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사고 처리하다 사고 당하는 ‘안전순찰원’

입력 2024.01.1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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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속도로 안전순찰원'을 아시나요?

고속도로에서 교통 사고가 발생하면 차량을 통제하고 사고를 수습하는 사람들, 흔히 경찰이 떠오르시죠?

또 있습니다. 도로를 관리하는 한국도로공사 소속의 '안전순찰원'들입니다. 고속도로를 지나다 종종 보셨을 텐데요.

이들은 주로 2인 1조, 3교대로 순찰차를 타고 다니며 근무하는데요.

자신들이 소속된 도로공사 지사의 관할 고속도로 구간을 상행선과 하행선으로 나눠 수시로 순찰합니다.

2차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낙하물을 치우거나 망가진 교통 시설물이나 도로 상태를 점검하고, 교통 사고 현장에서 안전 공간을 확보해 경찰의 사고 처리를 돕기도 합니다.

갓길에 차량을 비상 주차하고 쉬는 운전자들에게는 졸음 쉼터로 안내해 혹시 모를 추돌 사고를 막는, 말 그대로 '사고 예방'이 주된 업무입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사고를 미리 막거나 수습하다가 거꾸로 폭행을 당하거나 사고 피해를 겪는다고 하는데요.

지난 2일, 중부고속도로 오창휴게소 부근에서 안전순찰원들이 난동을 부리는 남성을 제지하고 있다 [고속도로 CCTV]지난 2일, 중부고속도로 오창휴게소 부근에서 안전순찰원들이 난동을 부리는 남성을 제지하고 있다 [고속도로 CCTV]

순찰원이 위험 차량을 그대로 둬야 했던 이유

최근, 고속도로 한복판에 화물차를 거꾸로 주차한 남성이 도로 바닥에 드러눕고 차를 가로막는 등 난동을 부렸던 사건, 기억하시나요?

지난 2일, 중부고속도로 오창휴게소 근처에서 30분 동안 벌어졌던 당시 영상을 KBS가 확보해 보도했는데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하나 눈에 띕니다.

경찰보다 사고 현장에 먼저 도착한 한국도로공사 안전순찰원 두 명이 정체된 교통을 정리하면서도 고속도로 한 개 차로를 가로막고 있었던 화물차는 그대로 둔 모습입니다.

결국 안전순찰원들은 이상 행동을 보이는 남성을 설득하면서 제지하다 거꾸로 폭행을 당하고 맙니다.

이후 안전순찰원은 고속도로 순찰대 소속 경찰관들이 도착한 뒤에야 화물차를 직접 몰아 갓길로 이동 주차시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국도로공사 진천지사 안전순찰원이 운전기사에게 졸음 쉼터로 이동해 달라고 안내하고 있다 [KBS 촬영]한국도로공사 진천지사 안전순찰원이 운전기사에게 졸음 쉼터로 이동해 달라고 안내하고 있다 [KBS 촬영]

"경찰 올 때까지 기다려야"…권한 부족한 안전순찰원

안전순찰원들은 도로교통법상 고속도로에서 차량을 이동시킬 권한도, 운전자에게 지시할 권한도 없습니다.

또, 운전자를 강제로 대피시킬 수도 없습니다.

운전자에게 대피해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지만, 운전자가 사고 과실 여부 등을 따지기 위해 보험사 직원이 올 때까지 차량을 움직이지 않겠다고 하면 이동을 강제할 수 없는 겁니다.

사법권을 가진 경찰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안전순찰원이 고속도로 한복판에서의 난동 등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경찰이 올 때까지 남성이 세워둔 화물차를 그대로 뒀다가 경찰이 오고 나서야 이동시킨 이유입니다.

그렇다 보니 순찰원이 경찰보다 사고 현장에 먼저 도착해 사고를 처리할 경우 종종 문제가 발생합니다.

실제,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순찰원이 먼저 도착하는 비율은 해마다 60% 안팎입니다. 사고의 10건 가운데 6건인 셈입니다.


