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토끼에 물렸어요”가 ‘지난달’로…오보 쏟아낸 ‘받아쓰기’

입력 2024.02.25 (11:49) 수정 2024.02.2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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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지난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뉴스가 있습니다. 최근 제주도의 한 체험형 동물농장에서 토끼가 아이 손가락을 깨문 사고가 일어났다는 보도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기사는 오보였습니다. 이 사건, 무려 1년 전 일어나 당시 KBS가 보도까지 했지만 매체 십여 곳은 최근 일어난 일로 둔갑시켰습니다. 한 매체에서 사실 확인도 없이 기사화하자 다른 매체에서 줄줄이 받아쓰기를 하다 빚어진 사고(!) 였습니다.


■ "토끼가 아이 손가락을…" 1년 전 사고가 지난주 사고로

최근 제주 관련 기사 하나가 온라인 공간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제주도의 한 체험형 동물농장에서 토끼가 아이 손가락을 깨문 사고가 일어났다는 내용입니다.

지난 21일, 한 인터넷 매체가 처음 이 내용을 보도한 뒤 기사는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언론사마다 비슷한 제목과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고, 포털사이트 메인 기사로까지 내걸리며 공분이 커졌습니다. 뉴스를 클릭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댓글도 수백 개 넘게 달렸습니다.

사흘간 오보를 퍼 나른 매체는 십수 곳에 달했지만 제대로 '팩트체크'를 한 매체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을 여실히 보인 사태의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지난해 제주의 한 체험형 동물농장에서 일어난 ‘토끼 물림’ 사고를 다룬 KBS 보도(2023.02.17.)지난해 제주의 한 체험형 동물농장에서 일어난 ‘토끼 물림’ 사고를 다룬 KBS 보도(2023.02.17.)

■ 지난해 1월 체험형 동물농장에서 일어난 사고…업장은 문 닫아

해당 사고는 실제로 일어난 일은 맞습니다. 다만 시기가 다릅니다. 제주에서 영업한 모 체험형 동물농장에서 지난해 1월 벌어졌던 사고입니다. 당시 토끼장에서 먹이 주기 체험을 하던 15개월 유아가 토끼에 손가락을 물려 크게 다쳤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2월, 피해 아동 가족과 지인 등은 이 사고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며 화제가 됐고 KBS 취재진은 제주에 거주하던 당사자와 사고가 난 동물농장 측 입장을 담아 기사를 냈습니다.

가족 단위 관광객들을 맞기 위한 '체험형 동물농장'이 전국 곳곳에서 성업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린 자녀를 데려오는 부모 등 관람객도, 업주들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쓴 기사였습니다. 해당 업장은 사고 이후 문을 닫았습니다.

☞당시 보도 기사
동물농장 토끼에 물려 15개월 아이 손가락 살점 ‘뜯겨’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607943(2023.02.17.)

지난해 2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토끼 손가락 물림’ 사고를 언급한 글.지난해 2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토끼 손가락 물림’ 사고를 언급한 글.

1년 전 글이 '지난달'로 둔갑해 다시 기사화…삽시간에 오보 확산

이 사건이 다시 공론화된 건 지난 21일입니다. 사고 경위를 설명한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이 돌연 지난주 한 인터넷 매체발 기사로 가공돼 1년을 훌쩍 건너뛰며 다시 등장한 겁니다.

첫 기사가 나간 뒤 여러 매체들이 해당 커뮤니티 글을 토대로 한 기사를 퍼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제주, 동물농장, 토끼, 아이, 손가락 절단…' 사람들이 혹할 만한 단어가 여럿 결합된 이 사건 기사는 너나 할 것 없이 유명 포털 사이트 언론사 메인 페이지에 내걸렸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으로 시작되는 내용과 기사 제목도 대동소이합니다.

SBS에서 다룬 ‘토끼 물림’ 사고 기사. 지난해 발생한 사건을 ‘지난달 2일’ 발생했다고 기재한 점 등, 최초 오보와 내용이 비슷하다.SBS에서 다룬 ‘토끼 물림’ 사고 기사. 지난해 발생한 사건을 ‘지난달 2일’ 발생했다고 기재한 점 등, 최초 오보와 내용이 비슷하다.

