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드러난 실태…‘마천루 도시’의 아동 주거 빈곤

입력 2023.12.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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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빈곤 가구 아동이 그린 집주거 빈곤 가구 아동이 그린 집

초등학생 2명이 그린 집입니다. 이 아이들은 좁은 집에 삽니다. 식구는 많지만, 방은 2개뿐입니다. 물론 '자기 방'이 없습니다. 형 또는 누나, 언니, 오빠와 같이 방을 씁니다.

왼쪽 그림부터 볼까요? 집이 아래쪽에 치우쳐 있죠. 크기도 종이 면적의 4분의 1을 채우지 못할 정도로 작습니다. 심리 전문가는 "위축되고 불안할 때 그리는 집"이라고 분석합니다. 이 아이의 우울감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나왔습니다.

옆의 그림은 마당이 딸린 이층집입니다. 집 주변으로 울타리가 처졌고, 위층엔 난간을 그렸습니다.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욕구와 함께 외부 환경을 경계하는 심리도 있다"고 풀이됩니다.

KBS가 부모 동의를 받아 전문 기관(동아대학교 병원)에 주거 빈곤 가정의 아동 심리 검사를 맡긴 결과입니다.

해 질 무렵 부산 도심 전경해 질 무렵 부산 도심 전경

■ 부산 최소 2만 2천여 가구…주거 빈곤 속 아이들

해안가를 따라 고층 건물이 즐비한 '마천루 도시' 부산. 전국 고층 건물 상위 20위에 부산은 엘시티 등 12곳(2022년 기준)이 포함됐습니다.

취재진은 그 화려함 뒤에 가려진 '아동 주거 빈곤' 문제를 들여다봤습니다. 최소한의 주거 기준에도 못 미치는 곳에서 사는 아이들 얘기입니다. 부산시가 아동 주거 빈곤 가구를 대상으로 첫 공식 조사를 벌였고, KBS가 그 결과를 최초로 확인했습니다.

KBS부산 연속 보도 타이틀KBS부산 연속 보도 타이틀

부산의 한 재개발 구역과 맞닿은 단독 주택. 낡고 오래돼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졌습니다. 방은 2개로 모두 10㎡(가로, 세로 3m 정도)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이곳에 다섯 식구가 삽니다. 가파른 나무 계단으로 올라가는 2층 방에서 초등학생 등 자녀 3명이 공부하고 잡니다.

"애들도 방을 갖고 싶은데 못 갖고 이렇게 하는 게 좀…. 친구들은 방이 있는데 애들은 없으니까 마음이 조금 아프죠." (주거 빈곤 아동 부모)

욕실도 들여다 봤습니다. 고장 난 보일러가 공간만 차지해 비좁고, 벽면과 바닥도 낡았습니다. 무엇보다 양변기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집 밖으로 나가 공용 화장실을 쓰고 있습니다.

"제일 불편한 게 화장실. 밤에 배 아프면 우리가 없으면 가지를 못하니까 무서워서…." (주거 빈곤 아동 부모)

정부가 정한 최소한의 주거 기준입니다.

제1조(목적)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위해 필요
제2조(최소 주거면적) 5인 가족 기준 방 3개, 46㎡...
제3조(필수 설비) 전용 수세식 화장실 및 목욕시설

시행한 지 10년이 넘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취재진이 찾아간 아동 가구의 집은 이 기준에도 한참 미치지 못했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간 아동 주거 빈곤 가구취재진이 찾아간 아동 주거 빈곤 가구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부산지역 아동 주거 빈곤 가구는 최소 2만 2천여 곳으로, 부산 전체 아동(18살 미만) 가구의 약 8% 정도입니다.

부산 16개 구·군 중에서는 중구와 금정구, 부산진구, 사상구, 서구 순으로 아동 주거 빈곤 가구의 비중이 높았습니다. 이 지역만 놓고 보면 아동 가구 10곳 중 1곳 넘게 주거 빈곤을 겪고 있습니다.

