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산물’이 기후변화에서 살아남는 법 [밥상 기후위기보고서]④

입력 2023.09.29 (08:02) 수정 2023.10.0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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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기후위기시대, 추석을 앞두고 KBS 기후위기대응팀은 '밥상으로 보는 기후위기보고서'라는 제목의 연속 보도를 이어갑니다. 밥상 위 추석 과일 가격에서 시작해 기후 위기가 촉발한 국제적인 식량 안보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과학적인 분석자료와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보겠습니다.



달라지는 기후에 밥상 풍경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앞선 밥상 기후위기보고서에서 세계 식량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농가와 농지의 보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밥상 기후위기보고서]① ‘추석 과일에 무슨 일이?’
[밥상 기후위기보고서]② 1도 오르면 7% 상승…바닷물에 출렁이는 밥상물가
[밥상 기후위기보고서]③ 세계는 내일을 위한 ‘밥상 전쟁 중’

우리에게도 닥친 기후변화 앞에서 우리 농가의 대응은 어떨까요?

■ '2100'년 대한민국은 일년내내 '한여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최근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농업용 미래상세 기후분포지도'를 발표했습니다.

농업용 미래상세 기후분포지도농업용 미래상세 기후분포지도

'기후분포지도'에는 관측값을 기반으로 한 현재 우리나라의 기후분포 특성과 SSP(Shared Socioeconomic Pathways, 공통사회경제경로) 시나리오에 따른 미래 기후분포 전망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변화하는 기후 환경에 맞춰 작물의 종류와 재배 시기, 재배 적합지를 분석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최저기온과 최고기온, 연 강수량 등의 기후분포 특성을 시나리오별 고해상도 지도 형태로 제작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SSP5 시나리오, 그러니까 탄소배출이 줄지 않고 계속 늘어날 경우 2100년대가 되면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10도 안팎이 올라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기후가 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전국 대부분이 연평균 20도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년 내내 여름철이 지속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오늘 가족의 밥상에 올라온 반찬들은 어떤 운명을 맞이할까요?

■ 북상하는 작물 재배지…미래에는 사라질 위기의 '우리 농산물'

추석이 지나고 날이 추워지면 김장철입니다. 일년 밥상을 책임질 '김치'입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밥상 위 터줏대감인 김치, 미래에도 그럴까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대표 작물 배추, 높은 기온에 쉽게 물러지기에 일반적으로 여름철에는 재배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랭지 배추고랭지 배추

이 때문에 강원도 태백과 삼척 등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재배되는 '고랭지 배추'가 우리나라의 여름철 배추 수급을 책임지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여름철 식탁에서 신선한 배추를 보기가 점차 어려워 질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해 고랭지의 평균기온이 높아지고, 고랭지 배추의 재배 면적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기후 변화로 인해 2090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여름 배추 재배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여름 배추의 생육 적정 온도는 18도에서 20도 사이입니다. 23도의 평균기온까지도 재배에 큰 문제는 없지만, 평균기온이 오를수록 재배 적지는 줄어듭니다. 높아진 기온에 현재 고랭지 배추의 재배 면적은 2000년 기준 10,206헥타르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 과수작목인 사과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사과의 주 생산지는 대구·경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30년 동안 대구·경북지역의 사과 재배 면적은 1993년 36,021헥타르에서 올해 20,151헥타르로 44% 감소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동안 강원도의 사과 재배 면적은 483헥타르에서 1,679헥타르로 247% 증가했습니다.
온난화로 사과 재배지역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겁니다.
사과 재배에 적절한 기온은 연 평균기온 기준 7.5도에서 11.5도입니다.

그렇다면 미래세대는 강원도를 사과의 주 생산지로 배우게 될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현재와 같은 기후변화 속도라면 2100년에는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사과 재배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온난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사과의 씨가 마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지금도 사과의 재배, 생산 단지가 북상하고 있는 상태인데요. 앞으로 기온 등을 고려했을 때 사과 재배 적지가 줄어들 거라고 예상됩니다. 2100년도가 되면 연평균기온이 크게 올라 태백산맥을 제외하고는 11.5도를 밑도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한현희 연구관

■ '우리 농산물', 기후변화보다 빠르게 변해야

기후변화는 늦추고 대응은 빨라야합니다.