이 가운데에는 이른바 '메이저 언론'이라 불리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방송·신문사와 통신사도 있었습니다.

SBS는 뉴스 홈페이지에 "토끼가 아이 손가락을…동물원은 '주의 문구' 급조"라는 기사를 게재했는데 지난해 발생한 사건을 '지난달 2일' 발생했다고 보도한 점 등 최초의 오보와 내용이 흡사합니다. SBS는 해당 내용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라며 아침 정규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루기도 했습니다.

CBS도 지난 23일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토끼에 물려 손가락 잘린 아기" 라며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정작 사고가 일어난 시기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3일 오후 한 포털사이트에 내걸린 ‘토끼 물림 사고’ 기사들. 사고 발생 시점을 ‘지난달’로 기재한 매체가 대다수다.지난 23일 오후 한 포털사이트에 내걸린 ‘토끼 물림 사고’ 기사들. 사고 발생 시점을 ‘지난달’로 기재한 매체가 대다수다.

문제는 이들 기사에 언급된 사고 발생 시점이 '지난달'로, 마치 올해 일어난 사건처럼 잘못 알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지난달 사건'으로 쓴 기사는 사실이 아닙니다.

정작 문제의 기사들이 인용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에는 작성 시점이 '2023년 2월'로 명확하게 기재돼 있습니다.

지난주 온라인에 등장한 최초 보도(?)에서 '지난달 2일'이라고 쓴 것을 다른 매체들이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받아쓰며 일어난 웃지 못할 일이지만 이 같은 오보는 사흘간 20건 가까이 쏟아졌습니다.

기사를 쓴 기자들이 최소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확인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입니다. 지난해 이 사건을 보도한 KBS 취재진에 "어찌된 일이냐"며 물어오는 다른 언론사의 연락도 있었는데 문의한 언론사는 기사를 쓰지 않았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출처: 게티이미지)
■ 자극적 제목·내용으로 호기심 자극…"전형적인 황색 저널리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시금 주목을 받은 과거 사건이 최소한의 사실 검증 없이 보도되고 다른 언론들이 이를 경쟁적으로 받아쓰면서 빠르게 확산하는 사태를 두고 전문가는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을 통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형적인 황색 저널리즘"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이서현 교수는 "기사를 보도하기 전에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중 하나다. 특히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보도에서는 사실 확인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교수는 " 이번 사례에서는 사실 확인 절차를 생략하고, 주목도와 조회 수만 중시했다는 점에서 언론의 책임을 방기했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단순히 사회적 불안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크다고 본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번 사태는 언론의 역할, 특히 가장 기본적인 '팩트체크'의 중요성, 그리고 책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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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 전 “토끼에 물렸어요”가 ‘지난달’로…오보 쏟아낸 ‘받아쓰기’
    • 입력 2024-02-25 11:49:56
    • 수정2024-02-25 13: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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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지난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뉴스가 있습니다. 최근 제주도의 한 체험형 동물농장에서 토끼가 아이 손가락을 깨문 사고가 일어났다는 보도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기사는 오보였습니다. 이 사건, 무려 1년 전 일어나 당시 KBS가 보도까지 했지만 매체 십여 곳은 최근 일어난 일로 둔갑시켰습니다. 한 매체에서 사실 확인도 없이 기사화하자 다른 매체에서 줄줄이 받아쓰기를 하다 빚어진 사고(!) 였습니다.</strong>

■ "토끼가 아이 손가락을…" 1년 전 사고가 지난주 사고로

최근 제주 관련 기사 하나가 온라인 공간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제주도의 한 체험형 동물농장에서 토끼가 아이 손가락을 깨문 사고가 일어났다는 내용입니다.

지난 21일, 한 인터넷 매체가 처음 이 내용을 보도한 뒤 기사는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언론사마다 비슷한 제목과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고, 포털사이트 메인 기사로까지 내걸리며 공분이 커졌습니다. 뉴스를 클릭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댓글도 수백 개 넘게 달렸습니다.

