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세상을 떠난 13개월 유림이의 마지막을 보여드려야 했던 이유
입력 2022.08.20 (09:00)
수정 2022.10.2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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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제주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숨진 13개월 영아 유림이
2주 전 KBS 제주총국 동료인 문준영 기자로부터 제주대병원 내부 CCTV 파일을 건네받았습니다. 제주대병원에서 약물 과다 투여로 숨진 13개월 영아 유림이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습니다.
유림이가 응급실로 들어올 때부터 세상을 떠나 입관되는 장면까지 총 42시간을 10대의 카메라로 녹화한 내용이었습니다. 파일 크기만 24기가 바이트에 달했습니다.
[연관 기사]
13개월 영아 코로나 치료 중 사망…제주대병원 “투약 오류”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51609)
'유림이 사망사고' 병원 내부 CCTV 단독 입수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29039)
■ '42시간'…10대의 카메라에 담긴 기록
처음 CCTV를 둘러보며 놀랐던 장면은 평범한 유림이 모습이었습니다. 엄마 품에 안겨 응급실로 들어오며 유림이는 천진하게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병원을 찾은 여느 아기들과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유림이가 옮겨간 병동과 복도 등의 CCTV 화면을 통해 시간대별로 유림이와 의료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약물 과다 투약이 이뤄진 병실 내부 CCTV는 없었지만 사고가 난 이후 복도를 달려가는 간호사들, 병실 밖에 쭈그려 앉은 한 간호사, 유림이에게 이어지는 응급 처치 등을 통해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KBS 뉴스광장 제주(2022.08.10.)
엄마, 아빠가 숨을 거둔 유림이의 마지막을 보내는 장면도 영상에 담겨 있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은 렌즈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이 42시간의 기록은 사고 당시 상황은 물론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였습니다.
■ 있는 그대로의 '팩트'를 보여주는 영상
편집 방향은 영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였습니다. 지금까지 유림이 사건은 기록과 문서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유림이 사건의 핵심은 의료진이 약물을 과다 투여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사건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팩트를 보여주는 영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재기자와 시간순으로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고 이야기했습니다. 분석과 자료 정리보다는 시청자가 사고 전후를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KBS 뉴스광장 제주(2022.08.10.)
나흘간 CCTV 주요 장면을 정리했습니다. CCTV가 나온 시간과 실제 사건 발생 시간이 달라 파일마다 시간을 대조해 최대한 시간을 정확히 맞추고 중환자실에서 유림이 부모가 주저앉는 모습, 코로나 사망자에게 입히는 대형 포켓과 관을 비닐로 싸는 모습 등을 일일이 찾아 모았습니다.
이후 영상 시간대에 맞게 의료진의 보고 여부와 의무기록 작성, 삭제 상황 시간 등을 비교해 시간대 별로 당시 상황을 편집해 보도했습니다.
■ 유림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드려야 했던 이유
취재 과정에서 고민도 작지 않았습니다. 내부에서도 많은 논의를 했던 내용은 유림이가 눈을 감을 때와 사망 후의 모습을 리포트에 담을지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뉴스는 시신이나 인명 피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의 영상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시청자가 충격을 받거나 불필요한 불안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KBS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은 "방송은 시청자에게 지나친 충격이나 불안감, 혐오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유림이의 심박 수가 뛰지 않는 장면이나 중환자실에서 유림이가 관에 담기는 장면은 방송하지 않아야 할 내용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림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드린 이유는 제주대병원의 사건 은폐가 없었다면 유림이의 장례 절차가 달라졌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림이는 코로나19 장례절차에 따라 중환자실에서 입관한 뒤 바로 다음 날 화장됐습니다. 의료진이 약물 과다 투여를 병원에 알리지 않아 제주도 방역 당국도 유림이를 '입원 치료 중 사망'으로 기록했습니다. 병원의 은폐로 부검조차 하지 못한 겁니다.
