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 50년 맞았지만…여전한 ‘미군기지의 섬’
입력 2022.05.16 (06:33)
수정 2022.05.16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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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제 패망 후 27년 간 미군이 점령했던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지 어느덧 50년이 됐습니다.
반환 당시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남기를 주민들은 바랬는데요.
50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어떨까요.
박원기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오키나와현의 한 주택입니다.
창을 이중으로 닫아도 하루종일 이어지는 군용기 소음탓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시로마 히로시/카데나 주민 : "(전화선을 아예) 빼놨습니다. 소음이 심해서 (통화가) 안 들리니까..."]
각종 군용기가 1년에 4만 차례 이상 뜨고 내리는 가데나 미 공군기지가 바로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낮은 철조망 너머엔 한눈에 담기 어려운 광활한 면적의 공군기지가 있습니다.
가데나시 전체 면적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후텐마 미군기지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군용기로 인한 각종 사고 위협과 소음 피해에 시달리며, 주민 6천 여 명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입니다.
[다마모토 카즈에/소송단 사무국장 : "(6개월 전에도) 오스프리(수직이착륙기)에서 금속 수통 같은 것이 떨어졌어요. 오키나와 주민 누구라도 사고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키나와현 면적은 일본 전체 0.6%에 불과하지만 주일미군 시설의 70% 이상이 집중돼 있습니다.
미군 전용 시설만 31곳에 이릅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는 인구 12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일제 패망 후엔 27년간 미군 통치를 받다가 1972년 5월 비로소 본토에 반환됐습니다.
이 때문에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주민 열망이 그 어느 곳보다 큰 곳이지만, 중국의 해양 진출 견제 등 군사 요충지로서 중요성만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마에도마리 히로모리/오키나와국제대 교수 : "기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50년이 지났어도 같은 숙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키나와의 반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키나와가 반환된지 반세기란 세월이 흘렀지만 이곳 사람들이 희망하는 '본토 수준의 회복'은 과연 언제 될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오키나와에서 KBS 뉴스 박원기입니다.
일제 패망 후 27년 간 미군이 점령했던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지 어느덧 50년이 됐습니다.
반환 당시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남기를 주민들은 바랬는데요.
50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어떨까요.
박원기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오키나와현의 한 주택입니다.
창을 이중으로 닫아도 하루종일 이어지는 군용기 소음탓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시로마 히로시/카데나 주민 : "(전화선을 아예) 빼놨습니다. 소음이 심해서 (통화가) 안 들리니까..."]
각종 군용기가 1년에 4만 차례 이상 뜨고 내리는 가데나 미 공군기지가 바로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낮은 철조망 너머엔 한눈에 담기 어려운 광활한 면적의 공군기지가 있습니다.
가데나시 전체 면적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후텐마 미군기지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군용기로 인한 각종 사고 위협과 소음 피해에 시달리며, 주민 6천 여 명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입니다.
[다마모토 카즈에/소송단 사무국장 : "(6개월 전에도) 오스프리(수직이착륙기)에서 금속 수통 같은 것이 떨어졌어요. 오키나와 주민 누구라도 사고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키나와현 면적은 일본 전체 0.6%에 불과하지만 주일미군 시설의 70% 이상이 집중돼 있습니다.
미군 전용 시설만 31곳에 이릅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는 인구 12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일제 패망 후엔 27년간 미군 통치를 받다가 1972년 5월 비로소 본토에 반환됐습니다.
이 때문에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주민 열망이 그 어느 곳보다 큰 곳이지만, 중국의 해양 진출 견제 등 군사 요충지로서 중요성만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마에도마리 히로모리/오키나와국제대 교수 : "기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50년이 지났어도 같은 숙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키나와의 반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키나와가 반환된지 반세기란 세월이 흘렀지만 이곳 사람들이 희망하는 '본토 수준의 회복'은 과연 언제 될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오키나와에서 KBS 뉴스 박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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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5-16 06:33:51
- 수정2022-05-16 06:46:28
![](/data/news/title_image/newsmp4/newsplaza_p1/2022/05/16/190_5463130.jpg)
[앵커]
일제 패망 후 27년 간 미군이 점령했던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지 어느덧 50년이 됐습니다.
