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상규명 주역]③ 평생 4·3연구에 헌신 김종민 4·3 중앙위원

입력 2022.04.02 (21:40) 수정 2022.04.0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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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3의 진상규명을 위해 헌신한 주역들을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언론인 출신으로 평생 4·3 연구에 헌신해 온 김종민 4·3 중앙위원회 위원을 만나봤습니다.

김가람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언론 민주화를 위한 철야 농성이 석달 가까이 이어진 1989년 제주신문 사태.

제주신문에 들어간 지 만 3년이 안 돼 해고된 김종민 기자는 당시 4.3 취재반이었습니다.

[김종민/국무총리 소속 4·3 중앙위원회 위원 : "어떤 사명감을 갖고 4·3 취재반이 된 것이 아니라 시키니까 하게 된 거예요. 그것이 88년도 3월달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지금까지."]

도민들의 뜻을 모아 문을 연 제민일보에서도 계속 이어졌던 4·3 취재 활동.

[김종민/국무총리 소속 4·3 중앙위원회 위원 : "그때는 4·3 취재와 연재를 하기도 벅찼죠. 거기에만 몰두해도 하루종일 그것만 생각해도 하기가 어려울 정도니까,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죠."]

10년 넘게 이어진 취재에서 인터뷰한 희생자와 유족 등이 7천 명에 달했고, "총살은 고통이 짧아 오히려 낫다"는 사연을 비롯해 가늠조차 어려운 참혹함을 기록했습니다.

[김종민/국무총리 소속 4·3 중앙위원회 위원 :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서 이렇게 허벅지를 살짝 꼬집어요. 나도 같이 울컥하면 안 되니까. 그런데 어떤 증언을 들을 때는 너무 심하게 꼬집어서 나중에 멍이 드는."]

4·3 특별법 제정에 따라 전문위원으로서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에 참여했고.

[김종민/국무총리 소속 4·3 중앙위원회 위원 : "국무회의록에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오는데 제주도의 토색 반도들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라는 문서를 제가 국가기록원에서 (찾아냈습니다.)"]

대통령의 사과 이후에도 계속된 '4·3 흔들기'에 맞서 법정에서도 싸움을 이어나갔습니다.

[김종민/국무총리 소속 4·3 중앙위원회 위원 : "4·3 문제에 관한 한은 어떤 공세가 들어오면 저는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엔돌핀이 돌아요. 왜냐하면 4·3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4·3 특별법 전면 개정으로 배보상이 가시화됐지만 4·3의 정명을 비롯해 트라우마 치유 등 결코, 끝이 아니라는 김종민 위원.

[김종민/국무총리 소속 4·3 중앙위원회 위원 : "자기 눈앞에서 부모가 희생당하고, 잔혹하게 희생당하고, 이런 걸 목격했던 분들의 마음의 상처가 이렇게 쉽게 치유되겠습니까?"]

평화와 통일,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상징으로 기억될 4·3의 교훈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김종민/국무총리 소속 4·3 중앙위원회 위원 : "사회적 약자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제주도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4·3이 주는 교훈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이 진정한 평화의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봅니다."]

KBS 뉴스 김가람입니다.

촬영기자:양경배/그래픽: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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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3 진상규명 주역]③ 평생 4·3연구에 헌신 김종민 4·3 중앙위원
    • 입력 2022-04-02 21:40:09
    • 수정2022-04-02 22:21:53
    뉴스9(제주)
[앵커]

4·3의 진상규명을 위해 헌신한 주역들을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언론인 출신으로 평생 4·3 연구에 헌신해 온 김종민 4·3 중앙위원회 위원을 만나봤습니다.

김가람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언론 민주화를 위한 철야 농성이 석달 가까이 이어진 1989년 제주신문 사태.

제주신문에 들어간 지 만 3년이 안 돼 해고된 김종민 기자는 당시 4.3 취재반이었습니다.

[김종민/국무총리 소속 4·3 중앙위원회 위원 : "어떤 사명감을 갖고 4·3 취재반이 된 것이 아니라 시키니까 하게 된 거예요. 그것이 88년도 3월달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지금까지."]

도민들의 뜻을 모아 문을 연 제민일보에서도 계속 이어졌던 4·3 취재 활동.

[김종민/국무총리 소속 4·3 중앙위원회 위원 : "그때는 4·3 취재와 연재를 하기도 벅찼죠. 거기에만 몰두해도 하루종일 그것만 생각해도 하기가 어려울 정도니까,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죠."]

10년 넘게 이어진 취재에서 인터뷰한 희생자와 유족 등이 7천 명에 달했고, "총살은 고통이 짧아 오히려 낫다"는 사연을 비롯해 가늠조차 어려운 참혹함을 기록했습니다.

[김종민/국무총리 소속 4·3 중앙위원회 위원 :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서 이렇게 허벅지를 살짝 꼬집어요. 나도 같이 울컥하면 안 되니까. 그런데 어떤 증언을 들을 때는 너무 심하게 꼬집어서 나중에 멍이 드는."]

4·3 특별법 제정에 따라 전문위원으로서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에 참여했고.

[김종민/국무총리 소속 4·3 중앙위원회 위원 : "국무회의록에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오는데 제주도의 토색 반도들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라는 문서를 제가 국가기록원에서 (찾아냈습니다.)"]

대통령의 사과 이후에도 계속된 '4·3 흔들기'에 맞서 법정에서도 싸움을 이어나갔습니다.

[김종민/국무총리 소속 4·3 중앙위원회 위원 : "4·3 문제에 관한 한은 어떤 공세가 들어오면 저는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엔돌핀이 돌아요. 왜냐하면 4·3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4·3 특별법 전면 개정으로 배보상이 가시화됐지만 4·3의 정명을 비롯해 트라우마 치유 등 결코, 끝이 아니라는 김종민 위원.

[김종민/국무총리 소속 4·3 중앙위원회 위원 : "자기 눈앞에서 부모가 희생당하고, 잔혹하게 희생당하고, 이런 걸 목격했던 분들의 마음의 상처가 이렇게 쉽게 치유되겠습니까?"]

평화와 통일,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상징으로 기억될 4·3의 교훈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김종민/국무총리 소속 4·3 중앙위원회 위원 : "사회적 약자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제주도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4·3이 주는 교훈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이 진정한 평화의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봅니다."]

KBS 뉴스 김가람입니다.

촬영기자:양경배/그래픽: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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