제주도 방역당국이 유림이의 사망을 코로나19에 의한 사망으로 발표했던 자료
이 때문에 사건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유림이의 명확한 사인과 책임 소재는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의료진이 기준치의 50배에 달하는 약물을 주입했음에도 말입니다.
유림이의 마지막 모습은 제주대병원의 사건 은폐의 결과이자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유림이는 단순 의료사고 피해자가 아니라, 그 피해마저 인정받지 못한 채 부모님 곁을 떠날 뻔했습니다. 유림이의 마지막을 뉴스에 담은 이유입니다.
■ "수사 중"…입 닫고 있는 제주대병원
이번 사건은 지난 4월 '뉴스1'의 보도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후 JTBC에서 의무기록 삭제 정황 등을 보도하며 여러 언론이 비중 있게 사안을 다뤘습니다. KBS도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 사건을 연속 보도하고 있습니다.
KBS는 특히 투약 사고와 관련해 당시 의료 기록 삭제와 관련한 면담 내용이 담긴 내부 보고서(환자안전사고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했고, '보상과 소송·국민청원과 언론 보도에 대한 대응'이 담긴 병원 내부 회의록도 입수해 보도했습니다.
이 밖에도 투약 사고 발생 전 간호사가 유림이의 상태를 확인하지도 않고 엉터리로 작성한 임상 관찰기록과 입실동의서와 각종 안내문에 간호사가 유림이 엄마의 서명을 위조한 사실 등도 밝혀냈습니다.
KBS 뉴스 7 제주(2022.05.17.)
취재진은 후속 보도를 이어올 때마다 제주대병원 측에 입장을 물었지만 병원은 수사 중이라며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언론 보도가 나오자 부원장 명의로 사과 브리핑을 진행한 뒤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겁니다.
KBS 뉴스9 제주(2022.05.26.)
경찰은 의료진 11명을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수사는 의료 감정 결과가 나오는 대로 조만간 마무리돼 검찰에 송치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CCTV 보도 이후 유림이 부모님으로부터 유림이의 생전 영상 4개를 더 받았습니다. 부모님은 "뉴스에 유림이의 밝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전해왔습니다. 철저한 수사와 진상규명으로 유림이의 더 밝은 모습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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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8-20 09:00:20
- 수정2022-10-25 17:04:31
2주 전 KBS 제주총국 동료인 문준영 기자로부터 제주대병원 내부 CCTV 파일을 건네받았습니다. 제주대병원에서 약물 과다 투여로 숨진 13개월 영아 유림이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습니다.
유림이가 응급실로 들어올 때부터 세상을 떠나 입관되는 장면까지 총 42시간을 10대의 카메라로 녹화한 내용이었습니다. 파일 크기만 24기가 바이트에 달했습니다.
[연관 기사]
13개월 영아 코로나 치료 중 사망…제주대병원 “투약 오류”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51609)
'유림이 사망사고' 병원 내부 CCTV 단독 입수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29039)
■ '42시간'…10대의 카메라에 담긴 기록
처음 CCTV를 둘러보며 놀랐던 장면은 평범한 유림이 모습이었습니다. 엄마 품에 안겨 응급실로 들어오며 유림이는 천진하게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병원을 찾은 여느 아기들과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유림이가 옮겨간 병동과 복도 등의 CCTV 화면을 통해 시간대별로 유림이와 의료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약물 과다 투약이 이뤄진 병실 내부 CCTV는 없었지만 사고가 난 이후 복도를 달려가는 간호사들, 병실 밖에 쭈그려 앉은 한 간호사, 유림이에게 이어지는 응급 처치 등을 통해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숨을 거둔 유림이의 마지막을 보내는 장면도 영상에 담겨 있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은 렌즈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이 42시간의 기록은 사고 당시 상황은 물론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였습니다.