반환 당시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남기를 주민들은 바랬는데요.
50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어떨까요.
박원기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오키나와현의 한 주택입니다.
창을 이중으로 닫아도 하루종일 이어지는 군용기 소음탓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시로마 히로시/카데나 주민 : "(전화선을 아예) 빼놨습니다. 소음이 심해서 (통화가) 안 들리니까..."]
각종 군용기가 1년에 4만 차례 이상 뜨고 내리는 가데나 미 공군기지가 바로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낮은 철조망 너머엔 한눈에 담기 어려운 광활한 면적의 공군기지가 있습니다.
가데나시 전체 면적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후텐마 미군기지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군용기로 인한 각종 사고 위협과 소음 피해에 시달리며, 주민 6천 여 명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입니다.
[다마모토 카즈에/소송단 사무국장 : "(6개월 전에도) 오스프리(수직이착륙기)에서 금속 수통 같은 것이 떨어졌어요. 오키나와 주민 누구라도 사고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키나와현 면적은 일본 전체 0.6%에 불과하지만 주일미군 시설의 70% 이상이 집중돼 있습니다.
미군 전용 시설만 31곳에 이릅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는 인구 12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일제 패망 후엔 27년간 미군 통치를 받다가 1972년 5월 비로소 본토에 반환됐습니다.
이 때문에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주민 열망이 그 어느 곳보다 큰 곳이지만, 중국의 해양 진출 견제 등 군사 요충지로서 중요성만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마에도마리 히로모리/오키나와국제대 교수 : "기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50년이 지났어도 같은 숙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키나와의 반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키나와가 반환된지 반세기란 세월이 흘렀지만 이곳 사람들이 희망하는 '본토 수준의 회복'은 과연 언제 될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오키나와에서 KBS 뉴스 박원기입니다.
일제 패망 후 27년 간 미군이 점령했던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지 어느덧 50년이 됐습니다.
반환 당시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남기를 주민들은 바랬는데요.
50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어떨까요.
박원기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오키나와현의 한 주택입니다.
창을 이중으로 닫아도 하루종일 이어지는 군용기 소음탓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시로마 히로시/카데나 주민 : "(전화선을 아예) 빼놨습니다. 소음이 심해서 (통화가) 안 들리니까..."]
각종 군용기가 1년에 4만 차례 이상 뜨고 내리는 가데나 미 공군기지가 바로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낮은 철조망 너머엔 한눈에 담기 어려운 광활한 면적의 공군기지가 있습니다.
가데나시 전체 면적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후텐마 미군기지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군용기로 인한 각종 사고 위협과 소음 피해에 시달리며, 주민 6천 여 명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입니다.
[다마모토 카즈에/소송단 사무국장 : "(6개월 전에도) 오스프리(수직이착륙기)에서 금속 수통 같은 것이 떨어졌어요. 오키나와 주민 누구라도 사고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키나와현 면적은 일본 전체 0.6%에 불과하지만 주일미군 시설의 70% 이상이 집중돼 있습니다.
미군 전용 시설만 31곳에 이릅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는 인구 12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일제 패망 후엔 27년간 미군 통치를 받다가 1972년 5월 비로소 본토에 반환됐습니다.
이 때문에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주민 열망이 그 어느 곳보다 큰 곳이지만, 중국의 해양 진출 견제 등 군사 요충지로서 중요성만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마에도마리 히로모리/오키나와국제대 교수 : "기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50년이 지났어도 같은 숙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키나와의 반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키나와가 반환된지 반세기란 세월이 흘렀지만 이곳 사람들이 희망하는 '본토 수준의 회복'은 과연 언제 될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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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기 기자 rememb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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