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팀장] 만취 사고 내고 윤창호법 무죄 받은 50대, 항소심서는 유죄…이유는?

입력 2021.10.05 (19:47) 수정 2021.10.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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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사고의 뒷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보는 사건팀장 시간입니다.

성용희 사건팀장, 오늘은 어떤 사건입니까?

[기자]

윤창호법, 정확히는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숨지게 하거나 다치게 한 경우 처벌을 강화하도록 개정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죠.

이제는 꾀나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법률입니다.

지난 2018년 9월 부산에서 발생한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20대 청년 윤창호 씨가 숨진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는데요.

음주 운전자가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법정형이 '1년 이상 유기징역'에서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바뀌는 등 처벌이 강화됐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대전에서 음주운전 사고로 20대 청년이 숨진 사건이 있었는데요.

오늘은 이 사건에 윤창호법 적용 여부를 두고 1심과 2심에서 엇갈린 법원의 판단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앵커]

먼저 어떤 사건인지, 자세한 경위부터 알아볼까요?

[기자]

네, 지난해 9월 8일 새벽 대전 동구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51살 김 모 씨는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신 뒤 면허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12%의 만취 상태로 승합차를 몰았습니다.

그러다 한 교차로에서 신호를 위반해 좌회전을 했는데 마주 오던 오토바이를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오토바이를 몰던 23살 남성이 크게 다쳤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3시간 만에 응급실에서 숨졌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은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 즉 윤창호법 위반과 음주운전 혐의로 김 씨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앵커]

혈중알코올농도 0.12%의 만취상태였고, 신호 위반까지 하다 사고를 냈다.

상식적으로는 윤창호법 위반에 해당될 것 같은데 1심에서는 어떻게 됐습니까?

[기자]

네, 윤창호법 적용이 안됐습니다.

이 법의 적용 기준 때문인데요.

윤창호법은 음주운전죄와 달리 혈중알코올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한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운전자가 술을 마신 것 때문에 실제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 있었느냐, 이게 핵심인데요.

그런데 1심 재판부가 여러 증거를 검토한 결과 김 씨가 술 때문에 사고를 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런 판단을 내리고 윤창호법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앵커]

1심 재판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판단했는지가 궁금한데요?

[기자]

네, 먼저 수사 보고서에 김 씨의 언행 상태가 부정확하고 비틀거리는 데다 혈색도 붉었다고 쓰여 있었는데, 이것만으로는 술에 취해 주의력이나 반응속도가 떨어진 상태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김 씨의 혈중알코올농도 0.12% 역시 도로교통법에서 수치에 따라 3가지로 구분한 처벌 단계에서 중간에 해당하는 것도 이유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음주 측정 당시 촬영된 김 씨의 사진을 보면 눈빛이 비교적 선명하고 사고 다음 날 이뤄진 조사에서도 사고 경위를 비교적 상세히 기억하는 점을 참작했는데요.

1심 재판부는 윤창호법 위반 대신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죄와 음주운전죄를 적용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앵커]

2심에서 판단이 달라졌다고 했으니, 검찰이 항소를 한 거죠?

[기자]

네, 검찰과 김 씨 모두 항소했습니다.

검찰은 윤창호법 위반이 적용되지 않은 데 문제가 있다는 이유였고, 김 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따라 항소심 재판부가 사건을 다시 살폈는데요.

1심과 반대로 윤창호법 위반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원심 판결이 법리를 잘못 따진 점이 있고 김 씨가 음주 때문에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였다고 봐야 한다는 건데요.

일단 김 씨가 사고 직전 술집에서 지인 2명과 소주 5명을 나눠 마신 뒤 자리를 옮겨 맥주 3병을 더 나눠 마셨고 혈중알코올농도가 0.12%로 측정된 점을 보면 마신 술의 양이 적지 않다고 봤습니다.

또 경찰관이 법정에서 당시 김 씨가 술에 취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고 진술한 점, 특히 사고 직후 다른 사람 말을 듣고서야 오토바이를 들이받은 사실을 인식하는 등 주의력과 판단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던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앵커]

처벌이 강화된 법이 적용됐으니 형량이 더 늘어났겠네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최근 김 씨에게 1심에서 적용되지 않았던 윤창호법 위반을 유죄로 인정해 선고를 내렸는데요.

사고 당시 피해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제한 속도인 50km를 훌쩍 넘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던 점과 김 씨가 피해 보상을 위해 자기부담금 1억여 원을 미리 보험사에 낸 점 등은 참작됐습니다.

그러나 김 씨가 앞서 3차례나 음주운전으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던 점, 함께 술을 마신 일행이 대리운전을 이용하라고 제안했지만 그대로 운전대를 잡은 점, 또 피해자 유족들이 여전히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점 등을 보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는데요.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김 씨에게 원심보다 형이 1년 늘어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현재 김 씨가 상고해 사건은 대법원에서 다뤄지게 됐는데요.

