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건축물에 녹아든 남북협력의 흔적
입력 2022.10.15 (08:18)
수정 2022.10.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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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반도 정세는 점점 얼어붙고 있지만 역사의 시계를 잠시 돌려 보면 남북 간엔 훈풍이 불던 때도 있었습니다.
네, 남북 교류가 활발했던 때가 언제였나 싶은 데요.
오늘 <통일로 미래로>에서는 그 교류의 흔적들을 북한의 건축물을 통해 살펴보려 합니다.
이하영 리포터, 이런 내용을 상세히 담은 책이 출간됐다고요?
[답변]
네, 지난 5월 나온 책인데요.
북한을 직접 오가며 건설, 건축 작업에 참여했던 한 건축사가 당시의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우리 건축사가 직접 가서 지었다는 건데, 꽤 흥미롭네요. 어떤 건물들이 있죠?
[답변]
네, 의외로 많더라고요.
우리가 영상이나 사진으로 접했던 금강산 관광지구와 평양의 체육관을 어떻게 지었고, 이 건축을 매개로 어떤 교류가 이뤄졌는지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당시의 이야기 함께 들어보실까요?
[리포트]
임진강 너머로 북녘땅이 어슴푸레 보이는 이곳에한옥 모양의 성당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2006년 4월 첫 삽을 뜬 뒤, 2013년 6월에 다 지었는데요.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한 민족끼리 총을 겨눈 데 대해 속죄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합니다.
6·25 전쟁 때 소실됐다는 북한 신의주의 ‘진사동 성당’ 외관을 그대로 복원해 냈는데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북한에서의 다양한 건설 사업에 직접 관여했던 변상욱 건축사에게 그동안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성당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폭 20m, 높이 7m로 만든 거대한 유리 모자이크 돔은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북쪽에다가 이런 성당을 짓고 그 성당 내부에 장식하기 위한 성화를 요청하니까 만수대 창작단에 있는 예술가분들이 (중국) 단둥에 가서 작업을 하면 가능하다고 얘기를 해서 7명이 단둥에 오셔서 체육관을 빌려서 이 모자이크 작업을 했고요. 2명은 공훈 미술가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디자인을 보내면 북쪽에서 제작하고,다시 넘겨받아 모자이크를 설치하는 식으로6개월 넘게 걸렸다고 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매일 작업하는 걸 사진으로 찍어서 인터넷으로 서울로 보내면 서울에서 사진을 보고 작업 과정을 확인해서 어떤 것들이 보완이 돼야 된다, 라든지 이런 걸. 그렇게 작업을 마무리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남북 주민의 땀방울이 함께 녹아있는 미술품은 국내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데요.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평화라는 글씨가 남북 간의 화합과 평화를 염원하는 그런 기도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며 남북이 교류했던 역사가 이곳에 이렇게 남아있는데요. 북녘에서도 남북이 함께 작업했던 건축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남북 선수들이 손을 맞잡고 줄지어 들어섭니다.
특별한 경기가 치러진 이곳은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인데요.
이 체육관의 건설 관리를 담당했던 변상욱 건축사는 2003년 개관 당시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 개관식 할 때 농구 경기를 했었습니다. 북쪽 선수 중에 2m 30cm가 넘는 리명훈 선수, 유명한 농구 선수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NBA에도 진출을 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 이 사진에 정면에 보이는 분이 리명훈 선수고요."]
우리 측 현대와 북측 백두산 건축 연구원이 함께 지은 곳인데요.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던 시절이라 과정도 순조로웠다고 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북쪽이 기본 설계를 하고 남쪽에서 실시 설계를 해서 남북이 공동으로 설계를 했다는 특징이 있다고 생각되고요. 굉장히 좋은 재료들을 사용했습니다. 지붕은 스테인리스 천장재를 사용했고요. 벽재도 보시는 것처럼 석재로 마감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던 남북 관계의 영향을 건축 분야도 피해가진 못했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될 무렵, 가장 먼저 들인 숙박시설인 해금강호텔은 바지선 위에 지은 독특한 설계였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발전 시설도 돼 있고 그리고 담수화 시설도 돼있어서 용수도 자체적으로 공급할 수 있고요. 오수처리도 가능한 시설이어서 초창기에 (2039) 굉장히 유용하게 쓸 수 있었던 건물입니다."]
