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뜨거운 쟁점, ‘맥아더 동상’

입력 2005.09.14 (22:11) 수정 2018.08.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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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내일이면 인천상륙작전 55년이 되는날 입니다만 최근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문제는 갈수록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분단의 상징인가, 아니면 승리의 영웅인가? 그동안의 논쟁 전말과 쟁점을 차분이 짚어보겠습니다.

함철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이른 새벽...

포 사격의 굉음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됩니다.

맥아더 장군의 지휘로 작전 2시간 만에 인천을 탈환하면서 패색이 짙던 전세를 단숨에 뒤집습니다.

일제와의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하고 남한의 공산화를 막은 맥아더 장군은 줄곧 우리에게는 영웅이었습니다.

그리고 반세기 뒤 맥아더 장군에 대한 이 같은 믿음이 도전을 받습니다.

해방과 함께 한반도에 들어올 때 점령군임을 명확히 한점과 한국전쟁 당시 핵 무기 사용을 언급한 점 등이 간과돼 왔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김성진(민노당 인천시위원장) : "핵전쟁을 해야 한다고 했던 사람이고 그렇게 봤을 때 맥아더 동상이 상징하는 건 분단과 전쟁입니다."

이에 반해 맥아더 개인의 성향이나 미군의 역할은 둘째 치고라도 공산화를 막은 것 만큼은 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상열(대한전상장교회장) : "이런 분의 동상을 우리가 고맙다고 세울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그걸 헐겠다고?"

맥아더를 재평가하자는 논쟁은 급기야 물리적인 충돌로 번졌습니다.

맥아더 동상을 사이에 두고 5천 명이 넘는 양측 시위대가 충돌해 30여 명의 부상자가 났습니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인천의 한 시민단체가 동상의 이전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자는 진보진영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면서 동상 철거가 가시화되자 이번엔 보수단체가 움직였습니다.

철거와 사수를 주장하는 양측의 집회와 시위는 올들어서만 벌써 60차례가 넘습니다.

사태가 계속 확산되자 논란은 국회와 정치권까지 확산됐고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진화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동상 철거 논란은 우리 시대 역사바로세우기와 맥을 같이 합니다.

냉전시대 영웅으로만 지나치게 부각된 면을 다시 냉정하게 평가해 공과를 명확히 하자는 것입니다.

<인터뷰> 한홍구(성공회대 교수) : "역사를 볼때는 폭넓게 봐야 합니다. 맥아더 동상을 세워야 한다는 사람들은 맥아더가 인천 상륙 작전만을 했다는 기억만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재평가 논란이 동상 철거라는 소모적인 물리적 충돌로 변질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이 많습니다.

여기에는 공론화를 통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념과 감정이 지나치게 개입된 것도 사태를 악화시켰습니다.

<인터뷰> 박태근 교수 : "이 문제가 대중적으로 얼마나 확산됐고 연구 성과가 얼마나 대중적이었나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내일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55주년 기념일.

해병대전우회 등 보수단체의 대대적인 철거 반대 집회가 예정돼 있어 또 한차례 충돌이 우려됩니다.

하지만 이제는 소모적인 갈등과 논쟁에서 벗어나 상생의 해법을 함께 찾아야 할 때입니다.

KBS 뉴스 함 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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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층취재]뜨거운 쟁점, ‘맥아더 동상’
    • 입력 2005-09-14 21:05:35
    • 수정2018-08-29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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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내일이면 인천상륙작전 55년이 되는날 입니다만 최근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문제는 갈수록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분단의 상징인가, 아니면 승리의 영웅인가? 그동안의 논쟁 전말과 쟁점을 차분이 짚어보겠습니다. 함철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이른 새벽... 포 사격의 굉음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됩니다. 맥아더 장군의 지휘로 작전 2시간 만에 인천을 탈환하면서 패색이 짙던 전세를 단숨에 뒤집습니다. 일제와의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하고 남한의 공산화를 막은 맥아더 장군은 줄곧 우리에게는 영웅이었습니다. 그리고 반세기 뒤 맥아더 장군에 대한 이 같은 믿음이 도전을 받습니다. 해방과 함께 한반도에 들어올 때 점령군임을 명확히 한점과 한국전쟁 당시 핵 무기 사용을 언급한 점 등이 간과돼 왔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김성진(민노당 인천시위원장) : "핵전쟁을 해야 한다고 했던 사람이고 그렇게 봤을 때 맥아더 동상이 상징하는 건 분단과 전쟁입니다." 이에 반해 맥아더 개인의 성향이나 미군의 역할은 둘째 치고라도 공산화를 막은 것 만큼은 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상열(대한전상장교회장) : "이런 분의 동상을 우리가 고맙다고 세울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그걸 헐겠다고?" 맥아더를 재평가하자는 논쟁은 급기야 물리적인 충돌로 번졌습니다. 맥아더 동상을 사이에 두고 5천 명이 넘는 양측 시위대가 충돌해 30여 명의 부상자가 났습니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인천의 한 시민단체가 동상의 이전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자는 진보진영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면서 동상 철거가 가시화되자 이번엔 보수단체가 움직였습니다. 철거와 사수를 주장하는 양측의 집회와 시위는 올들어서만 벌써 60차례가 넘습니다. 사태가 계속 확산되자 논란은 국회와 정치권까지 확산됐고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진화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동상 철거 논란은 우리 시대 역사바로세우기와 맥을 같이 합니다. 냉전시대 영웅으로만 지나치게 부각된 면을 다시 냉정하게 평가해 공과를 명확히 하자는 것입니다. <인터뷰> 한홍구(성공회대 교수) : "역사를 볼때는 폭넓게 봐야 합니다. 맥아더 동상을 세워야 한다는 사람들은 맥아더가 인천 상륙 작전만을 했다는 기억만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재평가 논란이 동상 철거라는 소모적인 물리적 충돌로 변질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이 많습니다. 여기에는 공론화를 통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념과 감정이 지나치게 개입된 것도 사태를 악화시켰습니다. <인터뷰> 박태근 교수 : "이 문제가 대중적으로 얼마나 확산됐고 연구 성과가 얼마나 대중적이었나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내일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55주년 기념일. 해병대전우회 등 보수단체의 대대적인 철거 반대 집회가 예정돼 있어 또 한차례 충돌이 우려됩니다. 하지만 이제는 소모적인 갈등과 논쟁에서 벗어나 상생의 해법을 함께 찾아야 할 때입니다. KBS 뉴스 함 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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