부산 지역별 아동 주거 빈곤 가구 비율(자료:부산시 )부산 지역별 아동 주거 빈곤 가구 비율(자료:부산시 )

4년 전 유엔협약에 담긴 아동의 기본권을 보장하겠다며, 전국 광역시 중 처음으로 '아동 친화 도시' 인증을 받은 부산의 현실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은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소득 수준, 그리고 제2의 도시라고 하는 부산, 이런 도시에서 이 정도의 생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이건 또 다른 모습의 부산, 우리들이 보지 못했던 부산이 아닌가…."

■ 첫 주거 빈곤 실태…"아이 정서적 이상" 절반 넘어

부산 아동 주거 빈곤 가구의 구체적인 생활 실태를 볼까요? 18살 미만 아동이 사는 4천 가구(주거 빈곤 천3백 가구 포함 )를 대상으로 벌인 조사 결과입니다.

아동 주거 빈곤 가구의 평균 주거 면적은 54㎡ 정도로, 일반 아동 가구의 3분의 2 수준에 그쳤습니다. 주거 면적이 40㎡ 이하로 일반 아동 가구 평균의 절반 정도인 가구도 34%에 달했습니다.

부산 아동 주거 빈곤 가구 생활 실태(자료:부산시)부산 아동 주거 빈곤 가구 생활 실태(자료:부산시)

집이 좁다 보니 아동 주거 빈곤 가구의 절반 이상은 사용하는 방이 2개라고 답했고, 44%가량은 아이에게 따로 방을 주지 못했습니다.

실태조사를 벌인 아동 주거 빈곤 가구 중 7.5%는 난방시설이 고장 났거나 아예 없었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욕실이 아예 없는 가구도 각각 10곳이 넘었습니다.

취재진은 이런 주거 환경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주목했습니다. 주거 빈곤을 겪는 아동의 심리를 검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태조사에서 주거 빈곤 가구 부모에게 '최근 1년간 아이가 정서적 이상 증상을 보였는지' 물었더니 51.6%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집착한다'는 응답이 24.5%로 가장 많았고, '주의력이 떨어진다'(10.9%), '감정 기복이 심하다'(9.8%)가 뒤를 이었습니다.

주거 공간 때문에 아이의 사회성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주거 빈곤 가구 아동의 58%는 '최근 1년간 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유로는 "놀 공간이 없어서",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가 각각 38%와 27%에 달했습니다.


"빈곤 그 자체보다는 아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인 것 같고요. 그래서 주거 환경에 대해 아이가 불편감을 느끼고 호소하는 경우라면 이를 개선 시켜 주는 것이 아이의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로 생각합니다."

■ 빈곤 책임은 부모?…주거 복지 정책에서 소외된 '아동'

그렇다면 주거 빈곤의 책임을 아이 보호자인 부모에게만 떠넘길 수 있을까요?

임세희/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소득 대비 높은 주거비라든가,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서 부모들이 아무리 열심히 장시간 노동해도 높은 주거비를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상황의 책임이 보호자에게만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주거 빈곤 실태를 조사한 부산시가 올해 처음 집 수리 시범 사업을 벌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2021년 1월 제정한 부산시 아동 주거권 보장 조례에 따라 주거 빈곤을 겪는 26가구의 환경을 개선했습니다.

공용 화장실 쓰던 아동 주거 빈곤 가구. 욕실에 고장 난 보일러(좌)를 치우고 양변기 설치(우).공용 화장실 쓰던 아동 주거 빈곤 가구. 욕실에 고장 난 보일러(좌)를 치우고 양변기 설치(우).

문제는 첫발을 뗀 아동 주거권 보장 정책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느냐입니다. 올해 사업비 2억 9천만 원은 주거 복지에 쓰는 예산인 국민주택사업 특별회계로 충당했습니다. 같은 회계로 공공 임대 주택 건설과 관리 예산까지 편성하는 등 벌여야 할 사업이 많습니다. 다른 주거 복지 정책에 밀리면 예산 확보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당장 내년 사업비를 부산시 본 예산에 편성하지 못하고 추경에 반영할 계획입니다.

김영기/부산시 주택정책과장
"아동 주거 빈곤 사업은 100% 시비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시의 재정이라든지, 그런 부분도 같이 검토돼야 하고, 정해진 예산으로 국비나 시비 매칭(공동 출자) 사업, 아니면 먼저 추진해야 할 우선 사업 이런 부분이 있기 때문에…."