2019년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에 있는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는데요.
[조선중앙TV : "볼품없이 들어앉아 명산의 경관을 손상시키는 너절한 시설물들을 싹 다 들어내고 우리 식으로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꾸립시다."]
그리고 지난 3월, 해금강호텔의 해체 정황이 위성사진을 통해 포착됐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사실은 의미가 있는 건물인데 철거가 돼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고요. 좀 보존이 됐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금강산에는 원래 있던 온천을 대신할 큰 규모의 온천장도 새로 지었는데요.
금강산 관광이 진행될 당시 모든 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고 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금강산 온천에 있는 노천탕 사진인데요. 지금 보시는 돌은 금강산에서 직접 채취를 해서 사용한 돌들입니다. 겨울에 눈이 올 때 온천을 했던 적이 있는데 제 평생에 가장 인상적인 기억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건축 교류의 현장도 있습니다.
황해북도 천덕리의 농촌마을을 한 대북 지원 단체의 지원으로 2005년부터 만든 건데요.
단순히 집만 지은 게 아니라, 생활 반경이 있는 마을 전체를 꾸리는 대규모 작업이었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도로라든지 용수 공급 시설이라든지 이런 것도 다 설치를 했고요. 또 (집) 100채 마다 탁아소, 유치원 이런 것들을 설치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중엔 마을회관에 해당하는 그런 시설도 같이 짓기도 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북 주민들의 생활 습관과 문화적 차이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화장실은 원래 수세식 변기로 짓는 것을 제안했었습니다. 그런데 북쪽에선 인분을 비료로 써야 되기 때문에 수세식이 아니고 저희가 알고 있는 재래식으로 설치를 해 달라 해서 재래식 변기를 사용했고요."]
그러나 2008년 이후 남북 관계는 급속히 악화됐고, 건설도 중단됐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남북 관계가 안 좋아지다 보니까 (집) 4백 채 정도를 짓고 중단이 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천덕리 농촌 마을은 기존의 건축물과는 다른 의미 있는 공동 작업이었다고 자평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북쪽 주민들한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설을 지은 것은 거의 최초였다고 생각이 되고 유일한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남북은 한때나마 사람이 오가고, 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건축’을 매개로 소통했던 귀중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데요.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남북이 공동 설계를 한 것들이 몇 개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만나서 같이 작업을 하진 못했거든요. 북쪽 사람들하고 같이 같은 공간에서 논의를 하면서 디자인을 해보는 그런 일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관계가 풀리면 다시 한 공간에서 남북의 건축가들이 머리를 맞대며 평화를 위한 작업을 함께 하기를 꿈꿔봅니다.
한반도 정세는 점점 얼어붙고 있지만 역사의 시계를 잠시 돌려 보면 남북 간엔 훈풍이 불던 때도 있었습니다.
네, 남북 교류가 활발했던 때가 언제였나 싶은 데요.
오늘 <통일로 미래로>에서는 그 교류의 흔적들을 북한의 건축물을 통해 살펴보려 합니다.
이하영 리포터, 이런 내용을 상세히 담은 책이 출간됐다고요?
[답변]
네, 지난 5월 나온 책인데요.
북한을 직접 오가며 건설, 건축 작업에 참여했던 한 건축사가 당시의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우리 건축사가 직접 가서 지었다는 건데, 꽤 흥미롭네요. 어떤 건물들이 있죠?
[답변]
네, 의외로 많더라고요.