■ 있는 그대로의 '팩트'를 보여주는 영상
편집 방향은 영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였습니다. 지금까지 유림이 사건은 기록과 문서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유림이 사건의 핵심은 의료진이 약물을 과다 투여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사건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팩트를 보여주는 영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재기자와 시간순으로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고 이야기했습니다. 분석과 자료 정리보다는 시청자가 사고 전후를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나흘간 CCTV 주요 장면을 정리했습니다. CCTV가 나온 시간과 실제 사건 발생 시간이 달라 파일마다 시간을 대조해 최대한 시간을 정확히 맞추고 중환자실에서 유림이 부모가 주저앉는 모습, 코로나 사망자에게 입히는 대형 포켓과 관을 비닐로 싸는 모습 등을 일일이 찾아 모았습니다.
이후 영상 시간대에 맞게 의료진의 보고 여부와 의무기록 작성, 삭제 상황 시간 등을 비교해 시간대 별로 당시 상황을 편집해 보도했습니다.
■ 유림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드려야 했던 이유
취재 과정에서 고민도 작지 않았습니다. 내부에서도 많은 논의를 했던 내용은 유림이가 눈을 감을 때와 사망 후의 모습을 리포트에 담을지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뉴스는 시신이나 인명 피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의 영상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시청자가 충격을 받거나 불필요한 불안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KBS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은 "방송은 시청자에게 지나친 충격이나 불안감, 혐오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유림이의 심박 수가 뛰지 않는 장면이나 중환자실에서 유림이가 관에 담기는 장면은 방송하지 않아야 할 내용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림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드린 이유는 제주대병원의 사건 은폐가 없었다면 유림이의 장례 절차가 달라졌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림이는 코로나19 장례절차에 따라 중환자실에서 입관한 뒤 바로 다음 날 화장됐습니다. 의료진이 약물 과다 투여를 병원에 알리지 않아 제주도 방역 당국도 유림이를 '입원 치료 중 사망'으로 기록했습니다. 병원의 은폐로 부검조차 하지 못한 겁니다.
이 때문에 사건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유림이의 명확한 사인과 책임 소재는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의료진이 기준치의 50배에 달하는 약물을 주입했음에도 말입니다.
유림이의 마지막 모습은 제주대병원의 사건 은폐의 결과이자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유림이는 단순 의료사고 피해자가 아니라, 그 피해마저 인정받지 못한 채 부모님 곁을 떠날 뻔했습니다. 유림이의 마지막을 뉴스에 담은 이유입니다.
■ "수사 중"…입 닫고 있는 제주대병원
이번 사건은 지난 4월 '뉴스1'의 보도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후 JTBC에서 의무기록 삭제 정황 등을 보도하며 여러 언론이 비중 있게 사안을 다뤘습니다. KBS도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 사건을 연속 보도하고 있습니다.
KBS는 특히 투약 사고와 관련해 당시 의료 기록 삭제와 관련한 면담 내용이 담긴 내부 보고서(환자안전사고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했고, '보상과 소송·국민청원과 언론 보도에 대한 대응'이 담긴 병원 내부 회의록도 입수해 보도했습니다.
이 밖에도 투약 사고 발생 전 간호사가 유림이의 상태를 확인하지도 않고 엉터리로 작성한 임상 관찰기록과 입실동의서와 각종 안내문에 간호사가 유림이 엄마의 서명을 위조한 사실 등도 밝혀냈습니다.
취재진은 후속 보도를 이어올 때마다 제주대병원 측에 입장을 물었지만 병원은 수사 중이라며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언론 보도가 나오자 부원장 명의로 사과 브리핑을 진행한 뒤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겁니다.
경찰은 의료진 11명을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수사는 의료 감정 결과가 나오는 대로 조만간 마무리돼 검찰에 송치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CCTV 보도 이후 유림이 부모님으로부터 유림이의 생전 영상 4개를 더 받았습니다. 부모님은 "뉴스에 유림이의 밝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전해왔습니다. 철저한 수사와 진상규명으로 유림이의 더 밝은 모습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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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훈 기자 ynw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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