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시죠?” 선거후보자가 내 이름을 안다?

입력 2024.02.15 (08:01) 수정 2024.02.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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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5일)로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55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모두 공천 심사에 한창입니다. 예비후보들자은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문자메시지와 ARS 전화, 명함 배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전화·문자에 스팸 등록해도 효과 없어…ARS 전화로 콜백하면 '통화중'

설 연휴를 전후해 취재진에게 걸려온 ARS 전화만 해도 여러 통이었습니다. 취재진의 거주 지역은 서울인데 경기, 경북, 대구 등 다양한 지역의 예비후보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A 예비후보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곧 다가오는 설 명절은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A 국회의원 예비후보였습니다."

B 예비후보
"이제 봄이 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가정에도 따뜻한 봄날이 오기를 바랍니다.이번 4월 10일 총선에 꼭 투표하셔서 대한민국이 바로 서고 우리 미래가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지금까지 B예비후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경기도에 사는 40대 여성 이모 씨도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출근길 버스, 평일 낮 업무 시간 등 시도때도없이 전화가 걸려오다보니 대부분 스팸번호로 등록을 해놓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송신자 번호만 달라질 뿐 각지에 출마한 후보들의 연락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 씨는 "근무 중에 어떤 번호인지, 누구인지 체크해야 하다보니 많이 번거롭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불쾌한 건 개인 정보 유출이었습니다. 이 씨는 "개인 신상을 알려준 적이 없는데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서 홍보 전화와 문자가 오니까 기분도 좋지 않다. 홍보 내용도 자화자찬이라 홍보 효과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취재진이 ARS로 걸려온 연락처로 전화를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방이 통화 중입니다. 다음에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메시지만 반복되다가 전화가 끊겼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예비후보자에게서 직접 전화를 받은 유권자도 있었습니다.

■"지역 잘 아신다고 해서..." 예비후보자가 직접 전화...유권자 '법 위반 항의'

지역 맘카페 커뮤니티 운영자 이 모 씨는 지난 13일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 씨가 거주하는 지역구의 C 예비후보였습니다.

지난 13일 오전 수도권 지역의 C예비후보는 유권자 이모 씨에게 전화했다. 이 씨의 항의 문자메시지(위)와 C예비후보의 사과 문자메시지(아래)지난 13일 오전 수도권 지역의 C예비후보는 유권자 이모 씨에게 전화했다. 이 씨의 항의 문자메시지(위)와 C예비후보의 사과 문자메시지(아래)

C예비후보는 전화상으로 "여쭤보고 싶은 내용이 많아 연락했다"고 이 씨에게 설명했습니다. 보통 지역 육아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모임인 '맘카페'는 해당 지역의 주부, 학부모 등 이용자가 많아 선거철 예비후보자들이 관심을 갖곤 합니다. 하지만 C 예비후보와 일면식도 없었던 이 씨는 연락처 출처를 따져물었고 결국 사과를 받았습니다.

"제 연락처를 준 사람 이름 대지 않으면 다 문제 삼겠다고 했어요. 진짜 국민들을 위해서 입법 기관의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건지 의아해요.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보장 받아야 할 기본적인 법 조차도 위반하는 행위잖아요. 국민을 이해한다면 그분들의 일상생활을 보호하고 보장하는 그런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 이○○씨 인터뷰

■한 달 새 민원 5배 가까이 증가...공직선거법, 개인정보 수집 규정 없어


이 씨처럼 개인정보 침해로 인한 민원은 한국인터넷진흥원 신고전화 118로 접수되는데요. 한국인터넷진흥원에 확인한 결과, 민원 건수는 선거가 다가올수록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천여 건이 접수됐고, 예비후보자 등록 이후 한 달 동안 민원 건수 보다 5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수도권 중진 의원의 보좌관은 "시·도의원들이 갖고 있는 연락처를 후보들에게 나눠줄 수도 있고 당에서도 번호가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보좌관은 지역구 주민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발송하고 있지만 항의를 받아본 적은 거의 없다고 소개했는데요. 그러면서 "오랫동안 관리를 해왔던 5만 명 규모의 리스트가 있다. 주변인이나 당원 등의 명부가 있다. 의원실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신규 당원들에게도 그런 명부가 유출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최근 등록한 수도권 예비후보자는 "동창회 명부 같은 것을 받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같은 연락처들 가운데 개인 동의를 일일이 받은 것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선거 홍보 문자나 ARS전화가 걸려올 경우 상대방에 연락처 수집 출처를 물어 불법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지만 대부분 수신이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정직하게 연락처를 수집하는 후보자가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경기도 지역의 한 예비후보자는 "연락처를 지인이나 단체 등을 통해서 받는 것은 한계가 있고 효과도 불분명하다. 정치 신인은 연락처 수집도 쉽지 않다. 매일 지역을 돌며 유권자들을 만나 연락처를 수집하고 민원을 접수 받는다. 이렇게 돌아 다녀서 주민들의 동의를 받고 얻은 연락처가 고작 300개"라고 말했습니다.

공직선거법에는 유권자의 전화번호 수집 방법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습니다.

선관위 관계자는 "번호 수집에 관한 사항은 선거법에 규정이 없어서 관련 민원을 받고 처리해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전화나 문자를 대량 발송하는 것에도 사실상 제한이 없는데요. 문자 메시지를 20명을 초과해 동시에 보내는 건 유권자 한 명당 8회로 제한하고 있지만, 20건 씩 나눠서 발송하면 사실상 무제한으로도 보낼 수 있습니다. 편법을 쓰는 겁니다.