우리가 영상이나 사진으로 접했던 금강산 관광지구와 평양의 체육관을 어떻게 지었고, 이 건축을 매개로 어떤 교류가 이뤄졌는지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당시의 이야기 함께 들어보실까요?
[리포트]
임진강 너머로 북녘땅이 어슴푸레 보이는 이곳에한옥 모양의 성당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2006년 4월 첫 삽을 뜬 뒤, 2013년 6월에 다 지었는데요.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한 민족끼리 총을 겨눈 데 대해 속죄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합니다.
6·25 전쟁 때 소실됐다는 북한 신의주의 ‘진사동 성당’ 외관을 그대로 복원해 냈는데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북한에서의 다양한 건설 사업에 직접 관여했던 변상욱 건축사에게 그동안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성당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폭 20m, 높이 7m로 만든 거대한 유리 모자이크 돔은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북쪽에다가 이런 성당을 짓고 그 성당 내부에 장식하기 위한 성화를 요청하니까 만수대 창작단에 있는 예술가분들이 (중국) 단둥에 가서 작업을 하면 가능하다고 얘기를 해서 7명이 단둥에 오셔서 체육관을 빌려서 이 모자이크 작업을 했고요. 2명은 공훈 미술가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디자인을 보내면 북쪽에서 제작하고,다시 넘겨받아 모자이크를 설치하는 식으로6개월 넘게 걸렸다고 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매일 작업하는 걸 사진으로 찍어서 인터넷으로 서울로 보내면 서울에서 사진을 보고 작업 과정을 확인해서 어떤 것들이 보완이 돼야 된다, 라든지 이런 걸. 그렇게 작업을 마무리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남북 주민의 땀방울이 함께 녹아있는 미술품은 국내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데요.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평화라는 글씨가 남북 간의 화합과 평화를 염원하는 그런 기도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며 남북이 교류했던 역사가 이곳에 이렇게 남아있는데요. 북녘에서도 남북이 함께 작업했던 건축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남북 선수들이 손을 맞잡고 줄지어 들어섭니다.
특별한 경기가 치러진 이곳은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인데요.
이 체육관의 건설 관리를 담당했던 변상욱 건축사는 2003년 개관 당시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 개관식 할 때 농구 경기를 했었습니다. 북쪽 선수 중에 2m 30cm가 넘는 리명훈 선수, 유명한 농구 선수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NBA에도 진출을 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 이 사진에 정면에 보이는 분이 리명훈 선수고요."]
우리 측 현대와 북측 백두산 건축 연구원이 함께 지은 곳인데요.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던 시절이라 과정도 순조로웠다고 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북쪽이 기본 설계를 하고 남쪽에서 실시 설계를 해서 남북이 공동으로 설계를 했다는 특징이 있다고 생각되고요. 굉장히 좋은 재료들을 사용했습니다. 지붕은 스테인리스 천장재를 사용했고요. 벽재도 보시는 것처럼 석재로 마감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던 남북 관계의 영향을 건축 분야도 피해가진 못했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될 무렵, 가장 먼저 들인 숙박시설인 해금강호텔은 바지선 위에 지은 독특한 설계였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발전 시설도 돼 있고 그리고 담수화 시설도 돼있어서 용수도 자체적으로 공급할 수 있고요. 오수처리도 가능한 시설이어서 초창기에 (2039) 굉장히 유용하게 쓸 수 있었던 건물입니다."]
2019년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에 있는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는데요.
[조선중앙TV : "볼품없이 들어앉아 명산의 경관을 손상시키는 너절한 시설물들을 싹 다 들어내고 우리 식으로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꾸립시다."]
그리고 지난 3월, 해금강호텔의 해체 정황이 위성사진을 통해 포착됐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사실은 의미가 있는 건물인데 철거가 돼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고요. 좀 보존이 됐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금강산에는 원래 있던 온천을 대신할 큰 규모의 온천장도 새로 지었는데요.
