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만 붕괴’ 전북…출산 대책, 실효성 있나?
입력 2021.04.29 (21:38)
수정 2021.04.29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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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인구 백80만 명 붕괴.
지난달 전라북도가 받아 든 인구 성적표입니다.
천9백66년 정점을 찍은 전북 인구, 2천년 2백만 명 아래로 내려온 데 이어, 십 년 넘게 유지되던 백80만 명 선까지 무너진 셈입니다.
전국 기준으로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아지는 '데드 크로스'가 찾아온 건 지난해가 처음인데요.
전북은 이미 4년 전, 이 '데드 크로스'를 맞았습니다.
위기감이 커지면서 지자체마다 출산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요.
지난 6년 사이 14개 시·군의 관련 예산은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한 해 평균 증가율 14 퍼센트, 전체 액수는 천백20억여 원입니다.
항목별로 보면 60 퍼센트가 넘는 7백억 원이 출산 분야에 집중됐고, 산후 관리와 임신, 결혼 등의 순이었습니다.
각종 장려금을 비롯한 현금성 지원 외에도 난임 검사비와 건강관리비 등 사업 수만 백 여든 개에 달하는 데요.
이처럼 늘어난 예산에도 출생아의 감소폭은 좀처럼 줄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이는 세종시를 제외한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전북의 감소율은 전국 평균을 웃돌았고 도 단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지역의 미래와도 직결된 출산 대책,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두 살 터울 아이 둘을 키우는 최성애 씨.
다음 달 셋째 출산을 앞두고 설렘 만큼 걱정도 큽니다.
출산지원금이나 의료비 혜택을 받더라도 육아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방문 아이돌보미 지원을 받더라도 시간은 부족하고 비용은 부담됩니다.
[최성애/전주시 효자동 : "받을 땐 잠깐 쓸 수 있지만 계속 들어가는 게 많아지는 추세니까, 많이 주신다고 해도 부족함을 느끼죠. 더 많은 돈이 실질적으로 들 때 보조금이 줄기 때문에 학부모 입장에서 아쉬움이…."]
부부의 육아 분담이나 일과 가정의 양립을 둘러싼 인식이 과거보단 나아지고 있지만, 주로 여성에게 강요되는 경력 단절은 출산을 미루거나 꺼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힙니다.
공무원 등을 제외하면 1년짜리 육아휴직을 온전히 쓸 수 있는 직장이 많지 않은 데다 출산휴가나 근로시간 단축조차 여의치 않은 게 현실입니다.
[김희정/완주군 이서면 : "일을 다시 하고 싶어도 아이들이 너무 어리기도 하고,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오래 쉬다 보면 자신감이 떨어지니까 일을 다시 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출산 장려'를 넘어 사회 보육 강화와 삶의 질 향상을 통한 저출산 극복을 선언한 정부.
하지만 지자체가 쏟아 붓는 예산 대부분은 여전히 일시적인 현금성 지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최근 전북 14개 시·군이 쓴 출산 관련 예산 가운데 절반이 넘는 5백73억 원이 출산지원금에 쏠렸는데, 지원금이 크게 늘어난 익산과 군산, 전주 등의 경우, 출생아 감소율이 오히려 높게 나타납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제각각인 출산지원금을 정부나 도가 나서 통합 관리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정재훈/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정주인구를 늘리는 데는 효과가 없는 게 지역에 따른 인구의 풍선효과, 이쪽으로 쏠렸다가 저쪽으로 쏠렸다는 거고. 중앙 정부는 현금, 지방 정부는 서비스 인프라 구축·삶의 공간 구축. 이런 역할 분담이 돼야…."]
출산 환경도 문제입니다.
14개 시·군 가운데 산부인과 분만실이 없는 '분만취약지역'은 무려 6곳에 달하고, 산후조리원 수는 전국 대비 3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15개가 전부입니다.
선호도가 높은 국·공립 어린이집은 전국 대비 1.9 퍼센트 수준인 82개에 불과한 데다, 전북 안에서도 전체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절반 가까이가 전주에 몰려 있는 반면, 무주·진안·장수의 비중은 각각 1퍼센트도 되지 않아 지역별 불균형이 심각합니다.
