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톡톡] 애환 서린 구술집 ‘피란, 그때 그 사람들’

입력 2022.02.10 (19:31) 수정 2022.02.1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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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한국전쟁 당시 피란수도 임시정부청사로 사용됐던 석당 박물관에 나와 있습니다.

부산시는 최근 이곳을 비롯한 피란수도 핵심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사업의 하나로 피란민들의 경험담을 수록한 자료집 '피란, 그때 그 사람들'을 발간했는데요.

피란민들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피란수도 부산의 생생한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1950년 12월 흥남철수작전 때 화물 수송선에 몸을 싣고 내려온 김동주 씨는 부산항에서 기름통 옮기는 일을 하며 용두산 피란민촌 생활을 했습니다.

[김동주/함경북도 명천 출생 : "마분지하고 가마니가 (집)재료야. 나무때기 가는 거 해가지고. 우리는 2층을 지었는데 꿀렁꿀렁해 바닥이 말이야. 나무때기가 가늘어서 위험해. 그래가지고 여럿이 살았어요."]

그는 미군 부대 청소부 일을 하다 알게 된 미군의 도움으로 부산대 의대에 입학해 소아과 의사가 됐습니다.

[김동주/함경북도 명천 출생 : "나는 미군부대 들어갔어. 뭐 하느냐? 청소하는거야. 거기서 복도, 변소 청소하는거야. 월급을 받는다 그것보다는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 의식주 보다도 먹는 걸 해결할 수 있을 정도였지."]

1950년 크리스마스 이브, 김옥순 씨는 흥남부두에서 미국 피란선에 올라 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김옥순/함경남도 함흥 출생 : "12월24일 나갔으니까 굉장히 추웠거든요. 이북은 이남보다 몇배나 추우니까. 밤 사이에 죽은 사람들도 많고 며칠 있다 죽은 사람들도 많고 배에서 죽은 사람들은 물에다 그냥 집어넣고…."]

그녀는 스웨덴이 1950년, 부산에 세운 서전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습니다.

[김옥순/함경남도 함흥 출생 : "그때는 힘든건 생각지 않고 환자들이 피투성이 돼서 들어오면 우리도 자연히 바빠지니까 힘들다 소리도 못하고 일을했죠."]

'피란, 그때 그 사람들' 이 자료집은 전쟁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피란민 40명이 구술한 내용을 20개월에 걸쳐 부경대학교 채영희 교수 연구팀이 정리한 책입니다.

구술 시간만 164시간 31분.

눈물로 밖에 기억할 수 없는 피란민들의 굴곡진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채영희/'피란, 그때 그 사람들' 편집 책임자 : "부산의 큰 대서사 드라마가 퍼즐이 맞춰지는 듯이 조각조각이 맞춰지고 있었어요. 실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분은 눈물짓기도 하시고, 가슴에 애환이 남아서 이렇게 너무 마음 아픈 그런 사연들을 전해 들으면서 같이 울기도 했고…."]

한국전쟁 때 인구 20만 명이던 부산은 피란민 200만 명을 안았습니다.

1,023일 동안 수도였던 부산.

부산시는 이 구술 자료집을 토대로 피란수도 관련 건축·문화 유산 9곳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사전 절차로 올해 안에 정부 문화유산 우선 목록에 등재할 계획입니다.

문화톡톡 최재훈입니다.

촬영기자:허선귀/영상편집:김종수/C.G:최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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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톡톡] 애환 서린 구술집 ‘피란, 그때 그 사람들’
    • 입력 2022-02-10 19:31:12
    • 수정2022-02-10 20:04:45
    뉴스7(부산)
저는 지금 한국전쟁 당시 피란수도 임시정부청사로 사용됐던 석당 박물관에 나와 있습니다.

부산시는 최근 이곳을 비롯한 피란수도 핵심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사업의 하나로 피란민들의 경험담을 수록한 자료집 '피란, 그때 그 사람들'을 발간했는데요.

피란민들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피란수도 부산의 생생한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1950년 12월 흥남철수작전 때 화물 수송선에 몸을 싣고 내려온 김동주 씨는 부산항에서 기름통 옮기는 일을 하며 용두산 피란민촌 생활을 했습니다.

[김동주/함경북도 명천 출생 : "마분지하고 가마니가 (집)재료야. 나무때기 가는 거 해가지고. 우리는 2층을 지었는데 꿀렁꿀렁해 바닥이 말이야. 나무때기가 가늘어서 위험해. 그래가지고 여럿이 살았어요."]

그는 미군 부대 청소부 일을 하다 알게 된 미군의 도움으로 부산대 의대에 입학해 소아과 의사가 됐습니다.

[김동주/함경북도 명천 출생 : "나는 미군부대 들어갔어. 뭐 하느냐? 청소하는거야. 거기서 복도, 변소 청소하는거야. 월급을 받는다 그것보다는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 의식주 보다도 먹는 걸 해결할 수 있을 정도였지."]

1950년 크리스마스 이브, 김옥순 씨는 흥남부두에서 미국 피란선에 올라 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김옥순/함경남도 함흥 출생 : "12월24일 나갔으니까 굉장히 추웠거든요. 이북은 이남보다 몇배나 추우니까. 밤 사이에 죽은 사람들도 많고 며칠 있다 죽은 사람들도 많고 배에서 죽은 사람들은 물에다 그냥 집어넣고…."]

그녀는 스웨덴이 1950년, 부산에 세운 서전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습니다.

[김옥순/함경남도 함흥 출생 : "그때는 힘든건 생각지 않고 환자들이 피투성이 돼서 들어오면 우리도 자연히 바빠지니까 힘들다 소리도 못하고 일을했죠."]

'피란, 그때 그 사람들' 이 자료집은 전쟁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피란민 40명이 구술한 내용을 20개월에 걸쳐 부경대학교 채영희 교수 연구팀이 정리한 책입니다.

구술 시간만 164시간 31분.

눈물로 밖에 기억할 수 없는 피란민들의 굴곡진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채영희/'피란, 그때 그 사람들' 편집 책임자 : "부산의 큰 대서사 드라마가 퍼즐이 맞춰지는 듯이 조각조각이 맞춰지고 있었어요. 실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분은 눈물짓기도 하시고, 가슴에 애환이 남아서 이렇게 너무 마음 아픈 그런 사연들을 전해 들으면서 같이 울기도 했고…."]

한국전쟁 때 인구 20만 명이던 부산은 피란민 200만 명을 안았습니다.

1,023일 동안 수도였던 부산.

부산시는 이 구술 자료집을 토대로 피란수도 관련 건축·문화 유산 9곳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사전 절차로 올해 안에 정부 문화유산 우선 목록에 등재할 계획입니다.

문화톡톡 최재훈입니다.

촬영기자:허선귀/영상편집:김종수/C.G:최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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