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SPC 회장님의 불출석사유서 따져봤습니다 [취재후]

입력 2023.11.14 (07:00) 수정 2023.11.1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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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적 없다..약속도 없었다" vs "현지 사정으로 취소"

이해욱 DL그룹 회장.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가장 많은 노동자가 숨진 회사의 최고 책임자란 이유로 올해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해외출장을 이유로 불출석했습니다.

KBS는 불출석 사유서에 나온 미국 업체 네 곳에 정말 이해욱 회장과 만났느냐고 이메일과 전화 등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미국 출장으로 불출석 DL회장…“약속한 적 없다” 업체도 (11월9일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14261
채택도 출석도 난망한 기업 증인…“화상으로라도 따져야” (11월9일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14262

KBS가 보낸 메일을 받고, 확인해 보겠다던 한 미국 업체에서 이런 응답이 왔습니다.


약속도 없었던 거냐고 다시 확인을 요청했더니 "약속도 없었다. 누군가 회사를 착각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DL그룹 측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할 당시인 지난달 23일, 이해욱 회장이 (이 업체 관계자를) 만나기로 약속돼 있던 건 맞다. 그런데 이후 현지 사정으로 취소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영진의 일이라 있는 그대로 얘기 못 하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미국 업체가 단호하게 부인한 것과는 배치됩니다. DL그룹은 약속을 잡았거나 약속이 취소됐다는 증빙을 보여줄 수 있냐는 요청엔 "그런 건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일정은 계획대로"...어느 곳 만났나 봤더니 '사업 파트너들'

DL그룹 측은 다만, 나머지 3곳의 업체와는 모두 계획대로 일정을 진행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불출석 사유서에 나와 있는 미국 엔지니어링 기업 KBR(Kellogg Brown & Root)은 KBS의 질의에 서울지사를 통해 회사 경영진이 미국 뉴욕을 방문해 이 회장과 만나 사업 협력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미 연방 해사위원회(FMC)와 미국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사인 엑스에너지(X-Energy)사 역시 뒤늦게
이 회장과 만났다고 답해왔습니다.

그런데 올해 1월 DL이앤씨는 약 250억 원을 엑스 에너지사에 투자한 바 있습니다. 이미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한 만큼 '전략적 파트너 관계'가 형성된 기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18일 DL이앤씨 관련 보도 캡처지난 1월 18일 DL이앤씨 관련 보도 캡처

미국 KBR사 역시 DL이앤씨가 지난해 호주에서 암모니아·요소 생산공장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기술 협약을 맺는 등 이미 사업 파트너로서 협력한 적이 있는 기업입니다.

미국 해사위원회를 제외한 두 곳은 이미 DL이앤씨와 협력관계가 형성된 상대방이었던 셈입니다.

이 회장이 업체들과 만났다고 한 시기는 올해 10월 23일부터 27일까지로, 그 중간인 10월 26일이 이 회장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 예정일이었습니다.

앞서 이해욱 회장은 국감 증인으로 나갈 수 없다면서 '불출석 사유서'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습니다.

"국가와 기업 발전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미래 신기술 분야의 기술 확보와 신규사업 기회에 대한 논의가 예정돼 있다"

"이와 같은 일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거나 다른 때로 조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점을 널리 양해해달라"

"이번 주 예정된 일정들이 DL그룹 차원에서 투자 확대 논의 또는 중요 친환경 미래기술 확보를 위해 회장인 제가 직접 참석해야만 하는 사정 역시 헤아려달라"


이 회장은 또 이번 출장 일정이 지난 8월부터 계획됐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허영인 SPC 회장 "제과·제빵박람회 참석…변경 어려워"

지난해부터 2명의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숨진 SPC 그룹의 허영인 회장.

DL그룹 이해욱 회장과 마찬가지로 10월 26일 국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역시 해외출장을 이유로 불출석했습니다.