전남 등에서 운영 중인 공공 산후조리원을 비롯해 출산과 보육을 위한 공공 기반시설 확충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오현숙/전라북도 출산아동팀장 : "국·공립 어린이집과 공동 육아 나눔터를 확충하고, 부모들의 육아 부담을 덜어 드리려고 다함께 돌봄 센터도 매년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습니다."]
각각 나뉘어 있는 청년 정책과 출산 정책을 생애주기에 맞춰 통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결국 일자리와 주거 마련을 둘러싼 청년층의 불안이 결혼과 출산 기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지역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가장 효과적인 인구 정책인 겁니다.
[이혜숙/한일장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아이를 낳는 부모들이 나보다 잘살 것 같지 않다면 출산을 포기한다고 합니다. 출산 정책은 자꾸 뒤쫓아가는 느낌이 있는데, 내 이야기로 와 닿는 정책을 어떻게 촘촘히 할 건가."]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와 청년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만드는 건 지역사회의 미래를 위해 미룰 수 없는 책무입니다.
KBS 뉴스 안승길입니다.
촬영기자:안광석/그래픽:김종훈·박소현·전현정·최희태
인구 백80만 명 붕괴.
지난달 전라북도가 받아 든 인구 성적표입니다.
천9백66년 정점을 찍은 전북 인구, 2천년 2백만 명 아래로 내려온 데 이어, 십 년 넘게 유지되던 백80만 명 선까지 무너진 셈입니다.
전국 기준으로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아지는 '데드 크로스'가 찾아온 건 지난해가 처음인데요.
전북은 이미 4년 전, 이 '데드 크로스'를 맞았습니다.
위기감이 커지면서 지자체마다 출산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요.
지난 6년 사이 14개 시·군의 관련 예산은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한 해 평균 증가율 14 퍼센트, 전체 액수는 천백20억여 원입니다.
항목별로 보면 60 퍼센트가 넘는 7백억 원이 출산 분야에 집중됐고, 산후 관리와 임신, 결혼 등의 순이었습니다.
각종 장려금을 비롯한 현금성 지원 외에도 난임 검사비와 건강관리비 등 사업 수만 백 여든 개에 달하는 데요.
이처럼 늘어난 예산에도 출생아의 감소폭은 좀처럼 줄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이는 세종시를 제외한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전북의 감소율은 전국 평균을 웃돌았고 도 단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지역의 미래와도 직결된 출산 대책,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두 살 터울 아이 둘을 키우는 최성애 씨.
다음 달 셋째 출산을 앞두고 설렘 만큼 걱정도 큽니다.
출산지원금이나 의료비 혜택을 받더라도 육아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방문 아이돌보미 지원을 받더라도 시간은 부족하고 비용은 부담됩니다.
[최성애/전주시 효자동 : "받을 땐 잠깐 쓸 수 있지만 계속 들어가는 게 많아지는 추세니까, 많이 주신다고 해도 부족함을 느끼죠. 더 많은 돈이 실질적으로 들 때 보조금이 줄기 때문에 학부모 입장에서 아쉬움이…."]
부부의 육아 분담이나 일과 가정의 양립을 둘러싼 인식이 과거보단 나아지고 있지만, 주로 여성에게 강요되는 경력 단절은 출산을 미루거나 꺼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힙니다.
공무원 등을 제외하면 1년짜리 육아휴직을 온전히 쓸 수 있는 직장이 많지 않은 데다 출산휴가나 근로시간 단축조차 여의치 않은 게 현실입니다.
[김희정/완주군 이서면 : "일을 다시 하고 싶어도 아이들이 너무 어리기도 하고,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오래 쉬다 보면 자신감이 떨어지니까 일을 다시 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출산 장려'를 넘어 사회 보육 강화와 삶의 질 향상을 통한 저출산 극복을 선언한 정부.
