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가깝고도 먼 도시 개성

입력 2022.07.02 (08:18) 수정 2022.07.0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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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달, 북한이 개성공단에 있는 우리 공장 설비들을 무단으로 가동해 학생들 교복을 생산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는데요.

한때는 남북 화합의 상징이었던 이 개성공단에서 우리 기업들이 철수한 지도 벌써 6년이 넘었습니다.

개성에 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마저 2년 전, 북한이 폭파시켰고요.

이러다 보니 남북을 이어 주던 끈, 개성이 우리에게 점차 잊혀져 가지 않나 싶은데요.

마침 개성과 관련한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이하영 리포터, 여기 다녀오셨죠?

[답변]

네, 개성의 생활상을 알아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품들을 만나 볼 수 있었는데요.

마치 개성에 다녀오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전시회였습니다.

[앵커]

어떤 게 가장 인상적이었을까요?

[답변]

개성에서 즐겨 먹는 음식들이 맛있어 보여 기억에 남고요.

특히 저는 전시회에서 만난 분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는데요.

개성에 얽힌 저마다의 추억을 한보따리씩 풀어놓으셨습니다.

지금 저와 함께 전시회장으로 가 보실까요?

[리포트]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해 남북협력의 주요 무대가 됐던 '개성' 만월대에서는 십여 년의 세월 동안 남북이 손을 맞잡고 유적들을 발굴했고, 관광은 물론 무엇보다 남북 합작 공단이 들어섰던 곳입니다.

현재는 모든 것이 멈춰 버렸지만 민족사에 켜켜이 쌓여 있는 개성을 서울의 한 전시회장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요.

서울과 직선거리로 58km, 차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개성은 고려왕조 4백 년 동안 수도였던 만큼 왕릉은 물론 박연폭포 등 가 볼 만한 곳들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이철성/건양대 총장/개성시민회원 : "개성역에서 내려서 고려에 왕릉들을 보고 넘어가서 박연폭포를 보고 다시 돌아오는 코스가 또 개성에서 하나의 근교로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 개성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시회에선 무엇보다 개성의 문화나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품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6·25 전쟁 이전엔 남한 땅이었다가 이후 북한 땅이 되는 바람에 고향을 잃게 된 개성 시민들과, 개성공단에 입주했다 철수한 기업인들이 함께 기획했다고 합니다.

[박천조/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센터장 : "공간적으로 개성이란 곳에 같이 있다가 공간을 잃어버린 두 분들. 이 두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또 현재를 보면서 미래를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는 그런 기회들이 된 것 같습니다."]

가깝고도 먼 도시 개성.

실제로 그 땅을 밟을 순 없지만 오늘 이곳에서 개성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데요.

과연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함께 보실까요.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건 한편에 차려진 맛깔스런 음식들인데요.

큼직한 모양의 약과와 떡, 인삼정과는 혼례 같은 큰 잔치에서 빠지면 안 되는 개성 음식입니다.

[윤숙자/한국전통음식연구소 소장 : "배피떡은 찹쌀을 불려서 쪄 가지고 그걸 쳐서 완전히 곱게 치질 않고 우툴우툴 밥알이 살아 있는 듯하게 해서 속엔 녹두소를 넣었어요."]

개성 토박이 집안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전쟁 통에 남쪽에 온 윤숙자 소장은 한평생 개성 요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 전시회에선 실향민이 된 개성 시민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도 접할 수 있었는데요.

[이철성/건양대 총장/개성시민회원 : "저희 아버님이 개성분이세요. 개성에서 공부를 하시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실 때 바로 6·25 전쟁이 났었어요. 송도중학교, 고등학교가 개성에 있던 게 지금은 인천 송도로 옮겨져 와 있는데요. 그 과정에서 성적증명서 하고 각종 서류들이 없어진 거예요."]

전쟁은 끝나도 여전히 혼란했던 시기.

취업에 필요한 성적증명서는 사라졌지만 교장 선생님이 써 준 이 서류가 힘이 됐습니다.

개성공단 주재원들은 이 체류증을 꼭 갖고 있어야 했다는데요.

정갈한 글씨체로 체류지와 유효 기간, 직위 등이 적혀 있습니다.

[안지현/도슨트 : "황우승 선생님 같은 경우는 개성공단에서 13년 동안 근무를 직접 하셨고요. 그래서 그 근무하는 당시 때 출입증이라든지 체류등록증을 모아 놓고."]

평화를 염원하는 예술 작품도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안지현/도슨트 : "이 작품은 비를 맞고 있는 대나무를 표현한 건데요. 비가 그치고 나면 해가 뜨면서 물기를 머금은 대나무가 더 강해지고 튼튼해지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은 우울하지만 향후엔 더 희망적일 거라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입니다."]

