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최북단 마을 명파리에 가다 [르포]
입력 2024.02.18 (21:25)
수정 2024.02.18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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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강원도 고성군엔 동해안 최북단 마을인 명파마을이 있습니다.
'명파'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바다 절경을 간직한 곳인데요.
그런데 이곳이 금강산 관광 중단과 남북관계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김현경 앵커가 직접 명파리를 찾아가 봤습니다.
[리포트]
6·25전쟁의 격전지였던 강원도 고성.
남과 북은 고성군을 절반 씩 나눠갖습니다.
군사 분계선이 그어지면서 고성군의 남쪽은 우리 땅이 됐습니다.
동해안 최북단 마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립니다.
북한 금강산과는 불과 27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150여 세대에 250명 정도가 삽니다.
한낮에도 인적이 드뭅니다.
[김남명/명파리 이장 : "여기는 오후 5시만 되면 조용하거든요. 밤 되면 아무것도 없고 짐승 소리만 들리니까."]
냉전시기엔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장용출/명파리 주민 : "처음에 와선 엄청 무서웠어요. 북한 방송이 들리고 . 저기만 가면 붙들어갈 것 같고 겁이 나 가지고..."]
마을 한편엔 대피소가 마련돼있습니다.
북의 도발이 있을 때면 주민들은 대피를 감수해야했습니다.
[김남명/명파리 이장 : "마을에 처음 이사 온 사람들은 한두 번은 겁내하더라고요. 저희 같은 경우 매년 그러니까 무덤덤합니다."]
주민 상당 수는 민통선 지역에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합니다.
남북 대치로 생업에 지장을 받을 때도 많습니다.
[김종기/명파리 주민 : "북한이 자꾸 압박을 주고 겁을 주니까 군부에서도 산에 못 가게 하니까 아쉬운 게 있죠."]
이 마을도 특수를 누린 때가 있었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땝니다.
[김대선/명파리 슈퍼마켓 주인 : "여름 피크 때는 차가 많이 와서 사람이 건너다닐 수 없었어. 지금은 마을 차밖에 없어."]
그러나 금강산 관광이 멈추자 현내면의 식당과 건어물 가게 등 4백여 곳이 문을 닫았고 이제 이 마을의 식당과 슈퍼는 각각 한곳씩만 남았습니다.
지역소멸의 위기도 찾아왔습니다.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 분교는 이제 전교생이 한 명뿐입니다.
의료 공백도 심각합니다.
[김남명/명파리 이장 : "병원이란 곳은 하나도 없거든요. 주민들이 어르신들이 심정지나 뭐가 오면 119차를 타고 속초까지 20~30분을 나가야 되거든요."]
그러나 분명 장점도 많은 마을입니다.
인근엔 화진포의 절경이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소설 속 비밀의 성을 떠올리게 하는 건물이 나옵니다.
바로 김일성 별장입니다.
김일성 일가가 휴양을 한 장소로 알려진 곳입니다.
어린 시절 김정일이 사진을 찍었단 곳도 있습니다.
김일성 별장에선 화진포 바다가 한눈에 보입니다.
호수와 바다 금강송이 어우려져 빼어난 절경을 자랑합니다.
별장 안엔 당시 모습이 구현돼 있습니다.
[김명옥/고성군청 관광통역안내사 : "그때 당시 구조입니다. 그때 당시 입던 이런 색상을 입었다고 해서 전시된 복장이고요. 이불과 침대는 함경도식으로..."]
무엇보다 마을의 가장 큰 힘은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돕는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장용출/명파리 주민 : "울타리가 없잖아요. 담이 없잖아요. 이웃 간에 좋아요. 사람들이 서러 다투고 그런 거 없고."]
[김부경/인근 식당 주인 : "인심도 너무 좋고 해코지 받는 일이 없어요. 도둑이라든가 수상한 분이라든가 이런 게 없고."]
주민들은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어 좀 더 사람이 많이 오가는 마을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현경입니다.
