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법 30년]① 이어도의 꿈…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현장

입력 2021.09.06 (19:22) 수정 2021.09.06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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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021년 올해는 제주도개발특별법이 만들어진 지 꼭 30년이 됩니다.

지금도 특별자치도특별법이란 이름으로 시행 중인 제주특별법은 제주지역의 헌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동안 제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쳐왔죠.

KBS제주방송총국은 개국 71주년을 맞아 제주특별법 30년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 '이어도의 꿈'을 제작했습니다.

모레 방송에 앞서 세 차례에 걸쳐 기획뉴스를 준비했는데요.

첫 순서로 30년 전 뜨거웠던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김익태 기자입니다.

[리포트]

[1988년 4월 16일 KBS9시뉴스 : "오늘 제주도청을 순시한 노태우 대통령은 이창수 지사로부터 도정을 보고받고 제주도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제주도개발특별법 논의는 1988년 4월 노태우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1990년 8월 제민일보에서 비공개 법안을 기사화하면서 도민사회의 저항을 불러왔습니다.

입법 절차가 불투명한 데다 내용 역시 도민 복지와 연결시키고 주민 참여를 통해 개발 이익을 보장하겠다는 대통령 약속과 다르다는 이유에 섭니다.

[오홍식/당시 제주도 농민단체협의회장(1991년) : "이 법 시안의 14조 1항은 개발사업 시행자가 국토이용관리법상 용도지역의 행위제한을 받지 않도록 돼 있습니다. 이것은 곧 재벌들에게 커다란 특혜를 주는 조항으로서 이 무분별한 개발을 초래할 수가 있습니다."]

특별법 제정 반대 운동은 1991년 11월 25살 청년 양용찬의 분신으로 분수령을 맞게 됩니다.

[고 김영란/전 제주여민회 대표(2001년) : "제주도 개발문제도 수십 년 동안 얘기를 해오고 있지만, 양 열사가 스스로 본인의 행동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각성시키고자 했던 그런 부분들이 가장 많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주특별법은 전국적 이슈로 확산됐고 13대 국회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결국, 민자당은 국회 파행을 겪으면서 1991년 12월 날치기로 통과시켰습니다.

[이협/13대 국회의원(당시 평민당, 1991년) : "2분 만에 통과시켰어. 귀신들이 와서 회의한 것이지, 이게. 국회의원 인간들이 와서 회의한 것이라 볼 수 없어요. 특히 제주개발법은 제주도민들이 눈물로 이 법을 저지해달라고 호소한 거야."]

1년 4개월 동안 만 8천여 명이 참가한 시위와 점거농성으로 초안에 담겼던 토지수용 조항은 삭제됐고, 1차 산업 진흥과 지하수 보호관리, 경관영향평가 조항 등이 새로 담겼습니다.

[김택진/양용찬열사 추모사업회 전 공동대표 : "강제수용 조항만이라도 삭제됐잖습니까. 그로 인해서 그나마 지금까지 개발이 조금이라도 덜 왔다고 더디게 오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시행에 들어간 제주도개발특별법은 지역개발계획의 수립과 집행에 관한 국내 첫 법률로 역사에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이 법은 이후 2002년 국제자유도시특별법, 2006년 특별자치도특별법으로 모습을 바꿔가며 지금도 제주 사회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익태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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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특별법 30년]① 이어도의 꿈…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현장
    • 입력 2021-09-06 19:22:37
    • 수정2021-09-06 22:08:09
    뉴스7(제주)
[앵커]

2021년 올해는 제주도개발특별법이 만들어진 지 꼭 30년이 됩니다.

지금도 특별자치도특별법이란 이름으로 시행 중인 제주특별법은 제주지역의 헌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동안 제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쳐왔죠.

KBS제주방송총국은 개국 71주년을 맞아 제주특별법 30년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 '이어도의 꿈'을 제작했습니다.

모레 방송에 앞서 세 차례에 걸쳐 기획뉴스를 준비했는데요.

첫 순서로 30년 전 뜨거웠던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김익태 기자입니다.

[리포트]

[1988년 4월 16일 KBS9시뉴스 : "오늘 제주도청을 순시한 노태우 대통령은 이창수 지사로부터 도정을 보고받고 제주도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제주도개발특별법 논의는 1988년 4월 노태우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1990년 8월 제민일보에서 비공개 법안을 기사화하면서 도민사회의 저항을 불러왔습니다.

입법 절차가 불투명한 데다 내용 역시 도민 복지와 연결시키고 주민 참여를 통해 개발 이익을 보장하겠다는 대통령 약속과 다르다는 이유에 섭니다.

[오홍식/당시 제주도 농민단체협의회장(1991년) : "이 법 시안의 14조 1항은 개발사업 시행자가 국토이용관리법상 용도지역의 행위제한을 받지 않도록 돼 있습니다. 이것은 곧 재벌들에게 커다란 특혜를 주는 조항으로서 이 무분별한 개발을 초래할 수가 있습니다."]

특별법 제정 반대 운동은 1991년 11월 25살 청년 양용찬의 분신으로 분수령을 맞게 됩니다.

[고 김영란/전 제주여민회 대표(2001년) : "제주도 개발문제도 수십 년 동안 얘기를 해오고 있지만, 양 열사가 스스로 본인의 행동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각성시키고자 했던 그런 부분들이 가장 많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주특별법은 전국적 이슈로 확산됐고 13대 국회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결국, 민자당은 국회 파행을 겪으면서 1991년 12월 날치기로 통과시켰습니다.

[이협/13대 국회의원(당시 평민당, 1991년) : "2분 만에 통과시켰어. 귀신들이 와서 회의한 것이지, 이게. 국회의원 인간들이 와서 회의한 것이라 볼 수 없어요. 특히 제주개발법은 제주도민들이 눈물로 이 법을 저지해달라고 호소한 거야."]

1년 4개월 동안 만 8천여 명이 참가한 시위와 점거농성으로 초안에 담겼던 토지수용 조항은 삭제됐고, 1차 산업 진흥과 지하수 보호관리, 경관영향평가 조항 등이 새로 담겼습니다.

[김택진/양용찬열사 추모사업회 전 공동대표 : "강제수용 조항만이라도 삭제됐잖습니까. 그로 인해서 그나마 지금까지 개발이 조금이라도 덜 왔다고 더디게 오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시행에 들어간 제주도개발특별법은 지역개발계획의 수립과 집행에 관한 국내 첫 법률로 역사에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이 법은 이후 2002년 국제자유도시특별법, 2006년 특별자치도특별법으로 모습을 바꿔가며 지금도 제주 사회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익태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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