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참전 노병 모시는 北…내부 결속 의도?

입력 2021.08.07 (08:11) 수정 2021.08.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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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최근 북한에선 6.25 전쟁에 참전했던 노병들이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마스크를 벗은 채 온천욕을 즐기고 다과를 나눠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됐습니다.

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국노병대회 참가자들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모습도 조선중앙TV에 공개됐는데요.

네. 북한 최고지도자의 이런 모습은 이례적인 일인데요.

참전 노병들을 깍듯이 모시는 모습을 연출해서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다, 이런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역대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 노병들을 앞세운 선전선동이 과연 결실을 볼 수 있을까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해 봤습니다.

[리포트]

지난달 27일, 정전협정 기념일을 맞아 개최된 북한 전국노병대회.

6.25 전쟁에 참전했던 북한군 노병들이 평양에 대거 집결했다.

최고지도자 등장을 알리는 연주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김 위원장은 대회장 길목까지 나온 노병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형형색색의 불꽃이 터지면서 대회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북한 당국은 일부 참전 노병들을 김 위원장 양옆에 앉혀 이들이 이번 대회의 주인공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시작된 북한군의 기습 공격.

3년 넘게 계속된 전쟁은 온 국토를 초토화시켰고, 수백만 명의 인명 피해를 가져왔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마침내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한반도의 총성도 멈췄다.

[마크 웨인 클라크/당시 유엔군 총사령관 : "우리는 총격을 멈췄습니다. 그것은 군인들과 가족들에게 엄청난 의미입니다. 한국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은 미국과 남한의 북침으로 6·25전쟁이 시작됐으며, 자신들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전협정일에 맞춰 열린 전국노병대회도 단순한 행사에 그치지 않았다.

노병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한 곳은 평안남도 양덕군에 위치한 양덕온천 문화휴양지.

양덕온천은 김 위원장의 역점 사업 중 하나로 코로나19와 국경봉쇄 상황 속에서도 올해 2월 운영을 재개했다.

노병들 모두 마스크를 벗고 온천욕을 즐겼고, 삶은 계란과 다과를 나눠 먹는 모습도 공개됐다.

[6.25 전쟁 참전 북한군 노병 : "행복하고 정말 긍지가 갑니다. 우리 노병들이 원수를 쳐부수는 싸움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충성으로 모시고 미국놈들 때려 부순 그 긍지를 더 느끼게 됩니다."]

코로나19 특급 방역과 폭염이 기세를 떨치는 상황에서도 행사를 강행한 북한. 여기엔 북한에 닥친 위기를 노병대회를 통해 돌파해 보겠다는 북한 당국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과 동시에 노병들을 정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집권 이듬해인 2012년, 18년 만에 노병대회를 부활시켰고, 대회 때마다 직접 참석해 노병들을 깍듯하게 예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김 위원장이 극진히 떠받드는 노병은 여자 빨치산으로 대표되는 황순희다.

김일성 주석과 항일투쟁을 같이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황순희의 남편 류경수는 6·25 전쟁 당시 서울을 처음 점령한 북한 사단장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황순희를 노병대회 때마다 늘 자신의 옆에 앉혔고, 자신의 전용 차량으로 배웅하기까지 했다.

[北 기록영화 ‘빛나는 삶의 품’ : "대회 도중 몸이 불편해하는 황순희 동지를 품에 꼭 안으시고 그의 심고를 들어 주시던 역사에 있어 본 적 없는, 눈물 없이 우러를 수 없는 격정의 이 화폭..."]

지난해 황순희가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김 위원장이 장례식장까지 찾았을 정도였다. 당시에도 북한 당국은 황순희의 충성심을 부각시켰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에 비해서 정치적 정통성과 권위가 상당히 취약합니다. 노병들의 과거 역사의 권위를 차용하는 이미지 정치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국노병대회에서 참전 노병들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힌 김정은 위원장. 북한 당국이 직면한 어려움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7월 27일 :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사상 초유의 세계적인 보건 위기와 장기적인 봉쇄로 인한 곤란과 애로는 전쟁 상황에 못지않은 시련의 고비로 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시련의 고비는 사상 최악의 식량난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7월 27일 : "노병 동지들이 건강한 몸으로 앉아만 계셔도 우리 당과 인민에게는 무한한 힘이 되고 우리 혁명에 커다란 고무로 됩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노병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극복하자는 것이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어려운 환경에서 노병들을 활용하는 일종의 정치 마케팅, 정치 이벤트가 여러 군데서 발견되고 있고요. 과거 어려움을 극복했던 시기의 경험을 활용해서 북한 인민들에게 정치적인 선전선동 사업을 하는 걸로 추정되고요."]