촬영기자:권순두/영상편집:김근환/화면출처:미국국립기록보존소/그래픽:박세실
강원도 고성군엔 동해안 최북단 마을인 명파마을이 있습니다.
'명파'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바다 절경을 간직한 곳인데요.
그런데 이곳이 금강산 관광 중단과 남북관계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김현경 앵커가 직접 명파리를 찾아가 봤습니다.
[리포트]
6·25전쟁의 격전지였던 강원도 고성.
남과 북은 고성군을 절반 씩 나눠갖습니다.
군사 분계선이 그어지면서 고성군의 남쪽은 우리 땅이 됐습니다.
동해안 최북단 마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립니다.
북한 금강산과는 불과 27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150여 세대에 250명 정도가 삽니다.
한낮에도 인적이 드뭅니다.
[김남명/명파리 이장 : "여기는 오후 5시만 되면 조용하거든요. 밤 되면 아무것도 없고 짐승 소리만 들리니까."]
냉전시기엔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장용출/명파리 주민 : "처음에 와선 엄청 무서웠어요. 북한 방송이 들리고 . 저기만 가면 붙들어갈 것 같고 겁이 나 가지고..."]
마을 한편엔 대피소가 마련돼있습니다.
북의 도발이 있을 때면 주민들은 대피를 감수해야했습니다.
[김남명/명파리 이장 : "마을에 처음 이사 온 사람들은 한두 번은 겁내하더라고요. 저희 같은 경우 매년 그러니까 무덤덤합니다."]
주민 상당 수는 민통선 지역에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합니다.
남북 대치로 생업에 지장을 받을 때도 많습니다.
[김종기/명파리 주민 : "북한이 자꾸 압박을 주고 겁을 주니까 군부에서도 산에 못 가게 하니까 아쉬운 게 있죠."]
이 마을도 특수를 누린 때가 있었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땝니다.
[김대선/명파리 슈퍼마켓 주인 : "여름 피크 때는 차가 많이 와서 사람이 건너다닐 수 없었어. 지금은 마을 차밖에 없어."]
그러나 금강산 관광이 멈추자 현내면의 식당과 건어물 가게 등 4백여 곳이 문을 닫았고 이제 이 마을의 식당과 슈퍼는 각각 한곳씩만 남았습니다.
지역소멸의 위기도 찾아왔습니다.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 분교는 이제 전교생이 한 명뿐입니다.
의료 공백도 심각합니다.
[김남명/명파리 이장 : "병원이란 곳은 하나도 없거든요. 주민들이 어르신들이 심정지나 뭐가 오면 119차를 타고 속초까지 20~30분을 나가야 되거든요."]
그러나 분명 장점도 많은 마을입니다.
인근엔 화진포의 절경이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소설 속 비밀의 성을 떠올리게 하는 건물이 나옵니다.
바로 김일성 별장입니다.
김일성 일가가 휴양을 한 장소로 알려진 곳입니다.
어린 시절 김정일이 사진을 찍었단 곳도 있습니다.
김일성 별장에선 화진포 바다가 한눈에 보입니다.
호수와 바다 금강송이 어우려져 빼어난 절경을 자랑합니다.
별장 안엔 당시 모습이 구현돼 있습니다.
[김명옥/고성군청 관광통역안내사 : "그때 당시 구조입니다. 그때 당시 입던 이런 색상을 입었다고 해서 전시된 복장이고요. 이불과 침대는 함경도식으로..."]
무엇보다 마을의 가장 큰 힘은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돕는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장용출/명파리 주민 : "울타리가 없잖아요. 담이 없잖아요. 이웃 간에 좋아요. 사람들이 서러 다투고 그런 거 없고."]
[김부경/인근 식당 주인 : "인심도 너무 좋고 해코지 받는 일이 없어요. 도둑이라든가 수상한 분이라든가 이런 게 없고."]
주민들은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어 좀 더 사람이 많이 오가는 마을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현경입니다.
