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탐사K]① 숨어있는 ‘빌라왕’ 전수 추적…전국에 176명
입력 2023.03.09 (18:40)
수정 2023.05.0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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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기 조직은 '연결'돼 있었다
2021년 제주에서 숨진 '빌라왕' (악성 임대인) 정 모 씨. 그는 2021년 6월부터 빌라를 마구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신축을 노렸습니다. 숨지기 직전까지 그가 임대한 빌라는 모두 100채를 넘었습니다.
정 씨를 추적하던 취재진은 의아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같은 건물에서 정 씨와 함께 등장하는 다른 임대인들입니다. 그들 역시 주로 새로 짓는 빌라를 분양받으면서 조직적으로 빌라를 쇼핑하다시피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알고 보니 정 씨는 '빌라왕'이라기 보다 '바지 집주인'이었습니다. 다수의 임대인 뒤에 숨어있던 지휘자는 따로 있었습니다. 배후는 신 모 씨로 확인됐습니다.
(뉴스9 [단독] “빌라왕 여러 명 거느린 배후 조직 있다”…법인 세워 버젓이 영업)
이런 전세 사기에는 건축주와 분양대행사, 감정평가사와 공인중개사도 합세했습니다.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부부에게 시세보다 비싸게 전세를 주고, 돈을 빼갔습니다. 수도권 빌라촌은 거대한 사기 조직의 소굴이었던 셈입니다.
‘빌라왕 배후’ 신 모 씨는 지난 1월 초 KBS 보도 직전까지 부동산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면서 최소 7명의 악성 임대인을 관리했다. 그는 주로 신축 빌라에 빌라왕들을 투입해 수십 채씩 사들인 뒤 비싸게 전세를 놓고는 보증금을 떼먹었다. 전세 사기 범죄의 전형이다.
사기 조직이 크게 한 탕 벌이고 지나간 빌라에는 '깡통 주택'이 쌓여 갔습니다. '깡통 주택' 집주인들은 선량한 임대인 행세를 하며 세입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세입자들은 전세 계약이 끝나고 나서야 덫에 걸린 걸 알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임대인 두 명이 같은 건물에서 주택을 임대하는 건, 우연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연은 수도권 빌라촌에서는 전혀 다른 얘기가 됩니다. 같은 건물에서 반복적으로 건물을 매입한 두 임대인은 전세 사기 조직의 패거리일 가능성이 컸습니다.
■ 최초 공개,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 확인
그렇다면 같은 빌라 건물을 반복적으로 나눠서 매입한 사람들을 추려, 조직적으로 사기에 가담한 '악성 임대인'을 가려낼 수 있지 않을까. KBS 탐사보도부는 지난달 연세대 사회학과 염유식 교수팀과 이런 '가설'을 세우고,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분석 방법으로는 사회연결망 분석(SNA·Social Network Analysis) 기법을 택했습니다.
한 달간의 분석 끝에 취재진과 연구팀은 전국 50채 이상의 다주택 임대인을 추적 조사해 '악성 임대인 연결망'을 완성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연결망 한가운데에 기존에 드러났던 전세 사기 조직원들이 무더기로 등장했습니다. 또 그들과 연계된 악성 임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들도 무더기로 확인됐습니다. 모두 176명 입니다. KBS 탐사보도부는 과학적인 사회학 분석 방법인 SNA를 동원해, 최초 시도된 우리나라 악성 임대인 전수 조사 결과를 오늘(9일)부터 이틀간 공개합니다.
KBS 탐사보도부와 연세대 염유식 교수팀은 50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 임대인 중 같은 건물에서 주택을 갖고 있는 임대인을 선으로 연결해봤다. 사회연결망분석(SNA)이 전국의 악성 임대인 추적에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악성 임대인 연결망'을 처음 그리다...촘촘하게 연결된 '그들'
취재진과 연구팀이 악성 임대인 추적한 과정은 이랬습니다. 우선 전체 분석 대상은 전국에서 50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 임대인으로 한정했습니다. KBS 탐사보도부가 처음으로 밝혀낸 이른바 '빌라왕의 배후' 신 씨가 거느렸던 악성 임대인 7명이 최소 50채가 넘는 빌라를 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23년 1월 현재, 전국에서 50채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다주택자는 모두 2,659명(공공기관, 은행, 신탁, 조합, 대기업, 학교법인 등 제외)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들은 전국 주택 39만 9,539채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다주택 임대인 현황은 부동산 · 공간 빅데이터 전문기업 '빅밸류'가 공공 데이터인 건축물 대장의 소유 현황을 파악한 결과입니다.