전문가들은 사과의 각 품종이 지닌 고유의 특성이 잘 나타나기 위해서는 알맞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농촌진흥청은 지역 맞춤형 품종을 개발하고 보급하기 위해 전문 생산단지를 조성해 변화하는 기후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왼쪽이 ‘컬러플’, 오른쪽이 ‘골든볼’.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 제공왼쪽이 ‘컬러플’, 오른쪽이 ‘골든볼’.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 제공

농촌진흥청은 '컬러플(Colorpple)'과 '골든볼'이라는 신품종을 개발해 재배 적지로 선정된 강원 홍천군과 대구 군위군에 생산단지를 조성했습니다.
홍천군에서는 일교차가 커 사과의 당도가 높아지고 '컬러플'의 성숙기에 맞게 재배할 수 있습니다.
또 병해충에 강하고, 고온 착색에 유리하다는 점도 작용했습니다.

사과는 30도가 넘는 고온의 환경에서 착색이 지연돼 색이 잘 들지 않습니다. 사과를 빨갛게 익히기 위해서는 바닥에 반사 필름을 깔고,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사과를 돌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노동력도 많이 필요합니다.

사과의 주 산지였던 대구 군위군에서는 높아지는 기온에 맞게 착색이 필요없는 '골든볼'이라는 품종이 재배됩니다. 착색에 들어가는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는 노란 사과인데, 당도도 높고 상온 저장력이 길어 유통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농촌진흥청은 여름 배추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하 시기를 초여름이나 초가을로 당기거나 늦출 것을 농가에 권장하고, 해발 600m 이상 고랭지가 아닌 400m 이상의 준고랭지에서도 여름 배추를 생산하기 위해 연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여름배추 재배 면적은 줄었지만 생산단수와 생산량은 평년보다 증가했습니다. (평년 :최근 5개년)여름배추 재배 면적은 줄었지만 생산단수와 생산량은 평년보다 증가했습니다. (평년 :최근 5개년)

그 결과 올해 여름 배추의 재배면적은 5,242헥타르로 지난해 5,363헥타르에 비해 2.3% 감소했지만 생산 단수와 생산량은 각각 12%와 9.4% 증가할 거로 전망됐습니다.

지난해 잦은 비와 배추 무름병 등으로 작황이 좋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평년보다 생산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책으로 당장의 수급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 찰진 쌀밥이 부슬부슬한 쌀밥으로

기후변화는 한국인의 주식인 쌀의 품종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출처 : 기초과학연구원출처 : 기초과학연구원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에서 먹는 쌀은 '자포니카' 종입니다.
둥글고 찰기가 있는 게 특징인데, 특유의 단맛과 점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쌀입니다.

반면 동아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소비되는 쌀은 '인디카' 품종입니다.
동남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로, 길쭉하고 찰기가 없는 게 특징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벼인 '자포니카' 종의 이삭이 잎 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시기는 보통 8월 중순입니다.
출수기라고도 하는데요, 이 때 이삭이 온도와 습도가 높은 환경에 노출되면 쌀알이 충분히 무르익지 못합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기후가 이미 아열대와 가깝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제주와 남해안 등 우리나라의 11% 정도가 이미 아열대 기후권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SSP5 시나리오에 따르면 2090년대 우리나라 면적의 97.4%가 아열대기후대에 속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앞으로는 광합성에 의해 쌀알이 무르익는 '등숙' 면에서 우리나라의 재배 환경이 '자포니카' 종보다 '인디카' 종에 유리하게 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찰진 쌀밥'을 먹기 어려워질 수 있는 겁니다.