촬영기자:권순두/영상편집:김근환/화면출처:미국국립기록보존소/그래픽:박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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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2-18 21:25:17
- 수정2024-02-18 2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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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군엔 동해안 최북단 마을인 명파마을이 있습니다.
'명파'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바다 절경을 간직한 곳인데요.
그런데 이곳이 금강산 관광 중단과 남북관계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김현경 앵커가 직접 명파리를 찾아가 봤습니다.
[리포트]
6·25전쟁의 격전지였던 강원도 고성.
남과 북은 고성군을 절반 씩 나눠갖습니다.
군사 분계선이 그어지면서 고성군의 남쪽은 우리 땅이 됐습니다.
동해안 최북단 마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립니다.
북한 금강산과는 불과 27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150여 세대에 250명 정도가 삽니다.
한낮에도 인적이 드뭅니다.
[김남명/명파리 이장 : "여기는 오후 5시만 되면 조용하거든요. 밤 되면 아무것도 없고 짐승 소리만 들리니까."]
냉전시기엔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장용출/명파리 주민 : "처음에 와선 엄청 무서웠어요. 북한 방송이 들리고 . 저기만 가면 붙들어갈 것 같고 겁이 나 가지고..."]
마을 한편엔 대피소가 마련돼있습니다.
북의 도발이 있을 때면 주민들은 대피를 감수해야했습니다.
[김남명/명파리 이장 : "마을에 처음 이사 온 사람들은 한두 번은 겁내하더라고요. 저희 같은 경우 매년 그러니까 무덤덤합니다."]
주민 상당 수는 민통선 지역에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합니다.
남북 대치로 생업에 지장을 받을 때도 많습니다.
[김종기/명파리 주민 : "북한이 자꾸 압박을 주고 겁을 주니까 군부에서도 산에 못 가게 하니까 아쉬운 게 있죠."]
이 마을도 특수를 누린 때가 있었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땝니다.
[김대선/명파리 슈퍼마켓 주인 : "여름 피크 때는 차가 많이 와서 사람이 건너다닐 수 없었어. 지금은 마을 차밖에 없어."]
그러나 금강산 관광이 멈추자 현내면의 식당과 건어물 가게 등 4백여 곳이 문을 닫았고 이제 이 마을의 식당과 슈퍼는 각각 한곳씩만 남았습니다.
지역소멸의 위기도 찾아왔습니다.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 분교는 이제 전교생이 한 명뿐입니다.
의료 공백도 심각합니다.
[김남명/명파리 이장 : "병원이란 곳은 하나도 없거든요. 주민들이 어르신들이 심정지나 뭐가 오면 119차를 타고 속초까지 20~30분을 나가야 되거든요."]
그러나 분명 장점도 많은 마을입니다.
인근엔 화진포의 절경이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소설 속 비밀의 성을 떠올리게 하는 건물이 나옵니다.
바로 김일성 별장입니다.
김일성 일가가 휴양을 한 장소로 알려진 곳입니다.
어린 시절 김정일이 사진을 찍었단 곳도 있습니다.
김일성 별장에선 화진포 바다가 한눈에 보입니다.
호수와 바다 금강송이 어우려져 빼어난 절경을 자랑합니다.
별장 안엔 당시 모습이 구현돼 있습니다.
[김명옥/고성군청 관광통역안내사 : "그때 당시 구조입니다. 그때 당시 입던 이런 색상을 입었다고 해서 전시된 복장이고요. 이불과 침대는 함경도식으로..."]
무엇보다 마을의 가장 큰 힘은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돕는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장용출/명파리 주민 : "울타리가 없잖아요. 담이 없잖아요. 이웃 간에 좋아요. 사람들이 서러 다투고 그런 거 없고."]
[김부경/인근 식당 주인 : "인심도 너무 좋고 해코지 받는 일이 없어요. 도둑이라든가 수상한 분이라든가 이런 게 없고."]
주민들은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어 좀 더 사람이 많이 오가는 마을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현경입니다.
