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증언] 정화자 할머니의 ‘씻을 수 없는 아픔’

입력 2022.11.24 (19:43) 수정 2022.11.24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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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3의 역사를 기록하는 KBS 연속기획 일흔일곱 번째 순서입니다.

정화자 할머니는 4·3 당시 4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무장대가 찌른 창에 온몸에 큰 부상을 입고, 평생 힘겨운 삶을 이어왔습니다.

유용두, 강재윤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정화자/4·3 후유장애인 : "(1948년) 4·3 때 동쪽 집이 불에 타서 어떤 아주머니, 그 집 아주머니 죽여버리고, 담 뛰어 넘어와서 우리 집에 불붙이니까. 우리 아버지도 숨으러 도망가고 우리 오빠도 그때 7살인데 숨어버리고, 우리 어머니는 (임신해서) 배가 부르니까 우리 데리고 안쪽에 (있었는데). (어머니가) 아기 업으라고 하니 우리 언니가 (나를) 업으니까. 우리한테 넘어와서 "너희 아버지 어디 있어? 나와" 하면서 여기를 콱콱 찌른 거야. 막 아파서 '아아아' 우니까, 언니 등에서 떨어져서 우리 언니는 어디 숨어버리고. 뒤에 찌르다가 여기도 찌르고 여기도 찌르고 여기도 막 찌르고. 장난감같이 여기저기 찌르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내가 그 무서운 사람들 틈에서 도망을 갈 수 있어요? (나를)찌르고 도망가면서 서쪽에서 어떤 아저씨가 오니까 그 아저씨도 찌르고, 누군지 몰라도 찔러서 죽이고. 우리 어머니, 언니가 나중에 (찌른 사람이) 폭도라고 하는데, 폭도가 뭔지 모르고 창으로 찌른 거예요. (그날 마을에서) 죽은 사람들 다 같은 날에, 음력으로 10월 27일 날에 (제사 지내요.)"]

[정화자/4·3 후유장애인 : "다 타버려서 아무것도 없으니까 된장, 이웃집에 가서 빌어오라고 우리 언니한테 얘기하니까 된장으로 처매서 붙이고, 여기도 붙이고. 그때 병원이 어디 있었어요? 다 4·3 사건 나서 제주도가 사건 났는데. 나는 병원에 가보지 못했어요. 쑥 나오니까 쑥 캐다 빚어서 붙이고."]

[정화자/4·3 후유장애인 : "어머니는 아기 낳으러 가니까, 우리는 바닷가 언덕 쪽에서 아버지하고, 아버지도 숨어있다가 아팠는데, 아버지하고 오빠하고 언니하고 나하고. 그렇게 살다가 동네 사람들이 소나무라도 잘라다가 천막 같은 것 만들자고 해서, 그런 것 만들어서 동네 사람들하고 같이. 뭐 먹고 산 지도 모르고. 나는 일을 못 했어요. 보리 나르라고 해도 보리 나르다가 그냥 햇빛에만 나가면 쓰러지고, 우리 어머니가 물 갖다 먹이라고 하면 물 먹으면 살아나고. 커가면서 그 후유증이 말도 못하고. (몸이 아프니까) 공부라도 해서 살자고 해서 "옷 없어서 어떻게 갈래"해도 옷 벗어서라도 가겠다고 (학교 다녔어요.) 아기 업고도 학교 가서 공부했어요,"]

[정화자/4·3 후유장애인 : "우리 남편은 내가 이렇게 찔린 지도 모르고 결혼을 했어요. 그래도 남편이 잘 해주니까. 그때 시절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했는지 나는 모르겠어요. 그때 죽어버렸으면 나 이렇게 고생하면서 안 살았을 것을. (4·3)이 다시 있으면 살 생각이 없어요. 그때 죽어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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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3 증언] 정화자 할머니의 ‘씻을 수 없는 아픔’
    • 입력 2022-11-24 19:43:55
    • 수정2022-11-24 19:51:08
    뉴스7(제주)
[앵커]

4·3의 역사를 기록하는 KBS 연속기획 일흔일곱 번째 순서입니다.

정화자 할머니는 4·3 당시 4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무장대가 찌른 창에 온몸에 큰 부상을 입고, 평생 힘겨운 삶을 이어왔습니다.

유용두, 강재윤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정화자/4·3 후유장애인 : "(1948년) 4·3 때 동쪽 집이 불에 타서 어떤 아주머니, 그 집 아주머니 죽여버리고, 담 뛰어 넘어와서 우리 집에 불붙이니까. 우리 아버지도 숨으러 도망가고 우리 오빠도 그때 7살인데 숨어버리고, 우리 어머니는 (임신해서) 배가 부르니까 우리 데리고 안쪽에 (있었는데). (어머니가) 아기 업으라고 하니 우리 언니가 (나를) 업으니까. 우리한테 넘어와서 "너희 아버지 어디 있어? 나와" 하면서 여기를 콱콱 찌른 거야. 막 아파서 '아아아' 우니까, 언니 등에서 떨어져서 우리 언니는 어디 숨어버리고. 뒤에 찌르다가 여기도 찌르고 여기도 찌르고 여기도 막 찌르고. 장난감같이 여기저기 찌르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내가 그 무서운 사람들 틈에서 도망을 갈 수 있어요? (나를)찌르고 도망가면서 서쪽에서 어떤 아저씨가 오니까 그 아저씨도 찌르고, 누군지 몰라도 찔러서 죽이고. 우리 어머니, 언니가 나중에 (찌른 사람이) 폭도라고 하는데, 폭도가 뭔지 모르고 창으로 찌른 거예요. (그날 마을에서) 죽은 사람들 다 같은 날에, 음력으로 10월 27일 날에 (제사 지내요.)"]

[정화자/4·3 후유장애인 : "다 타버려서 아무것도 없으니까 된장, 이웃집에 가서 빌어오라고 우리 언니한테 얘기하니까 된장으로 처매서 붙이고, 여기도 붙이고. 그때 병원이 어디 있었어요? 다 4·3 사건 나서 제주도가 사건 났는데. 나는 병원에 가보지 못했어요. 쑥 나오니까 쑥 캐다 빚어서 붙이고."]

[정화자/4·3 후유장애인 : "어머니는 아기 낳으러 가니까, 우리는 바닷가 언덕 쪽에서 아버지하고, 아버지도 숨어있다가 아팠는데, 아버지하고 오빠하고 언니하고 나하고. 그렇게 살다가 동네 사람들이 소나무라도 잘라다가 천막 같은 것 만들자고 해서, 그런 것 만들어서 동네 사람들하고 같이. 뭐 먹고 산 지도 모르고. 나는 일을 못 했어요. 보리 나르라고 해도 보리 나르다가 그냥 햇빛에만 나가면 쓰러지고, 우리 어머니가 물 갖다 먹이라고 하면 물 먹으면 살아나고. 커가면서 그 후유증이 말도 못하고. (몸이 아프니까) 공부라도 해서 살자고 해서 "옷 없어서 어떻게 갈래"해도 옷 벗어서라도 가겠다고 (학교 다녔어요.) 아기 업고도 학교 가서 공부했어요,"]

[정화자/4·3 후유장애인 : "우리 남편은 내가 이렇게 찔린 지도 모르고 결혼을 했어요. 그래도 남편이 잘 해주니까. 그때 시절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했는지 나는 모르겠어요. 그때 죽어버렸으면 나 이렇게 고생하면서 안 살았을 것을. (4·3)이 다시 있으면 살 생각이 없어요. 그때 죽어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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