허 회장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며 일정을 명시한 해외 기업은 네덜란드 업체 한 곳과 프랑스 업체 두 곳 등 모두 세 곳입니다.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제과·제빵 박람회(IBA)에 참석해 해당 박람회에 참석한 업체 3곳과 안전시스템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취재팀은 세 곳에 이메일과 전화로 여러 차례 허 회장이 예정된 일정을 소화했는지 문의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SPC 측은 불출석 사유서에 명시한 대로 3개 업체 관계자들과 만났다고 밝혔습니다.

허 회장의 불출석 사유서는 이렇습니다.

"IBA의 경우 안전투자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참석할 필요성이 크고, 해외 사업 특성상 일정을 임의로 변경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

"SPC 삼립의 안전시스템 확충 및 자동화 설비 투자를 위해 업체 대표들과 양해각서 체결이 예정돼 있고, 직접 참석하기로 돼 있어 안전투자계획 이행을 위해서라도 직접 참석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올해 상반기에 계획한 출장으로, 7월에 항공권과 숙박시설을 예약해 국정감사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다만 이 같은 불출석 사유에 대해 국회에선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국회 이수진 환경노동위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3일 국정감사에서 "SPC의 사망사고가 안전 시스템 미비 때문이었는데, (허 회장이) 해외 안전시스템 양해각서 체결을 위해 불출석하다니 기가 막힌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오너는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해외출장들을 간다고 해요"

국회에선 매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회장님'들의 증인 채택 여부를 두고 한바탕 씨름이 벌어집니다.

국회 보좌관들에게 관련 내용을 물었더니, 기업 대관 담당자들의 '회장님 구하기'는 익숙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 A 국회의원 보좌관
모든 기업들은 '오너가 명단에 들어가 있다' 그러면 1차적으로 빼는 게 우선인데, 그게 안 될 거 같으면 CEO나 담당 임원으로 낮추려고 하죠.


오너는 어쨌든 오너는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 그게 모든 기업의 대관 라인들이 그걸 사명처럼 생각하는 거 같더라고요.

증인 협상하기 전에 각 당에서 증인을 신청할 명단들을 취합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정보가 도는 경우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게 돌게 되면 기업들이 움직이죠.


아마 의원하고 직접 다이렉트로 연결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그렇게 하겠죠. 다방면으로 다 컨택하신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분들한테는 국정감사가 1년 농사죠.

▲ B 국회의원 보좌관
기본적으로 기업들은 국회 출신들을 많이 쓰잖아요. 많이들 와서 맨 처음에는 빼달라고 하는데, 회장 대신에 밑에 급, 그러니까 사장이나 이런 쪽으로 내리는 거죠.


(증인 채택) 빼달라고 하는 게 제일 많아요. 센 현안이면 빼기 힘들지만, 좀 이슈가 덜하다면 (여야) 간사 간 협상 과정에서 뺄 수도 있으니까 당연히 '로비'가 있죠.


▲ C 국회의원 보좌관
제일 많이 하는 게, 못 뺀다 하면 오너 대신 밑에 사장이 나가겠다. 이런 식이에요. 완전히 빼는 게 요즘은 힘들고 사장이나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거로 주로 많이 해요. 그럼 성공한 거죠.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고 나면, 해외 출장들을 꼭 그렇게 간다고 해요. 무슨 일을 만들어서 이때는 안 가면 회사에 큰일 날 것처럼 그렇게 해외를 가요.

국회 보좌관들의 말은 '국정감사와 상관없이 수개월 전부터 준비한 출장이다' '기업 경쟁력을 위해 꼭 필요한 출장이다'라는 기업들의 답변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국회 김한규 정무위원(더불어민주당)은 "해외 출장이나 체류 이유로 불출석 사례 적지 않다"며 "국정감사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으려면 증인을 강제구인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이 통과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다음 달 1일 DL·SPC 회장 국회 청문회...이번엔 나올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다음 달 1일 청문회를 열고, 이해욱 DL그룹 회장과 허영인 SPC그룹 회장을 부르기로 했습니다.

국정감사에 불출석한 이 회장과 허 회장을 불러 반복되는 산업재해의 재발방지책을 따져 묻겠다는 겁니다.