금강산 관광이 진행될 당시 모든 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고 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금강산 온천에 있는 노천탕 사진인데요. 지금 보시는 돌은 금강산에서 직접 채취를 해서 사용한 돌들입니다. 겨울에 눈이 올 때 온천을 했던 적이 있는데 제 평생에 가장 인상적인 기억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건축 교류의 현장도 있습니다.
황해북도 천덕리의 농촌마을을 한 대북 지원 단체의 지원으로 2005년부터 만든 건데요.
단순히 집만 지은 게 아니라, 생활 반경이 있는 마을 전체를 꾸리는 대규모 작업이었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도로라든지 용수 공급 시설이라든지 이런 것도 다 설치를 했고요. 또 (집) 100채 마다 탁아소, 유치원 이런 것들을 설치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중엔 마을회관에 해당하는 그런 시설도 같이 짓기도 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북 주민들의 생활 습관과 문화적 차이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화장실은 원래 수세식 변기로 짓는 것을 제안했었습니다. 그런데 북쪽에선 인분을 비료로 써야 되기 때문에 수세식이 아니고 저희가 알고 있는 재래식으로 설치를 해 달라 해서 재래식 변기를 사용했고요."]
그러나 2008년 이후 남북 관계는 급속히 악화됐고, 건설도 중단됐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남북 관계가 안 좋아지다 보니까 (집) 4백 채 정도를 짓고 중단이 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천덕리 농촌 마을은 기존의 건축물과는 다른 의미 있는 공동 작업이었다고 자평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북쪽 주민들한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설을 지은 것은 거의 최초였다고 생각이 되고 유일한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남북은 한때나마 사람이 오가고, 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건축’을 매개로 소통했던 귀중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데요.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남북이 공동 설계를 한 것들이 몇 개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만나서 같이 작업을 하진 못했거든요. 북쪽 사람들하고 같이 같은 공간에서 논의를 하면서 디자인을 해보는 그런 일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관계가 풀리면 다시 한 공간에서 남북의 건축가들이 머리를 맞대며 평화를 위한 작업을 함께 하기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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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10-15 08:18:08
- 수정2022-10-15 08:36:03
[앵커]
한반도 정세는 점점 얼어붙고 있지만 역사의 시계를 잠시 돌려 보면 남북 간엔 훈풍이 불던 때도 있었습니다.
네, 남북 교류가 활발했던 때가 언제였나 싶은 데요.
오늘 <통일로 미래로>에서는 그 교류의 흔적들을 북한의 건축물을 통해 살펴보려 합니다.
이하영 리포터, 이런 내용을 상세히 담은 책이 출간됐다고요?
[답변]
네, 지난 5월 나온 책인데요.
북한을 직접 오가며 건설, 건축 작업에 참여했던 한 건축사가 당시의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우리 건축사가 직접 가서 지었다는 건데, 꽤 흥미롭네요. 어떤 건물들이 있죠?
[답변]
네, 의외로 많더라고요.
우리가 영상이나 사진으로 접했던 금강산 관광지구와 평양의 체육관을 어떻게 지었고, 이 건축을 매개로 어떤 교류가 이뤄졌는지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당시의 이야기 함께 들어보실까요?
[리포트]
임진강 너머로 북녘땅이 어슴푸레 보이는 이곳에한옥 모양의 성당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2006년 4월 첫 삽을 뜬 뒤, 2013년 6월에 다 지었는데요.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한 민족끼리 총을 겨눈 데 대해 속죄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합니다.
