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더 알기] ‘4·3 참상을 세상에’ 다랑쉬굴 발굴 30년

입력 2022.03.31 (19:31) 수정 2022.03.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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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증언본풀이마당에서 다랑쉬굴 희생자 유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전해드렸는데요,

다랑쉬굴 유해발굴 30년이 되는 올해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이어지고 있죠,

오늘 '4·3 더 알기'에서는 4·3 역사에서 다랑쉬굴의 의미를 정리해 봅니다.

지난 1992년 4월 1일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다랑쉬굴에 잠들어 있던 4·3 희생자 유해 11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발굴된 유해들은 4·3의 참화를 피해 숨어 있던 희생자들로 구좌읍 종달리의 강태용, 고두만, 고순경, 고순환. 고태원, 박봉관, 함명립, 하도리의 김진생, 부성만, 이성란, 이재수입니다.

희생자 가운데 이재수는 아홉 살 난 어린이였고, 김진생 부성만 이성란 3명은 여성이었습니다.

이들은 1948년 12월18일 희생된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당시 9연대 진압작전에 의해 굴 입구에 지핀 불로 연기에 질식해 마지막 순간까지 참혹하게 고통 속에 생을 다했습니다.

깜깜한 굴 속에서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채 한을 품고 있었을 희생자들은 44년 만에 조사에 나섰던 제주4·3연구소에 의해 발굴됐는데요,

다랑쉬굴의 참상은 이후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며 4·3 운동의 중요한 기폭제가 됐습니다.

한 때 희생자들과 같이 다랑쉬굴에 은신해 있었다가 40여 년만에 참상의 진실을 전한 채정옥 씨는 '사건이 터지고 이웃주민 2명과 현장에 가보니 굴 입구에서 아직도 연기가 나고 있었다'며 "굴 안으로 들어가 보니 두 눈을 뜨기가 두려울 만큼의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제주4·3평화기념관 특별전시실에 발굴 당시 희생자들의 유해와 이들이 사용했던 유품 등 다랑쉬굴을 재현해 놓았는데요,

이 곳을 둘러보면 70여 년 전 다랑쉬굴 희생자들이 마지막 순가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어야 했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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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3 더 알기] ‘4·3 참상을 세상에’ 다랑쉬굴 발굴 30년
    • 입력 2022-03-31 19:31:37
    • 수정2022-03-31 20:21:14
    뉴스7(제주)
앞서 증언본풀이마당에서 다랑쉬굴 희생자 유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전해드렸는데요,

다랑쉬굴 유해발굴 30년이 되는 올해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이어지고 있죠,

오늘 '4·3 더 알기'에서는 4·3 역사에서 다랑쉬굴의 의미를 정리해 봅니다.

지난 1992년 4월 1일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다랑쉬굴에 잠들어 있던 4·3 희생자 유해 11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발굴된 유해들은 4·3의 참화를 피해 숨어 있던 희생자들로 구좌읍 종달리의 강태용, 고두만, 고순경, 고순환. 고태원, 박봉관, 함명립, 하도리의 김진생, 부성만, 이성란, 이재수입니다.

희생자 가운데 이재수는 아홉 살 난 어린이였고, 김진생 부성만 이성란 3명은 여성이었습니다.

이들은 1948년 12월18일 희생된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당시 9연대 진압작전에 의해 굴 입구에 지핀 불로 연기에 질식해 마지막 순간까지 참혹하게 고통 속에 생을 다했습니다.

깜깜한 굴 속에서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채 한을 품고 있었을 희생자들은 44년 만에 조사에 나섰던 제주4·3연구소에 의해 발굴됐는데요,

다랑쉬굴의 참상은 이후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며 4·3 운동의 중요한 기폭제가 됐습니다.

한 때 희생자들과 같이 다랑쉬굴에 은신해 있었다가 40여 년만에 참상의 진실을 전한 채정옥 씨는 '사건이 터지고 이웃주민 2명과 현장에 가보니 굴 입구에서 아직도 연기가 나고 있었다'며 "굴 안으로 들어가 보니 두 눈을 뜨기가 두려울 만큼의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제주4·3평화기념관 특별전시실에 발굴 당시 희생자들의 유해와 이들이 사용했던 유품 등 다랑쉬굴을 재현해 놓았는데요,

이 곳을 둘러보면 70여 년 전 다랑쉬굴 희생자들이 마지막 순가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어야 했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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