국립식량과학원은 당진군 농업기술센터와 함께 긴 연구 끝에 '아미쌀'을 개발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보람찬쌀, 남평쌀보다 길죽한 모양의 아미쌀.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제공우리에게 익숙한 보람찬쌀, 남평쌀보다 길죽한 모양의 아미쌀.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제공

아미쌀의 길쭉한 형태는 인디카와 사뭇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의 바뀐 기후에 맞는 등숙 시기를 가지고 있고, 병해충에도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밥맛을 좌우하는 성분인 '아밀로스'의 함량은 자포니카와 비슷합니다.

품종을 개발하는 데 10년, 종자를 증식하는데 4년의 시간을 거쳐 재배 환경에 맞게 변화한 아미쌀은 이미 수출까지 하고 있습니다.

■ 우리 농산물, 대응과 변화의 '투 트랙'으로

고랭지 배추와 사과, 우리 쌀 등 '우리 농산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표 작물의 재배지는 이미 감소하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우리 밥상에서 마주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우리 농산물'이 기후변화에 버티고 적응할 수 있도록 품종을 개량해 농가에 보급하고 있지만, 십 수 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품종 개량 등의 소극적 대응만으로는 기후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긴 어려워 보입니다.

밀감(감귤)의 재배가능지는 2070년대 강원 동해안까지 북상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제공밀감(감귤)의 재배가능지는 2070년대 강원 동해안까지 북상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제공

앞서 설명했던 농작물들의 재배지는 감소하는 반면, 단감과 감귤 등 아열대 기후에 맞는 과수작물의 재배 가능 면적은 넓어지고 있습니다. 온실가스가 계속 증가하는 SSP5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번 세기 말 감귤의 재배 가능지역은 강원 동해안까지 북상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제주에 위치한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산하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서는 2008년부터 기후변화에 대응해 망고와 파파야, 용과 등 우리나라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아열대 작물을 국내 환경에 맞게 생산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충북에서 재배중인 천혜향(왼쪽) 전남에서 재배중인 백향과(오른쪽)충북에서 재배중인 천혜향(왼쪽) 전남에서 재배중인 백향과(오른쪽)

제주도나 남해안에 머물렀던 아열대 작물의 재배 한계선은 계속해서 북상 중입니다. 이제 충북에서 애플망고를, 시흥과 평택 등 경기도에서도 망고와 파파야 등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앞서서 새로운 품종을 우리나라의 환경에 맞게 생산하는 것 또한 우리 밥상을 지킬 수 있는 해법 중 하나로 보입니다.
기후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농산물'의 종류도 바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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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29 08:02:01
    • 수정2023-10-04 10: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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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시대, 추석을 앞두고 KBS 기후위기대응팀은 '밥상으로 보는 기후위기보고서'라는 제목의 연속 보도를 이어갑니다. 밥상 위 추석 과일 가격에서 시작해 기후 위기가 촉발한 국제적인 식량 안보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과학적인 분석자료와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보겠습니다.


달라지는 기후에 밥상 풍경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앞선 밥상 기후위기보고서에서 세계 식량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농가와 농지의 보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밥상 기후위기보고서]① ‘추석 과일에 무슨 일이?’
[밥상 기후위기보고서]② 1도 오르면 7% 상승…바닷물에 출렁이는 밥상물가
[밥상 기후위기보고서]③ 세계는 내일을 위한 ‘밥상 전쟁 중’

우리에게도 닥친 기후변화 앞에서 우리 농가의 대응은 어떨까요?

■ '2100'년 대한민국은 일년내내 '한여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최근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농업용 미래상세 기후분포지도'를 발표했습니다.

농업용 미래상세 기후분포지도
'기후분포지도'에는 관측값을 기반으로 한 현재 우리나라의 기후분포 특성과 SSP(Shared Socioeconomic Pathways, 공통사회경제경로) 시나리오에 따른 미래 기후분포 전망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변화하는 기후 환경에 맞춰 작물의 종류와 재배 시기, 재배 적합지를 분석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최저기온과 최고기온, 연 강수량 등의 기후분포 특성을 시나리오별 고해상도 지도 형태로 제작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SSP5 시나리오, 그러니까 탄소배출이 줄지 않고 계속 늘어날 경우 2100년대가 되면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10도 안팎이 올라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기후가 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전국 대부분이 연평균 20도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년 내내 여름철이 지속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오늘 가족의 밥상에 올라온 반찬들은 어떤 운명을 맞이할까요?

