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대담] 비극의 현장 다랑쉬굴…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입력 2022.03.31 (19:50)
수정 2022.03.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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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30년 전 당시 다랑쉬굴을 발굴하고 참상을 알리는데 제주4·3연구소의 역할이 컸죠,
발굴 당시 4·3연구소장을 맡으셨던 고창훈 제주대 명예교수과 함께 관련 얘기 이어가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다랑쉬굴의 비극적 현장이 공개된지 어느덧 30년이 됐습니다.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앵커]
30년 전 당시 다랑쉬굴 발굴은 어떤 계기로 이뤄지게 됐나요?
[앵커]
당시 다랑쉬굴에서 11구의 유해가 나왔는데요,
현장에서 직접 보셨을 때 유해들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앵커]
처음 참상의 현장을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앵커]
당시 희생자들은 종달리 주민이 일곱 분, 하도리 주민이 4분으로 확인됐는데요,
신원 확인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앵커]
세상에는 1992년 4월 다랑쉬굴 학살 현장이 공개됐지만, 실제 발굴은 이전에 이뤄졌죠?
[앵커]
그렇다면, 먼저 다랑쉬굴 현장을 발굴하고도 곧바로 공개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앵커]
당시 11구의 유해는 안장되지 못하고 화장 후 바다에 뿌려진 것으로 전해지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앵커]
다랑쉬굴 유해들을 밖으로 꺼내 수습한 뒤, 나머지 유물들을 그대로 남긴 채 입구가 콘크리트로 봉해졌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앵커]
세월이 흐르면서 4·3의 위상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30년 전 다랑쉬굴의 참상이 현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어떤 걸까요?
[앵커]
앞으로 다랑쉬굴 학살과 관련해 과제들이 있다면?
[앵커]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은?
네,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KBS는 다랑쉬굴의 비극을 조명하는 특집 다큐멘터리 '다랑쉬 비망록'을 74주년 4·3 추념일인 다음 달 3일 전국에 방송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30년 전 당시 다랑쉬굴을 발굴하고 참상을 알리는데 제주4·3연구소의 역할이 컸죠,
발굴 당시 4·3연구소장을 맡으셨던 고창훈 제주대 명예교수과 함께 관련 얘기 이어가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다랑쉬굴의 비극적 현장이 공개된지 어느덧 30년이 됐습니다.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앵커]
30년 전 당시 다랑쉬굴 발굴은 어떤 계기로 이뤄지게 됐나요?
[앵커]
당시 다랑쉬굴에서 11구의 유해가 나왔는데요,
현장에서 직접 보셨을 때 유해들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앵커]
처음 참상의 현장을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앵커]
당시 희생자들은 종달리 주민이 일곱 분, 하도리 주민이 4분으로 확인됐는데요,
신원 확인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앵커]
세상에는 1992년 4월 다랑쉬굴 학살 현장이 공개됐지만, 실제 발굴은 이전에 이뤄졌죠?
[앵커]
그렇다면, 먼저 다랑쉬굴 현장을 발굴하고도 곧바로 공개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앵커]
당시 11구의 유해는 안장되지 못하고 화장 후 바다에 뿌려진 것으로 전해지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앵커]
다랑쉬굴 유해들을 밖으로 꺼내 수습한 뒤, 나머지 유물들을 그대로 남긴 채 입구가 콘크리트로 봉해졌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앵커]
세월이 흐르면서 4·3의 위상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30년 전 다랑쉬굴의 참상이 현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어떤 걸까요?
[앵커]
앞으로 다랑쉬굴 학살과 관련해 과제들이 있다면?
[앵커]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은?
네,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KBS는 다랑쉬굴의 비극을 조명하는 특집 다큐멘터리 '다랑쉬 비망록'을 74주년 4·3 추념일인 다음 달 3일 전국에 방송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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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2-03-31 20: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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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당시 다랑쉬굴을 발굴하고 참상을 알리는데 제주4·3연구소의 역할이 컸죠,
발굴 당시 4·3연구소장을 맡으셨던 고창훈 제주대 명예교수과 함께 관련 얘기 이어가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다랑쉬굴의 비극적 현장이 공개된지 어느덧 30년이 됐습니다.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앵커]
30년 전 당시 다랑쉬굴 발굴은 어떤 계기로 이뤄지게 됐나요?
[앵커]
당시 다랑쉬굴에서 11구의 유해가 나왔는데요,
현장에서 직접 보셨을 때 유해들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앵커]
처음 참상의 현장을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앵커]
당시 희생자들은 종달리 주민이 일곱 분, 하도리 주민이 4분으로 확인됐는데요,
신원 확인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앵커]
세상에는 1992년 4월 다랑쉬굴 학살 현장이 공개됐지만, 실제 발굴은 이전에 이뤄졌죠?
[앵커]
그렇다면, 먼저 다랑쉬굴 현장을 발굴하고도 곧바로 공개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앵커]
당시 11구의 유해는 안장되지 못하고 화장 후 바다에 뿌려진 것으로 전해지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앵커]
다랑쉬굴 유해들을 밖으로 꺼내 수습한 뒤, 나머지 유물들을 그대로 남긴 채 입구가 콘크리트로 봉해졌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앵커]
세월이 흐르면서 4·3의 위상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30년 전 다랑쉬굴의 참상이 현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어떤 걸까요?
[앵커]
앞으로 다랑쉬굴 학살과 관련해 과제들이 있다면?
[앵커]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은?
네,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KBS는 다랑쉬굴의 비극을 조명하는 특집 다큐멘터리 '다랑쉬 비망록'을 74주년 4·3 추념일인 다음 달 3일 전국에 방송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30년 전 당시 다랑쉬굴을 발굴하고 참상을 알리는데 제주4·3연구소의 역할이 컸죠,
발굴 당시 4·3연구소장을 맡으셨던 고창훈 제주대 명예교수과 함께 관련 얘기 이어가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다랑쉬굴의 비극적 현장이 공개된지 어느덧 30년이 됐습니다.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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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당시 다랑쉬굴 발굴은 어떤 계기로 이뤄지게 됐나요?
[앵커]
당시 다랑쉬굴에서 11구의 유해가 나왔는데요,
현장에서 직접 보셨을 때 유해들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앵커]
처음 참상의 현장을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앵커]
당시 희생자들은 종달리 주민이 일곱 분, 하도리 주민이 4분으로 확인됐는데요,
신원 확인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앵커]
세상에는 1992년 4월 다랑쉬굴 학살 현장이 공개됐지만, 실제 발굴은 이전에 이뤄졌죠?
[앵커]
그렇다면, 먼저 다랑쉬굴 현장을 발굴하고도 곧바로 공개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앵커]
당시 11구의 유해는 안장되지 못하고 화장 후 바다에 뿌려진 것으로 전해지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앵커]
다랑쉬굴 유해들을 밖으로 꺼내 수습한 뒤, 나머지 유물들을 그대로 남긴 채 입구가 콘크리트로 봉해졌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앵커]
세월이 흐르면서 4·3의 위상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30년 전 다랑쉬굴의 참상이 현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어떤 걸까요?
[앵커]
앞으로 다랑쉬굴 학살과 관련해 과제들이 있다면?
[앵커]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은?
네,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KBS는 다랑쉬굴의 비극을 조명하는 특집 다큐멘터리 '다랑쉬 비망록'을 74주년 4·3 추념일인 다음 달 3일 전국에 방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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