부산 시청 앞 행복주택(공공 임대 주택)부산 시청 앞 행복주택(공공 임대 주택)

정부도 4년 전 아동 주거 빈곤 가구에 공공 임대 주택을 공급하겠다며 대책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주거 빈곤을 겪는 아이들에게 공공 임대 주택의 문턱은 여전히 높습니다. 국토교통부의 업무처리지침 개정으로 아동 주거 빈곤 가구도 입주 대상이 됐을 뿐, 우선권을 주거나 공급 비율을 정한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부산에 들어선 공공 임대 주택인 행복주택의 경우 입주 물량의 80%가 청년과 신혼부부 대상이고, 나머지는 고령자나 주거급여 수급자입니다.

현실적으로 공급량을 빠르게 늘릴 수 있는 공공 주택 방식은 전세 임대입니다. 부산에도 3만 3천여 가구가 입주해 있습니다. 하지만 통학 거리까지 생각해야 하는 아동 주거 빈곤 가구 입장에선 현재 광역시 기준 보증금 지원 한도인 9천만 원으로 계약할 수 있는 전세 매물이 많지 않습니다. 올해 5개월간 부산의 아파트 전세 거래량 중 1억 원 미만은 5%대에 그쳤습니다.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 소장
"청년, 신혼부부, 노인 관련 정책은 많이 나오지만, 다른 계층보다 먼저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실상 주거 정책에서 굉장히 소외된 게 아동 주거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주거 복지 정책에서 뒤로 밀리는 게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투표권도 없기 때문일까요? 주거 빈곤 가구를 취재하며 혹시라도 상처가 될까 봐 많이 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꿈, 바람이 고층 건물 속 화려한 모습의 집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습니다.

[연관 기사]
[아동 주거 빈곤]① 부산 2만 2천여 가구…주거 빈곤 속 아이들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34436
[아동 주거 빈곤]② 첫 실태 확인…“좁고 낡은 시설에 주거 불안”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35502
[아동 주거 빈곤]③ 아동 건강 위협…“정서적 이상” 절반 넘어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36624
[아동 주거 빈곤]④ “집다운 집에서”…아동 주거권 첫발 뗐지만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37537
[아동 주거 빈곤]⑤ 주거 급여도 한계…“아동 주거 수당 필요”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39092
[아동 주거 빈곤]⑥ 주거 빈곤 아동에게 문턱 높은 공공 주택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40172
[미니 다큐] 화려함 뒤 주거 빈곤…그곳에 아이가 산다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33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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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 드러난 실태…‘마천루 도시’의 아동 주거 빈곤
    • 입력 2023-12-14 07:00:54
    심층K
주거 빈곤 가구 아동이 그린 집
초등학생 2명이 그린 집입니다. 이 아이들은 좁은 집에 삽니다. 식구는 많지만, 방은 2개뿐입니다. 물론 '자기 방'이 없습니다. 형 또는 누나, 언니, 오빠와 같이 방을 씁니다.

왼쪽 그림부터 볼까요? 집이 아래쪽에 치우쳐 있죠. 크기도 종이 면적의 4분의 1을 채우지 못할 정도로 작습니다. 심리 전문가는 "위축되고 불안할 때 그리는 집"이라고 분석합니다. 이 아이의 우울감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나왔습니다.

옆의 그림은 마당이 딸린 이층집입니다. 집 주변으로 울타리가 처졌고, 위층엔 난간을 그렸습니다.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욕구와 함께 외부 환경을 경계하는 심리도 있다"고 풀이됩니다.

KBS가 부모 동의를 받아 전문 기관(동아대학교 병원)에 주거 빈곤 가정의 아동 심리 검사를 맡긴 결과입니다.

해 질 무렵 부산 도심 전경
■ 부산 최소 2만 2천여 가구…주거 빈곤 속 아이들

해안가를 따라 고층 건물이 즐비한 '마천루 도시' 부산. 전국 고층 건물 상위 20위에 부산은 엘시티 등 12곳(2022년 기준)이 포함됐습니다.