하지만 지자체가 쏟아 붓는 예산 대부분은 여전히 일시적인 현금성 지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최근 전북 14개 시·군이 쓴 출산 관련 예산 가운데 절반이 넘는 5백73억 원이 출산지원금에 쏠렸는데, 지원금이 크게 늘어난 익산과 군산, 전주 등의 경우, 출생아 감소율이 오히려 높게 나타납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제각각인 출산지원금을 정부나 도가 나서 통합 관리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정재훈/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정주인구를 늘리는 데는 효과가 없는 게 지역에 따른 인구의 풍선효과, 이쪽으로 쏠렸다가 저쪽으로 쏠렸다는 거고. 중앙 정부는 현금, 지방 정부는 서비스 인프라 구축·삶의 공간 구축. 이런 역할 분담이 돼야…."]
출산 환경도 문제입니다.
14개 시·군 가운데 산부인과 분만실이 없는 '분만취약지역'은 무려 6곳에 달하고, 산후조리원 수는 전국 대비 3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15개가 전부입니다.
선호도가 높은 국·공립 어린이집은 전국 대비 1.9 퍼센트 수준인 82개에 불과한 데다, 전북 안에서도 전체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절반 가까이가 전주에 몰려 있는 반면, 무주·진안·장수의 비중은 각각 1퍼센트도 되지 않아 지역별 불균형이 심각합니다.
전남 등에서 운영 중인 공공 산후조리원을 비롯해 출산과 보육을 위한 공공 기반시설 확충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오현숙/전라북도 출산아동팀장 : "국·공립 어린이집과 공동 육아 나눔터를 확충하고, 부모들의 육아 부담을 덜어 드리려고 다함께 돌봄 센터도 매년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습니다."]
각각 나뉘어 있는 청년 정책과 출산 정책을 생애주기에 맞춰 통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결국 일자리와 주거 마련을 둘러싼 청년층의 불안이 결혼과 출산 기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지역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가장 효과적인 인구 정책인 겁니다.
[이혜숙/한일장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아이를 낳는 부모들이 나보다 잘살 것 같지 않다면 출산을 포기한다고 합니다. 출산 정책은 자꾸 뒤쫓아가는 느낌이 있는데, 내 이야기로 와 닿는 정책을 어떻게 촘촘히 할 건가."]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와 청년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만드는 건 지역사회의 미래를 위해 미룰 수 없는 책무입니다.
KBS 뉴스 안승길입니다.
촬영기자:안광석/그래픽:김종훈·박소현·전현정·최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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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인구 백80만 명 붕괴.
지난달 전라북도가 받아 든 인구 성적표입니다.
천9백66년 정점을 찍은 전북 인구, 2천년 2백만 명 아래로 내려온 데 이어, 십 년 넘게 유지되던 백80만 명 선까지 무너진 셈입니다.
전국 기준으로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아지는 '데드 크로스'가 찾아온 건 지난해가 처음인데요.
전북은 이미 4년 전, 이 '데드 크로스'를 맞았습니다.
위기감이 커지면서 지자체마다 출산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요.
지난 6년 사이 14개 시·군의 관련 예산은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한 해 평균 증가율 14 퍼센트, 전체 액수는 천백20억여 원입니다.
항목별로 보면 60 퍼센트가 넘는 7백억 원이 출산 분야에 집중됐고, 산후 관리와 임신, 결혼 등의 순이었습니다.
각종 장려금을 비롯한 현금성 지원 외에도 난임 검사비와 건강관리비 등 사업 수만 백 여든 개에 달하는 데요.
이처럼 늘어난 예산에도 출생아의 감소폭은 좀처럼 줄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이는 세종시를 제외한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전북의 감소율은 전국 평균을 웃돌았고 도 단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지역의 미래와도 직결된 출산 대책,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두 살 터울 아이 둘을 키우는 최성애 씨.
다음 달 셋째 출산을 앞두고 설렘 만큼 걱정도 큽니다.
출산지원금이나 의료비 혜택을 받더라도 육아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방문 아이돌보미 지원을 받더라도 시간은 부족하고 비용은 부담됩니다.
[최성애/전주시 효자동 : "받을 땐 잠깐 쓸 수 있지만 계속 들어가는 게 많아지는 추세니까, 많이 주신다고 해도 부족함을 느끼죠. 더 많은 돈이 실질적으로 들 때 보조금이 줄기 때문에 학부모 입장에서 아쉬움이…."]
