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제주대학교병원에서 약물 과다 투여로 숨진 13개월 영아 유림이
지난 3월 제주대학교병원에서 숨진 13개월 영아 유림이 사망 사건과 관련해 간호사들이 의료 사고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간호사 3명은 현재 유기치사 혐의 등으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KBS가 입수한 검찰 공소장에는 간호사들이 사고 사실을 묵인해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고, 의무 기록을 조작한 정황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 에피네프린 과다 투여
유림이는 지난 3월 11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제주대병원에 입원했다. 의사는 유림이의 상태가 악화하자 천식 발작 완화와 심정지 보조치료제로 쓰이는 '에피네프린 5mg'을 호흡기를 통해 흡입(네뷸라이저 방식)하도록 간호사에게 지시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에피네프린을 유림이의 왼쪽 발등에 연결된 수액 줄을 통해 투여했다. 호흡기 투약이 아닌 정맥주사 방식으로 주입한 것이다.
검찰 공소장에 적힌 에피네프린 오투약 과정
에피네프린은 긴급 상황에서도 0.25ml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희석해 천천히 넣어야 할 만큼 위험한 약물이다. 정맥주사 시 심실세동(심실이 무질서하고 불규칙적으로 수축하는 상태)이 발생할 수 있고, 과량 투여할 경우 혈압 상승과 급성 폐부종 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심정지 환자에게도 짧은 시간에 한 번 투약할 수 있는 양은 1kg에 0.01mg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당시 유림이의 체중은 11kg, 투약 가능한 최대 용량은 0.11mg이었다. 5mg이 정맥 주사로 투입되면서 결과적으로 기준치의 50배에 이르는 약물이 주입된 것이다.
유림이 응급 치료 당시 내부 CCTV 화면
하지만 약물을 주입한 간호사와 담당 간호사, 수간호사 등 3명은 이 사실을 알고도 의사와 병원에 알리지 않았다. 의사는 이를 모른 채 유림이가 급성 후두염으로 호흡곤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에피네프린 2mg(네뷸라이저 방식)을 추가로 투여했다.
검찰은 간호사들의 공모로 의사들이 심장 손상 가능성을 예측하지 못했고, 유림이가 심장 초음파와 심전도 검사 등 추가 진단검사를 받지 못하게 됐다고 판단했다. 또, 유림이를 소아 심장 전문 병원으로 옮기지 못하는 등 치료 기회를 박탈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 간호사들의 조직적 은폐
검찰 공소장에 적힌 은폐 지시 내용
간호사들의 조직적인 은폐 정황도 기록됐다.
공소사실을 보면, 수간호사는 3월 11일 저녁 8시쯤 담당 간호사를 불러 투약사고 보고서를 작성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1시간 뒤에는 약물을 주입한 수행간호사까지 불러 '오늘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다.
담당 간호사는 투약사고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간호일지에도 사고 사실을 기재하지 않았다. 특히 담당 간호사는 이날 밤 코로나 병동 컴퓨터를 이용해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에 접속한 뒤 간호사들이 에피네프린 사고 사실을 인지할 수 없도록 '간호사 인수인계' 내용을 수정한다. 다른 간호사들이 유림이의 호흡 곤란 원인을 발견하기 어렵게 내용을 바꾼 것이다.
유림이는 사고 이튿날인 3월 12일 저녁 6시 53분 사망했는데, 담당 간호사는 유림이가 숨지고 2시간여 뒤 관련 내용을 전부 삭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 '총체적 부실'
사고의 시작은 기본 수칙을 지키지 않은 데에서 비롯됐다.
KBS가 입수한 환자안전사고 보고서에 따르면, 간호사는 업무가 많다는 이유로 투약 전 주사기 라벨을 확인하지 않았다. 흡입용과 일반 주사기를 구분하기 위한 전용 캡도 씌우지 않았다. 또 투약 이후 환자 상태도 관찰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부작용도 확인하지 못했다.
정확한 용량과 투여 경로만 지켰어도 막을 수 있었었던 죽음이었다.
유림이 의료사망 사고 환자안전사고 보고서
제주대병원은 여론의 뭇매를 맞자 지난 4월 한 차례 기자회견 이후 지금까지 어떠한 공식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수사 중'이라는 이유에서다.