다만 청문회를 열기로 의결한 지난달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선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야당 의원들과 "이미 충분히 노력했다. 청문회까지는 가혹하다"는 여당 의원들이 맞서다, 여당 의원들이 퇴장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10월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

▲이수진 / 국회 환경·노동 위원(더불어민주당 간사)
SPC 허영인 회장은 …해외사업 확장에 따른 산재 예방관리, 해외 안전시스템 설비 구축 양해각서 체결을 이유로 불출석 하였습니다. 국내 노동자들의 안전은 뒷전인 채 해외출장, 그것도 산재 예방관리 등을 위한 해외출장을 이유로 불출석한 점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모욕감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DL 그룹 이해욱 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8월부터 계획됐던 해외 순방이라고는 하나 해외사업 개발을 위한 미팅 몇 개가 불출석 사유입니다. 명백히 국감 불출석을 위한 '도피성' 해외출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월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

▲임이자 국회 환경·노동 위원(국민의힘 간사)
이 정도만 해도 저는 어느 정도 우리 산재 예방하는 데는 접근했다고 보고요. 이 부분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러면 SPC나 DL에 우리가 방문해서 그 회사에서 청문회가 아니고 간담회 식으로 오너분들도 나오시라고 그러고 이 부분을 점검도 하고 이행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브리핑도 받고 그렇게 해서 비공개로 해서 실질적으로 해 가면 어떻겠냐라고 저희가 이수진 간사님께 제안도 했었습니다.

저희는 이만큼 해 왔고 또 우리가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청문회까지 연다고 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본다. 실질적인 산재예방을 위해서, 중대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제안한 방법도 괜찮은 방법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 위원님들께서 이 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신다고 한다면 저희는 이 청문회에 반대하고 퇴장하겠습니다.


결국 '산재 관련 청문회 실시계획서 채택의 건'은 여당 의원 5명이 퇴장한 뒤, 야당 의원 10명의 찬성으로 의결됐습니다.

다음 달 1일 열릴 청문회에 이해욱 DL그룹 회장과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참석할까요, 아니면 이번에도 '불출석 사유서'를 낼까요.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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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L·SPC 회장님의 불출석사유서 따져봤습니다 [취재후]
    • 입력 2023-11-14 07:00:10
    • 수정2023-11-14 07:05:33
    취재후·사건후

■"만난 적 없다..약속도 없었다" vs "현지 사정으로 취소"

이해욱 DL그룹 회장.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가장 많은 노동자가 숨진 회사의 최고 책임자란 이유로 올해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해외출장을 이유로 불출석했습니다.

KBS는 불출석 사유서에 나온 미국 업체 네 곳에 정말 이해욱 회장과 만났느냐고 이메일과 전화 등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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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미국 출장으로 불출석 DL회장…“약속한 적 없다” 업체도 (11월9일 뉴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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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14262

KBS가 보낸 메일을 받고, 확인해 보겠다던 한 미국 업체에서 이런 응답이 왔습니다.


약속도 없었던 거냐고 다시 확인을 요청했더니 "약속도 없었다. 누군가 회사를 착각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DL그룹 측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할 당시인 지난달 23일, 이해욱 회장이 (이 업체 관계자를) 만나기로 약속돼 있던 건 맞다. 그런데 이후 현지 사정으로 취소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영진의 일이라 있는 그대로 얘기 못 하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미국 업체가 단호하게 부인한 것과는 배치됩니다. DL그룹은 약속을 잡았거나 약속이 취소됐다는 증빙을 보여줄 수 있냐는 요청엔 "그런 건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일정은 계획대로"...어느 곳 만났나 봤더니 '사업 파트너들'

DL그룹 측은 다만, 나머지 3곳의 업체와는 모두 계획대로 일정을 진행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불출석 사유서에 나와 있는 미국 엔지니어링 기업 KBR(Kellogg Brown & Root)은 KBS의 질의에 서울지사를 통해 회사 경영진이 미국 뉴욕을 방문해 이 회장과 만나 사업 협력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미 연방 해사위원회(FMC)와 미국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사인 엑스에너지(X-Energy)사 역시 뒤늦게
이 회장과 만났다고 답해왔습니다.