하지만 북한당국과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처럼 이번 노병대회가 내부 결속의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우선 김정은 위원장 집권 10년간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노병들에 대한 실질적인 혜택도 크게 줄어든 게 사실이다.

[김순영/2018년 탈북 : "지금은 솔직히 말해서 가정도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고. 없으니 (노병) 우대를 해줄 수 없죠. 국가가 못사니까 우대를 어떻게 하겠어요. 지금 상태는. 내가 남한에 올 때는 그랬어요."]

최근 북한 조선중앙TV 는 뜨거운 태양 아래 각종 경제 선동에 나선 참전 노병들 모습을 자주 노출시키고 있다.

[조선중앙TV/6월 5일 : "노병들까지 다채로운 예술 소품들을 준비해서 나와서 건설장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고령의 참전 노병들이 당국의 지침에 따라 선동 현장에 동원되고 있다.

또 이들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6.25 전쟁 시기 김일성 주석의 왜곡된 업적을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 또한 갈수록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

[영화 ‘태양 아래’ 中 : "수령님께서 저 전선에서 미국놈과 싸움을 하면서..."]

이 영화에서도 참전 노병이 어린 학생들에게 전쟁 일화를 들려주지만, 학생들은 금방 눈을 비비고 지루해 한다.

결국, 밀려드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눈을 감는 모습까지 포착된다.

게다가 장마당을 통해 한류와 같은 외부 문화를 접한 북한의 젊은 세대들에게 노병들을 통한 주입식 사상교육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게 탈북민의 증언이다.

[김순영/2018년 탈북 : "우리보다 완전히 깨었다고 봐야죠. 남조선이 오히려 잘 산단다. 우린 거기다 대지도 못 한단다 이런 거 다 알거든요. 그러니까 거기 사람들도 곧이듣지도 않습니다."]

자신도 전쟁 못지않은 시련의 시기라고 고백한 김정은 위원장.

참전 노병을 내세운 선전 선동을 넘어 경제위기 돌파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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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참전 노병 모시는 北…내부 결속 의도?
    • 입력 2021-08-07 08:10:59
    • 수정2021-08-07 08: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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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최근 북한에선 6.25 전쟁에 참전했던 노병들이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마스크를 벗은 채 온천욕을 즐기고 다과를 나눠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됐습니다.

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국노병대회 참가자들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모습도 조선중앙TV에 공개됐는데요.

네. 북한 최고지도자의 이런 모습은 이례적인 일인데요.

참전 노병들을 깍듯이 모시는 모습을 연출해서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다, 이런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역대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 노병들을 앞세운 선전선동이 과연 결실을 볼 수 있을까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해 봤습니다.

[리포트]

지난달 27일, 정전협정 기념일을 맞아 개최된 북한 전국노병대회.

6.25 전쟁에 참전했던 북한군 노병들이 평양에 대거 집결했다.

최고지도자 등장을 알리는 연주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김 위원장은 대회장 길목까지 나온 노병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형형색색의 불꽃이 터지면서 대회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북한 당국은 일부 참전 노병들을 김 위원장 양옆에 앉혀 이들이 이번 대회의 주인공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시작된 북한군의 기습 공격.

3년 넘게 계속된 전쟁은 온 국토를 초토화시켰고, 수백만 명의 인명 피해를 가져왔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마침내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한반도의 총성도 멈췄다.

[마크 웨인 클라크/당시 유엔군 총사령관 : "우리는 총격을 멈췄습니다. 그것은 군인들과 가족들에게 엄청난 의미입니다. 한국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은 미국과 남한의 북침으로 6·25전쟁이 시작됐으며, 자신들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전협정일에 맞춰 열린 전국노병대회도 단순한 행사에 그치지 않았다.

노병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한 곳은 평안남도 양덕군에 위치한 양덕온천 문화휴양지.

양덕온천은 김 위원장의 역점 사업 중 하나로 코로나19와 국경봉쇄 상황 속에서도 올해 2월 운영을 재개했다.

노병들 모두 마스크를 벗고 온천욕을 즐겼고, 삶은 계란과 다과를 나눠 먹는 모습도 공개됐다.