촬영기자:권순두/영상편집:김근환/화면출처:미국국립기록보존소/그래픽:박세실
강원도 고성군엔 동해안 최북단 마을인 명파마을이 있습니다.
'명파'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바다 절경을 간직한 곳인데요.
그런데 이곳이 금강산 관광 중단과 남북관계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김현경 앵커가 직접 명파리를 찾아가 봤습니다.
[리포트]
6·25전쟁의 격전지였던 강원도 고성.
남과 북은 고성군을 절반 씩 나눠갖습니다.
군사 분계선이 그어지면서 고성군의 남쪽은 우리 땅이 됐습니다.
동해안 최북단 마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립니다.
북한 금강산과는 불과 27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150여 세대에 250명 정도가 삽니다.
한낮에도 인적이 드뭅니다.
[김남명/명파리 이장 : "여기는 오후 5시만 되면 조용하거든요. 밤 되면 아무것도 없고 짐승 소리만 들리니까."]
냉전시기엔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장용출/명파리 주민 : "처음에 와선 엄청 무서웠어요. 북한 방송이 들리고 . 저기만 가면 붙들어갈 것 같고 겁이 나 가지고..."]
마을 한편엔 대피소가 마련돼있습니다.
북의 도발이 있을 때면 주민들은 대피를 감수해야했습니다.
[김남명/명파리 이장 : "마을에 처음 이사 온 사람들은 한두 번은 겁내하더라고요. 저희 같은 경우 매년 그러니까 무덤덤합니다."]
주민 상당 수는 민통선 지역에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합니다.
남북 대치로 생업에 지장을 받을 때도 많습니다.
[김종기/명파리 주민 : "북한이 자꾸 압박을 주고 겁을 주니까 군부에서도 산에 못 가게 하니까 아쉬운 게 있죠."]
이 마을도 특수를 누린 때가 있었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땝니다.
[김대선/명파리 슈퍼마켓 주인 : "여름 피크 때는 차가 많이 와서 사람이 건너다닐 수 없었어. 지금은 마을 차밖에 없어."]
그러나 금강산 관광이 멈추자 현내면의 식당과 건어물 가게 등 4백여 곳이 문을 닫았고 이제 이 마을의 식당과 슈퍼는 각각 한곳씩만 남았습니다.
지역소멸의 위기도 찾아왔습니다.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 분교는 이제 전교생이 한 명뿐입니다.
의료 공백도 심각합니다.
[김남명/명파리 이장 : "병원이란 곳은 하나도 없거든요. 주민들이 어르신들이 심정지나 뭐가 오면 119차를 타고 속초까지 20~30분을 나가야 되거든요."]
그러나 분명 장점도 많은 마을입니다.
인근엔 화진포의 절경이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소설 속 비밀의 성을 떠올리게 하는 건물이 나옵니다.
바로 김일성 별장입니다.
김일성 일가가 휴양을 한 장소로 알려진 곳입니다.
어린 시절 김정일이 사진을 찍었단 곳도 있습니다.
김일성 별장에선 화진포 바다가 한눈에 보입니다.
호수와 바다 금강송이 어우려져 빼어난 절경을 자랑합니다.
별장 안엔 당시 모습이 구현돼 있습니다.
[김명옥/고성군청 관광통역안내사 : "그때 당시 구조입니다. 그때 당시 입던 이런 색상을 입었다고 해서 전시된 복장이고요. 이불과 침대는 함경도식으로..."]
무엇보다 마을의 가장 큰 힘은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돕는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장용출/명파리 주민 : "울타리가 없잖아요. 담이 없잖아요. 이웃 간에 좋아요. 사람들이 서러 다투고 그런 거 없고."]
[김부경/인근 식당 주인 : "인심도 너무 좋고 해코지 받는 일이 없어요. 도둑이라든가 수상한 분이라든가 이런 게 없고."]
주민들은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어 좀 더 사람이 많이 오가는 마을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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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경 기자 hk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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