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헤드헌팅’ 성행…지방의료원 “의사를 지켜라” [취재후]

입력 2023.10.24 (14:31) 수정 2023.10.2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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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인천의료원 인공신장실, 의사가 없어 2년째 운영 못 해불 꺼진 인천의료원 인공신장실, 의사가 없어 2년째 운영 못 해

▲정일용 경기도의료원 원장/

경기도의료원 6개 병원 중 한 곳은 최근 들어 응급의학과 전문의 등 5명이 한 번에 퇴사한다고 해서 병원이 위태한 지경입니다. 구인 공고를 내도 연락도 오지도 않고 그래서 종합병원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할 수 있을 만큼 지금 위기 상황입니다. 의사 20여 명 중에 5명이 나가는 거라 응급실 운영을 할 수 있을지도 좀 걱정이….

▲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

'따르릉~' 하고 전화 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요. 또 의사가 그만두려고 그러나 이건 저만 하는 얘기가 아니라 대학교 병원장들도 하는 얘기예요. 어떤 의사가 "원장님 좀 봬야겠는데요." 전화 오면, 가슴이 쿵 또 그만두려고 그러는 거 아닌가. 그런 일들을 모든 원장이 똑같이 겪고 있어요. 대학병원도 그래요. 그러니까 이런 지방의료원들은 더 심하죠.

KBS 취재팀이 만난 지방의료원 원장들은 하나같이, 의사 구인난에 병원 운영이 어려울 지경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급여를 올려서라도 데려가려는 병원이 생기고, 병원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의사들을 상대로 한 '헤드헌팅'까지 성행하고 있습니다.

의사 부족 -> 급여 상승 -> 필수의료진 이탈의 '악순환'이 벌어지는 겁니다.

▲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

과거에는 그런 거는 거의 상상을 못 했는데 헤드헌터들이 계속 (의사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접촉을 해요.
우리 병원에도 그런 전화를 받은 분들이 아주 많고, 그런 헤드헌터들이 접촉할 때는 뭘 제시하겠어요. 연봉 얼마 준다는 얘기 하겠죠. 물론 대부분은 그냥 들은 척도 안 하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 흔들리는 건 사실일 거고, 계속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이런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참 어렵습니다.

심지어는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지방의료원들끼리, 경쟁하듯 급여를 올려 의료진을 빼가는 일도 벌어집니다.

▲정일용 경기도의료원 원장/

제가 약간 좀 착잡한 거는 우리 병원에서 나가시는 선생님인데, 옮기는 곳이 여전히 또 지방의료원으로 옮기셨더라고요. 그런데 거기에서 제시한 금액이 여기보다 5천(만원) 이상 더 많더라고요.

지방의료원은 지역의 필수·공공의료를 책임지는 지역 거점 공공병원입니다.

그런데 수억, 수십억 원의 예산을 들여 마련한 고가의 의료 장비를 의사가 부족해 방치하기도 합니다.

인천의료원은 1명뿐이던 신장내과 전문의가 퇴사한 뒤, 대체할 의사를 구하지 못해 하루 70명의 환자가 투석을 할 수 있는 대규모 인공신장실을 2년 넘게 운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투석은 환자의 생명과 직접 관련된 문제입니다. 의사 부족으로 지방의료원의 필수 영역이 작동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지방의료원은 전국이 35곳. 인천의료원처럼 의사를 구하지 못해 진료를 못 하는 과가 있는 곳이 23개나 됩니다.

신장내과 전문의를 못 구해 운영 중단된 인천의료원 인공신장실신장내과 전문의를 못 구해 운영 중단된 인천의료원 인공신장실

■연봉 4억 원에도 못 구하는 의사..."지속 가능하지 않은 경쟁이에요"

올 초엔 강원 속초의료원이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연봉을 4억 원대로 올려 구인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없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연관 기사] 연봉 4억에도 면접 나온 의사는 1명…응급실 단축 장기화 우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612411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지방의료원 의사 연봉이 이렇게 높지는 않았다고 지방의료원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실제로 지방의료원 봉직의(월급의사) 평균 연봉을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지역거점 공공병원 알리미 사이트에서 확인해봤습니다.

지난해 봉직의 평균 보수가 가장 높은 곳은 3억 3천여만 원의 강원 삼척의료원이었는데, 이 삼척의료원 봉직의 평균 급여는 3년 전인 2019년만 해도 2억 7천여만 원이었습니다.

2018년엔 2억 3천여만 원이었으니, 4년 만에 무려 1억 원이 오른 셈입니다.