■ 북상하는 작물 재배지…미래에는 사라질 위기의 '우리 농산물'

추석이 지나고 날이 추워지면 김장철입니다. 일년 밥상을 책임질 '김치'입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밥상 위 터줏대감인 김치, 미래에도 그럴까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대표 작물 배추, 높은 기온에 쉽게 물러지기에 일반적으로 여름철에는 재배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랭지 배추
이 때문에 강원도 태백과 삼척 등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재배되는 '고랭지 배추'가 우리나라의 여름철 배추 수급을 책임지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여름철 식탁에서 신선한 배추를 보기가 점차 어려워 질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해 고랭지의 평균기온이 높아지고, 고랭지 배추의 재배 면적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기후 변화로 인해 2090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여름 배추 재배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여름 배추의 생육 적정 온도는 18도에서 20도 사이입니다. 23도의 평균기온까지도 재배에 큰 문제는 없지만, 평균기온이 오를수록 재배 적지는 줄어듭니다. 높아진 기온에 현재 고랭지 배추의 재배 면적은 2000년 기준 10,206헥타르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 과수작목인 사과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사과의 주 생산지는 대구·경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30년 동안 대구·경북지역의 사과 재배 면적은 1993년 36,021헥타르에서 올해 20,151헥타르로 44% 감소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동안 강원도의 사과 재배 면적은 483헥타르에서 1,679헥타르로 247% 증가했습니다.
온난화로 사과 재배지역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겁니다.
사과 재배에 적절한 기온은 연 평균기온 기준 7.5도에서 11.5도입니다.

그렇다면 미래세대는 강원도를 사과의 주 생산지로 배우게 될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현재와 같은 기후변화 속도라면 2100년에는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사과 재배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온난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사과의 씨가 마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지금도 사과의 재배, 생산 단지가 북상하고 있는 상태인데요. 앞으로 기온 등을 고려했을 때 사과 재배 적지가 줄어들 거라고 예상됩니다. 2100년도가 되면 연평균기온이 크게 올라 태백산맥을 제외하고는 11.5도를 밑도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한현희 연구관

■ '우리 농산물', 기후변화보다 빠르게 변해야

기후변화는 늦추고 대응은 빨라야합니다.

전문가들은 사과의 각 품종이 지닌 고유의 특성이 잘 나타나기 위해서는 알맞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농촌진흥청은 지역 맞춤형 품종을 개발하고 보급하기 위해 전문 생산단지를 조성해 변화하는 기후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왼쪽이 ‘컬러플’, 오른쪽이 ‘골든볼’.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 제공
농촌진흥청은 '컬러플(Colorpple)'과 '골든볼'이라는 신품종을 개발해 재배 적지로 선정된 강원 홍천군과 대구 군위군에 생산단지를 조성했습니다.
홍천군에서는 일교차가 커 사과의 당도가 높아지고 '컬러플'의 성숙기에 맞게 재배할 수 있습니다.
또 병해충에 강하고, 고온 착색에 유리하다는 점도 작용했습니다.

사과는 30도가 넘는 고온의 환경에서 착색이 지연돼 색이 잘 들지 않습니다. 사과를 빨갛게 익히기 위해서는 바닥에 반사 필름을 깔고,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사과를 돌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노동력도 많이 필요합니다.

사과의 주 산지였던 대구 군위군에서는 높아지는 기온에 맞게 착색이 필요없는 '골든볼'이라는 품종이 재배됩니다. 착색에 들어가는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는 노란 사과인데, 당도도 높고 상온 저장력이 길어 유통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농촌진흥청은 여름 배추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하 시기를 초여름이나 초가을로 당기거나 늦출 것을 농가에 권장하고, 해발 600m 이상 고랭지가 아닌 400m 이상의 준고랭지에서도 여름 배추를 생산하기 위해 연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여름배추 재배 면적은 줄었지만 생산단수와 생산량은 평년보다 증가했습니다. (평년 :최근 5개년)
그 결과 올해 여름 배추의 재배면적은 5,242헥타르로 지난해 5,363헥타르에 비해 2.3% 감소했지만 생산 단수와 생산량은 각각 12%와 9.4% 증가할 거로 전망됐습니다.

