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로 세 딸 잃은 아버지…맹인들에게 빛 선물한 정광진 변호사 별세

입력 2023.05.23 (18:03) 수정 2023.05.2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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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ET 콕 입니다.

[1995년 6월 29일 : "삼풍백화점에 사고가 난 시각은 오늘 오후 5시 55분경…"]

당시 대한민국 최고급이라던 백화점은 20초 만에 사라졌습니다.

지상 5층 지하 4층의 삼풍백화점 건물이 무너졌을 때, 잔해에 깔린 사람만 1500여 명.

사망자만도 5백 명을 넘었습니다.

[1995년 KBS 뉴스9 中 : "아가씨 내 말 들려? 살살! 살살!"]

그 5백 명 속에 고 정광진 변호사의 세 딸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을 사자며 함께 백화점으로 향했던 세 자매는 다시 부모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밤새 서울 시내 병원을 뒤지다 사고 다음 날 아침 10시쯤에야 비로소 딸의 주검을 마주했다는데요.

아버지 정 변호사는 생전에 "우리 내외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 세상이 끝나줬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고 말했지만 세상을 오래 원망하진 않았습니다.

지급받은 보상금 7억 원과 사재를 합쳐 장학재단을 설립했고, 30년 가까이 시각 장애 학생들을 지원했습니다.

[故 정광진/변호사/1996년 인터뷰 : "보상금은 제 것이 아니고 아이들 거니까 걔들 뜻에 따라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딸들을 앞서 보낸 눈물을 세상의 빛으로 승화시킨 아버지 정광진 변호사가 지난 19일 딸들 곁으로 갔습니다.

향년 85세, 1963년 사법시험 합격 후 판사로 임용돼 평탄한 삶을 이어가던 고인의 삶을 바꿔 놓은 건 큰딸의 시각장애였습니다.

첫째 딸 윤민은 눈 망막 뒤에 핏줄이 생기는 병에 걸려 열두 살에 양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습니다.

비록 앞은 볼 수 없었지만 미국 버클리대 유학길에 올라 석사학위까지 받았고, 이후 귀국해서는 서울맹학교의 교사가 됐습니다.

이런 큰딸의 성장을 뿌듯하게 지켜보던 아버지에게 또 다시 찾아온 시련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였습니다.

윤민씨와 함께 백화점에 갔던 둘째 딸 유정 씨와 셋째 딸 윤경 씨도 참사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윤민 씨가 서울맹학교 교사가 된 지 9개월 만의 일이었습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앞서 죽는 비통함을 일러 ‘참척(慘慽)’이라 하는데요.

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비할 수 없는 '참혹한 슬픔'이란 뜻입니다.

참척지변의 슬픔에 대해 소설가 고 박완서 씨는 “자식을 앞세우고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는 에미를 생각하니 징그러워서 토할 것만 같았다”라고 썼습니다.

박 씨는 남편을 잃은 지 석 달 만에 외아들을 떠나보낸, '참척'을 겪은 어머니였습니다.

고 송해 씨 역시도 참척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한남대교에서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숨진 후 그 다리를 건너질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故 송해/2018년 인터뷰 : "나도 참 주책이야, 참... 아들 생각을 하면..."]

비통함을 이기지 못해 한 때는 세상이 끝나줬으면 하고 바랐다는 정 변호사였지만 그가 바란 건 결국 더 나은 세상이었습니다.

피어보지 못하고 간 세 딸의 이름에서 따온 '삼윤' 장학재단.

삼윤 장학재단은 맹인들에게 빛이 되어주고자 했던 큰딸 윤민씨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평생을 그리며 살았을 세 딸 곁으로 돌아간 고 정광진 변호사.

고인은 큰딸의 모교이자 첫 직장이었던 서울맹학교에 '삼윤' 장학재단을 기증했습니다.

지금까지 이티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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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23 18:03:47
    • 수정2023-05-23 18: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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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ET 콕 입니다.

[1995년 6월 29일 : "삼풍백화점에 사고가 난 시각은 오늘 오후 5시 55분경…"]

당시 대한민국 최고급이라던 백화점은 20초 만에 사라졌습니다.

지상 5층 지하 4층의 삼풍백화점 건물이 무너졌을 때, 잔해에 깔린 사람만 1500여 명.

사망자만도 5백 명을 넘었습니다.

[1995년 KBS 뉴스9 中 : "아가씨 내 말 들려? 살살! 살살!"]

그 5백 명 속에 고 정광진 변호사의 세 딸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을 사자며 함께 백화점으로 향했던 세 자매는 다시 부모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밤새 서울 시내 병원을 뒤지다 사고 다음 날 아침 10시쯤에야 비로소 딸의 주검을 마주했다는데요.

아버지 정 변호사는 생전에 "우리 내외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 세상이 끝나줬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고 말했지만 세상을 오래 원망하진 않았습니다.

지급받은 보상금 7억 원과 사재를 합쳐 장학재단을 설립했고, 30년 가까이 시각 장애 학생들을 지원했습니다.

[故 정광진/변호사/1996년 인터뷰 : "보상금은 제 것이 아니고 아이들 거니까 걔들 뜻에 따라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딸들을 앞서 보낸 눈물을 세상의 빛으로 승화시킨 아버지 정광진 변호사가 지난 19일 딸들 곁으로 갔습니다.

향년 85세, 1963년 사법시험 합격 후 판사로 임용돼 평탄한 삶을 이어가던 고인의 삶을 바꿔 놓은 건 큰딸의 시각장애였습니다.

첫째 딸 윤민은 눈 망막 뒤에 핏줄이 생기는 병에 걸려 열두 살에 양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습니다.

비록 앞은 볼 수 없었지만 미국 버클리대 유학길에 올라 석사학위까지 받았고, 이후 귀국해서는 서울맹학교의 교사가 됐습니다.

이런 큰딸의 성장을 뿌듯하게 지켜보던 아버지에게 또 다시 찾아온 시련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였습니다.

윤민씨와 함께 백화점에 갔던 둘째 딸 유정 씨와 셋째 딸 윤경 씨도 참사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윤민 씨가 서울맹학교 교사가 된 지 9개월 만의 일이었습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앞서 죽는 비통함을 일러 ‘참척(慘慽)’이라 하는데요.

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비할 수 없는 '참혹한 슬픔'이란 뜻입니다.

참척지변의 슬픔에 대해 소설가 고 박완서 씨는 “자식을 앞세우고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는 에미를 생각하니 징그러워서 토할 것만 같았다”라고 썼습니다.

박 씨는 남편을 잃은 지 석 달 만에 외아들을 떠나보낸, '참척'을 겪은 어머니였습니다.

고 송해 씨 역시도 참척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한남대교에서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숨진 후 그 다리를 건너질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故 송해/2018년 인터뷰 : "나도 참 주책이야, 참... 아들 생각을 하면..."]

비통함을 이기지 못해 한 때는 세상이 끝나줬으면 하고 바랐다는 정 변호사였지만 그가 바란 건 결국 더 나은 세상이었습니다.

피어보지 못하고 간 세 딸의 이름에서 따온 '삼윤' 장학재단.

삼윤 장학재단은 맹인들에게 빛이 되어주고자 했던 큰딸 윤민씨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평생을 그리며 살았을 세 딸 곁으로 돌아간 고 정광진 변호사.

고인은 큰딸의 모교이자 첫 직장이었던 서울맹학교에 '삼윤' 장학재단을 기증했습니다.

지금까지 이티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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