담당 변호인인 조세현 변호사(법무법인 다산)는 "환자 진단에서 치료까지 전 과정에서 지켜야 할 주의의무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보고를 누락하도록 지시하거나 내용을 삭제하는 등 범죄 행위가 확인되고 있다"며 "재판을 통해 명백히 입증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다른 간호사들이 사고 발생 전 유림이의 임상관찰 기록지를 허위로 작성하고, 입실동의서와 각종 안내문에 보호자 서명을 위조한 정황도 드러나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다.
사고가 발생한 지 9개월이 흘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를 잃은 부모는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유림이 의료사망 사고 은폐 사건의 첫 재판은 오는 15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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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유림이 사망 조직적 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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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12-06 10:57:31
지난 3월 제주대학교병원에서 숨진 13개월 영아 유림이 사망 사건과 관련해 간호사들이 의료 사고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간호사 3명은 현재 유기치사 혐의 등으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KBS가 입수한 검찰 공소장에는 간호사들이 사고 사실을 묵인해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고, 의무 기록을 조작한 정황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 에피네프린 과다 투여
유림이는 지난 3월 11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제주대병원에 입원했다. 의사는 유림이의 상태가 악화하자 천식 발작 완화와 심정지 보조치료제로 쓰이는 '에피네프린 5mg'을 호흡기를 통해 흡입(네뷸라이저 방식)하도록 간호사에게 지시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에피네프린을 유림이의 왼쪽 발등에 연결된 수액 줄을 통해 투여했다. 호흡기 투약이 아닌 정맥주사 방식으로 주입한 것이다.
에피네프린은 긴급 상황에서도 0.25ml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희석해 천천히 넣어야 할 만큼 위험한 약물이다. 정맥주사 시 심실세동(심실이 무질서하고 불규칙적으로 수축하는 상태)이 발생할 수 있고, 과량 투여할 경우 혈압 상승과 급성 폐부종 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심정지 환자에게도 짧은 시간에 한 번 투약할 수 있는 양은 1kg에 0.01mg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당시 유림이의 체중은 11kg, 투약 가능한 최대 용량은 0.11mg이었다. 5mg이 정맥 주사로 투입되면서 결과적으로 기준치의 50배에 이르는 약물이 주입된 것이다.
하지만 약물을 주입한 간호사와 담당 간호사, 수간호사 등 3명은 이 사실을 알고도 의사와 병원에 알리지 않았다. 의사는 이를 모른 채 유림이가 급성 후두염으로 호흡곤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에피네프린 2mg(네뷸라이저 방식)을 추가로 투여했다.
검찰은 간호사들의 공모로 의사들이 심장 손상 가능성을 예측하지 못했고, 유림이가 심장 초음파와 심전도 검사 등 추가 진단검사를 받지 못하게 됐다고 판단했다. 또, 유림이를 소아 심장 전문 병원으로 옮기지 못하는 등 치료 기회를 박탈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 간호사들의 조직적 은폐
간호사들의 조직적인 은폐 정황도 기록됐다.
공소사실을 보면, 수간호사는 3월 11일 저녁 8시쯤 담당 간호사를 불러 투약사고 보고서를 작성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1시간 뒤에는 약물을 주입한 수행간호사까지 불러 '오늘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다.
담당 간호사는 투약사고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간호일지에도 사고 사실을 기재하지 않았다. 특히 담당 간호사는 이날 밤 코로나 병동 컴퓨터를 이용해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에 접속한 뒤 간호사들이 에피네프린 사고 사실을 인지할 수 없도록 '간호사 인수인계' 내용을 수정한다. 다른 간호사들이 유림이의 호흡 곤란 원인을 발견하기 어렵게 내용을 바꾼 것이다.
유림이는 사고 이튿날인 3월 12일 저녁 6시 53분 사망했는데, 담당 간호사는 유림이가 숨지고 2시간여 뒤 관련 내용을 전부 삭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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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입수한 환자안전사고 보고서에 따르면, 간호사는 업무가 많다는 이유로 투약 전 주사기 라벨을 확인하지 않았다. 흡입용과 일반 주사기를 구분하기 위한 전용 캡도 씌우지 않았다. 또 투약 이후 환자 상태도 관찰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부작용도 확인하지 못했다.
정확한 용량과 투여 경로만 지켰어도 막을 수 있었었던 죽음이었다.
제주대병원은 여론의 뭇매를 맞자 지난 4월 한 차례 기자회견 이후 지금까지 어떠한 공식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수사 중'이라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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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다른 간호사들이 사고 발생 전 유림이의 임상관찰 기록지를 허위로 작성하고, 입실동의서와 각종 안내문에 보호자 서명을 위조한 정황도 드러나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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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영 기자 m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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