6·25 전쟁 때 소실됐다는 북한 신의주의 ‘진사동 성당’ 외관을 그대로 복원해 냈는데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북한에서의 다양한 건설 사업에 직접 관여했던 변상욱 건축사에게 그동안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성당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폭 20m, 높이 7m로 만든 거대한 유리 모자이크 돔은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북쪽에다가 이런 성당을 짓고 그 성당 내부에 장식하기 위한 성화를 요청하니까 만수대 창작단에 있는 예술가분들이 (중국) 단둥에 가서 작업을 하면 가능하다고 얘기를 해서 7명이 단둥에 오셔서 체육관을 빌려서 이 모자이크 작업을 했고요. 2명은 공훈 미술가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디자인을 보내면 북쪽에서 제작하고,다시 넘겨받아 모자이크를 설치하는 식으로6개월 넘게 걸렸다고 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매일 작업하는 걸 사진으로 찍어서 인터넷으로 서울로 보내면 서울에서 사진을 보고 작업 과정을 확인해서 어떤 것들이 보완이 돼야 된다, 라든지 이런 걸. 그렇게 작업을 마무리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남북 주민의 땀방울이 함께 녹아있는 미술품은 국내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데요.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평화라는 글씨가 남북 간의 화합과 평화를 염원하는 그런 기도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며 남북이 교류했던 역사가 이곳에 이렇게 남아있는데요. 북녘에서도 남북이 함께 작업했던 건축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남북 선수들이 손을 맞잡고 줄지어 들어섭니다.
특별한 경기가 치러진 이곳은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인데요.
이 체육관의 건설 관리를 담당했던 변상욱 건축사는 2003년 개관 당시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 개관식 할 때 농구 경기를 했었습니다. 북쪽 선수 중에 2m 30cm가 넘는 리명훈 선수, 유명한 농구 선수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NBA에도 진출을 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 이 사진에 정면에 보이는 분이 리명훈 선수고요."]
우리 측 현대와 북측 백두산 건축 연구원이 함께 지은 곳인데요.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던 시절이라 과정도 순조로웠다고 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북쪽이 기본 설계를 하고 남쪽에서 실시 설계를 해서 남북이 공동으로 설계를 했다는 특징이 있다고 생각되고요. 굉장히 좋은 재료들을 사용했습니다. 지붕은 스테인리스 천장재를 사용했고요. 벽재도 보시는 것처럼 석재로 마감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던 남북 관계의 영향을 건축 분야도 피해가진 못했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될 무렵, 가장 먼저 들인 숙박시설인 해금강호텔은 바지선 위에 지은 독특한 설계였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발전 시설도 돼 있고 그리고 담수화 시설도 돼있어서 용수도 자체적으로 공급할 수 있고요. 오수처리도 가능한 시설이어서 초창기에 (2039) 굉장히 유용하게 쓸 수 있었던 건물입니다."]
2019년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에 있는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는데요.
[조선중앙TV : "볼품없이 들어앉아 명산의 경관을 손상시키는 너절한 시설물들을 싹 다 들어내고 우리 식으로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꾸립시다."]
그리고 지난 3월, 해금강호텔의 해체 정황이 위성사진을 통해 포착됐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사실은 의미가 있는 건물인데 철거가 돼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고요. 좀 보존이 됐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금강산에는 원래 있던 온천을 대신할 큰 규모의 온천장도 새로 지었는데요.
금강산 관광이 진행될 당시 모든 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고 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금강산 온천에 있는 노천탕 사진인데요. 지금 보시는 돌은 금강산에서 직접 채취를 해서 사용한 돌들입니다. 겨울에 눈이 올 때 온천을 했던 적이 있는데 제 평생에 가장 인상적인 기억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건축 교류의 현장도 있습니다.
황해북도 천덕리의 농촌마을을 한 대북 지원 단체의 지원으로 2005년부터 만든 건데요.
단순히 집만 지은 게 아니라, 생활 반경이 있는 마을 전체를 꾸리는 대규모 작업이었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도로라든지 용수 공급 시설이라든지 이런 것도 다 설치를 했고요. 또 (집) 100채 마다 탁아소, 유치원 이런 것들을 설치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중엔 마을회관에 해당하는 그런 시설도 같이 짓기도 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북 주민들의 생활 습관과 문화적 차이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화장실은 원래 수세식 변기로 짓는 것을 제안했었습니다. 그런데 북쪽에선 인분을 비료로 써야 되기 때문에 수세식이 아니고 저희가 알고 있는 재래식으로 설치를 해 달라 해서 재래식 변기를 사용했고요."]