그런데 올해 1월 DL이앤씨는 약 250억 원을 엑스 에너지사에 투자한 바 있습니다. 이미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한 만큼 '전략적 파트너 관계'가 형성된 기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18일 DL이앤씨 관련 보도 캡처
미국 KBR사 역시 DL이앤씨가 지난해 호주에서 암모니아·요소 생산공장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기술 협약을 맺는 등 이미 사업 파트너로서 협력한 적이 있는 기업입니다.

미국 해사위원회를 제외한 두 곳은 이미 DL이앤씨와 협력관계가 형성된 상대방이었던 셈입니다.

이 회장이 업체들과 만났다고 한 시기는 올해 10월 23일부터 27일까지로, 그 중간인 10월 26일이 이 회장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 예정일이었습니다.

앞서 이해욱 회장은 국감 증인으로 나갈 수 없다면서 '불출석 사유서'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습니다.

"국가와 기업 발전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미래 신기술 분야의 기술 확보와 신규사업 기회에 대한 논의가 예정돼 있다"

"이와 같은 일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거나 다른 때로 조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점을 널리 양해해달라"

"이번 주 예정된 일정들이 DL그룹 차원에서 투자 확대 논의 또는 중요 친환경 미래기술 확보를 위해 회장인 제가 직접 참석해야만 하는 사정 역시 헤아려달라"


이 회장은 또 이번 출장 일정이 지난 8월부터 계획됐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허영인 SPC 회장 "제과·제빵박람회 참석…변경 어려워"

지난해부터 2명의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숨진 SPC 그룹의 허영인 회장.

DL그룹 이해욱 회장과 마찬가지로 10월 26일 국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역시 해외출장을 이유로 불출석했습니다.

허 회장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며 일정을 명시한 해외 기업은 네덜란드 업체 한 곳과 프랑스 업체 두 곳 등 모두 세 곳입니다.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제과·제빵 박람회(IBA)에 참석해 해당 박람회에 참석한 업체 3곳과 안전시스템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취재팀은 세 곳에 이메일과 전화로 여러 차례 허 회장이 예정된 일정을 소화했는지 문의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SPC 측은 불출석 사유서에 명시한 대로 3개 업체 관계자들과 만났다고 밝혔습니다.

허 회장의 불출석 사유서는 이렇습니다.

"IBA의 경우 안전투자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참석할 필요성이 크고, 해외 사업 특성상 일정을 임의로 변경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

"SPC 삼립의 안전시스템 확충 및 자동화 설비 투자를 위해 업체 대표들과 양해각서 체결이 예정돼 있고, 직접 참석하기로 돼 있어 안전투자계획 이행을 위해서라도 직접 참석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올해 상반기에 계획한 출장으로, 7월에 항공권과 숙박시설을 예약해 국정감사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다만 이 같은 불출석 사유에 대해 국회에선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국회 이수진 환경노동위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3일 국정감사에서 "SPC의 사망사고가 안전 시스템 미비 때문이었는데, (허 회장이) 해외 안전시스템 양해각서 체결을 위해 불출석하다니 기가 막힌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오너는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해외출장들을 간다고 해요"

국회에선 매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회장님'들의 증인 채택 여부를 두고 한바탕 씨름이 벌어집니다.

국회 보좌관들에게 관련 내용을 물었더니, 기업 대관 담당자들의 '회장님 구하기'는 익숙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 A 국회의원 보좌관
모든 기업들은 '오너가 명단에 들어가 있다' 그러면 1차적으로 빼는 게 우선인데, 그게 안 될 거 같으면 CEO나 담당 임원으로 낮추려고 하죠.


오너는 어쨌든 오너는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 그게 모든 기업의 대관 라인들이 그걸 사명처럼 생각하는 거 같더라고요.

증인 협상하기 전에 각 당에서 증인을 신청할 명단들을 취합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정보가 도는 경우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게 돌게 되면 기업들이 움직이죠.


