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참혹한 기억…강제북송을 기록하다

입력 2023.12.02 (08:22) 수정 2023.12.0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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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달 15일 유엔 총회 제3위원회에서는 북한 인권결의안이 19년 연속으로 채택됐습니다.

이번 결의안에는 탈북민과 관련해 유엔 고문방지협약도 준수하라는 촉구가 포함됐습니다.

결의안이 상정되자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는 탈북민들이 허위 증언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표결 없이 전원 동의 방식으로 인권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지난 10월, 클로즈업 북한’에선 중국에서 강제 북송돼 연락이 끊긴 탈북민 김철옥 씨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살펴봤는데요.

오늘 통일로미래로에선, 강제북송돼 갖은 고초를 겪었던 탈북민을 최효은 리포터가 만났습니다.

강제 북송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 함께 확인해 보시죠.

[리포트]

지난 10월 9일.

북중 국경 지역에 수감 돼 있던 탈북민 600여 명이 중국에 의해 강제북송 된 사실이 알려지며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줬습니다.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들 사이에서 북송은 어떤 의미일까요?

[오남순/탈북민/2007년 강제북송 : "우리 탈북자들한테는 그게 죽음이고 생명이고 정말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탈북민들은 북송을 피하기 위해 늘 긴장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최민경/NK감금피해자가족회 대표 : "출입문을 잠그고 그다음에 창문 쪽에는 항상 신발 아니면 항상 비상 (용품이) 있고 땅굴을 김치움(구덩이)처럼 땅굴을 파고 그다음에 바깥까지 연결하고 이렇게 했는데..."]

중국에서 600명이 넘는 탈북민이 강제북송된 것이 국제적인 이슈로 떠올랐지만 정작 이들이 북한에서 어떻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2007년 강제북송 돼 함경북도의 한 교화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는 한 탈북민의 증언을 통해 그 실상을 가늠해 볼 수 있었는데요.

그 이야기 함께 만나보실까요.

가끔씩 떠오르는 기억에 여전히 몸서리를 치고 있지만, 세상에 꼭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제작진과의 만남을 결심했다는 탈북민, 오남순 씨.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우편 통신원으로 살았던 남순 씨는 1997년 딸과 함께 탈북해 중국에서 숨죽이며 10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잊을 수 없는 그 날.

2007년 7월 10일에 중국 공안에 발각된 것입니다.

[오남순/탈북민 : '트럭에 앉아서 고개도 못 들고 이렇게 하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저희들은 갔어요."]

중국 국경 경비대에 구금됐던 남순 씨는 북한 국경지역 보위부 구류장과 도별 집결소, 그리고 출신 지역의 안전부 등을 거친 뒤 함경북도 회령에 있는 전거리교화소에 2년간 수용됐습니다.

[오남순/탈북민 : "거기에 북송돼서 들어가는 순간에 우리 딸하고 저희는 몸 검사를 하더라고요. 일체 싹 벗겨서 앉았다 일어났다 운동을 시키는 거예요. 막 강제노동을 시키는 노예처럼 일을 시키죠."]

열악한 수감시설 때문에 체감 고통은 극대화됐습니다.

그때의 참혹한 기억은 아직도 악몽으로 되살아난다고 합니다.

[오남순/탈북민 : "이거는 머리가 너무 아플 때 먹는 거고요. 이건 수면제에요. 몽땅 다. 무릎도 교화소에서 너무 일하면서 (다치고) 이 팔은 곡괭이질을 너무 해서 이 팔이 빠져서 다시 넣느라고 넣는데 제대로 못 넣어서 이 팔이 비뚤어졌잖아요. 팔을 펴지 못해요."]

마침내 2009년 교화소에서 풀려난 남순 씨.

이듬해인 2010년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했고 7년간 여러 곳을 거친 끝에 남한에 정착했습니다.

여전히 몸과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지만, 남순 씨는 탈북민을 돕고 있는 하나센터의 지원과 주변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며 고마움을 표합니다.

[오남순/탈북민 : "하나센터에서 그래도 저한테 이렇게 김치도 해서 주고요. 이렇게 해서 제가 이거 그래도 정말 제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마침 찾아온 손님.

남순 씨가 반갑게 맞이합니다.

["안녕하세요~"]

북한의 교화소에서 생사의 고비를 함께했던 최민경 대표입니다.

두 사람은 한 탈북민 모임에서 극적으로 다시 만났다고 합니다.

[최민경/NK감금피해자가족회 대표 : "(오남순 씨는) 2007년도에 (교화소에) 들어갔고, 저는 2008년도 중국에 올림픽 때 거기 수감이 됐던 같은 동료예요."]

최 대표 또한 교화소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최민경/NK감금피해자가족회 대표 : "(2010년) 12월에 열병이 걸려서 저는 시체실에 버려졌어요. 죽었다고. 그래서 (제 이야기를) 생생하게 증언한 사람이 있어요. 시체실에 버린 사람이 먼저 대한민국에 와서 증언을 했어요."]