■ "사고 수습하다 차에 치이고, 숨지고"…최근 5년 동안 20명 사상

결국, 운전자들이 안내를 따르지 않으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건 안전 조치만 가능하다 보니 순찰원은 늘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안양 제2경인고속도로 인천 방향 삼성산터널 안에서 민자도로 관리 업체 소속인 안전순찰원이 교통 사고를 수습하다 졸음운전 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앞선 지난해 9월 서해안고속도로에선 고장 난 화물차 뒤에서 안전 조치하려던 순찰원의 차량을 뒤따라 오던 승용차가 들이받았는데요.

KBS가 확보한 당시 CCTV 영상에는 순찰원이 가까스로 몸을 피해 아찔한 사고를 모면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기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해 2월에는 경북 고령군 성산면 광주대구고속도로에서 고장으로 정차한 차량 뒤에서 안전조치하던 도로공사 소속 안전순찰원이 승용차에 치여 크게 다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국도로공사와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 동안 사고를 수습하다 다친 안전순찰원은 20명(부상 18명, 사망 2명)이나 됩니다.

하지만 한국도로공사 안전순찰원들만 보더라도 최근 10년 동안 36명 다치고 4명이 일하다 숨졌습니다.

상당수는 경찰보다 먼저 사고 현장에 도착해 사고를 당한 경우입니다.

고속도로 안전순찰원 사고 현황 [그래픽: KBS]고속도로 안전순찰원 사고 현황 [그래픽: KBS]

"안전순찰원의 법적 신분 논란"…도로교통법 개정안 계류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회에서도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2021년, 순찰원의 안전과 사고처리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발의된 겁니다.

하지만 안전순찰원의 신분과 관련해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도로교통법에서 안전순찰원에게 일부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느냐를 따지다가 결국 상임위에 계류됐습니다.

전국에 한국도로공사가 직접 또는 수탁 관리하는 고속도로는 36개, 그리고 수익형 민자사업 방식으로 운영되는 이른바 '민자고속도로'는 21개 노선입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이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모든 고속도로의 안전순찰원은 모두 1,266명인데요.

한국도로공사에 소속된 안전순찰원만 975명, 민자고속도로 안전순찰원은 291명입니다.

고속도로 사건, 사고 현장에서 '사고 예방'에 앞장서고 있는 순찰원들의 안전은, 결국 모두의 관심과 관계 당국·정치권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촬영기자: 박용호 / 화면제공: 한국도로공사

[연관 기사] 사고 막으려다 사고 노출”…안전 취약 ‘고속도로 순찰원’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66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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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속도로 사고 처리하다 사고 당하는 ‘안전순찰원’
    • 입력 2024-01-16 15: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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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속도로 안전순찰원'을 아시나요?

고속도로에서 교통 사고가 발생하면 차량을 통제하고 사고를 수습하는 사람들, 흔히 경찰이 떠오르시죠?

또 있습니다. 도로를 관리하는 한국도로공사 소속의 '안전순찰원'들입니다. 고속도로를 지나다 종종 보셨을 텐데요.

이들은 주로 2인 1조, 3교대로 순찰차를 타고 다니며 근무하는데요.

자신들이 소속된 도로공사 지사의 관할 고속도로 구간을 상행선과 하행선으로 나눠 수시로 순찰합니다.

2차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낙하물을 치우거나 망가진 교통 시설물이나 도로 상태를 점검하고, 교통 사고 현장에서 안전 공간을 확보해 경찰의 사고 처리를 돕기도 합니다.

갓길에 차량을 비상 주차하고 쉬는 운전자들에게는 졸음 쉼터로 안내해 혹시 모를 추돌 사고를 막는, 말 그대로 '사고 예방'이 주된 업무입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사고를 미리 막거나 수습하다가 거꾸로 폭행을 당하거나 사고 피해를 겪는다고 하는데요.

지난 2일, 중부고속도로 오창휴게소 부근에서 안전순찰원들이 난동을 부리는 남성을 제지하고 있다 [고속도로 CCTV]
순찰원이 위험 차량을 그대로 둬야 했던 이유

최근, 고속도로 한복판에 화물차를 거꾸로 주차한 남성이 도로 바닥에 드러눕고 차를 가로막는 등 난동을 부렸던 사건, 기억하시나요?

지난 2일, 중부고속도로 오창휴게소 근처에서 30분 동안 벌어졌던 당시 영상을 KBS가 확보해 보도했는데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하나 눈에 띕니다.

