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극비]③ “부당하므로 불이행”…진실은 여전히 수면 아래

입력 2023.04.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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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기자주] 제주 4·3 75주년인 올해는 6·25전쟁이 멈춘 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6·25전쟁 직후 제주에선 4·3과 관련됐단 이유로 또다시 양민 학살이 자행됐는데요. 극비로 진행된 이 ‘예비검속’의 실체를 3차례에 걸쳐 조명해보겠습니다.

1950년 8월 30일 군의 총살 지시 문서에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은 ‘부당함으로 불이행’이라고 적었다.1950년 8월 30일 군의 총살 지시 문서에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은 ‘부당함으로 불이행’이라고 적었다.

4·3 당시 절대 극비로 진행된 예비검속은 가해 사실을 입증할 공문서가 적다 보니 70년이 넘도록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비검속 기획 마지막 순서로 억울한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과제는 무엇일지 들여다봤습니다.

■ 6·25 전쟁 당일 예비검속 명령…"나는 죄가 없었다"

6·25전쟁 당일 내무부 치안국장은 전국의 경찰국에 한 문서를 보냈습니다. 과거 좌익 활동에 가담했던 요시찰인들을 단속하라는 내용이 담겼는데, 바로 예비검속 명령이었습니다.

제주에선 4·3사건 관계자들이 주요 대상이었습니다.


제주와 서귀포, 성산포와 모슬포 4개 경찰서에 끌려간 예비검속자들은 천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경찰은 이들을 D부터 A까지 4등급으로 분류했고, D와 C등급은 제주지구 계엄사령부였던 해병대에 의해 대부분 학살됐습니다.

서귀포경찰서에 예비검속됐다 살아 돌아온 조병태 할아버지는 "4·3 때 인천형무소에 끌려가 1년간 있다 1949년 10월에 고향에 돌아왔는데 다음해 6·25가 터지니까 경찰이 또 잡아갔다"며 "수용소에서 한 달 살다 나와 보니 동네에 청년들이 하나도 없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조 할아버지는 이어 "수용소에 있었을 때 가족들이 내가 죽은 줄 알고 시신을 찾으러 서귀포 정방폭포에 수레를 들고 가기도 했다"라며 "풀려나서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는데, 아흔 살이 넘도록 살다 보니 4년 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덧붙였습니다.

70년 만의 무죄 판결로 죄가 없는 사람을 예비검속 했단 사실이 다시금 확인됐습니다.

■ "부당하므로 따르지 않겠다"…70여 명 목숨 살려준 경찰

제주경찰청 앞에 세워진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 흉상.제주경찰청 앞에 세워진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 흉상.

그나마 성산포경찰서는 문형순 서장 덕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1950년 8월 30일 군의 총살 지시에 문 서장은 '부당하므로 따르지 않겠다'며 70여 명을 석방 했습니다.

아흔 살이 넘은 강순주 할아버지는 문 서장에 대한 고마움을 70여 년이 넘은 지금까지 기억했습니다.


강 할아버지는 "우리를 살려주면서 '당신네는 내가 도운 것이 아니고 하늘이 도왔다, 사회에 나가거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며 "당신의 목숨까지 던지면서 우리를 살려준 분을 어떻게 잊을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강 할아버지는 이어 "뒤늦게 문 서장님의 행적을 좇아보니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가족도 없이 도립병원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셨는데, 잘 가시라고 누구 하나 손잡아주는 사람도 없지 않았겠냐"고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문 서장의 애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주경찰청에 흉상이 세워졌지만, 유족이 없는 그의 묘는 평안도민 공동묘역 한 귀퉁이에 있습니다.

강 할아버지는 "그런 분을 발굴해서 훌륭하게 모셔야 제2 제3,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도 있고 봉사하는 사람도 있을 거 아니냐"며 "문 서장님이야말로 나라 사랑 국가관이 철저한 사람"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 "가해집단 지속적인 노력 필요"…"예비검속자 손 놓지 말아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예비검속의 불법성을 인정하며 역사 기록을 정정해 미래 교훈으로 삼을 것을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진실이 드러난 일부를 제외하곤 언제, 어디서, 몇 명이, 왜 학살됐는지 실체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무고한 양민이 조사도 재판도 없이 학살됐다는 것입니다.


조정희 전 진화위 조사위원은 "과거 기록을 보면 예비검속의 가해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기관인 군인과 경찰, 검찰 사이에서 예비검속의 적법성이랄지 권한을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이 계속 나왔다"며 "죄의 유무도 따져보지 않고 즉결 처형했다는 점이 불법성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조 조사위원은 이어 "계엄사령부였던 당시 해병대사령부가 전체적으로 예비검속의 가해 책임이 있다는 건 사실"이라면서 "가해 주체로서 끊임없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 지역 사회 안에서라도 이뤄지면 어떨까 싶다"고 바랐습니다.

아울러 그는 "4·3도 잘 모르고 예비검속도 모르는 분들이 많다"며 "예비검속 사건이 6·25전쟁과 연결되는 만큼, 이 사건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하게 사실을 실체적으로 기억하고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여전히 암흑 속에 있는 예비검속자들의 손을 놓아선 안 된다는 다짐도 나왔습니다.