연구팀은 미리 세운 가설에 따라, 다주택 임대인 중 같은 건물에서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임대인(노드, node)들을 선(link)로 연결했습니다.
연결망에서 임대인은 동그라미(노드, node)로 표현됩니다. 연결 정도가 강한 임대인끼리 더 가깝게 붙게 됩니다. 또 더 많은 임대인과 건물을 나눠 매입하는 조직적 모습을 보이는 임대인일수록, 더 크게 표현했습니다.
그 결과 50채 이상 다주택 임대인 2,659명으로 구성된 연결망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습니다.
연결망은 노드(node)와 링크(link)로 이뤄진다. 여기서 노드는 2022년 11월 현재 파악된 50채 이상 다주택 임대인 2,659명이다. 다주택 임대인끼리 연결됐다는 것은 서로 최소 한 차례 이상 같은 건물에 있는 주택을 매입했다는 뜻이다.
전국의 다주택 임대인 연결망은 모두 1,538개의 크고 작은 그룹으로 쪼개져 있었습니다. 연결망 한가운데 가장 큰 집단이 관찰됐고, 나머지는 작은 규모로 쪼개져 있었습니다. 전체의 78%(2,073명)가 작은 집단에 속했습니다. 취재진은 이런 임대인들은 '우연'인 경우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추적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대신 오직 586명(22%)의 임대인만으로 이뤄진 하나의 큰 집단에 주목했습니다. (위 그림에서 붉은색)
■ 연결망 중심에 등장한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취재진과 연구팀은 연결망의 중심에 있는 임대인 586명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연결망 중심에 위치할수록 조직적 모습을 띤 임대인들입니다. 흥미로운 건 연결망 한가운데에 낯익은 이름의 '빌라왕'들이 무더기로 확인됐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연결망 정 한가운데는 '2400' 조직으로 알려진 전세 사기단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이른바 '빌라의 신'으로도 불린 권 모 씨가 속한 패거리들입니다. 개인 3명과 법인 2명으로 이뤄진 이들 조직은 빌라와 오피스텔 3천 800여 채를 보유 중입니다. 역대 가장 큰 규모로 전세 사기를 벌인 조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초의 대형 전세 사기 사건으로 알려진 '세 모녀 사건'의 두 딸 박 모 씨 자매와 '원조 빌라왕' 이 모씨(사고액 최다…580억 떼먹은 1세대 ‘빌라왕’, 처벌은?)이름도 눈에 띄었습니다. 이들 3명(그림4)은 연결망 가운데 옹기종기 붙어있습니다. M 주택으로 불리는 하나의 컨설팅 업체를 배후로 뒀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강서구 '빌라왕 배후' 신 모 씨가 거느린 악성 임대인 7명과 법인 1곳도 비교적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잇따라 숨진 빌라왕 김 모 씨, 송 모 씨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전세 사기 혐의가 확인돼 수사 또는 재판을 받고 있는 악성 임대인 24명은 모조리 연결망 중심에 나타났습니다. 염유식 교수는 "SNA 분석은 기존 악성 임대인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진행됐다"며 "그런데도 사기 조직들이 연결망 핵심 그룹에 나타났다는 것은 분석의 신뢰도가 높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습니다.
■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 연결망 유지의 핵심"
사기 조직들은 연결망 한가운데 위치하면서, 다른 임대인 집단과 비교적 큰 덩어리를 이뤘습니다. 이미 확인된 악성 임대인 24명과 함께 조직적 모습을 보인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은 모두 176명으로 분석됐습니다. 시쳇말로 전세 사기계의 '인싸'들입니다.
규모로 보면 분석 대상이었던 다주택 임대인 2,659명의 6.6%를 차지합니다. 그러니까 50채 이상 다주택자 100명 중 6명가량은 전세 사기 범죄에 이미 연루됐거나, 연루됐을 가능성이 큰 악성 임대인으로 보인다는 게 연구팀 결론입니다.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은 최소 14명, 최대 148명과 같은 건물에서 임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인물들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사기 조직에 속한 임대인들끼리도 때에 따라서는 한 몸처럼 움직였습니다. 한 건축주 또는 같은 분양대행사의 의뢰를 받아, 특정 건물의 분양률을 높이기 위해 서로 '품앗이'한 경우로 풀이됩니다.