취재진은 그 화려함 뒤에 가려진 '아동 주거 빈곤' 문제를 들여다봤습니다. 최소한의 주거 기준에도 못 미치는 곳에서 사는 아이들 얘기입니다. 부산시가 아동 주거 빈곤 가구를 대상으로 첫 공식 조사를 벌였고, KBS가 그 결과를 최초로 확인했습니다.

KBS부산 연속 보도 타이틀
부산의 한 재개발 구역과 맞닿은 단독 주택. 낡고 오래돼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졌습니다. 방은 2개로 모두 10㎡(가로, 세로 3m 정도)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이곳에 다섯 식구가 삽니다. 가파른 나무 계단으로 올라가는 2층 방에서 초등학생 등 자녀 3명이 공부하고 잡니다.

"애들도 방을 갖고 싶은데 못 갖고 이렇게 하는 게 좀…. 친구들은 방이 있는데 애들은 없으니까 마음이 조금 아프죠." (주거 빈곤 아동 부모)

욕실도 들여다 봤습니다. 고장 난 보일러가 공간만 차지해 비좁고, 벽면과 바닥도 낡았습니다. 무엇보다 양변기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집 밖으로 나가 공용 화장실을 쓰고 있습니다.

"제일 불편한 게 화장실. 밤에 배 아프면 우리가 없으면 가지를 못하니까 무서워서…." (주거 빈곤 아동 부모)

정부가 정한 최소한의 주거 기준입니다.

제1조(목적)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위해 필요
제2조(최소 주거면적) 5인 가족 기준 방 3개, 46㎡...
제3조(필수 설비) 전용 수세식 화장실 및 목욕시설

시행한 지 10년이 넘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취재진이 찾아간 아동 가구의 집은 이 기준에도 한참 미치지 못했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간 아동 주거 빈곤 가구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부산지역 아동 주거 빈곤 가구는 최소 2만 2천여 곳으로, 부산 전체 아동(18살 미만) 가구의 약 8% 정도입니다.

부산 16개 구·군 중에서는 중구와 금정구, 부산진구, 사상구, 서구 순으로 아동 주거 빈곤 가구의 비중이 높았습니다. 이 지역만 놓고 보면 아동 가구 10곳 중 1곳 넘게 주거 빈곤을 겪고 있습니다.

부산 지역별 아동 주거 빈곤 가구 비율(자료:부산시 )
4년 전 유엔협약에 담긴 아동의 기본권을 보장하겠다며, 전국 광역시 중 처음으로 '아동 친화 도시' 인증을 받은 부산의 현실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은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소득 수준, 그리고 제2의 도시라고 하는 부산, 이런 도시에서 이 정도의 생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이건 또 다른 모습의 부산, 우리들이 보지 못했던 부산이 아닌가…."

■ 첫 주거 빈곤 실태…"아이 정서적 이상" 절반 넘어

부산 아동 주거 빈곤 가구의 구체적인 생활 실태를 볼까요? 18살 미만 아동이 사는 4천 가구(주거 빈곤 천3백 가구 포함 )를 대상으로 벌인 조사 결과입니다.

아동 주거 빈곤 가구의 평균 주거 면적은 54㎡ 정도로, 일반 아동 가구의 3분의 2 수준에 그쳤습니다. 주거 면적이 40㎡ 이하로 일반 아동 가구 평균의 절반 정도인 가구도 34%에 달했습니다.

부산 아동 주거 빈곤 가구 생활 실태(자료:부산시)
집이 좁다 보니 아동 주거 빈곤 가구의 절반 이상은 사용하는 방이 2개라고 답했고, 44%가량은 아이에게 따로 방을 주지 못했습니다.

실태조사를 벌인 아동 주거 빈곤 가구 중 7.5%는 난방시설이 고장 났거나 아예 없었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욕실이 아예 없는 가구도 각각 10곳이 넘었습니다.

