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해체’ 고르바초프 별세…푸틴 깊은 애도

입력 2022.08.31 (21:44) 수정 2022.08.3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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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작전명 "태백산"

1990년 냉전시기 극비리 추진되던 한국과 소련 정상회담에 붙은 암호명입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처음 손을 맞잡은 소련의 정상 고르바초프는 이념 대결의 시대인 20세기 냉전을 마무리한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뒤에도 고르바초프는 평화의 씨앗을 심기 위해 긴 시간 활동했고 최근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향해 전쟁을 멈출 것을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시각 오늘 새벽, 고르바초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르바초프와 정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 역시 '깊은 애도'를 표했습니다.

모스크바 조빛나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비에트 연방 대통령이 현지시각 30일,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습니다.

향년 91살로 오랜 기간 투병해 왔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정치인이었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습니다.

각국 정상들도 "냉전을 끝내고 철의 장막을 무너뜨린 지도자", "용기있는 지도자"였다며 조의를 표했습니다.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집권한 고르바초프는 이후 6년간 경직된 소련에 개혁(페레스트로이카),개방(글라스노스트) 정책을 밀어붙였습니다.

[고르바초프/옛 소련 대통령/1987년 11월 : "우리는 더 많은 기업,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개혁(페레스트로이카)'를 빠른 속도로 이뤄내고 사회주의 발전에 새로운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동·서독 통일을 사실상 용인했고 반 세기동안 이어지던 냉전의 종식을 공식 선언해 노벨평화상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경제가 나빠지고 중앙권력이 약해지면서 1991년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등 소련 내 11개 공화국들이 독립국가연합 결성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고르바초프/옛 소련 대통령/1991년 12월 : "독립국가연합의 설립으로 이어진 이 상황에서 나는 소련의 대통령으로서 행동하는 것을 중단합니다."]

소련의 붕괴를 직접 목격한 러시아 국민들에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로 평가되는 이유기도 합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에 대한 장례 일정과 장소는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묘지에 묻힌 아내 옆에서 영면에 들게 됩니다.

모스크바에서 KBS 뉴스 조빛나입니다.

영상편집:고응용/자료조사:안소현/그래픽:고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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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전 해체’ 고르바초프 별세…푸틴 깊은 애도
    • 입력 2022-08-31 21:44:06
    • 수정2022-08-31 22:11:40
    뉴스 9
[앵커]

작전명 "태백산"

1990년 냉전시기 극비리 추진되던 한국과 소련 정상회담에 붙은 암호명입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처음 손을 맞잡은 소련의 정상 고르바초프는 이념 대결의 시대인 20세기 냉전을 마무리한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뒤에도 고르바초프는 평화의 씨앗을 심기 위해 긴 시간 활동했고 최근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향해 전쟁을 멈출 것을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시각 오늘 새벽, 고르바초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르바초프와 정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 역시 '깊은 애도'를 표했습니다.

모스크바 조빛나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비에트 연방 대통령이 현지시각 30일,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습니다.

향년 91살로 오랜 기간 투병해 왔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정치인이었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습니다.

각국 정상들도 "냉전을 끝내고 철의 장막을 무너뜨린 지도자", "용기있는 지도자"였다며 조의를 표했습니다.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집권한 고르바초프는 이후 6년간 경직된 소련에 개혁(페레스트로이카),개방(글라스노스트) 정책을 밀어붙였습니다.

[고르바초프/옛 소련 대통령/1987년 11월 : "우리는 더 많은 기업,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개혁(페레스트로이카)'를 빠른 속도로 이뤄내고 사회주의 발전에 새로운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동·서독 통일을 사실상 용인했고 반 세기동안 이어지던 냉전의 종식을 공식 선언해 노벨평화상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경제가 나빠지고 중앙권력이 약해지면서 1991년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등 소련 내 11개 공화국들이 독립국가연합 결성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고르바초프/옛 소련 대통령/1991년 12월 : "독립국가연합의 설립으로 이어진 이 상황에서 나는 소련의 대통령으로서 행동하는 것을 중단합니다."]

소련의 붕괴를 직접 목격한 러시아 국민들에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로 평가되는 이유기도 합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에 대한 장례 일정과 장소는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묘지에 묻힌 아내 옆에서 영면에 들게 됩니다.

모스크바에서 KBS 뉴스 조빛나입니다.

영상편집:고응용/자료조사:안소현/그래픽:고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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