이들은 당시 겪었던 생생한 체험을 세상에 알려나가기로 했는데요.

교화소에서 나온 직후, 남순 씨는 자신이 겪은 참상을 일기장에 기록했는데요.

이제 이 자료가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오남순/탈북민 : "제가 상상도 못 했던 감옥살이를 했잖아요. 그걸 일일이 다 적은 거예요."]

아직도 고통스럽기만 한 순간을 되내어 봅니다.

[오남순/탈북민 : "몇 천 번이나 몸수색을 해야 이 생활이 끝나는지. 이렇게 한 명 한 명을 다 검열한 다음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그 감옥으로 들어가는데 쇠살 창문에 나무판이 집이었다."]

남순씨에게 강제북송은 과거의 기억이자 현재진행중이기도 합니다.

인권유린의 기억은 상처이자 고통이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남순 씨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지난 10월 강제북송 사태를 바라보며,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꼈다는 두 사람...

이들이 향한 곳은 북한의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 중인 센터입니다.

남순 씨가 자신의 기록물을 건네며, 그때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오남순/탈북민 : "여기서부터 이게 다 제가 감옥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쓴 겁니다."]

[서보배/북한인권정보센터 연구원 : "엄청 세세하게 써 주셨네요, 선생님."]

한 사람의 기록도 공식적인 자료가 될 수 있을까요?

[서보배/북한인권정보센터 연구원 : "그 안에서의 노동 환경, 식사 제공 환경 그리고 그 안에서 수감자들이 어떻게 취급당하고 그 안에서 고문이랑 폭행, 이런 것들이 얼마나 일상적이었나라는 부분을 통해서 국제사회에서 이야기하는 북한인권의 반인도 범죄로서의 북한인권 가해 상황 그리고 가해자 가해 기관에 책임 규명을 위한 좋은 근거 자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지난달 이곳에 국내 최초로 북한인권박물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강제북송과 인권침해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작지만 큰 목소리를 내는 민경 씨와 남순 씨.

[최민경/NK감금피해자가족회 대표 : "우리를 통해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그리고 나아가서 국제적으로도 다 연대를 해서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우리가 하려는 앞으로 목표며 과제입니다."]

[오남순/탈북민 : "저 역시 적은 힘이나마 더 많은 봉사와 함께 우리 고통받는 탈북민들과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이들의 절절한 사연들은, 이제는 국제사회가 탈북민들의 강제북송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되고 당장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없이, 그러나 힘있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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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참혹한 기억…강제북송을 기록하다
    • 입력 2023-12-02 08:22:43
    • 수정2023-12-04 14:09:17
    남북의 창
[앵커]

지난달 15일 유엔 총회 제3위원회에서는 북한 인권결의안이 19년 연속으로 채택됐습니다.

이번 결의안에는 탈북민과 관련해 유엔 고문방지협약도 준수하라는 촉구가 포함됐습니다.

결의안이 상정되자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는 탈북민들이 허위 증언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표결 없이 전원 동의 방식으로 인권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지난 10월, 클로즈업 북한’에선 중국에서 강제 북송돼 연락이 끊긴 탈북민 김철옥 씨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살펴봤는데요.

오늘 통일로미래로에선, 강제북송돼 갖은 고초를 겪었던 탈북민을 최효은 리포터가 만났습니다.

강제 북송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 함께 확인해 보시죠.

[리포트]

지난 10월 9일.

북중 국경 지역에 수감 돼 있던 탈북민 600여 명이 중국에 의해 강제북송 된 사실이 알려지며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줬습니다.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들 사이에서 북송은 어떤 의미일까요?

[오남순/탈북민/2007년 강제북송 : "우리 탈북자들한테는 그게 죽음이고 생명이고 정말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탈북민들은 북송을 피하기 위해 늘 긴장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최민경/NK감금피해자가족회 대표 : "출입문을 잠그고 그다음에 창문 쪽에는 항상 신발 아니면 항상 비상 (용품이) 있고 땅굴을 김치움(구덩이)처럼 땅굴을 파고 그다음에 바깥까지 연결하고 이렇게 했는데..."]

중국에서 600명이 넘는 탈북민이 강제북송된 것이 국제적인 이슈로 떠올랐지만 정작 이들이 북한에서 어떻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2007년 강제북송 돼 함경북도의 한 교화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는 한 탈북민의 증언을 통해 그 실상을 가늠해 볼 수 있었는데요.

그 이야기 함께 만나보실까요.

가끔씩 떠오르는 기억에 여전히 몸서리를 치고 있지만, 세상에 꼭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제작진과의 만남을 결심했다는 탈북민, 오남순 씨.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우편 통신원으로 살았던 남순 씨는 1997년 딸과 함께 탈북해 중국에서 숨죽이며 10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잊을 수 없는 그 날.

2007년 7월 10일에 중국 공안에 발각된 것입니다.

[오남순/탈북민 : '트럭에 앉아서 고개도 못 들고 이렇게 하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저희들은 갔어요."]