지난해 잦은 비와 배추 무름병 등으로 작황이 좋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평년보다 생산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책으로 당장의 수급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 찰진 쌀밥이 부슬부슬한 쌀밥으로

기후변화는 한국인의 주식인 쌀의 품종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출처 : 기초과학연구원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에서 먹는 쌀은 '자포니카' 종입니다.
둥글고 찰기가 있는 게 특징인데, 특유의 단맛과 점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쌀입니다.

반면 동아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소비되는 쌀은 '인디카' 품종입니다.
동남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로, 길쭉하고 찰기가 없는 게 특징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벼인 '자포니카' 종의 이삭이 잎 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시기는 보통 8월 중순입니다.
출수기라고도 하는데요, 이 때 이삭이 온도와 습도가 높은 환경에 노출되면 쌀알이 충분히 무르익지 못합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기후가 이미 아열대와 가깝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제주와 남해안 등 우리나라의 11% 정도가 이미 아열대 기후권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SSP5 시나리오에 따르면 2090년대 우리나라 면적의 97.4%가 아열대기후대에 속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앞으로는 광합성에 의해 쌀알이 무르익는 '등숙' 면에서 우리나라의 재배 환경이 '자포니카' 종보다 '인디카' 종에 유리하게 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찰진 쌀밥'을 먹기 어려워질 수 있는 겁니다.

국립식량과학원은 당진군 농업기술센터와 함께 긴 연구 끝에 '아미쌀'을 개발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보람찬쌀, 남평쌀보다 길죽한 모양의 아미쌀.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제공
아미쌀의 길쭉한 형태는 인디카와 사뭇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의 바뀐 기후에 맞는 등숙 시기를 가지고 있고, 병해충에도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밥맛을 좌우하는 성분인 '아밀로스'의 함량은 자포니카와 비슷합니다.

품종을 개발하는 데 10년, 종자를 증식하는데 4년의 시간을 거쳐 재배 환경에 맞게 변화한 아미쌀은 이미 수출까지 하고 있습니다.

■ 우리 농산물, 대응과 변화의 '투 트랙'으로

고랭지 배추와 사과, 우리 쌀 등 '우리 농산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표 작물의 재배지는 이미 감소하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우리 밥상에서 마주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우리 농산물'이 기후변화에 버티고 적응할 수 있도록 품종을 개량해 농가에 보급하고 있지만, 십 수 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품종 개량 등의 소극적 대응만으로는 기후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긴 어려워 보입니다.

밀감(감귤)의 재배가능지는 2070년대 강원 동해안까지 북상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제공
앞서 설명했던 농작물들의 재배지는 감소하는 반면, 단감과 감귤 등 아열대 기후에 맞는 과수작물의 재배 가능 면적은 넓어지고 있습니다. 온실가스가 계속 증가하는 SSP5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번 세기 말 감귤의 재배 가능지역은 강원 동해안까지 북상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제주에 위치한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산하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서는 2008년부터 기후변화에 대응해 망고와 파파야, 용과 등 우리나라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아열대 작물을 국내 환경에 맞게 생산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충북에서 재배중인 천혜향(왼쪽) 전남에서 재배중인 백향과(오른쪽)
제주도나 남해안에 머물렀던 아열대 작물의 재배 한계선은 계속해서 북상 중입니다. 이제 충북에서 애플망고를, 시흥과 평택 등 경기도에서도 망고와 파파야 등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앞서서 새로운 품종을 우리나라의 환경에 맞게 생산하는 것 또한 우리 밥상을 지킬 수 있는 해법 중 하나로 보입니다.
기후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농산물'의 종류도 바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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