[6.25 전쟁 참전 북한군 노병 : "행복하고 정말 긍지가 갑니다. 우리 노병들이 원수를 쳐부수는 싸움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충성으로 모시고 미국놈들 때려 부순 그 긍지를 더 느끼게 됩니다."]

코로나19 특급 방역과 폭염이 기세를 떨치는 상황에서도 행사를 강행한 북한. 여기엔 북한에 닥친 위기를 노병대회를 통해 돌파해 보겠다는 북한 당국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과 동시에 노병들을 정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집권 이듬해인 2012년, 18년 만에 노병대회를 부활시켰고, 대회 때마다 직접 참석해 노병들을 깍듯하게 예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김 위원장이 극진히 떠받드는 노병은 여자 빨치산으로 대표되는 황순희다.

김일성 주석과 항일투쟁을 같이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황순희의 남편 류경수는 6·25 전쟁 당시 서울을 처음 점령한 북한 사단장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황순희를 노병대회 때마다 늘 자신의 옆에 앉혔고, 자신의 전용 차량으로 배웅하기까지 했다.

[北 기록영화 ‘빛나는 삶의 품’ : "대회 도중 몸이 불편해하는 황순희 동지를 품에 꼭 안으시고 그의 심고를 들어 주시던 역사에 있어 본 적 없는, 눈물 없이 우러를 수 없는 격정의 이 화폭..."]

지난해 황순희가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김 위원장이 장례식장까지 찾았을 정도였다. 당시에도 북한 당국은 황순희의 충성심을 부각시켰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에 비해서 정치적 정통성과 권위가 상당히 취약합니다. 노병들의 과거 역사의 권위를 차용하는 이미지 정치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국노병대회에서 참전 노병들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힌 김정은 위원장. 북한 당국이 직면한 어려움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7월 27일 :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사상 초유의 세계적인 보건 위기와 장기적인 봉쇄로 인한 곤란과 애로는 전쟁 상황에 못지않은 시련의 고비로 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시련의 고비는 사상 최악의 식량난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7월 27일 : "노병 동지들이 건강한 몸으로 앉아만 계셔도 우리 당과 인민에게는 무한한 힘이 되고 우리 혁명에 커다란 고무로 됩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노병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극복하자는 것이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어려운 환경에서 노병들을 활용하는 일종의 정치 마케팅, 정치 이벤트가 여러 군데서 발견되고 있고요. 과거 어려움을 극복했던 시기의 경험을 활용해서 북한 인민들에게 정치적인 선전선동 사업을 하는 걸로 추정되고요."]

하지만 북한당국과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처럼 이번 노병대회가 내부 결속의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우선 김정은 위원장 집권 10년간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노병들에 대한 실질적인 혜택도 크게 줄어든 게 사실이다.

[김순영/2018년 탈북 : "지금은 솔직히 말해서 가정도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고. 없으니 (노병) 우대를 해줄 수 없죠. 국가가 못사니까 우대를 어떻게 하겠어요. 지금 상태는. 내가 남한에 올 때는 그랬어요."]

최근 북한 조선중앙TV 는 뜨거운 태양 아래 각종 경제 선동에 나선 참전 노병들 모습을 자주 노출시키고 있다.

[조선중앙TV/6월 5일 : "노병들까지 다채로운 예술 소품들을 준비해서 나와서 건설장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고령의 참전 노병들이 당국의 지침에 따라 선동 현장에 동원되고 있다.

또 이들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6.25 전쟁 시기 김일성 주석의 왜곡된 업적을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 또한 갈수록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

[영화 ‘태양 아래’ 中 : "수령님께서 저 전선에서 미국놈과 싸움을 하면서..."]

이 영화에서도 참전 노병이 어린 학생들에게 전쟁 일화를 들려주지만, 학생들은 금방 눈을 비비고 지루해 한다.

결국, 밀려드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눈을 감는 모습까지 포착된다.

게다가 장마당을 통해 한류와 같은 외부 문화를 접한 북한의 젊은 세대들에게 노병들을 통한 주입식 사상교육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게 탈북민의 증언이다.

[김순영/2018년 탈북 : "우리보다 완전히 깨었다고 봐야죠. 남조선이 오히려 잘 산단다. 우린 거기다 대지도 못 한단다 이런 거 다 알거든요. 그러니까 거기 사람들도 곧이듣지도 않습니다."]

자신도 전쟁 못지않은 시련의 시기라고 고백한 김정은 위원장.

참전 노병을 내세운 선전 선동을 넘어 경제위기 돌파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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