부부의 육아 분담이나 일과 가정의 양립을 둘러싼 인식이 과거보단 나아지고 있지만, 주로 여성에게 강요되는 경력 단절은 출산을 미루거나 꺼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힙니다.
공무원 등을 제외하면 1년짜리 육아휴직을 온전히 쓸 수 있는 직장이 많지 않은 데다 출산휴가나 근로시간 단축조차 여의치 않은 게 현실입니다.
[김희정/완주군 이서면 : "일을 다시 하고 싶어도 아이들이 너무 어리기도 하고,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오래 쉬다 보면 자신감이 떨어지니까 일을 다시 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출산 장려'를 넘어 사회 보육 강화와 삶의 질 향상을 통한 저출산 극복을 선언한 정부.
하지만 지자체가 쏟아 붓는 예산 대부분은 여전히 일시적인 현금성 지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최근 전북 14개 시·군이 쓴 출산 관련 예산 가운데 절반이 넘는 5백73억 원이 출산지원금에 쏠렸는데, 지원금이 크게 늘어난 익산과 군산, 전주 등의 경우, 출생아 감소율이 오히려 높게 나타납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제각각인 출산지원금을 정부나 도가 나서 통합 관리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정재훈/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정주인구를 늘리는 데는 효과가 없는 게 지역에 따른 인구의 풍선효과, 이쪽으로 쏠렸다가 저쪽으로 쏠렸다는 거고. 중앙 정부는 현금, 지방 정부는 서비스 인프라 구축·삶의 공간 구축. 이런 역할 분담이 돼야…."]
출산 환경도 문제입니다.
14개 시·군 가운데 산부인과 분만실이 없는 '분만취약지역'은 무려 6곳에 달하고, 산후조리원 수는 전국 대비 3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15개가 전부입니다.
선호도가 높은 국·공립 어린이집은 전국 대비 1.9 퍼센트 수준인 82개에 불과한 데다, 전북 안에서도 전체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절반 가까이가 전주에 몰려 있는 반면, 무주·진안·장수의 비중은 각각 1퍼센트도 되지 않아 지역별 불균형이 심각합니다.
전남 등에서 운영 중인 공공 산후조리원을 비롯해 출산과 보육을 위한 공공 기반시설 확충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오현숙/전라북도 출산아동팀장 : "국·공립 어린이집과 공동 육아 나눔터를 확충하고, 부모들의 육아 부담을 덜어 드리려고 다함께 돌봄 센터도 매년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습니다."]
각각 나뉘어 있는 청년 정책과 출산 정책을 생애주기에 맞춰 통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결국 일자리와 주거 마련을 둘러싼 청년층의 불안이 결혼과 출산 기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지역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가장 효과적인 인구 정책인 겁니다.
[이혜숙/한일장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아이를 낳는 부모들이 나보다 잘살 것 같지 않다면 출산을 포기한다고 합니다. 출산 정책은 자꾸 뒤쫓아가는 느낌이 있는데, 내 이야기로 와 닿는 정책을 어떻게 촘촘히 할 건가."]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와 청년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만드는 건 지역사회의 미래를 위해 미룰 수 없는 책무입니다.
KBS 뉴스 안승길입니다.
촬영기자:안광석/그래픽:김종훈·박소현·전현정·최희태
인구 백80만 명 붕괴.
지난달 전라북도가 받아 든 인구 성적표입니다.
천9백66년 정점을 찍은 전북 인구, 2천년 2백만 명 아래로 내려온 데 이어, 십 년 넘게 유지되던 백80만 명 선까지 무너진 셈입니다.
전국 기준으로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아지는 '데드 크로스'가 찾아온 건 지난해가 처음인데요.
전북은 이미 4년 전, 이 '데드 크로스'를 맞았습니다.
위기감이 커지면서 지자체마다 출산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요.
지난 6년 사이 14개 시·군의 관련 예산은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한 해 평균 증가율 14 퍼센트, 전체 액수는 천백20억여 원입니다.
항목별로 보면 60 퍼센트가 넘는 7백억 원이 출산 분야에 집중됐고, 산후 관리와 임신, 결혼 등의 순이었습니다.
