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부재판’ 28년 싸운 일본인 부부, 그들은 왜?
입력 2022.10.24 (19:13)
수정 2022.10.2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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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92년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피해자 10명을 도운 일본인 부부가 오늘 창원을 찾았습니다.
피해 할머니들에게 자신의 집과 체류비까지 제공하고, 28년 동안의 재판 기록을 정리한 부부의 이야기는 영화 소재가 되기도 했는데요.
어떤 사연인지, 박기원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등 일본군 피해 할머니들 10명이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첫 재판이 시작된 건 1992년 12월 25일입니다.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열려 '관부재판'이라고 불렸습니다.
6년 동안 진행된 1심 재판에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3명에게 각 30만 엔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고 일부 승소 결정이 났습니다.
3심인 최고재판소가 원고 상고를 기각하며 최종 패소했지만,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일부 일정받은 유일한 재판입니다.
[문경희/창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소장 : "(영화) '허스토리'를 통해서 소개된 관부재판에 대한 좀 누락된 기록들, 그리고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 이런 것들을 최근에 책으로 내시고 일본에서부터 관부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원해주신..."]
일본에서 피해자들을 지원한 하나후사 도시오와 에미코 부부가 창원을 찾았습니다.
부부는 1992년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만들어 500여 명의 회원을 모집하고, 피해 할머니들에게 재판 동안 자택을 제공하고, 체류비와 의료비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이 재판 과정을 담은 61차례 소식지를 한국어로도 펴내 '관부재판 뉴스'라는 기록물을 만든 데 이어,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한 28년의 역사를 책으로 엮었습니다.
[하나후사 도시오 : "(당시) 후쿠오카에서 종군 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변호사가 찾아와서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부부는 모임을 운영하느라 번화가에서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하고, 책을 쓰느라 생업을 잠시 멈추기도 했습니다.
[하나후사 에미코 : "일본 젊은 세대들에게 이런 문제를 알리는 게 저희들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원대학교는 한국여성인권재단 사업의 하나로, 부산 '민족과 여성 역사관'이 보유한 '관부재판' 자료를 목록화해 내년 초 창원에서 전시회를 열 계획입니다.
KBS 뉴스 박기원입니다.
촬영기자:김대현
1992년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피해자 10명을 도운 일본인 부부가 오늘 창원을 찾았습니다.
피해 할머니들에게 자신의 집과 체류비까지 제공하고, 28년 동안의 재판 기록을 정리한 부부의 이야기는 영화 소재가 되기도 했는데요.
어떤 사연인지, 박기원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등 일본군 피해 할머니들 10명이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첫 재판이 시작된 건 1992년 12월 25일입니다.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열려 '관부재판'이라고 불렸습니다.
6년 동안 진행된 1심 재판에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3명에게 각 30만 엔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고 일부 승소 결정이 났습니다.
3심인 최고재판소가 원고 상고를 기각하며 최종 패소했지만,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일부 일정받은 유일한 재판입니다.
[문경희/창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소장 : "(영화) '허스토리'를 통해서 소개된 관부재판에 대한 좀 누락된 기록들, 그리고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 이런 것들을 최근에 책으로 내시고 일본에서부터 관부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원해주신..."]
일본에서 피해자들을 지원한 하나후사 도시오와 에미코 부부가 창원을 찾았습니다.
부부는 1992년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만들어 500여 명의 회원을 모집하고, 피해 할머니들에게 재판 동안 자택을 제공하고, 체류비와 의료비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이 재판 과정을 담은 61차례 소식지를 한국어로도 펴내 '관부재판 뉴스'라는 기록물을 만든 데 이어,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한 28년의 역사를 책으로 엮었습니다.
[하나후사 도시오 : "(당시) 후쿠오카에서 종군 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변호사가 찾아와서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부부는 모임을 운영하느라 번화가에서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하고, 책을 쓰느라 생업을 잠시 멈추기도 했습니다.
[하나후사 에미코 : "일본 젊은 세대들에게 이런 문제를 알리는 게 저희들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원대학교는 한국여성인권재단 사업의 하나로, 부산 '민족과 여성 역사관'이 보유한 '관부재판' 자료를 목록화해 내년 초 창원에서 전시회를 열 계획입니다.
KBS 뉴스 박기원입니다.
촬영기자: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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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2-10-24 2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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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피해자 10명을 도운 일본인 부부가 오늘 창원을 찾았습니다.
피해 할머니들에게 자신의 집과 체류비까지 제공하고, 28년 동안의 재판 기록을 정리한 부부의 이야기는 영화 소재가 되기도 했는데요.
어떤 사연인지, 박기원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등 일본군 피해 할머니들 10명이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첫 재판이 시작된 건 1992년 12월 25일입니다.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열려 '관부재판'이라고 불렸습니다.
6년 동안 진행된 1심 재판에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3명에게 각 30만 엔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고 일부 승소 결정이 났습니다.
3심인 최고재판소가 원고 상고를 기각하며 최종 패소했지만,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일부 일정받은 유일한 재판입니다.
[문경희/창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소장 : "(영화) '허스토리'를 통해서 소개된 관부재판에 대한 좀 누락된 기록들, 그리고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 이런 것들을 최근에 책으로 내시고 일본에서부터 관부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원해주신..."]
일본에서 피해자들을 지원한 하나후사 도시오와 에미코 부부가 창원을 찾았습니다.
부부는 1992년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만들어 500여 명의 회원을 모집하고, 피해 할머니들에게 재판 동안 자택을 제공하고, 체류비와 의료비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이 재판 과정을 담은 61차례 소식지를 한국어로도 펴내 '관부재판 뉴스'라는 기록물을 만든 데 이어,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한 28년의 역사를 책으로 엮었습니다.
[하나후사 도시오 : "(당시) 후쿠오카에서 종군 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변호사가 찾아와서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부부는 모임을 운영하느라 번화가에서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하고, 책을 쓰느라 생업을 잠시 멈추기도 했습니다.
[하나후사 에미코 : "일본 젊은 세대들에게 이런 문제를 알리는 게 저희들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원대학교는 한국여성인권재단 사업의 하나로, 부산 '민족과 여성 역사관'이 보유한 '관부재판' 자료를 목록화해 내년 초 창원에서 전시회를 열 계획입니다.
KBS 뉴스 박기원입니다.
촬영기자:김대현
1992년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피해자 10명을 도운 일본인 부부가 오늘 창원을 찾았습니다.
피해 할머니들에게 자신의 집과 체류비까지 제공하고, 28년 동안의 재판 기록을 정리한 부부의 이야기는 영화 소재가 되기도 했는데요.
어떤 사연인지, 박기원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등 일본군 피해 할머니들 10명이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첫 재판이 시작된 건 1992년 12월 25일입니다.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열려 '관부재판'이라고 불렸습니다.
6년 동안 진행된 1심 재판에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3명에게 각 30만 엔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고 일부 승소 결정이 났습니다.
3심인 최고재판소가 원고 상고를 기각하며 최종 패소했지만,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일부 일정받은 유일한 재판입니다.
[문경희/창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소장 : "(영화) '허스토리'를 통해서 소개된 관부재판에 대한 좀 누락된 기록들, 그리고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 이런 것들을 최근에 책으로 내시고 일본에서부터 관부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원해주신..."]
일본에서 피해자들을 지원한 하나후사 도시오와 에미코 부부가 창원을 찾았습니다.
부부는 1992년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만들어 500여 명의 회원을 모집하고, 피해 할머니들에게 재판 동안 자택을 제공하고, 체류비와 의료비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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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후사 에미코 : "일본 젊은 세대들에게 이런 문제를 알리는 게 저희들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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