당보리는 꿋꿋하게 계절을 이겨가고 있습니다.

그 푸른빛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건 우리 모두의 몫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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