경색된 남북관계도 대나무 새순 돋아나듯 희망적인 날이 올 수 있을까요?

개성에는 남북 화합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이 있습니다.

하지만 2016년 남북관계가 얼어붙자 가동이 전면 중단됐는데요.

이곳에서 일하던 기업인들도 오늘 반가운 마음으로 전시회장을 찾았습니다.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기업인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개성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한때 개성공단엔 우리 기업 120여 곳이 입주해 5만 명 가까이 되는 북한 주민들을 고용했는데요.

남성복 제조 회사를 운영하는 전기경 대표는 2007년 8월, 개성공단에 처음 입주했습니다.

[전기경/2007년 개성공단 입주 : "남한 근로자수는 4명, 나머지는 우리가 250명 정도 있었는데 전부 북한 근로자들이고요."]

공장이 멈춘 지 6년이 흘렀지만 그때 만난 주민들을 잊을 수 없는데요.

[전기경/2007년 개성공단 입주 : "나이도 벌써 먹었을 것 같아요. 그때보단 다시 만나면 아가씨도 아줌마가 됐을 거고, 아저씨도 좀 늙었을 거 같고. 그래도 너무 감격스러울 거 같습니다. 통일되는 그런 기분일 거 같아요."]

누군가와 가까워졌다, 먹을 걸 나눌 수 있다는 얘긴데요.

그 가운데 최고의 간식은 뭐였을까요?

[송병태/한국산업단지공단 개성지사 지사장 : "북측 사람들한테도 초코파이와 커피믹스, 이 두 가지는 상당히 좋은 그런 간식거리였습니다."]

이야기보따리들은 많지만 지금은 그저 이렇게 사진으로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 곳.

전시를 둘러보며 소소하지만 행복했던 그때의 일상을 떠올려 보는데요.

[정태두/2008년 개성공단 입주 : "(이렇게 정말 사실적인 사진이잖아요. 다시 보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기분이 너무나 좋고, 빨리 가고 싶다 이런 생각밖에 안 들죠. 너무나도 개성공단이 그립습니다, 지금."]

과거와 현재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가득한, 아직 더 써내려 가야 할 게 많은 우리의 이야기.

너무 멀지 않게 저 개성 땅을 무대로 남북교류의 물꼬가 다시 트이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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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가깝고도 먼 도시 개성
    • 입력 2022-07-02 08:18:21
    • 수정2022-07-02 09: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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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달, 북한이 개성공단에 있는 우리 공장 설비들을 무단으로 가동해 학생들 교복을 생산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는데요.

한때는 남북 화합의 상징이었던 이 개성공단에서 우리 기업들이 철수한 지도 벌써 6년이 넘었습니다.

개성에 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마저 2년 전, 북한이 폭파시켰고요.

이러다 보니 남북을 이어 주던 끈, 개성이 우리에게 점차 잊혀져 가지 않나 싶은데요.

마침 개성과 관련한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이하영 리포터, 여기 다녀오셨죠?

[답변]

네, 개성의 생활상을 알아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품들을 만나 볼 수 있었는데요.

마치 개성에 다녀오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전시회였습니다.

[앵커]

어떤 게 가장 인상적이었을까요?

[답변]

개성에서 즐겨 먹는 음식들이 맛있어 보여 기억에 남고요.

특히 저는 전시회에서 만난 분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는데요.

개성에 얽힌 저마다의 추억을 한보따리씩 풀어놓으셨습니다.

지금 저와 함께 전시회장으로 가 보실까요?

[리포트]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해 남북협력의 주요 무대가 됐던 '개성' 만월대에서는 십여 년의 세월 동안 남북이 손을 맞잡고 유적들을 발굴했고, 관광은 물론 무엇보다 남북 합작 공단이 들어섰던 곳입니다.

현재는 모든 것이 멈춰 버렸지만 민족사에 켜켜이 쌓여 있는 개성을 서울의 한 전시회장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요.

서울과 직선거리로 58km, 차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개성은 고려왕조 4백 년 동안 수도였던 만큼 왕릉은 물론 박연폭포 등 가 볼 만한 곳들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이철성/건양대 총장/개성시민회원 : "개성역에서 내려서 고려에 왕릉들을 보고 넘어가서 박연폭포를 보고 다시 돌아오는 코스가 또 개성에서 하나의 근교로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 개성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시회에선 무엇보다 개성의 문화나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품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6·25 전쟁 이전엔 남한 땅이었다가 이후 북한 땅이 되는 바람에 고향을 잃게 된 개성 시민들과, 개성공단에 입주했다 철수한 기업인들이 함께 기획했다고 합니다.