아마 의원하고 직접 다이렉트로 연결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그렇게 하겠죠. 다방면으로 다 컨택하신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분들한테는 국정감사가 1년 농사죠.

▲ B 국회의원 보좌관
기본적으로 기업들은 국회 출신들을 많이 쓰잖아요. 많이들 와서 맨 처음에는 빼달라고 하는데, 회장 대신에 밑에 급, 그러니까 사장이나 이런 쪽으로 내리는 거죠.


(증인 채택) 빼달라고 하는 게 제일 많아요. 센 현안이면 빼기 힘들지만, 좀 이슈가 덜하다면 (여야) 간사 간 협상 과정에서 뺄 수도 있으니까 당연히 '로비'가 있죠.


▲ C 국회의원 보좌관
제일 많이 하는 게, 못 뺀다 하면 오너 대신 밑에 사장이 나가겠다. 이런 식이에요. 완전히 빼는 게 요즘은 힘들고 사장이나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거로 주로 많이 해요. 그럼 성공한 거죠.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고 나면, 해외 출장들을 꼭 그렇게 간다고 해요. 무슨 일을 만들어서 이때는 안 가면 회사에 큰일 날 것처럼 그렇게 해외를 가요.

국회 보좌관들의 말은 '국정감사와 상관없이 수개월 전부터 준비한 출장이다' '기업 경쟁력을 위해 꼭 필요한 출장이다'라는 기업들의 답변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국회 김한규 정무위원(더불어민주당)은 "해외 출장이나 체류 이유로 불출석 사례 적지 않다"며 "국정감사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으려면 증인을 강제구인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이 통과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다음 달 1일 DL·SPC 회장 국회 청문회...이번엔 나올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다음 달 1일 청문회를 열고, 이해욱 DL그룹 회장과 허영인 SPC그룹 회장을 부르기로 했습니다.

국정감사에 불출석한 이 회장과 허 회장을 불러 반복되는 산업재해의 재발방지책을 따져 묻겠다는 겁니다.

다만 청문회를 열기로 의결한 지난달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선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야당 의원들과 "이미 충분히 노력했다. 청문회까지는 가혹하다"는 여당 의원들이 맞서다, 여당 의원들이 퇴장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10월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

▲이수진 / 국회 환경·노동 위원(더불어민주당 간사)
SPC 허영인 회장은 …해외사업 확장에 따른 산재 예방관리, 해외 안전시스템 설비 구축 양해각서 체결을 이유로 불출석 하였습니다. 국내 노동자들의 안전은 뒷전인 채 해외출장, 그것도 산재 예방관리 등을 위한 해외출장을 이유로 불출석한 점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모욕감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DL 그룹 이해욱 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8월부터 계획됐던 해외 순방이라고는 하나 해외사업 개발을 위한 미팅 몇 개가 불출석 사유입니다. 명백히 국감 불출석을 위한 '도피성' 해외출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월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

▲임이자 국회 환경·노동 위원(국민의힘 간사)
이 정도만 해도 저는 어느 정도 우리 산재 예방하는 데는 접근했다고 보고요. 이 부분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러면 SPC나 DL에 우리가 방문해서 그 회사에서 청문회가 아니고 간담회 식으로 오너분들도 나오시라고 그러고 이 부분을 점검도 하고 이행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브리핑도 받고 그렇게 해서 비공개로 해서 실질적으로 해 가면 어떻겠냐라고 저희가 이수진 간사님께 제안도 했었습니다.

저희는 이만큼 해 왔고 또 우리가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청문회까지 연다고 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본다. 실질적인 산재예방을 위해서, 중대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제안한 방법도 괜찮은 방법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 위원님들께서 이 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신다고 한다면 저희는 이 청문회에 반대하고 퇴장하겠습니다.


결국 '산재 관련 청문회 실시계획서 채택의 건'은 여당 의원 5명이 퇴장한 뒤, 야당 의원 10명의 찬성으로 의결됐습니다.

다음 달 1일 열릴 청문회에 이해욱 DL그룹 회장과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참석할까요, 아니면 이번에도 '불출석 사유서'를 낼까요.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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