이런식으로 임대인 연결망 한가운데를 차지한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들은 전세 사기를 반복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팀은 분석했습니다. 염유식 교수는 "한두 번이라면 우연이라 하겠지만, 서른 번 씩 같은 빌라에서 임대했다는 것은 서로 연계된 같은 조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 "전세 사기 예방 시스템 구축 가능"
이미 드러난 사기 조직 연루자는 24명입니다. 이번에 KBS 연결망 분석으로 이들 24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그러니까 새롭게 드러난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은 152명입니다. 전국의 전세 사기단 규모가 지금까지의 수사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얘깁니다.
전체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은 1인당 평균 주택 153채를 2~3년 안에 집중적으로 사들였습니다. 이들의 수중에 들어간 주택 규모는 2만6,968채입니다. '깡통 주택'으로 전락했을 우려가 큽니다.
이번 분석은 전체 사기단의 공모 관계와, 전세 사기 피해 규모를 데이터로서 최초 분석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연구팀은 평가했습니다.
둘 이상 범죄자가 공모한 흔적을 추적하는 데 SNA를 적용한 사례는 종종 있었습니다. 실제로 미국 정보기관은 테러리스트 연결망을 분석해 테러 실행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2003년 사담 후세인을 검거하는 데 SNA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CIA는 2000년 초 알카에다 소속 테러리스트가 LA로 입국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의 전화, 이메일, 자금 흐름 등을 추척한 결과, 911테러에 가담했던 납치범 19명이 모두 이들과 관계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진은 CIA가 분석한 9/11 테러리스트 연결망.
1인 단독 범죄와 달리, 여러 명이 지능적으로 공모하는 범죄는 실체 규명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흔적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다면 추적은 가능하다고 연구팀은 설명했습니다.
염유식 교수는 "피해가 확산하기 전에, 사기를 공모하는 핵심 집단을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이 이번 분석으로 확인됐다"며 "국토부와 HUG도 SNA를 통한 전세 사기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얼마나 더 많은 보증금을 떼일까?...막을 수 있을까?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보증금을 떼먹을까요. 현재 정부가 밝힌 전세 사기 예방책은 악성 임대인 신상 공개입니다. 최근 관련법이 국회 문턱을 넘어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명단 공개 기준은 ▲ 총 2억 원 이상의 임차보증금을 변제하지 않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신 내줬고 ▲ 이에 따른 구상채무 발생일로부터 3년 이내에 2건 이상의 임차보증금 반환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임대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전세 사기 예방책인데 악성 임대인이 보증금을 떼먹고 난 뒤에서야 명단 공개가 이뤄진다는 겁니다. 이걸 과연 효과적인 예방책이라 할 수 있을까요?
어쨌든 이 명단은 이르면 9월에 처음으로 공개됩니다. 공개되는 악성 임대인에, 저희가 드러낸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이 얼마나 포함되는지도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취재 : 우한울, 송수진, 김연주 기자
데이터 분석 : 윤지희, 이지연
연구 지원 : 연세대 사회학과 'Social Networks & Neuroscience Lab'
염유식 교수, 성기호, 곽현정, 허예진, 황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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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탐사K]① 숨어있는 ‘빌라왕’ 전수 추적…전국에 17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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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3-09 18:40:02
- 수정2023-05-04 11:43:39
■ 사기 조직은 '연결'돼 있었다
2021년 제주에서 숨진 '빌라왕' (악성 임대인) 정 모 씨. 그는 2021년 6월부터 빌라를 마구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신축을 노렸습니다. 숨지기 직전까지 그가 임대한 빌라는 모두 100채를 넘었습니다.
정 씨를 추적하던 취재진은 의아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같은 건물에서 정 씨와 함께 등장하는 다른 임대인들입니다. 그들 역시 주로 새로 짓는 빌라를 분양받으면서 조직적으로 빌라를 쇼핑하다시피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알고 보니 정 씨는 '빌라왕'이라기 보다 '바지 집주인'이었습니다. 다수의 임대인 뒤에 숨어있던 지휘자는 따로 있었습니다. 배후는 신 모 씨로 확인됐습니다.
(뉴스9 [단독] “빌라왕 여러 명 거느린 배후 조직 있다”…법인 세워 버젓이 영업)
이런 전세 사기에는 건축주와 분양대행사, 감정평가사와 공인중개사도 합세했습니다.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부부에게 시세보다 비싸게 전세를 주고, 돈을 빼갔습니다. 수도권 빌라촌은 거대한 사기 조직의 소굴이었던 셈입니다.
