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2002년의 별 유상철…이젠 하늘의 별

입력 2021.06.08 (18:02) 수정 2021.06.0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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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ET 콕입니다.

2019년 10월, K리그 인천유나이티드가 결승골을 터트리며 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벤치 여기 저기 눈물을 쏟는 선수들이 보입니다.

이천수 당시 전력강화실장도 연신 눈가를 훔칩니다.

기쁨의 눈물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이상한 분위기.

유상철 감독의 췌장암 투병 사실이 알려진 건 바로 이날이었습니다.

[유상철/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 "그때 솔직히 표정 관리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내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기에도 너무 나한테는 버거웠던 거고..."]

투병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낸 그를 향해 관중석 곳곳엔 쾌유를 비는 응원 문구가 내걸렸습니다.

13차례의 항암 치료 끝에 지난해 중순부터는 방송에 출연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정혁/인천유나이티드 어린이 팬/2019년 : "유상철 감독님 힘내세요. 아프지 마세요."]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올해 1월 뇌 쪽으로 암세포가 전이되면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고, 결국 투병 1년 8개월여 만에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에는 이천수, 황선홍 등 2002년 한일 월드컵 신화 주역들의 슬픈 걸음이 이어졌습니다.

유 감독은 '골키퍼만 빼고 전 포지션이 가능하다'는 멀티플레이어로 꼽혔습니다.

실제로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로 모두 K리그 베스트11에 올랐던 진기록의 주인공입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전 투혼의 동점골.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에선 승리의 쐐기를 박는 통쾌한 중거리슛을 선사했습니다.

["슛 골! 두 번째 골! 유상철입니다! 유상철 선수예요!"]

그의 축구인생 최고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건 2001년 히딩크호 시절입니다.

멕시코와의 전반전 경기 코뼈가 부러졌는데도 경기 종료 직전 헤더로 결승골까지 넣어 팀 승리를 이끌던 날.

훗날 히딩크 감독은 자서전에서 유상철을 교체하려했지만 고집을 막을 수 없었다며 가장 말을 안 들었던 선수였다고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2006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엔 KBS '날아라 슛돌이' 팀의 감독을 맡으며 재능 기부에 나섰습니다.

이때 지도한 선수가 바로 이강인입니다.

[유상철 : "강인이가 주장을 한다, 알았지? 박수!"]

이강인이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유 감독의 추천으로 2011년 스페인 발렌시아가로 유학을 떠난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강인은 오늘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스승 유상철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마지막 인사를 남겼습니다.

"제 축구 인생의 첫 스승이신 유상철 감독님, 은혜에 보답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셔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 계신 곳에서 꼭 지켜봐 주세요."

지금까지 ET 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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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08 18:02:05
    • 수정2021-06-08 18:15:13
    통합뉴스룸ET
이어서 ET 콕입니다.

2019년 10월, K리그 인천유나이티드가 결승골을 터트리며 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벤치 여기 저기 눈물을 쏟는 선수들이 보입니다.

이천수 당시 전력강화실장도 연신 눈가를 훔칩니다.

기쁨의 눈물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이상한 분위기.

유상철 감독의 췌장암 투병 사실이 알려진 건 바로 이날이었습니다.

[유상철/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 "그때 솔직히 표정 관리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내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기에도 너무 나한테는 버거웠던 거고..."]

투병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낸 그를 향해 관중석 곳곳엔 쾌유를 비는 응원 문구가 내걸렸습니다.

13차례의 항암 치료 끝에 지난해 중순부터는 방송에 출연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정혁/인천유나이티드 어린이 팬/2019년 : "유상철 감독님 힘내세요. 아프지 마세요."]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올해 1월 뇌 쪽으로 암세포가 전이되면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고, 결국 투병 1년 8개월여 만에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에는 이천수, 황선홍 등 2002년 한일 월드컵 신화 주역들의 슬픈 걸음이 이어졌습니다.

유 감독은 '골키퍼만 빼고 전 포지션이 가능하다'는 멀티플레이어로 꼽혔습니다.

실제로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로 모두 K리그 베스트11에 올랐던 진기록의 주인공입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전 투혼의 동점골.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에선 승리의 쐐기를 박는 통쾌한 중거리슛을 선사했습니다.

["슛 골! 두 번째 골! 유상철입니다! 유상철 선수예요!"]

그의 축구인생 최고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건 2001년 히딩크호 시절입니다.

멕시코와의 전반전 경기 코뼈가 부러졌는데도 경기 종료 직전 헤더로 결승골까지 넣어 팀 승리를 이끌던 날.

훗날 히딩크 감독은 자서전에서 유상철을 교체하려했지만 고집을 막을 수 없었다며 가장 말을 안 들었던 선수였다고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2006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엔 KBS '날아라 슛돌이' 팀의 감독을 맡으며 재능 기부에 나섰습니다.

이때 지도한 선수가 바로 이강인입니다.

[유상철 : "강인이가 주장을 한다, 알았지? 박수!"]

이강인이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유 감독의 추천으로 2011년 스페인 발렌시아가로 유학을 떠난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강인은 오늘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스승 유상철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마지막 인사를 남겼습니다.

"제 축구 인생의 첫 스승이신 유상철 감독님, 은혜에 보답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셔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 계신 곳에서 꼭 지켜봐 주세요."

지금까지 ET 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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