중국 국경 경비대에 구금됐던 남순 씨는 북한 국경지역 보위부 구류장과 도별 집결소, 그리고 출신 지역의 안전부 등을 거친 뒤 함경북도 회령에 있는 전거리교화소에 2년간 수용됐습니다.

[오남순/탈북민 : "거기에 북송돼서 들어가는 순간에 우리 딸하고 저희는 몸 검사를 하더라고요. 일체 싹 벗겨서 앉았다 일어났다 운동을 시키는 거예요. 막 강제노동을 시키는 노예처럼 일을 시키죠."]

열악한 수감시설 때문에 체감 고통은 극대화됐습니다.

그때의 참혹한 기억은 아직도 악몽으로 되살아난다고 합니다.

[오남순/탈북민 : "이거는 머리가 너무 아플 때 먹는 거고요. 이건 수면제에요. 몽땅 다. 무릎도 교화소에서 너무 일하면서 (다치고) 이 팔은 곡괭이질을 너무 해서 이 팔이 빠져서 다시 넣느라고 넣는데 제대로 못 넣어서 이 팔이 비뚤어졌잖아요. 팔을 펴지 못해요."]

마침내 2009년 교화소에서 풀려난 남순 씨.

이듬해인 2010년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했고 7년간 여러 곳을 거친 끝에 남한에 정착했습니다.

여전히 몸과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지만, 남순 씨는 탈북민을 돕고 있는 하나센터의 지원과 주변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며 고마움을 표합니다.

[오남순/탈북민 : "하나센터에서 그래도 저한테 이렇게 김치도 해서 주고요. 이렇게 해서 제가 이거 그래도 정말 제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마침 찾아온 손님.

남순 씨가 반갑게 맞이합니다.

["안녕하세요~"]

북한의 교화소에서 생사의 고비를 함께했던 최민경 대표입니다.

두 사람은 한 탈북민 모임에서 극적으로 다시 만났다고 합니다.

[최민경/NK감금피해자가족회 대표 : "(오남순 씨는) 2007년도에 (교화소에) 들어갔고, 저는 2008년도 중국에 올림픽 때 거기 수감이 됐던 같은 동료예요."]

최 대표 또한 교화소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최민경/NK감금피해자가족회 대표 : "(2010년) 12월에 열병이 걸려서 저는 시체실에 버려졌어요. 죽었다고. 그래서 (제 이야기를) 생생하게 증언한 사람이 있어요. 시체실에 버린 사람이 먼저 대한민국에 와서 증언을 했어요."]

이들은 당시 겪었던 생생한 체험을 세상에 알려나가기로 했는데요.

교화소에서 나온 직후, 남순 씨는 자신이 겪은 참상을 일기장에 기록했는데요.

이제 이 자료가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오남순/탈북민 : "제가 상상도 못 했던 감옥살이를 했잖아요. 그걸 일일이 다 적은 거예요."]

아직도 고통스럽기만 한 순간을 되내어 봅니다.

[오남순/탈북민 : "몇 천 번이나 몸수색을 해야 이 생활이 끝나는지. 이렇게 한 명 한 명을 다 검열한 다음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그 감옥으로 들어가는데 쇠살 창문에 나무판이 집이었다."]

남순씨에게 강제북송은 과거의 기억이자 현재진행중이기도 합니다.

인권유린의 기억은 상처이자 고통이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남순 씨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지난 10월 강제북송 사태를 바라보며,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꼈다는 두 사람...

이들이 향한 곳은 북한의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 중인 센터입니다.

남순 씨가 자신의 기록물을 건네며, 그때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오남순/탈북민 : "여기서부터 이게 다 제가 감옥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쓴 겁니다."]

[서보배/북한인권정보센터 연구원 : "엄청 세세하게 써 주셨네요, 선생님."]

한 사람의 기록도 공식적인 자료가 될 수 있을까요?

[서보배/북한인권정보센터 연구원 : "그 안에서의 노동 환경, 식사 제공 환경 그리고 그 안에서 수감자들이 어떻게 취급당하고 그 안에서 고문이랑 폭행, 이런 것들이 얼마나 일상적이었나라는 부분을 통해서 국제사회에서 이야기하는 북한인권의 반인도 범죄로서의 북한인권 가해 상황 그리고 가해자 가해 기관에 책임 규명을 위한 좋은 근거 자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지난달 이곳에 국내 최초로 북한인권박물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강제북송과 인권침해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작지만 큰 목소리를 내는 민경 씨와 남순 씨.

[최민경/NK감금피해자가족회 대표 : "우리를 통해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그리고 나아가서 국제적으로도 다 연대를 해서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우리가 하려는 앞으로 목표며 과제입니다."]

[오남순/탈북민 : "저 역시 적은 힘이나마 더 많은 봉사와 함께 우리 고통받는 탈북민들과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이들의 절절한 사연들은, 이제는 국제사회가 탈북민들의 강제북송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되고 당장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없이, 그러나 힘있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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