사기 조직이 크게 한 탕 벌이고 지나간 빌라에는 '깡통 주택'이 쌓여 갔습니다. '깡통 주택' 집주인들은 선량한 임대인 행세를 하며 세입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세입자들은 전세 계약이 끝나고 나서야 덫에 걸린 걸 알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임대인 두 명이 같은 건물에서 주택을 임대하는 건, 우연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연은 수도권 빌라촌에서는 전혀 다른 얘기가 됩니다. 같은 건물에서 반복적으로 건물을 매입한 두 임대인은 전세 사기 조직의 패거리일 가능성이 컸습니다.
■ 최초 공개,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 확인
그렇다면 같은 빌라 건물을 반복적으로 나눠서 매입한 사람들을 추려, 조직적으로 사기에 가담한 '악성 임대인'을 가려낼 수 있지 않을까. KBS 탐사보도부는 지난달 연세대 사회학과 염유식 교수팀과 이런 '가설'을 세우고,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분석 방법으로는 사회연결망 분석(SNA·Social Network Analysis) 기법을 택했습니다.
한 달간의 분석 끝에 취재진과 연구팀은 전국 50채 이상의 다주택 임대인을 추적 조사해 '악성 임대인 연결망'을 완성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연결망 한가운데에 기존에 드러났던 전세 사기 조직원들이 무더기로 등장했습니다. 또 그들과 연계된 악성 임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들도 무더기로 확인됐습니다. 모두 176명 입니다. KBS 탐사보도부는 과학적인 사회학 분석 방법인 SNA를 동원해, 최초 시도된 우리나라 악성 임대인 전수 조사 결과를 오늘(9일)부터 이틀간 공개합니다.
■ '악성 임대인 연결망'을 처음 그리다...촘촘하게 연결된 '그들'
취재진과 연구팀이 악성 임대인 추적한 과정은 이랬습니다. 우선 전체 분석 대상은 전국에서 50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 임대인으로 한정했습니다. KBS 탐사보도부가 처음으로 밝혀낸 이른바 '빌라왕의 배후' 신 씨가 거느렸던 악성 임대인 7명이 최소 50채가 넘는 빌라를 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23년 1월 현재, 전국에서 50채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다주택자는 모두 2,659명(공공기관, 은행, 신탁, 조합, 대기업, 학교법인 등 제외)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들은 전국 주택 39만 9,539채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다주택 임대인 현황은 부동산 · 공간 빅데이터 전문기업 '빅밸류'가 공공 데이터인 건축물 대장의 소유 현황을 파악한 결과입니다.
연구팀은 미리 세운 가설에 따라, 다주택 임대인 중 같은 건물에서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임대인(노드, node)들을 선(link)로 연결했습니다.
연결망에서 임대인은 동그라미(노드, node)로 표현됩니다. 연결 정도가 강한 임대인끼리 더 가깝게 붙게 됩니다. 또 더 많은 임대인과 건물을 나눠 매입하는 조직적 모습을 보이는 임대인일수록, 더 크게 표현했습니다.
그 결과 50채 이상 다주택 임대인 2,659명으로 구성된 연결망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습니다.
전국의 다주택 임대인 연결망은 모두 1,538개의 크고 작은 그룹으로 쪼개져 있었습니다. 연결망 한가운데 가장 큰 집단이 관찰됐고, 나머지는 작은 규모로 쪼개져 있었습니다. 전체의 78%(2,073명)가 작은 집단에 속했습니다. 취재진은 이런 임대인들은 '우연'인 경우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추적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대신 오직 586명(22%)의 임대인만으로 이뤄진 하나의 큰 집단에 주목했습니다. (위 그림에서 붉은색)
■ 연결망 중심에 등장한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취재진과 연구팀은 연결망의 중심에 있는 임대인 586명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연결망 중심에 위치할수록 조직적 모습을 띤 임대인들입니다. 흥미로운 건 연결망 한가운데에 낯익은 이름의 '빌라왕'들이 무더기로 확인됐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연결망 정 한가운데는 '2400' 조직으로 알려진 전세 사기단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이른바 '빌라의 신'으로도 불린 권 모 씨가 속한 패거리들입니다. 개인 3명과 법인 2명으로 이뤄진 이들 조직은 빌라와 오피스텔 3천 800여 채를 보유 중입니다. 역대 가장 큰 규모로 전세 사기를 벌인 조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초의 대형 전세 사기 사건으로 알려진 '세 모녀 사건'의 두 딸 박 모 씨 자매와 '원조 빌라왕' 이 모씨(사고액 최다…580억 떼먹은 1세대 ‘빌라왕’, 처벌은?)이름도 눈에 띄었습니다. 이들 3명(그림4)은 연결망 가운데 옹기종기 붙어있습니다. M 주택으로 불리는 하나의 컨설팅 업체를 배후로 뒀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강서구 '빌라왕 배후' 신 모 씨가 거느린 악성 임대인 7명과 법인 1곳도 비교적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잇따라 숨진 빌라왕 김 모 씨, 송 모 씨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전세 사기 혐의가 확인돼 수사 또는 재판을 받고 있는 악성 임대인 24명은 모조리 연결망 중심에 나타났습니다. 염유식 교수는 "SNA 분석은 기존 악성 임대인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진행됐다"며 "그런데도 사기 조직들이 연결망 핵심 그룹에 나타났다는 것은 분석의 신뢰도가 높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습니다.