취재진은 이런 주거 환경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주목했습니다. 주거 빈곤을 겪는 아동의 심리를 검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태조사에서 주거 빈곤 가구 부모에게 '최근 1년간 아이가 정서적 이상 증상을 보였는지' 물었더니 51.6%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집착한다'는 응답이 24.5%로 가장 많았고, '주의력이 떨어진다'(10.9%), '감정 기복이 심하다'(9.8%)가 뒤를 이었습니다.

주거 공간 때문에 아이의 사회성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주거 빈곤 가구 아동의 58%는 '최근 1년간 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유로는 "놀 공간이 없어서",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가 각각 38%와 27%에 달했습니다.


"빈곤 그 자체보다는 아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인 것 같고요. 그래서 주거 환경에 대해 아이가 불편감을 느끼고 호소하는 경우라면 이를 개선 시켜 주는 것이 아이의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로 생각합니다."

■ 빈곤 책임은 부모?…주거 복지 정책에서 소외된 '아동'

그렇다면 주거 빈곤의 책임을 아이 보호자인 부모에게만 떠넘길 수 있을까요?

임세희/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소득 대비 높은 주거비라든가,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서 부모들이 아무리 열심히 장시간 노동해도 높은 주거비를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상황의 책임이 보호자에게만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주거 빈곤 실태를 조사한 부산시가 올해 처음 집 수리 시범 사업을 벌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2021년 1월 제정한 부산시 아동 주거권 보장 조례에 따라 주거 빈곤을 겪는 26가구의 환경을 개선했습니다.

공용 화장실 쓰던 아동 주거 빈곤 가구. 욕실에 고장 난 보일러(좌)를 치우고 양변기 설치(우).
문제는 첫발을 뗀 아동 주거권 보장 정책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느냐입니다. 올해 사업비 2억 9천만 원은 주거 복지에 쓰는 예산인 국민주택사업 특별회계로 충당했습니다. 같은 회계로 공공 임대 주택 건설과 관리 예산까지 편성하는 등 벌여야 할 사업이 많습니다. 다른 주거 복지 정책에 밀리면 예산 확보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당장 내년 사업비를 부산시 본 예산에 편성하지 못하고 추경에 반영할 계획입니다.

김영기/부산시 주택정책과장
"아동 주거 빈곤 사업은 100% 시비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시의 재정이라든지, 그런 부분도 같이 검토돼야 하고, 정해진 예산으로 국비나 시비 매칭(공동 출자) 사업, 아니면 먼저 추진해야 할 우선 사업 이런 부분이 있기 때문에…."

부산 시청 앞 행복주택(공공 임대 주택)
정부도 4년 전 아동 주거 빈곤 가구에 공공 임대 주택을 공급하겠다며 대책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주거 빈곤을 겪는 아이들에게 공공 임대 주택의 문턱은 여전히 높습니다. 국토교통부의 업무처리지침 개정으로 아동 주거 빈곤 가구도 입주 대상이 됐을 뿐, 우선권을 주거나 공급 비율을 정한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부산에 들어선 공공 임대 주택인 행복주택의 경우 입주 물량의 80%가 청년과 신혼부부 대상이고, 나머지는 고령자나 주거급여 수급자입니다.

현실적으로 공급량을 빠르게 늘릴 수 있는 공공 주택 방식은 전세 임대입니다. 부산에도 3만 3천여 가구가 입주해 있습니다. 하지만 통학 거리까지 생각해야 하는 아동 주거 빈곤 가구 입장에선 현재 광역시 기준 보증금 지원 한도인 9천만 원으로 계약할 수 있는 전세 매물이 많지 않습니다. 올해 5개월간 부산의 아파트 전세 거래량 중 1억 원 미만은 5%대에 그쳤습니다.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 소장
"청년, 신혼부부, 노인 관련 정책은 많이 나오지만, 다른 계층보다 먼저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실상 주거 정책에서 굉장히 소외된 게 아동 주거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주거 복지 정책에서 뒤로 밀리는 게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투표권도 없기 때문일까요? 주거 빈곤 가구를 취재하며 혹시라도 상처가 될까 봐 많이 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꿈, 바람이 고층 건물 속 화려한 모습의 집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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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다큐] 화려함 뒤 주거 빈곤…그곳에 아이가 산다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33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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