의사가 없으면 진료를 못 보니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연봉을 올리고는 있지만, 계속 올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

사람 올 때까지 계속 연봉을 올리다 보면, 여기는 올지 모르지만, 이 주변 병원들은 또 의사가 다 빠져나오겠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사람 자체가 없는데요.
없는 사람을 이리 빼고 저리 빼고 하면서 계속 급여만 올리는 거는 무슨 노름판 판돈 올리는 것도 아니고... 가능한 시스템이 아니잖아요.

■'미용·성형 의료 선호'..필수의료 구인난 심화

이 같은 필수의료 구인난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게 바로 의료인의 미용·성형 분야 쏠림입니다.

의사들이 미용·성형 의료에 몰리고 있다는 건데, 미용 의료 관련 의사가 전체 의사 11만 명 중 3만 명에 달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피부과 의사회나 성형외과 의사회에 소속된 의사 회원은 수천 명에 불과합니다. 일반의나 다른 진료과목 전문의가 미용 의료 시장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의료사고 부담이 적고, 밤샘 야간 당직 근무를 할 일이 없어 근로시간도 안정적인 데다가 수입도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라고 의사들은 말합니다.

이 같은 미용 의료 쏠림 현상으로 인해 필수의료 과목의 전공의들이 수련을 기피하는 현상이 더해지면서, 필수의료진 구인난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의대 정원 확대, 핵심은 '필수의료진 확보 방안'

이 때문에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필수의료진 구인난을 해결할 수 없을 거란 지적도 나옵니다.

의대 정원을 확대하더라도, 늘어난 의사들이 미용·성형 의료로 빠져나가고 수도권에만 쏠리면 소용이 없을 거란 겁니다.

따라서 공공병원에서만 근무할 수 있는 의료진을 양성할 수 있는 별도의 '공공의대'를 만들거나 특정 지역에 8년이나 10년,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의사들의 근무 기간이나 지역을 의무화해서라도, 지역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를 확보할 방안을 마련하자는 겁니다.

물론 이 문제는 직업 선택의 자유 등 여러 고려 요소가 있는 만큼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정부는 지난주 전국 국립대병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필수의료 수가를 인상하는 내용 등을 담은 '지역 필수의료 강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2025학년도부터는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는데, 이를 위해 전국 의대를 상대로 얼마나 정원을 늘릴 수 있는 여력이 되는지 조사 중입니다. 지자체 등과 협의를 거쳐 연말까지는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결정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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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 헤드헌팅’ 성행…지방의료원 “의사를 지켜라” [취재후]
    • 입력 2023-10-24 14:31:05
    • 수정2023-10-24 16:29:39
    취재후·사건후
불 꺼진 인천의료원 인공신장실, 의사가 없어 2년째 운영 못 해
▲정일용 경기도의료원 원장/

경기도의료원 6개 병원 중 한 곳은 최근 들어 응급의학과 전문의 등 5명이 한 번에 퇴사한다고 해서 병원이 위태한 지경입니다. 구인 공고를 내도 연락도 오지도 않고 그래서 종합병원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할 수 있을 만큼 지금 위기 상황입니다. 의사 20여 명 중에 5명이 나가는 거라 응급실 운영을 할 수 있을지도 좀 걱정이….

▲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

'따르릉~' 하고 전화 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요. 또 의사가 그만두려고 그러나 이건 저만 하는 얘기가 아니라 대학교 병원장들도 하는 얘기예요. 어떤 의사가 "원장님 좀 봬야겠는데요." 전화 오면, 가슴이 쿵 또 그만두려고 그러는 거 아닌가. 그런 일들을 모든 원장이 똑같이 겪고 있어요. 대학병원도 그래요. 그러니까 이런 지방의료원들은 더 심하죠.

KBS 취재팀이 만난 지방의료원 원장들은 하나같이, 의사 구인난에 병원 운영이 어려울 지경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급여를 올려서라도 데려가려는 병원이 생기고, 병원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의사들을 상대로 한 '헤드헌팅'까지 성행하고 있습니다.

의사 부족 -> 급여 상승 -> 필수의료진 이탈의 '악순환'이 벌어지는 겁니다.

▲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

과거에는 그런 거는 거의 상상을 못 했는데 헤드헌터들이 계속 (의사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접촉을 해요.
우리 병원에도 그런 전화를 받은 분들이 아주 많고, 그런 헤드헌터들이 접촉할 때는 뭘 제시하겠어요. 연봉 얼마 준다는 얘기 하겠죠. 물론 대부분은 그냥 들은 척도 안 하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 흔들리는 건 사실일 거고, 계속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이런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참 어렵습니다.