[박천조/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센터장 : "공간적으로 개성이란 곳에 같이 있다가 공간을 잃어버린 두 분들. 이 두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또 현재를 보면서 미래를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는 그런 기회들이 된 것 같습니다."]

가깝고도 먼 도시 개성.

실제로 그 땅을 밟을 순 없지만 오늘 이곳에서 개성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데요.

과연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함께 보실까요.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건 한편에 차려진 맛깔스런 음식들인데요.

큼직한 모양의 약과와 떡, 인삼정과는 혼례 같은 큰 잔치에서 빠지면 안 되는 개성 음식입니다.

[윤숙자/한국전통음식연구소 소장 : "배피떡은 찹쌀을 불려서 쪄 가지고 그걸 쳐서 완전히 곱게 치질 않고 우툴우툴 밥알이 살아 있는 듯하게 해서 속엔 녹두소를 넣었어요."]

개성 토박이 집안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전쟁 통에 남쪽에 온 윤숙자 소장은 한평생 개성 요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 전시회에선 실향민이 된 개성 시민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도 접할 수 있었는데요.

[이철성/건양대 총장/개성시민회원 : "저희 아버님이 개성분이세요. 개성에서 공부를 하시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실 때 바로 6·25 전쟁이 났었어요. 송도중학교, 고등학교가 개성에 있던 게 지금은 인천 송도로 옮겨져 와 있는데요. 그 과정에서 성적증명서 하고 각종 서류들이 없어진 거예요."]

전쟁은 끝나도 여전히 혼란했던 시기.

취업에 필요한 성적증명서는 사라졌지만 교장 선생님이 써 준 이 서류가 힘이 됐습니다.

개성공단 주재원들은 이 체류증을 꼭 갖고 있어야 했다는데요.

정갈한 글씨체로 체류지와 유효 기간, 직위 등이 적혀 있습니다.

[안지현/도슨트 : "황우승 선생님 같은 경우는 개성공단에서 13년 동안 근무를 직접 하셨고요. 그래서 그 근무하는 당시 때 출입증이라든지 체류등록증을 모아 놓고."]

평화를 염원하는 예술 작품도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안지현/도슨트 : "이 작품은 비를 맞고 있는 대나무를 표현한 건데요. 비가 그치고 나면 해가 뜨면서 물기를 머금은 대나무가 더 강해지고 튼튼해지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은 우울하지만 향후엔 더 희망적일 거라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입니다."]

경색된 남북관계도 대나무 새순 돋아나듯 희망적인 날이 올 수 있을까요?

개성에는 남북 화합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이 있습니다.

하지만 2016년 남북관계가 얼어붙자 가동이 전면 중단됐는데요.

이곳에서 일하던 기업인들도 오늘 반가운 마음으로 전시회장을 찾았습니다.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기업인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개성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한때 개성공단엔 우리 기업 120여 곳이 입주해 5만 명 가까이 되는 북한 주민들을 고용했는데요.

남성복 제조 회사를 운영하는 전기경 대표는 2007년 8월, 개성공단에 처음 입주했습니다.

[전기경/2007년 개성공단 입주 : "남한 근로자수는 4명, 나머지는 우리가 250명 정도 있었는데 전부 북한 근로자들이고요."]

공장이 멈춘 지 6년이 흘렀지만 그때 만난 주민들을 잊을 수 없는데요.

[전기경/2007년 개성공단 입주 : "나이도 벌써 먹었을 것 같아요. 그때보단 다시 만나면 아가씨도 아줌마가 됐을 거고, 아저씨도 좀 늙었을 거 같고. 그래도 너무 감격스러울 거 같습니다. 통일되는 그런 기분일 거 같아요."]

누군가와 가까워졌다, 먹을 걸 나눌 수 있다는 얘긴데요.

그 가운데 최고의 간식은 뭐였을까요?

[송병태/한국산업단지공단 개성지사 지사장 : "북측 사람들한테도 초코파이와 커피믹스, 이 두 가지는 상당히 좋은 그런 간식거리였습니다."]

이야기보따리들은 많지만 지금은 그저 이렇게 사진으로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 곳.

전시를 둘러보며 소소하지만 행복했던 그때의 일상을 떠올려 보는데요.

[정태두/2008년 개성공단 입주 : "(이렇게 정말 사실적인 사진이잖아요. 다시 보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기분이 너무나 좋고, 빨리 가고 싶다 이런 생각밖에 안 들죠. 너무나도 개성공단이 그립습니다, 지금."]

과거와 현재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가득한, 아직 더 써내려 가야 할 게 많은 우리의 이야기.

너무 멀지 않게 저 개성 땅을 무대로 남북교류의 물꼬가 다시 트이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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