■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 연결망 유지의 핵심"
사기 조직들은 연결망 한가운데 위치하면서, 다른 임대인 집단과 비교적 큰 덩어리를 이뤘습니다. 이미 확인된 악성 임대인 24명과 함께 조직적 모습을 보인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은 모두 176명으로 분석됐습니다. 시쳇말로 전세 사기계의 '인싸'들입니다.
규모로 보면 분석 대상이었던 다주택 임대인 2,659명의 6.6%를 차지합니다. 그러니까 50채 이상 다주택자 100명 중 6명가량은 전세 사기 범죄에 이미 연루됐거나, 연루됐을 가능성이 큰 악성 임대인으로 보인다는 게 연구팀 결론입니다.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은 최소 14명, 최대 148명과 같은 건물에서 임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인물들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사기 조직에 속한 임대인들끼리도 때에 따라서는 한 몸처럼 움직였습니다. 한 건축주 또는 같은 분양대행사의 의뢰를 받아, 특정 건물의 분양률을 높이기 위해 서로 '품앗이'한 경우로 풀이됩니다.
이런식으로 임대인 연결망 한가운데를 차지한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들은 전세 사기를 반복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팀은 분석했습니다. 염유식 교수는 "한두 번이라면 우연이라 하겠지만, 서른 번 씩 같은 빌라에서 임대했다는 것은 서로 연계된 같은 조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 "전세 사기 예방 시스템 구축 가능"
이미 드러난 사기 조직 연루자는 24명입니다. 이번에 KBS 연결망 분석으로 이들 24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그러니까 새롭게 드러난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은 152명입니다. 전국의 전세 사기단 규모가 지금까지의 수사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얘깁니다.
전체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은 1인당 평균 주택 153채를 2~3년 안에 집중적으로 사들였습니다. 이들의 수중에 들어간 주택 규모는 2만6,968채입니다. '깡통 주택'으로 전락했을 우려가 큽니다.
이번 분석은 전체 사기단의 공모 관계와, 전세 사기 피해 규모를 데이터로서 최초 분석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연구팀은 평가했습니다.
둘 이상 범죄자가 공모한 흔적을 추적하는 데 SNA를 적용한 사례는 종종 있었습니다. 실제로 미국 정보기관은 테러리스트 연결망을 분석해 테러 실행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2003년 사담 후세인을 검거하는 데 SNA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인 단독 범죄와 달리, 여러 명이 지능적으로 공모하는 범죄는 실체 규명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흔적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다면 추적은 가능하다고 연구팀은 설명했습니다.
염유식 교수는 "피해가 확산하기 전에, 사기를 공모하는 핵심 집단을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이 이번 분석으로 확인됐다"며 "국토부와 HUG도 SNA를 통한 전세 사기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얼마나 더 많은 보증금을 떼일까?...막을 수 있을까?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보증금을 떼먹을까요. 현재 정부가 밝힌 전세 사기 예방책은 악성 임대인 신상 공개입니다. 최근 관련법이 국회 문턱을 넘어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명단 공개 기준은 ▲ 총 2억 원 이상의 임차보증금을 변제하지 않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신 내줬고 ▲ 이에 따른 구상채무 발생일로부터 3년 이내에 2건 이상의 임차보증금 반환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임대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전세 사기 예방책인데 악성 임대인이 보증금을 떼먹고 난 뒤에서야 명단 공개가 이뤄진다는 겁니다. 이걸 과연 효과적인 예방책이라 할 수 있을까요?
어쨌든 이 명단은 이르면 9월에 처음으로 공개됩니다. 공개되는 악성 임대인에, 저희가 드러낸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이 얼마나 포함되는지도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취재 : 우한울, 송수진, 김연주 기자
데이터 분석 : 윤지희, 이지연
연구 지원 : 연세대 사회학과 'Social Networks & Neuroscience Lab'
염유식 교수, 성기호, 곽현정, 허예진, 황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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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울 기자 whw@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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