개인정보 수집 근거를 마련하고 불법 수집시 처벌을 강화하거나, 발송 시간에 제한을 두자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했습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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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님이시죠?” 선거후보자가 내 이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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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4-02-15 09: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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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5일)로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55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모두 공천 심사에 한창입니다. 예비후보들자은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문자메시지와 ARS 전화, 명함 배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전화·문자에 스팸 등록해도 효과 없어…ARS 전화로 콜백하면 '통화중'

설 연휴를 전후해 취재진에게 걸려온 ARS 전화만 해도 여러 통이었습니다. 취재진의 거주 지역은 서울인데 경기, 경북, 대구 등 다양한 지역의 예비후보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A 예비후보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곧 다가오는 설 명절은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A 국회의원 예비후보였습니다."

B 예비후보
"이제 봄이 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가정에도 따뜻한 봄날이 오기를 바랍니다.이번 4월 10일 총선에 꼭 투표하셔서 대한민국이 바로 서고 우리 미래가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지금까지 B예비후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경기도에 사는 40대 여성 이모 씨도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출근길 버스, 평일 낮 업무 시간 등 시도때도없이 전화가 걸려오다보니 대부분 스팸번호로 등록을 해놓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송신자 번호만 달라질 뿐 각지에 출마한 후보들의 연락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 씨는 "근무 중에 어떤 번호인지, 누구인지 체크해야 하다보니 많이 번거롭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불쾌한 건 개인 정보 유출이었습니다. 이 씨는 "개인 신상을 알려준 적이 없는데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서 홍보 전화와 문자가 오니까 기분도 좋지 않다. 홍보 내용도 자화자찬이라 홍보 효과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취재진이 ARS로 걸려온 연락처로 전화를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방이 통화 중입니다. 다음에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메시지만 반복되다가 전화가 끊겼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예비후보자에게서 직접 전화를 받은 유권자도 있었습니다.

■"지역 잘 아신다고 해서..." 예비후보자가 직접 전화...유권자 '법 위반 항의'

지역 맘카페 커뮤니티 운영자 이 모 씨는 지난 13일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 씨가 거주하는 지역구의 C 예비후보였습니다.

지난 13일 오전 수도권 지역의 C예비후보는 유권자 이모 씨에게 전화했다. 이 씨의 항의 문자메시지(위)와 C예비후보의 사과 문자메시지(아래)
C예비후보는 전화상으로 "여쭤보고 싶은 내용이 많아 연락했다"고 이 씨에게 설명했습니다. 보통 지역 육아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모임인 '맘카페'는 해당 지역의 주부, 학부모 등 이용자가 많아 선거철 예비후보자들이 관심을 갖곤 합니다. 하지만 C 예비후보와 일면식도 없었던 이 씨는 연락처 출처를 따져물었고 결국 사과를 받았습니다.

"제 연락처를 준 사람 이름 대지 않으면 다 문제 삼겠다고 했어요. 진짜 국민들을 위해서 입법 기관의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건지 의아해요.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보장 받아야 할 기본적인 법 조차도 위반하는 행위잖아요. 국민을 이해한다면 그분들의 일상생활을 보호하고 보장하는 그런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 이○○씨 인터뷰

■한 달 새 민원 5배 가까이 증가...공직선거법, 개인정보 수집 규정 없어


이 씨처럼 개인정보 침해로 인한 민원은 한국인터넷진흥원 신고전화 118로 접수되는데요. 한국인터넷진흥원에 확인한 결과, 민원 건수는 선거가 다가올수록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천여 건이 접수됐고, 예비후보자 등록 이후 한 달 동안 민원 건수 보다 5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수도권 중진 의원의 보좌관은 "시·도의원들이 갖고 있는 연락처를 후보들에게 나눠줄 수도 있고 당에서도 번호가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보좌관은 지역구 주민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발송하고 있지만 항의를 받아본 적은 거의 없다고 소개했는데요. 그러면서 "오랫동안 관리를 해왔던 5만 명 규모의 리스트가 있다. 주변인이나 당원 등의 명부가 있다. 의원실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신규 당원들에게도 그런 명부가 유출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최근 등록한 수도권 예비후보자는 "동창회 명부 같은 것을 받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같은 연락처들 가운데 개인 동의를 일일이 받은 것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선거 홍보 문자나 ARS전화가 걸려올 경우 상대방에 연락처 수집 출처를 물어 불법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지만 대부분 수신이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정직하게 연락처를 수집하는 후보자가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경기도 지역의 한 예비후보자는 "연락처를 지인이나 단체 등을 통해서 받는 것은 한계가 있고 효과도 불분명하다. 정치 신인은 연락처 수집도 쉽지 않다. 매일 지역을 돌며 유권자들을 만나 연락처를 수집하고 민원을 접수 받는다. 이렇게 돌아 다녀서 주민들의 동의를 받고 얻은 연락처가 고작 300개"라고 말했습니다.

공직선거법에는 유권자의 전화번호 수집 방법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습니다.

선관위 관계자는 "번호 수집에 관한 사항은 선거법에 규정이 없어서 관련 민원을 받고 처리해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전화나 문자를 대량 발송하는 것에도 사실상 제한이 없는데요. 문자 메시지를 20명을 초과해 동시에 보내는 건 유권자 한 명당 8회로 제한하고 있지만, 20건 씩 나눠서 발송하면 사실상 무제한으로도 보낼 수 있습니다. 편법을 쓰는 겁니다.

개인정보 수집 근거를 마련하고 불법 수집시 처벌을 강화하거나, 발송 시간에 제한을 두자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했습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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