음주운전에 대해 엄벌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윤창호법도 정밀한 적용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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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05 19:47:10
    • 수정2021-10-05 20:07:36
    뉴스7(대전)
[앵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사고의 뒷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보는 사건팀장 시간입니다.

성용희 사건팀장, 오늘은 어떤 사건입니까?

[기자]

윤창호법, 정확히는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숨지게 하거나 다치게 한 경우 처벌을 강화하도록 개정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죠.

이제는 꾀나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법률입니다.

지난 2018년 9월 부산에서 발생한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20대 청년 윤창호 씨가 숨진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는데요.

음주 운전자가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법정형이 '1년 이상 유기징역'에서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바뀌는 등 처벌이 강화됐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대전에서 음주운전 사고로 20대 청년이 숨진 사건이 있었는데요.

오늘은 이 사건에 윤창호법 적용 여부를 두고 1심과 2심에서 엇갈린 법원의 판단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앵커]

먼저 어떤 사건인지, 자세한 경위부터 알아볼까요?

[기자]

네, 지난해 9월 8일 새벽 대전 동구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51살 김 모 씨는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신 뒤 면허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12%의 만취 상태로 승합차를 몰았습니다.

그러다 한 교차로에서 신호를 위반해 좌회전을 했는데 마주 오던 오토바이를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오토바이를 몰던 23살 남성이 크게 다쳤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3시간 만에 응급실에서 숨졌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은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 즉 윤창호법 위반과 음주운전 혐의로 김 씨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앵커]

혈중알코올농도 0.12%의 만취상태였고, 신호 위반까지 하다 사고를 냈다.

상식적으로는 윤창호법 위반에 해당될 것 같은데 1심에서는 어떻게 됐습니까?

[기자]

네, 윤창호법 적용이 안됐습니다.

이 법의 적용 기준 때문인데요.

윤창호법은 음주운전죄와 달리 혈중알코올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한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운전자가 술을 마신 것 때문에 실제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 있었느냐, 이게 핵심인데요.

그런데 1심 재판부가 여러 증거를 검토한 결과 김 씨가 술 때문에 사고를 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런 판단을 내리고 윤창호법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앵커]

1심 재판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판단했는지가 궁금한데요?

[기자]

네, 먼저 수사 보고서에 김 씨의 언행 상태가 부정확하고 비틀거리는 데다 혈색도 붉었다고 쓰여 있었는데, 이것만으로는 술에 취해 주의력이나 반응속도가 떨어진 상태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김 씨의 혈중알코올농도 0.12% 역시 도로교통법에서 수치에 따라 3가지로 구분한 처벌 단계에서 중간에 해당하는 것도 이유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음주 측정 당시 촬영된 김 씨의 사진을 보면 눈빛이 비교적 선명하고 사고 다음 날 이뤄진 조사에서도 사고 경위를 비교적 상세히 기억하는 점을 참작했는데요.

1심 재판부는 윤창호법 위반 대신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죄와 음주운전죄를 적용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앵커]

2심에서 판단이 달라졌다고 했으니, 검찰이 항소를 한 거죠?

[기자]

네, 검찰과 김 씨 모두 항소했습니다.

검찰은 윤창호법 위반이 적용되지 않은 데 문제가 있다는 이유였고, 김 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따라 항소심 재판부가 사건을 다시 살폈는데요.

1심과 반대로 윤창호법 위반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원심 판결이 법리를 잘못 따진 점이 있고 김 씨가 음주 때문에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였다고 봐야 한다는 건데요.

일단 김 씨가 사고 직전 술집에서 지인 2명과 소주 5명을 나눠 마신 뒤 자리를 옮겨 맥주 3병을 더 나눠 마셨고 혈중알코올농도가 0.12%로 측정된 점을 보면 마신 술의 양이 적지 않다고 봤습니다.

또 경찰관이 법정에서 당시 김 씨가 술에 취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고 진술한 점, 특히 사고 직후 다른 사람 말을 듣고서야 오토바이를 들이받은 사실을 인식하는 등 주의력과 판단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던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앵커]

처벌이 강화된 법이 적용됐으니 형량이 더 늘어났겠네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최근 김 씨에게 1심에서 적용되지 않았던 윤창호법 위반을 유죄로 인정해 선고를 내렸는데요.

사고 당시 피해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제한 속도인 50km를 훌쩍 넘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던 점과 김 씨가 피해 보상을 위해 자기부담금 1억여 원을 미리 보험사에 낸 점 등은 참작됐습니다.

그러나 김 씨가 앞서 3차례나 음주운전으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던 점, 함께 술을 마신 일행이 대리운전을 이용하라고 제안했지만 그대로 운전대를 잡은 점, 또 피해자 유족들이 여전히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점 등을 보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는데요.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김 씨에게 원심보다 형이 1년 늘어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현재 김 씨가 상고해 사건은 대법원에서 다뤄지게 됐는데요.

음주운전에 대해 엄벌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윤창호법도 정밀한 적용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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