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에서 포동까지, 독립의 발자취

입력 2005.08.16 (20:48) 수정 2005.08.1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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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번에는 광복 60주년을 맞아서 중국의 우리 임시정부가 겪었던 고단한 여정을 따라가면서 독립의 발자취를 더듬어봤습니다.
⊙앵커: 중국 충칭에서 푸둥까지 연규선 기자가 답사단을 동행 취재했습니다.
⊙기자: 임시정부 유적답사단이 처음 방문한 곳은 상하이.
애국지사들의 망명지, 그리고 1919년 임시정부가 처음 출범했던 곳.
그래서 독립운동 유적이 가장 많은 도시입니다.
상하이 마당룸에 있는 임정청사.
박은식 선생 등 애국지사 14명이 묻혀 있는 망국공묘.
그리고 지금은 루신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홍구공원에는 매현 윤봉길 의사의 사진과 유품이 남아 있습니다.
24살 청춘을 던져 조국을 구하려 했던 매현 선생의 피끓는 열정을 추모하듯 공원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답사단은 윤봉길 의사도 당시에 즐겨 불렀을 독립군가를 바칩니다.
일본의 위협이 더욱 노골화되자 임시정부는 32년 항저우 부근으로 옮깁니다.
김 구 선생의 피난처.
그곳에서 우연히 알게 된 임정 부수석 차리석 선생의 손녀딸도 이번 답사단의 일행이었습니다.
⊙차수진(차리석 선생의 손녀딸): 이곳에서 임시정부 살림 도맡아 하시느라 바쁘게 뛰시고 곳곳에 할아버지 손길이 다 닿았을 것을 생각하니까 감격스러운 마음보다는 안타깝고 되게 힘드셨겠구나,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것 같아요.
⊙기자: 임시정부는 이후 난징과 우한 그리고 광저우 등에 잠시 머문 뒤 류저우로 열차를 타고 이동합니다.
그때만큼 절박하지는 않지만 40도에 가까운 더위에 빠듯한 일정이 힘에 겨웠던지 한 학생은 드디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마지막 기착지인 충칭에 오기 전 2년 동안 머물렀던 쓰촨성의 소도시 치지앙.
지금 학생들은 치지앙에 임시정부 유적지를 둘러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임시정부 거주지의 대부분은 당시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기억을 더듬고 몇 번을 물어 찾은 곳은 임시정부 옛 청사와 한인거주지터.
현장에 있는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답사단은 넘치는 감동을 억누르지 못합니다.
⊙이연지(연세대학교): 지금 살아계신 한 분에 의존해서 이렇게 기억을 더듬
어서 온 거잖아요,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래서 그런 것을 더듬어서 오다 보니까 터만 남았잖아요.
반듯하게 꾸며져 있는 전시장보다 더 감동이 오는 것 같아요.
⊙기자: 드디어 충칭 임시정부 청사.
5년 동안 독립운동을 펼치다 광복을 맞은 곳.
⊙김보미(전남대학교): 정말로 제가 생각지도 못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애국심이 나오고 민족 정신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뿌리를 찾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느꼈어요.
⊙기자: 그렇게 온몸으로 체험한 감동과 희열을 107명의 답사단은 힘찬 구호로 마무리했습니다.
KBS뉴스 연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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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칭에서 포동까지, 독립의 발자취
    • 입력 2005-08-16 20:24:38
    • 수정2005-08-16 21:24:02
    뉴스타임
⊙앵커: 이번에는 광복 60주년을 맞아서 중국의 우리 임시정부가 겪었던 고단한 여정을 따라가면서 독립의 발자취를 더듬어봤습니다. ⊙앵커: 중국 충칭에서 푸둥까지 연규선 기자가 답사단을 동행 취재했습니다. ⊙기자: 임시정부 유적답사단이 처음 방문한 곳은 상하이. 애국지사들의 망명지, 그리고 1919년 임시정부가 처음 출범했던 곳. 그래서 독립운동 유적이 가장 많은 도시입니다. 상하이 마당룸에 있는 임정청사. 박은식 선생 등 애국지사 14명이 묻혀 있는 망국공묘. 그리고 지금은 루신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홍구공원에는 매현 윤봉길 의사의 사진과 유품이 남아 있습니다. 24살 청춘을 던져 조국을 구하려 했던 매현 선생의 피끓는 열정을 추모하듯 공원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답사단은 윤봉길 의사도 당시에 즐겨 불렀을 독립군가를 바칩니다. 일본의 위협이 더욱 노골화되자 임시정부는 32년 항저우 부근으로 옮깁니다. 김 구 선생의 피난처. 그곳에서 우연히 알게 된 임정 부수석 차리석 선생의 손녀딸도 이번 답사단의 일행이었습니다. ⊙차수진(차리석 선생의 손녀딸): 이곳에서 임시정부 살림 도맡아 하시느라 바쁘게 뛰시고 곳곳에 할아버지 손길이 다 닿았을 것을 생각하니까 감격스러운 마음보다는 안타깝고 되게 힘드셨겠구나,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것 같아요. ⊙기자: 임시정부는 이후 난징과 우한 그리고 광저우 등에 잠시 머문 뒤 류저우로 열차를 타고 이동합니다. 그때만큼 절박하지는 않지만 40도에 가까운 더위에 빠듯한 일정이 힘에 겨웠던지 한 학생은 드디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마지막 기착지인 충칭에 오기 전 2년 동안 머물렀던 쓰촨성의 소도시 치지앙. 지금 학생들은 치지앙에 임시정부 유적지를 둘러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임시정부 거주지의 대부분은 당시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기억을 더듬고 몇 번을 물어 찾은 곳은 임시정부 옛 청사와 한인거주지터. 현장에 있는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답사단은 넘치는 감동을 억누르지 못합니다. ⊙이연지(연세대학교): 지금 살아계신 한 분에 의존해서 이렇게 기억을 더듬 어서 온 거잖아요,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래서 그런 것을 더듬어서 오다 보니까 터만 남았잖아요. 반듯하게 꾸며져 있는 전시장보다 더 감동이 오는 것 같아요. ⊙기자: 드디어 충칭 임시정부 청사. 5년 동안 독립운동을 펼치다 광복을 맞은 곳. ⊙김보미(전남대학교): 정말로 제가 생각지도 못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애국심이 나오고 민족 정신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뿌리를 찾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느꼈어요. ⊙기자: 그렇게 온몸으로 체험한 감동과 희열을 107명의 답사단은 힘찬 구호로 마무리했습니다. KBS뉴스 연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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