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1단계 : 수사 통보 + 위조 공문 발송

입력 2023.03.23 (06:25) 수정 2023.03.2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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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보이스피싱'의 수법이 진화하며, 피해액도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달 초, KBS는 '피싱' 조직 내부의 비밀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피해자를 속이기 위해 여러 상황을 가정해 작성한, 6가지 '시나리오'가 담긴 파일입니다.

각 시나리오가 어떻게 짜여져 있고, 피해자들을 옭아매기 위해 어떤 장치들을 숨겨놨는지, 김성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시나리오 모음'이라고 적힌 폴더.

파일 6개가 들어 있습니다.

피싱 조직이, 피해자와 통화할 때, 예상되는 상황별 멘트를 정리해 놓은 겁니다.

우선 경찰·검사· 금감원 과장· 은행 법무팀 등, 금융·수사 기관을 사칭하며 접근합니다.

[실제 보이스피싱 음성①/지난해 10월 : "지금 전화 드린 곳은 강서경찰서 형사과에서 전화를 드렸고요."]

[실제 보이스피싱 음성②/지난해 10월 : "특별수사 제1부 천○○ 검사입니다. 아시겠죠?"]

'범죄'에 연루됐단 말로 피해자를 일단 당황시킨 뒤, 문자나 SNS로, 위조된 수사 서류까지 전송합니다.

[제공:금융감독원 : "사건 번호 2017 조사 5084호 확인되시죠? 공문 아래 보시면요, 요지사항 1번부터 4번까지 기재가 되었을 거예요."]

주로 언급하는 혐의는 '성매매'나 '온라인 사기'.

[보이스피싱 시나리오/대독 : "강남구 ***오피스텔 알고 계신가요? 총 7곳에서 성매매 알선 및 불법자금 혐의로 주범 김상호를 검거를 했는데 혹시 본인과 관계가 어떻게 되실까요?"

[실제 보이스피싱 음성③ : "저희가 얼마 전에 강남구 선릉에 위치한 오피스텔에서 성매매 알선 및 금융 위반 혐의로 주범 이지연이라는 40대 여성을 검거했는데 혹시 아시는 분이십니까?"]

잘못한 일이 없어도, 당장 '수사'가 진행 중이란 말은 무시할 수 없는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A/음성변조 : "(범죄) 현장에서 제 통장이랑 신분증이 발견됐다고 얘기를 하니까 그래서 혹시나 해서 얘기를 한번 들어보게 되는 거고..."]

두 달 전 이 시나리오에 당한, 30대 이 모 씨.

빨리 담당 검사에게 연락해보란 말에, 건네받은 번호로 전화했더니, '극비 수사를 어떻게 알았냐'며 윽박지르기까지 했습니다.

'주위에 알리거나,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구속될 수 있다'는 협박도 뒤따랐습니다.

[이○○/보이스피싱 피해자/음성변조 : "의심하게 되면 계속 보안수사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가족한테도 누설하면 안 된다고 해서 완전 고립을 시키는 거예요. 변호사를 대동해도 못 나온다 최소 10년이다."]

이렇듯, 피해자들의 의심을 무력화한 건, 상황별 대응 시나리오였습니다.

[전직 보이스 피싱 콜센터 직원/음성변조 :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숙지한 다음에 이제 업무에 들어갔어요. 모의 전화라든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문제 같은 것도 내면 통과를 해야지 실제 업무를 할 수 있었고."]

[이○○/보이스피싱 피해자/음성변조 : "'원래 공문은 등기로 다 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하면 '네, 선생님' 이렇게 하고 이제 이렇게 좔좔 나온단 말이에요. 대답이 청산유수로 나왔는데..."]

이 씨는 결국 '가짜 검사'가 시키는 대로 신용카드 6장을 자신의 집 우편함에 넣어두었습니다.

당국이 그걸 가져가서 누명을 벗겨줄 줄 알았지만, 카드는 피싱 조직에 넘어갔고 그들은 3억 원 넘게 돈을 빼갔습니다.

[이○○/보이스피싱 피해자/음성변조 : "대본 그대로 읽었구나. 제가 이제 질문을 만약에 약간 방향을 다르게 해도 결과적으로는 같은 대사가 돌아오는 거예요. '단 1원이라도 환수가 안 되면 나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KBS 뉴스 김성수입니다.