각종 장려금을 비롯한 현금성 지원 외에도 난임 검사비와 건강관리비 등 사업 수만 백 여든 개에 달하는 데요.
이처럼 늘어난 예산에도 출생아의 감소폭은 좀처럼 줄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이는 세종시를 제외한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전북의 감소율은 전국 평균을 웃돌았고 도 단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지역의 미래와도 직결된 출산 대책,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두 살 터울 아이 둘을 키우는 최성애 씨.
다음 달 셋째 출산을 앞두고 설렘 만큼 걱정도 큽니다.
출산지원금이나 의료비 혜택을 받더라도 육아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방문 아이돌보미 지원을 받더라도 시간은 부족하고 비용은 부담됩니다.
[최성애/전주시 효자동 : "받을 땐 잠깐 쓸 수 있지만 계속 들어가는 게 많아지는 추세니까, 많이 주신다고 해도 부족함을 느끼죠. 더 많은 돈이 실질적으로 들 때 보조금이 줄기 때문에 학부모 입장에서 아쉬움이…."]
부부의 육아 분담이나 일과 가정의 양립을 둘러싼 인식이 과거보단 나아지고 있지만, 주로 여성에게 강요되는 경력 단절은 출산을 미루거나 꺼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힙니다.
공무원 등을 제외하면 1년짜리 육아휴직을 온전히 쓸 수 있는 직장이 많지 않은 데다 출산휴가나 근로시간 단축조차 여의치 않은 게 현실입니다.
[김희정/완주군 이서면 : "일을 다시 하고 싶어도 아이들이 너무 어리기도 하고,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오래 쉬다 보면 자신감이 떨어지니까 일을 다시 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출산 장려'를 넘어 사회 보육 강화와 삶의 질 향상을 통한 저출산 극복을 선언한 정부.
하지만 지자체가 쏟아 붓는 예산 대부분은 여전히 일시적인 현금성 지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최근 전북 14개 시·군이 쓴 출산 관련 예산 가운데 절반이 넘는 5백73억 원이 출산지원금에 쏠렸는데, 지원금이 크게 늘어난 익산과 군산, 전주 등의 경우, 출생아 감소율이 오히려 높게 나타납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제각각인 출산지원금을 정부나 도가 나서 통합 관리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정재훈/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정주인구를 늘리는 데는 효과가 없는 게 지역에 따른 인구의 풍선효과, 이쪽으로 쏠렸다가 저쪽으로 쏠렸다는 거고. 중앙 정부는 현금, 지방 정부는 서비스 인프라 구축·삶의 공간 구축. 이런 역할 분담이 돼야…."]
출산 환경도 문제입니다.
14개 시·군 가운데 산부인과 분만실이 없는 '분만취약지역'은 무려 6곳에 달하고, 산후조리원 수는 전국 대비 3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15개가 전부입니다.
선호도가 높은 국·공립 어린이집은 전국 대비 1.9 퍼센트 수준인 82개에 불과한 데다, 전북 안에서도 전체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절반 가까이가 전주에 몰려 있는 반면, 무주·진안·장수의 비중은 각각 1퍼센트도 되지 않아 지역별 불균형이 심각합니다.
전남 등에서 운영 중인 공공 산후조리원을 비롯해 출산과 보육을 위한 공공 기반시설 확충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오현숙/전라북도 출산아동팀장 : "국·공립 어린이집과 공동 육아 나눔터를 확충하고, 부모들의 육아 부담을 덜어 드리려고 다함께 돌봄 센터도 매년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습니다."]
각각 나뉘어 있는 청년 정책과 출산 정책을 생애주기에 맞춰 통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결국 일자리와 주거 마련을 둘러싼 청년층의 불안이 결혼과 출산 기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지역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가장 효과적인 인구 정책인 겁니다.
[이혜숙/한일장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아이를 낳는 부모들이 나보다 잘살 것 같지 않다면 출산을 포기한다고 합니다. 출산 정책은 자꾸 뒤쫓아가는 느낌이 있는데, 내 이야기로 와 닿는 정책을 어떻게 촘촘히 할 건가."]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와 청년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만드는 건 지역사회의 미래를 위해 미룰 수 없는 책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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