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단독] ‘제2 군함도’ 사도섬을 가다…강제징용 명부·숙소 터 확인

입력 2021.12.28 (07:32) 수정 2021.12.28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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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본이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인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 단독 후보로 추천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이르면 오늘(28일) 공식 발표가 있을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KBS 취재진이 사도섬에 직접 들어가 강제동원 조선인들의 명부와 살았던 흔적들을 찾아냈습니다.

지종익 특파원의 단독 보도입니다.

[리포트]

일본 중서부 니가타에서 쾌속선을 타고 1시간.

1600년대 에도시대부터 금광으로 유명했던 사도섬이 나타납니다.

수작업으로 파 내려간 V자형 봉우리의 사도광산.

탐방코스로 만든 에도시대의 갱도에는 당시의 채굴 작업이 재현돼 있습니다.

1989년 폐광 전까지 채굴이 이뤄졌던 또 하나의 갱도.

조선인들이 강제동원돼 채굴 작업을 했던 곳입니다.

[나하타 쇼/사도광산 주임보 : "(조선인들이 이 갱도에서 일을 한 거죠?) 그렇죠. 근대시대 갱도라면 이 갱도가 맞습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본격화하자 철과 구리 등 전쟁 물자 확보에 나선 일본은 사도섬에 조선인 최소 천2백 명을 동원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일본인들은 주로 외부 제련시설에서 일했지만 조선인들은 암석을 뚫는 착암부와 운반부 등 위험한 갱내 작업에 투입됐습니다.

사도 박물관에 보관 중인 조선인 명부의 열람을 요청했습니다.

[이치다시 히데키/사도시 교육위원회 과장 : "(만져도 됩니까?) 종이가 꽤 오래됐기 때문에 조심해 주십시오."]

미쓰비시 사도 광업소가 운영한 조선인 기숙사 3곳의 '담배 배급 명부'.

어색한 일본식 이름과 한국 이름, 생년월일 등이 빼곡히 적혀 있고 도주 등을 이유로 배급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식 개명을 알리는 편지도 있습니다.

특정 연령대를 대상으로 작성한 '조선총독부 지정연령자 연명부'에도 조선인 수백 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한국 본적지가 확인됩니다.

기숙사 터를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제1 기숙사 자리에 들어선 구치소 건물은 문화재가 됐고, 가족 사택은 폐가로 남아 있습니다.

[하마노 히로시/향토사학자 : "가족까지 함께 데리고 있으면 (조선인들이) 도망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미쓰비시 광업에서는) 가족도 불러들였고, 여기에 가족 기숙사를 만든 거죠."]

다른 두 기숙사 터는 수풀이 무성하고 식당 자리는 폐허로 변했습니다.

[하마노 히로시/향토사학자 : "(조선인들이) 도시락을 여기서 받아갔습니다. 조기 출근조는 아침, 저녁 2개를 갖고 올라갔다고 합니다."]

10년 넘게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 온 사도시와 니가타현은 이번 신청 대상 기간을 에도시대로 좁혔습니다. 군함도에 이어 또 강제동원의 역사를 누락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윱니다.

사도섬에서 KBS 뉴스 지종익입니다.

촬영:안병욱/영상편집:서삼현/그래픽:김현갑 김지혜/자료조사:권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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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단독] ‘제2 군함도’ 사도섬을 가다…강제징용 명부·숙소 터 확인
    • 입력 2021-12-28 07:32:23
    • 수정2021-12-28 07: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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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인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 단독 후보로 추천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이르면 오늘(28일) 공식 발표가 있을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KBS 취재진이 사도섬에 직접 들어가 강제동원 조선인들의 명부와 살았던 흔적들을 찾아냈습니다.

지종익 특파원의 단독 보도입니다.

[리포트]

일본 중서부 니가타에서 쾌속선을 타고 1시간.

1600년대 에도시대부터 금광으로 유명했던 사도섬이 나타납니다.

수작업으로 파 내려간 V자형 봉우리의 사도광산.

탐방코스로 만든 에도시대의 갱도에는 당시의 채굴 작업이 재현돼 있습니다.

1989년 폐광 전까지 채굴이 이뤄졌던 또 하나의 갱도.

조선인들이 강제동원돼 채굴 작업을 했던 곳입니다.

[나하타 쇼/사도광산 주임보 : "(조선인들이 이 갱도에서 일을 한 거죠?) 그렇죠. 근대시대 갱도라면 이 갱도가 맞습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본격화하자 철과 구리 등 전쟁 물자 확보에 나선 일본은 사도섬에 조선인 최소 천2백 명을 동원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일본인들은 주로 외부 제련시설에서 일했지만 조선인들은 암석을 뚫는 착암부와 운반부 등 위험한 갱내 작업에 투입됐습니다.

사도 박물관에 보관 중인 조선인 명부의 열람을 요청했습니다.

[이치다시 히데키/사도시 교육위원회 과장 : "(만져도 됩니까?) 종이가 꽤 오래됐기 때문에 조심해 주십시오."]

미쓰비시 사도 광업소가 운영한 조선인 기숙사 3곳의 '담배 배급 명부'.

어색한 일본식 이름과 한국 이름, 생년월일 등이 빼곡히 적혀 있고 도주 등을 이유로 배급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식 개명을 알리는 편지도 있습니다.

특정 연령대를 대상으로 작성한 '조선총독부 지정연령자 연명부'에도 조선인 수백 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한국 본적지가 확인됩니다.

기숙사 터를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제1 기숙사 자리에 들어선 구치소 건물은 문화재가 됐고, 가족 사택은 폐가로 남아 있습니다.

[하마노 히로시/향토사학자 : "가족까지 함께 데리고 있으면 (조선인들이) 도망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미쓰비시 광업에서는) 가족도 불러들였고, 여기에 가족 기숙사를 만든 거죠."]

다른 두 기숙사 터는 수풀이 무성하고 식당 자리는 폐허로 변했습니다.

[하마노 히로시/향토사학자 : "(조선인들이) 도시락을 여기서 받아갔습니다. 조기 출근조는 아침, 저녁 2개를 갖고 올라갔다고 합니다."]

10년 넘게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 온 사도시와 니가타현은 이번 신청 대상 기간을 에도시대로 좁혔습니다. 군함도에 이어 또 강제동원의 역사를 누락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윱니다.

사도섬에서 KBS 뉴스 지종익입니다.

촬영:안병욱/영상편집:서삼현/그래픽:김현갑 김지혜/자료조사:권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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