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를 통해 본 광복 60년

입력 2005.02.18 (20:34) 수정 2005.02.18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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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런 현수막처럼 선전도구로 활용되는 게 또 있죠.
삐라라고 불리는 전단, 이번에는 삐라를 통해서 광복 60년을 되돌아보겠습니다.
⊙앵커: 우리 현대사의 고비고비마다 삐라가 등장해서 당시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데요.
김건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광복 60년, 그 격동의 역사가 조그만 지면 한장한장에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이른바 삐라로 불리는 전단들입니다.
1945년 미군이 상륙 임박을 알리기 위해 뿌린 전단은 우리 손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한 현대사의 아픔을 말 없이 증언합니다.
전단이 뿌려지는 모습이 생생히 담긴 한 장의 사진.
혼란스러웠던 해방공간에서 전단은 이렇게 좌우익을 막론하고 자신들의 이념을 선전하는 데 유용한 도구였습니다.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한국전쟁.
전단이 또다시 난무합니다.
공습을 경보하는 전단.
귀순이나 투항을 촉구하는 전단들은 고도의 심리전 수단이었습니다.
이는 북한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리산의 총성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멈추지 않았고 빨치산의 투항을 유도하기 위한 전단들이 지리산 곳곳에 흩뿌려졌습니다.
사살된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의 시신사진까지 실렸습니다.
1968년 청와대를 노리고 내려왔다 생포된 김신조 씨도 전단에 등장합니다.
나는 인민군 제1, 2부대 소위였던 김신조이다.
나는 다른 30명의 군관들과 함께 1968년 1월 10일 서울에 침입하였다...
냉전의 시기, 남북간의 전단공세는 쉼없이 이어졌습니다.
서울 인사동에서 근현대사 자료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준 씨는 70년대 말부터 이런 전단들을 수집해 왔습니다.
1961년 5월 16일 종로 2가에 뿌려진 군사혁명위원회의 전단에서부터 80년 광주 금남로에서 누군가의 손에 쥐어졌을 전단까지 김 씨의 수집품은 무려 2000여 점이나 됩니다.
⊙김영준(근현대사 자료 수집가): 단 하나라도 후세의 학자가 다시 평가할 수 있는 자료로써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수집했어요.)
⊙기자: 시대의 격랑을 헤치고 온 지난 60년.
이념대립과 동족상잔의 비극, 치열했던 민주화 항쟁의 기억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가는 요즘, 모은 전단들은 그 어느 자료보다 더 강렬하게 그 시대를 되살려내고 있습니다.
KBS뉴스 김건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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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삐라’를 통해 본 광복 60년
    • 입력 2005-02-18 20:13:29
    • 수정2005-02-18 20:55:47
    뉴스타임
⊙앵커: 이런 현수막처럼 선전도구로 활용되는 게 또 있죠. 삐라라고 불리는 전단, 이번에는 삐라를 통해서 광복 60년을 되돌아보겠습니다. ⊙앵커: 우리 현대사의 고비고비마다 삐라가 등장해서 당시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데요. 김건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광복 60년, 그 격동의 역사가 조그만 지면 한장한장에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이른바 삐라로 불리는 전단들입니다. 1945년 미군이 상륙 임박을 알리기 위해 뿌린 전단은 우리 손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한 현대사의 아픔을 말 없이 증언합니다. 전단이 뿌려지는 모습이 생생히 담긴 한 장의 사진. 혼란스러웠던 해방공간에서 전단은 이렇게 좌우익을 막론하고 자신들의 이념을 선전하는 데 유용한 도구였습니다.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한국전쟁. 전단이 또다시 난무합니다. 공습을 경보하는 전단. 귀순이나 투항을 촉구하는 전단들은 고도의 심리전 수단이었습니다. 이는 북한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리산의 총성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멈추지 않았고 빨치산의 투항을 유도하기 위한 전단들이 지리산 곳곳에 흩뿌려졌습니다. 사살된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의 시신사진까지 실렸습니다. 1968년 청와대를 노리고 내려왔다 생포된 김신조 씨도 전단에 등장합니다. 나는 인민군 제1, 2부대 소위였던 김신조이다. 나는 다른 30명의 군관들과 함께 1968년 1월 10일 서울에 침입하였다... 냉전의 시기, 남북간의 전단공세는 쉼없이 이어졌습니다. 서울 인사동에서 근현대사 자료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준 씨는 70년대 말부터 이런 전단들을 수집해 왔습니다. 1961년 5월 16일 종로 2가에 뿌려진 군사혁명위원회의 전단에서부터 80년 광주 금남로에서 누군가의 손에 쥐어졌을 전단까지 김 씨의 수집품은 무려 2000여 점이나 됩니다. ⊙김영준(근현대사 자료 수집가): 단 하나라도 후세의 학자가 다시 평가할 수 있는 자료로써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수집했어요.) ⊙기자: 시대의 격랑을 헤치고 온 지난 60년. 이념대립과 동족상잔의 비극, 치열했던 민주화 항쟁의 기억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가는 요즘, 모은 전단들은 그 어느 자료보다 더 강렬하게 그 시대를 되살려내고 있습니다. KBS뉴스 김건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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