그러나 2008년 이후 남북 관계는 급속히 악화됐고, 건설도 중단됐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남북 관계가 안 좋아지다 보니까 (집) 4백 채 정도를 짓고 중단이 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천덕리 농촌 마을은 기존의 건축물과는 다른 의미 있는 공동 작업이었다고 자평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북쪽 주민들한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설을 지은 것은 거의 최초였다고 생각이 되고 유일한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남북은 한때나마 사람이 오가고, 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건축’을 매개로 소통했던 귀중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데요.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남북이 공동 설계를 한 것들이 몇 개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만나서 같이 작업을 하진 못했거든요. 북쪽 사람들하고 같이 같은 공간에서 논의를 하면서 디자인을 해보는 그런 일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관계가 풀리면 다시 한 공간에서 남북의 건축가들이 머리를 맞대며 평화를 위한 작업을 함께 하기를 꿈꿔봅니다.
한반도 정세는 점점 얼어붙고 있지만 역사의 시계를 잠시 돌려 보면 남북 간엔 훈풍이 불던 때도 있었습니다.
네, 남북 교류가 활발했던 때가 언제였나 싶은 데요.
오늘 <통일로 미래로>에서는 그 교류의 흔적들을 북한의 건축물을 통해 살펴보려 합니다.
이하영 리포터, 이런 내용을 상세히 담은 책이 출간됐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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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난 5월 나온 책인데요.
북한을 직접 오가며 건설, 건축 작업에 참여했던 한 건축사가 당시의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우리 건축사가 직접 가서 지었다는 건데, 꽤 흥미롭네요. 어떤 건물들이 있죠?
[답변]
네, 의외로 많더라고요.
우리가 영상이나 사진으로 접했던 금강산 관광지구와 평양의 체육관을 어떻게 지었고, 이 건축을 매개로 어떤 교류가 이뤄졌는지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당시의 이야기 함께 들어보실까요?
[리포트]
임진강 너머로 북녘땅이 어슴푸레 보이는 이곳에한옥 모양의 성당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2006년 4월 첫 삽을 뜬 뒤, 2013년 6월에 다 지었는데요.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한 민족끼리 총을 겨눈 데 대해 속죄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합니다.
6·25 전쟁 때 소실됐다는 북한 신의주의 ‘진사동 성당’ 외관을 그대로 복원해 냈는데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북한에서의 다양한 건설 사업에 직접 관여했던 변상욱 건축사에게 그동안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성당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폭 20m, 높이 7m로 만든 거대한 유리 모자이크 돔은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북쪽에다가 이런 성당을 짓고 그 성당 내부에 장식하기 위한 성화를 요청하니까 만수대 창작단에 있는 예술가분들이 (중국) 단둥에 가서 작업을 하면 가능하다고 얘기를 해서 7명이 단둥에 오셔서 체육관을 빌려서 이 모자이크 작업을 했고요. 2명은 공훈 미술가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디자인을 보내면 북쪽에서 제작하고,다시 넘겨받아 모자이크를 설치하는 식으로6개월 넘게 걸렸다고 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매일 작업하는 걸 사진으로 찍어서 인터넷으로 서울로 보내면 서울에서 사진을 보고 작업 과정을 확인해서 어떤 것들이 보완이 돼야 된다, 라든지 이런 걸. 그렇게 작업을 마무리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남북 주민의 땀방울이 함께 녹아있는 미술품은 국내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데요.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평화라는 글씨가 남북 간의 화합과 평화를 염원하는 그런 기도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며 남북이 교류했던 역사가 이곳에 이렇게 남아있는데요. 북녘에서도 남북이 함께 작업했던 건축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남북 선수들이 손을 맞잡고 줄지어 들어섭니다.
특별한 경기가 치러진 이곳은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인데요.