박찬식 전 제주4·3연구소장은 "예비검속과 관련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고, 특히 제주경찰서 예비검속 희생자분들의 유해는 한 분도 발굴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제주공항 활주로 밑에 아직도 남아있는 유해를 언젠가는 발굴할 수 있는 근거 자료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정전 70주년을 맞은 지금, 묻혀있는 진실을 명확히 규명하고 공유하는 일이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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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13 07:00:19
    취재K
[기자주] 제주 4·3 75주년인 올해는 6·25전쟁이 멈춘 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6·25전쟁 직후 제주에선 4·3과 관련됐단 이유로 또다시 양민 학살이 자행됐는데요. 극비로 진행된 이 ‘예비검속’의 실체를 3차례에 걸쳐 조명해보겠습니다.<br />
1950년 8월 30일 군의 총살 지시 문서에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은 ‘부당함으로 불이행’이라고 적었다.
4·3 당시 절대 극비로 진행된 예비검속은 가해 사실을 입증할 공문서가 적다 보니 70년이 넘도록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비검속 기획 마지막 순서로 억울한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과제는 무엇일지 들여다봤습니다.

■ 6·25 전쟁 당일 예비검속 명령…"나는 죄가 없었다"

6·25전쟁 당일 내무부 치안국장은 전국의 경찰국에 한 문서를 보냈습니다. 과거 좌익 활동에 가담했던 요시찰인들을 단속하라는 내용이 담겼는데, 바로 예비검속 명령이었습니다.

제주에선 4·3사건 관계자들이 주요 대상이었습니다.


제주와 서귀포, 성산포와 모슬포 4개 경찰서에 끌려간 예비검속자들은 천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경찰은 이들을 D부터 A까지 4등급으로 분류했고, D와 C등급은 제주지구 계엄사령부였던 해병대에 의해 대부분 학살됐습니다.

서귀포경찰서에 예비검속됐다 살아 돌아온 조병태 할아버지는 "4·3 때 인천형무소에 끌려가 1년간 있다 1949년 10월에 고향에 돌아왔는데 다음해 6·25가 터지니까 경찰이 또 잡아갔다"며 "수용소에서 한 달 살다 나와 보니 동네에 청년들이 하나도 없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조 할아버지는 이어 "수용소에 있었을 때 가족들이 내가 죽은 줄 알고 시신을 찾으러 서귀포 정방폭포에 수레를 들고 가기도 했다"라며 "풀려나서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는데, 아흔 살이 넘도록 살다 보니 4년 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덧붙였습니다.

70년 만의 무죄 판결로 죄가 없는 사람을 예비검속 했단 사실이 다시금 확인됐습니다.

■ "부당하므로 따르지 않겠다"…70여 명 목숨 살려준 경찰

제주경찰청 앞에 세워진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 흉상.
그나마 성산포경찰서는 문형순 서장 덕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1950년 8월 30일 군의 총살 지시에 문 서장은 '부당하므로 따르지 않겠다'며 70여 명을 석방 했습니다.

아흔 살이 넘은 강순주 할아버지는 문 서장에 대한 고마움을 70여 년이 넘은 지금까지 기억했습니다.


강 할아버지는 "우리를 살려주면서 '당신네는 내가 도운 것이 아니고 하늘이 도왔다, 사회에 나가거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며 "당신의 목숨까지 던지면서 우리를 살려준 분을 어떻게 잊을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강 할아버지는 이어 "뒤늦게 문 서장님의 행적을 좇아보니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가족도 없이 도립병원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셨는데, 잘 가시라고 누구 하나 손잡아주는 사람도 없지 않았겠냐"고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문 서장의 애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주경찰청에 흉상이 세워졌지만, 유족이 없는 그의 묘는 평안도민 공동묘역 한 귀퉁이에 있습니다.

강 할아버지는 "그런 분을 발굴해서 훌륭하게 모셔야 제2 제3,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도 있고 봉사하는 사람도 있을 거 아니냐"며 "문 서장님이야말로 나라 사랑 국가관이 철저한 사람"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 "가해집단 지속적인 노력 필요"…"예비검속자 손 놓지 말아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예비검속의 불법성을 인정하며 역사 기록을 정정해 미래 교훈으로 삼을 것을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진실이 드러난 일부를 제외하곤 언제, 어디서, 몇 명이, 왜 학살됐는지 실체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무고한 양민이 조사도 재판도 없이 학살됐다는 것입니다.


조정희 전 진화위 조사위원은 "과거 기록을 보면 예비검속의 가해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기관인 군인과 경찰, 검찰 사이에서 예비검속의 적법성이랄지 권한을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이 계속 나왔다"며 "죄의 유무도 따져보지 않고 즉결 처형했다는 점이 불법성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조 조사위원은 이어 "계엄사령부였던 당시 해병대사령부가 전체적으로 예비검속의 가해 책임이 있다는 건 사실"이라면서 "가해 주체로서 끊임없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 지역 사회 안에서라도 이뤄지면 어떨까 싶다"고 바랐습니다.

아울러 그는 "4·3도 잘 모르고 예비검속도 모르는 분들이 많다"며 "예비검속 사건이 6·25전쟁과 연결되는 만큼, 이 사건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하게 사실을 실체적으로 기억하고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여전히 암흑 속에 있는 예비검속자들의 손을 놓아선 안 된다는 다짐도 나왔습니다.


박찬식 전 제주4·3연구소장은 "예비검속과 관련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고, 특히 제주경찰서 예비검속 희생자분들의 유해는 한 분도 발굴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제주공항 활주로 밑에 아직도 남아있는 유해를 언젠가는 발굴할 수 있는 근거 자료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정전 70주년을 맞은 지금, 묻혀있는 진실을 명확히 규명하고 공유하는 일이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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