심지어는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지방의료원들끼리, 경쟁하듯 급여를 올려 의료진을 빼가는 일도 벌어집니다.

▲정일용 경기도의료원 원장/

제가 약간 좀 착잡한 거는 우리 병원에서 나가시는 선생님인데, 옮기는 곳이 여전히 또 지방의료원으로 옮기셨더라고요. 그런데 거기에서 제시한 금액이 여기보다 5천(만원) 이상 더 많더라고요.

지방의료원은 지역의 필수·공공의료를 책임지는 지역 거점 공공병원입니다.

그런데 수억, 수십억 원의 예산을 들여 마련한 고가의 의료 장비를 의사가 부족해 방치하기도 합니다.

인천의료원은 1명뿐이던 신장내과 전문의가 퇴사한 뒤, 대체할 의사를 구하지 못해 하루 70명의 환자가 투석을 할 수 있는 대규모 인공신장실을 2년 넘게 운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투석은 환자의 생명과 직접 관련된 문제입니다. 의사 부족으로 지방의료원의 필수 영역이 작동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지방의료원은 전국이 35곳. 인천의료원처럼 의사를 구하지 못해 진료를 못 하는 과가 있는 곳이 23개나 됩니다.

신장내과 전문의를 못 구해 운영 중단된 인천의료원 인공신장실
■연봉 4억 원에도 못 구하는 의사..."지속 가능하지 않은 경쟁이에요"

올 초엔 강원 속초의료원이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연봉을 4억 원대로 올려 구인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없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연관 기사] 연봉 4억에도 면접 나온 의사는 1명…응급실 단축 장기화 우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612411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지방의료원 의사 연봉이 이렇게 높지는 않았다고 지방의료원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실제로 지방의료원 봉직의(월급의사) 평균 연봉을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지역거점 공공병원 알리미 사이트에서 확인해봤습니다.

지난해 봉직의 평균 보수가 가장 높은 곳은 3억 3천여만 원의 강원 삼척의료원이었는데, 이 삼척의료원 봉직의 평균 급여는 3년 전인 2019년만 해도 2억 7천여만 원이었습니다.

2018년엔 2억 3천여만 원이었으니, 4년 만에 무려 1억 원이 오른 셈입니다.

의사가 없으면 진료를 못 보니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연봉을 올리고는 있지만, 계속 올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

사람 올 때까지 계속 연봉을 올리다 보면, 여기는 올지 모르지만, 이 주변 병원들은 또 의사가 다 빠져나오겠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사람 자체가 없는데요.
없는 사람을 이리 빼고 저리 빼고 하면서 계속 급여만 올리는 거는 무슨 노름판 판돈 올리는 것도 아니고... 가능한 시스템이 아니잖아요.

■'미용·성형 의료 선호'..필수의료 구인난 심화

이 같은 필수의료 구인난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게 바로 의료인의 미용·성형 분야 쏠림입니다.

의사들이 미용·성형 의료에 몰리고 있다는 건데, 미용 의료 관련 의사가 전체 의사 11만 명 중 3만 명에 달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피부과 의사회나 성형외과 의사회에 소속된 의사 회원은 수천 명에 불과합니다. 일반의나 다른 진료과목 전문의가 미용 의료 시장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의료사고 부담이 적고, 밤샘 야간 당직 근무를 할 일이 없어 근로시간도 안정적인 데다가 수입도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라고 의사들은 말합니다.

이 같은 미용 의료 쏠림 현상으로 인해 필수의료 과목의 전공의들이 수련을 기피하는 현상이 더해지면서, 필수의료진 구인난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의대 정원 확대, 핵심은 '필수의료진 확보 방안'

이 때문에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필수의료진 구인난을 해결할 수 없을 거란 지적도 나옵니다.

의대 정원을 확대하더라도, 늘어난 의사들이 미용·성형 의료로 빠져나가고 수도권에만 쏠리면 소용이 없을 거란 겁니다.

따라서 공공병원에서만 근무할 수 있는 의료진을 양성할 수 있는 별도의 '공공의대'를 만들거나 특정 지역에 8년이나 10년,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의사들의 근무 기간이나 지역을 의무화해서라도, 지역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를 확보할 방안을 마련하자는 겁니다.

물론 이 문제는 직업 선택의 자유 등 여러 고려 요소가 있는 만큼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정부는 지난주 전국 국립대병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필수의료 수가를 인상하는 내용 등을 담은 '지역 필수의료 강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2025학년도부터는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는데, 이를 위해 전국 의대를 상대로 얼마나 정원을 늘릴 수 있는 여력이 되는지 조사 중입니다. 지자체 등과 협의를 거쳐 연말까지는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결정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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