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완 ‘강제추행’]① “술 먹고 웃고 떠들어”…‘피해자다움’ 안 통했다

입력 2023.02.15 (21:40) 수정 2023.02.15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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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KBS는 오태완 의령군수 강제추행 사건과 관련한 700쪽이 넘는 재판 기록과 법원 판결문을 단독으로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유무죄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성범죄 피해자가 피해자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라는 오태완 군수 측의 주장이었는데요.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첫 소식, 이형관 기자입니다.

[리포트]

'강제추행' 사건 당일, 현장 CCTV 영상입니다.

언론인 간담회를 마친 오태완 의령군수가 식당 2층에서 내려오고, 참석자들이 뒤따릅니다.

가게 문 앞에서 피해자는 다른 참석자와 함께, 군수를 향해 두 차례 머리를 숙여 인사합니다.

피해자는 당시 의례적인 인사일 뿐이었다는 입장입니다.

[강제추행 피해자/음성 대독 : "불과 한 시간 전쯤 추행을 당했지만, 곧바로 내색할 수 없었습니다. 평소 습관대로 인사했을 뿐입니다."]

오 군수 측은 법정에서 피해자의 이 행동을 문제 삼았습니다.

통상적인 성범죄 피해자 모습이 아니라서, '추행을 당했다'는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겁니다.

오 군수 측이 문제 삼은 피해자 언행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건 당일, 간담회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군수에게 술을 더 권한 점, 사건 다음 날, 식당에서 떠들며 식사하거나 웃으며 통화한 행동 또한, 통상적인 성범죄 피해자 반응과 거리가 있다고 오 군수 측은 주장했습니다.

피해자는 재판 과정에서 오 군수 측의 '피해자다움'이 없었다는 주장이 또 다른 폭력이었다는 입장입니다.

[강제추행 피해자/음성 대독 :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가 24시간, 365일 우울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오히려 불안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재판부는 "'성범죄 피해자 같지 않다'는 식의 주장은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관념을 전제한 것이라 부당하며, 또, 성범죄 피해자가 매 순간 슬픔과 분노, 무기력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성범죄 피해자는 사안마다 대처 양상이 다를 수 있어, 특정한 '피해자다움'을 강요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박하영/경남지방변호사회 홍보이사 : "(대법원은) '피해자다움'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정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이 사건 판결 또한 이러한 대법원 판결 취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양측의 상반된 주장에 진실게임 양상을 보였던 이번 사건,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사건 개요와 쟁점을 50분 동안 상세히 설명하며, "지난 1년 8개월 동안 진실이 가려지고 진실을 말한 사람이 고통을 받은 것에 대해 피고인이 최종 책임을 져야한다"며 판결을 마무리했습니다.

KBS 뉴스 이형관입니다.

촬영기자:지승환·조형수/그래픽:김신아·박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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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태완 ‘강제추행’]① “술 먹고 웃고 떠들어”…‘피해자다움’ 안 통했다
    • 입력 2023-02-15 21:40:34
    • 수정2023-02-15 22:05:35
    뉴스9(창원)
[앵커]

KBS는 오태완 의령군수 강제추행 사건과 관련한 700쪽이 넘는 재판 기록과 법원 판결문을 단독으로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유무죄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성범죄 피해자가 피해자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라는 오태완 군수 측의 주장이었는데요.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첫 소식, 이형관 기자입니다.

[리포트]

'강제추행' 사건 당일, 현장 CCTV 영상입니다.

언론인 간담회를 마친 오태완 의령군수가 식당 2층에서 내려오고, 참석자들이 뒤따릅니다.

가게 문 앞에서 피해자는 다른 참석자와 함께, 군수를 향해 두 차례 머리를 숙여 인사합니다.

피해자는 당시 의례적인 인사일 뿐이었다는 입장입니다.

[강제추행 피해자/음성 대독 : "불과 한 시간 전쯤 추행을 당했지만, 곧바로 내색할 수 없었습니다. 평소 습관대로 인사했을 뿐입니다."]

오 군수 측은 법정에서 피해자의 이 행동을 문제 삼았습니다.

통상적인 성범죄 피해자 모습이 아니라서, '추행을 당했다'는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겁니다.

오 군수 측이 문제 삼은 피해자 언행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건 당일, 간담회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군수에게 술을 더 권한 점, 사건 다음 날, 식당에서 떠들며 식사하거나 웃으며 통화한 행동 또한, 통상적인 성범죄 피해자 반응과 거리가 있다고 오 군수 측은 주장했습니다.

피해자는 재판 과정에서 오 군수 측의 '피해자다움'이 없었다는 주장이 또 다른 폭력이었다는 입장입니다.

[강제추행 피해자/음성 대독 :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가 24시간, 365일 우울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오히려 불안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재판부는 "'성범죄 피해자 같지 않다'는 식의 주장은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관념을 전제한 것이라 부당하며, 또, 성범죄 피해자가 매 순간 슬픔과 분노, 무기력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성범죄 피해자는 사안마다 대처 양상이 다를 수 있어, 특정한 '피해자다움'을 강요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박하영/경남지방변호사회 홍보이사 : "(대법원은) '피해자다움'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정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이 사건 판결 또한 이러한 대법원 판결 취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양측의 상반된 주장에 진실게임 양상을 보였던 이번 사건,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사건 개요와 쟁점을 50분 동안 상세히 설명하며, "지난 1년 8개월 동안 진실이 가려지고 진실을 말한 사람이 고통을 받은 것에 대해 피고인이 최종 책임을 져야한다"며 판결을 마무리했습니다.

KBS 뉴스 이형관입니다.

촬영기자:지승환·조형수/그래픽:김신아·박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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