촬영기자:허수곤/영상편집:김선영/그래픽: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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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나리오 1단계 : 수사 통보 + 위조 공문 발송
    • 입력 2023-03-23 06:25:40
    • 수정2023-03-23 08:01:16
    뉴스광장 1부
[앵커]

'보이스피싱'의 수법이 진화하며, 피해액도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달 초, KBS는 '피싱' 조직 내부의 비밀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피해자를 속이기 위해 여러 상황을 가정해 작성한, 6가지 '시나리오'가 담긴 파일입니다.

각 시나리오가 어떻게 짜여져 있고, 피해자들을 옭아매기 위해 어떤 장치들을 숨겨놨는지, 김성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시나리오 모음'이라고 적힌 폴더.

파일 6개가 들어 있습니다.

피싱 조직이, 피해자와 통화할 때, 예상되는 상황별 멘트를 정리해 놓은 겁니다.

우선 경찰·검사· 금감원 과장· 은행 법무팀 등, 금융·수사 기관을 사칭하며 접근합니다.

[실제 보이스피싱 음성①/지난해 10월 : "지금 전화 드린 곳은 강서경찰서 형사과에서 전화를 드렸고요."]

[실제 보이스피싱 음성②/지난해 10월 : "특별수사 제1부 천○○ 검사입니다. 아시겠죠?"]

'범죄'에 연루됐단 말로 피해자를 일단 당황시킨 뒤, 문자나 SNS로, 위조된 수사 서류까지 전송합니다.

[제공:금융감독원 : "사건 번호 2017 조사 5084호 확인되시죠? 공문 아래 보시면요, 요지사항 1번부터 4번까지 기재가 되었을 거예요."]

주로 언급하는 혐의는 '성매매'나 '온라인 사기'.

[보이스피싱 시나리오/대독 : "강남구 ***오피스텔 알고 계신가요? 총 7곳에서 성매매 알선 및 불법자금 혐의로 주범 김상호를 검거를 했는데 혹시 본인과 관계가 어떻게 되실까요?"

[실제 보이스피싱 음성③ : "저희가 얼마 전에 강남구 선릉에 위치한 오피스텔에서 성매매 알선 및 금융 위반 혐의로 주범 이지연이라는 40대 여성을 검거했는데 혹시 아시는 분이십니까?"]

잘못한 일이 없어도, 당장 '수사'가 진행 중이란 말은 무시할 수 없는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A/음성변조 : "(범죄) 현장에서 제 통장이랑 신분증이 발견됐다고 얘기를 하니까 그래서 혹시나 해서 얘기를 한번 들어보게 되는 거고..."]

두 달 전 이 시나리오에 당한, 30대 이 모 씨.

빨리 담당 검사에게 연락해보란 말에, 건네받은 번호로 전화했더니, '극비 수사를 어떻게 알았냐'며 윽박지르기까지 했습니다.

'주위에 알리거나,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구속될 수 있다'는 협박도 뒤따랐습니다.

[이○○/보이스피싱 피해자/음성변조 : "의심하게 되면 계속 보안수사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가족한테도 누설하면 안 된다고 해서 완전 고립을 시키는 거예요. 변호사를 대동해도 못 나온다 최소 10년이다."]

이렇듯, 피해자들의 의심을 무력화한 건, 상황별 대응 시나리오였습니다.

[전직 보이스 피싱 콜센터 직원/음성변조 :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숙지한 다음에 이제 업무에 들어갔어요. 모의 전화라든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문제 같은 것도 내면 통과를 해야지 실제 업무를 할 수 있었고."]

[이○○/보이스피싱 피해자/음성변조 : "'원래 공문은 등기로 다 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하면 '네, 선생님' 이렇게 하고 이제 이렇게 좔좔 나온단 말이에요. 대답이 청산유수로 나왔는데..."]

이 씨는 결국 '가짜 검사'가 시키는 대로 신용카드 6장을 자신의 집 우편함에 넣어두었습니다.

당국이 그걸 가져가서 누명을 벗겨줄 줄 알았지만, 카드는 피싱 조직에 넘어갔고 그들은 3억 원 넘게 돈을 빼갔습니다.

[이○○/보이스피싱 피해자/음성변조 : "대본 그대로 읽었구나. 제가 이제 질문을 만약에 약간 방향을 다르게 해도 결과적으로는 같은 대사가 돌아오는 거예요. '단 1원이라도 환수가 안 되면 나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KBS 뉴스 김성수입니다.

촬영기자:허수곤/영상편집:김선영/그래픽: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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