경찰보다 사고 현장에 먼저 도착한 한국도로공사 안전순찰원 두 명이 정체된 교통을 정리하면서도 고속도로 한 개 차로를 가로막고 있었던 화물차는 그대로 둔 모습입니다.

결국 안전순찰원들은 이상 행동을 보이는 남성을 설득하면서 제지하다 거꾸로 폭행을 당하고 맙니다.

이후 안전순찰원은 고속도로 순찰대 소속 경찰관들이 도착한 뒤에야 화물차를 직접 몰아 갓길로 이동 주차시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국도로공사 진천지사 안전순찰원이 운전기사에게 졸음 쉼터로 이동해 달라고 안내하고 있다 [KBS 촬영]
"경찰 올 때까지 기다려야"…권한 부족한 안전순찰원

안전순찰원들은 도로교통법상 고속도로에서 차량을 이동시킬 권한도, 운전자에게 지시할 권한도 없습니다.

또, 운전자를 강제로 대피시킬 수도 없습니다.

운전자에게 대피해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지만, 운전자가 사고 과실 여부 등을 따지기 위해 보험사 직원이 올 때까지 차량을 움직이지 않겠다고 하면 이동을 강제할 수 없는 겁니다.

사법권을 가진 경찰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안전순찰원이 고속도로 한복판에서의 난동 등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경찰이 올 때까지 남성이 세워둔 화물차를 그대로 뒀다가 경찰이 오고 나서야 이동시킨 이유입니다.

그렇다 보니 순찰원이 경찰보다 사고 현장에 먼저 도착해 사고를 처리할 경우 종종 문제가 발생합니다.

실제,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순찰원이 먼저 도착하는 비율은 해마다 60% 안팎입니다. 사고의 10건 가운데 6건인 셈입니다.


■ "사고 수습하다 차에 치이고, 숨지고"…최근 5년 동안 20명 사상

결국, 운전자들이 안내를 따르지 않으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건 안전 조치만 가능하다 보니 순찰원은 늘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안양 제2경인고속도로 인천 방향 삼성산터널 안에서 민자도로 관리 업체 소속인 안전순찰원이 교통 사고를 수습하다 졸음운전 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앞선 지난해 9월 서해안고속도로에선 고장 난 화물차 뒤에서 안전 조치하려던 순찰원의 차량을 뒤따라 오던 승용차가 들이받았는데요.

KBS가 확보한 당시 CCTV 영상에는 순찰원이 가까스로 몸을 피해 아찔한 사고를 모면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기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해 2월에는 경북 고령군 성산면 광주대구고속도로에서 고장으로 정차한 차량 뒤에서 안전조치하던 도로공사 소속 안전순찰원이 승용차에 치여 크게 다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국도로공사와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 동안 사고를 수습하다 다친 안전순찰원은 20명(부상 18명, 사망 2명)이나 됩니다.

하지만 한국도로공사 안전순찰원들만 보더라도 최근 10년 동안 36명 다치고 4명이 일하다 숨졌습니다.

상당수는 경찰보다 먼저 사고 현장에 도착해 사고를 당한 경우입니다.

고속도로 안전순찰원 사고 현황 [그래픽: KBS]
"안전순찰원의 법적 신분 논란"…도로교통법 개정안 계류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회에서도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2021년, 순찰원의 안전과 사고처리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발의된 겁니다.

하지만 안전순찰원의 신분과 관련해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도로교통법에서 안전순찰원에게 일부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느냐를 따지다가 결국 상임위에 계류됐습니다.

전국에 한국도로공사가 직접 또는 수탁 관리하는 고속도로는 36개, 그리고 수익형 민자사업 방식으로 운영되는 이른바 '민자고속도로'는 21개 노선입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이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모든 고속도로의 안전순찰원은 모두 1,266명인데요.

한국도로공사에 소속된 안전순찰원만 975명, 민자고속도로 안전순찰원은 291명입니다.

고속도로 사건, 사고 현장에서 '사고 예방'에 앞장서고 있는 순찰원들의 안전은, 결국 모두의 관심과 관계 당국·정치권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촬영기자: 박용호 / 화면제공: 한국도로공사

[연관 기사] 사고 막으려다 사고 노출”…안전 취약 ‘고속도로 순찰원’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66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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