이 체육관의 건설 관리를 담당했던 변상욱 건축사는 2003년 개관 당시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 개관식 할 때 농구 경기를 했었습니다. 북쪽 선수 중에 2m 30cm가 넘는 리명훈 선수, 유명한 농구 선수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NBA에도 진출을 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 이 사진에 정면에 보이는 분이 리명훈 선수고요."]
우리 측 현대와 북측 백두산 건축 연구원이 함께 지은 곳인데요.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던 시절이라 과정도 순조로웠다고 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북쪽이 기본 설계를 하고 남쪽에서 실시 설계를 해서 남북이 공동으로 설계를 했다는 특징이 있다고 생각되고요. 굉장히 좋은 재료들을 사용했습니다. 지붕은 스테인리스 천장재를 사용했고요. 벽재도 보시는 것처럼 석재로 마감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던 남북 관계의 영향을 건축 분야도 피해가진 못했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될 무렵, 가장 먼저 들인 숙박시설인 해금강호텔은 바지선 위에 지은 독특한 설계였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발전 시설도 돼 있고 그리고 담수화 시설도 돼있어서 용수도 자체적으로 공급할 수 있고요. 오수처리도 가능한 시설이어서 초창기에 (2039) 굉장히 유용하게 쓸 수 있었던 건물입니다."]
2019년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에 있는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는데요.
[조선중앙TV : "볼품없이 들어앉아 명산의 경관을 손상시키는 너절한 시설물들을 싹 다 들어내고 우리 식으로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꾸립시다."]
그리고 지난 3월, 해금강호텔의 해체 정황이 위성사진을 통해 포착됐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사실은 의미가 있는 건물인데 철거가 돼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고요. 좀 보존이 됐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금강산에는 원래 있던 온천을 대신할 큰 규모의 온천장도 새로 지었는데요.
금강산 관광이 진행될 당시 모든 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고 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금강산 온천에 있는 노천탕 사진인데요. 지금 보시는 돌은 금강산에서 직접 채취를 해서 사용한 돌들입니다. 겨울에 눈이 올 때 온천을 했던 적이 있는데 제 평생에 가장 인상적인 기억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건축 교류의 현장도 있습니다.
황해북도 천덕리의 농촌마을을 한 대북 지원 단체의 지원으로 2005년부터 만든 건데요.
단순히 집만 지은 게 아니라, 생활 반경이 있는 마을 전체를 꾸리는 대규모 작업이었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도로라든지 용수 공급 시설이라든지 이런 것도 다 설치를 했고요. 또 (집) 100채 마다 탁아소, 유치원 이런 것들을 설치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중엔 마을회관에 해당하는 그런 시설도 같이 짓기도 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북 주민들의 생활 습관과 문화적 차이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화장실은 원래 수세식 변기로 짓는 것을 제안했었습니다. 그런데 북쪽에선 인분을 비료로 써야 되기 때문에 수세식이 아니고 저희가 알고 있는 재래식으로 설치를 해 달라 해서 재래식 변기를 사용했고요."]
그러나 2008년 이후 남북 관계는 급속히 악화됐고, 건설도 중단됐습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남북 관계가 안 좋아지다 보니까 (집) 4백 채 정도를 짓고 중단이 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천덕리 농촌 마을은 기존의 건축물과는 다른 의미 있는 공동 작업이었다고 자평합니다.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북쪽 주민들한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설을 지은 것은 거의 최초였다고 생각이 되고 유일한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남북은 한때나마 사람이 오가고, 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건축’을 매개로 소통했던 귀중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데요.
[변상욱/건축사/전 현대아산 직원 : "남북이 공동 설계를 한 것들이 몇 개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만나서 같이 작업을 하진 못했거든요. 북쪽 사람들하고 같이 같은 공간에서 논의를 하면서 디자인을 해보는 그런 일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관계가 풀리면 다시 한 공간에서 남북의 건축가들이 머리를 맞대며 평화를 위한 작업을 함께 하기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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