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거장을 만나다] 바다로 돌아간 꽃, 시인 김춘수

입력 2023.11.30 (20:47) 수정 2023.11.3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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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경남의 거장을 만나다, 이달에 만날 거장은 11월 태어나 11월에 여든두 살의 생을 마감한 시인 김춘수입니다.

한국문단의 대표 순수시인으로 꼽히는 시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진정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1952년.

서른 살 마산중학교 교사가 교무실의 하얀 꽃 한 송이를 보고 쓴 시, '꽃'입니다.

오랜 세월 국어 교과서에 실리고,

["니가 날 불렀을 때 나는 너의 꽃으로 기다렸던 것처럼 우리 시리도록 피어…."]

이 시대에도 불리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연애 시'로 꼽히지만, 시인은 연애 시가 아니었다 말합니다.

[김춘수/시인/1986년 KBS '11시에 만납시다' : "인간의 근원적 고독, 철학적인 형이상학적인 이런 의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엉뚱하게 연애 시처럼 이해되고 있는 것 같은데…."]

한국문단의 대표 순수시인 김춘수는 1922년 통영에서 태어났습니다.

일본 유학 시절 독일 시인 릴케의 '관념시'에 눈을 뜬 시인은 광복 뒤 윤이상, 전혁림, 유치환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만들고, 1948년 시집 '구름과 장미'로 등단해 시집 25권을 남겼습니다.

1960년대부터는 언어가 실체를 지시할 수 없다는 '무의미시'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바다가 왼 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이따금 바람은 한려수도에서 불어오고 느릅나무 어린잎들이 가늘게 몸을 흔들곤 하였다."]

시인은 통영중학교를 시작으로 마산중학교를 거쳐 경북대, 영남대 교수로 30년 넘게 후학을 길러냈습니다.

'귀천'의 천상병 시인도 그의 마산중학교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 출범과 함께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했고, 1988년 퇴임식에 헌정한 축시는 지금도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시인이 다시 순수와 서정으로 회귀한 것은 1999년 아내의 죽음이었습니다.

[강선욱/김춘수 유품전시관 학예연구사 :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 의미 없는 글이 무슨 감동이 되고 시가 되겠냐는 생각으로 다시 관념론적인 시로 돌아가는 거죠."]

만년의 시인은 초기 때 의미시, 관념시로 돌아가 아내 영전에 바치는 시집 등 일생 중 가장 많은 시를 남깁니다.

[고 김춘수 시인/2001년 : "시라도 안 쓰면 나는 배겨낼 수가 없어. 너무 쓸쓸해서…. 사는 것이 너무 쓸쓸해. 시라도 써야 되지."]

여든이 넘도록 계속된 그의 시작은 2004년 11월 멈췄지만, 통영항이 내려다보이는 유품 전시관에서, 생가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에서, 시민들이 돈을 모아 세운 시비에서, 시인 김춘수는 지지 않는 꽃입니다.

KBS 뉴스 진정은입니다.

촬영:박민재/자막제작:김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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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의 거장을 만나다] 바다로 돌아간 꽃, 시인 김춘수
    • 입력 2023-11-30 20:47:55
    • 수정2023-11-30 20:58:07
    뉴스7(창원)
[앵커]

경남의 거장을 만나다, 이달에 만날 거장은 11월 태어나 11월에 여든두 살의 생을 마감한 시인 김춘수입니다.

한국문단의 대표 순수시인으로 꼽히는 시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진정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1952년.

서른 살 마산중학교 교사가 교무실의 하얀 꽃 한 송이를 보고 쓴 시, '꽃'입니다.

오랜 세월 국어 교과서에 실리고,

["니가 날 불렀을 때 나는 너의 꽃으로 기다렸던 것처럼 우리 시리도록 피어…."]

이 시대에도 불리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연애 시'로 꼽히지만, 시인은 연애 시가 아니었다 말합니다.

[김춘수/시인/1986년 KBS '11시에 만납시다' : "인간의 근원적 고독, 철학적인 형이상학적인 이런 의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엉뚱하게 연애 시처럼 이해되고 있는 것 같은데…."]

한국문단의 대표 순수시인 김춘수는 1922년 통영에서 태어났습니다.

일본 유학 시절 독일 시인 릴케의 '관념시'에 눈을 뜬 시인은 광복 뒤 윤이상, 전혁림, 유치환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만들고, 1948년 시집 '구름과 장미'로 등단해 시집 25권을 남겼습니다.

1960년대부터는 언어가 실체를 지시할 수 없다는 '무의미시'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바다가 왼 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이따금 바람은 한려수도에서 불어오고 느릅나무 어린잎들이 가늘게 몸을 흔들곤 하였다."]

시인은 통영중학교를 시작으로 마산중학교를 거쳐 경북대, 영남대 교수로 30년 넘게 후학을 길러냈습니다.

'귀천'의 천상병 시인도 그의 마산중학교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 출범과 함께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했고, 1988년 퇴임식에 헌정한 축시는 지금도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시인이 다시 순수와 서정으로 회귀한 것은 1999년 아내의 죽음이었습니다.

[강선욱/김춘수 유품전시관 학예연구사 :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 의미 없는 글이 무슨 감동이 되고 시가 되겠냐는 생각으로 다시 관념론적인 시로 돌아가는 거죠."]

만년의 시인은 초기 때 의미시, 관념시로 돌아가 아내 영전에 바치는 시집 등 일생 중 가장 많은 시를 남깁니다.

[고 김춘수 시인/2001년 : "시라도 안 쓰면 나는 배겨낼 수가 없어. 너무 쓸쓸해서…. 사는 것이 너무 쓸쓸해. 시라도 써야 되지."]

여든이 넘도록 계속된 그의 시작은 2004년 11월 멈췄지만, 통영항이 내려다보이는 유품 전시관에서, 생가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에서, 시민들이 돈을 모아 세운 시비에서, 시인 김춘수는 지지 않는 꽃입니다.

KBS 뉴스 진정은입니다.

촬영:박민재/자막제작:김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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