사흘간 오보를 퍼 나른 매체는 십수 곳에 달했지만 제대로 '팩트체크'를 한 매체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을 여실히 보인 사태의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지난해 제주의 한 체험형 동물농장에서 일어난 ‘토끼 물림’ 사고를 다룬 KBS 보도(2023.02.17.)
■ 지난해 1월 체험형 동물농장에서 일어난 사고…업장은 문 닫아

해당 사고는 실제로 일어난 일은 맞습니다. 다만 시기가 다릅니다. 제주에서 영업한 모 체험형 동물농장에서 지난해 1월 벌어졌던 사고입니다. 당시 토끼장에서 먹이 주기 체험을 하던 15개월 유아가 토끼에 손가락을 물려 크게 다쳤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2월, 피해 아동 가족과 지인 등은 이 사고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며 화제가 됐고 KBS 취재진은 제주에 거주하던 당사자와 사고가 난 동물농장 측 입장을 담아 기사를 냈습니다.

가족 단위 관광객들을 맞기 위한 '체험형 동물농장'이 전국 곳곳에서 성업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린 자녀를 데려오는 부모 등 관람객도, 업주들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쓴 기사였습니다. 해당 업장은 사고 이후 문을 닫았습니다.

☞당시 보도 기사
동물농장 토끼에 물려 15개월 아이 손가락 살점 ‘뜯겨’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607943(2023.02.17.)

지난해 2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토끼 손가락 물림’ 사고를 언급한 글.
1년 전 글이 '지난달'로 둔갑해 다시 기사화…삽시간에 오보 확산

이 사건이 다시 공론화된 건 지난 21일입니다. 사고 경위를 설명한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이 돌연 지난주 한 인터넷 매체발 기사로 가공돼 1년을 훌쩍 건너뛰며 다시 등장한 겁니다.

첫 기사가 나간 뒤 여러 매체들이 해당 커뮤니티 글을 토대로 한 기사를 퍼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제주, 동물농장, 토끼, 아이, 손가락 절단…' 사람들이 혹할 만한 단어가 여럿 결합된 이 사건 기사는 너나 할 것 없이 유명 포털 사이트 언론사 메인 페이지에 내걸렸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으로 시작되는 내용과 기사 제목도 대동소이합니다.

SBS에서 다룬 ‘토끼 물림’ 사고 기사. 지난해 발생한 사건을 ‘지난달 2일’ 발생했다고 기재한 점 등, 최초 오보와 내용이 비슷하다.
이 가운데에는 이른바 '메이저 언론'이라 불리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방송·신문사와 통신사도 있었습니다.

SBS는 뉴스 홈페이지에 "토끼가 아이 손가락을…동물원은 '주의 문구' 급조"라는 기사를 게재했는데 지난해 발생한 사건을 '지난달 2일' 발생했다고 보도한 점 등 최초의 오보와 내용이 흡사합니다. SBS는 해당 내용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라며 아침 정규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루기도 했습니다.

CBS도 지난 23일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토끼에 물려 손가락 잘린 아기" 라며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정작 사고가 일어난 시기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3일 오후 한 포털사이트에 내걸린 ‘토끼 물림 사고’ 기사들. 사고 발생 시점을 ‘지난달’로 기재한 매체가 대다수다.
문제는 이들 기사에 언급된 사고 발생 시점이 '지난달'로, 마치 올해 일어난 사건처럼 잘못 알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지난달 사건'으로 쓴 기사는 사실이 아닙니다.

정작 문제의 기사들이 인용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에는 작성 시점이 '2023년 2월'로 명확하게 기재돼 있습니다.

지난주 온라인에 등장한 최초 보도(?)에서 '지난달 2일'이라고 쓴 것을 다른 매체들이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받아쓰며 일어난 웃지 못할 일이지만 이 같은 오보는 사흘간 20건 가까이 쏟아졌습니다.

기사를 쓴 기자들이 최소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확인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입니다. 지난해 이 사건을 보도한 KBS 취재진에 "어찌된 일이냐"며 물어오는 다른 언론사의 연락도 있었는데 문의한 언론사는 기사를 쓰지 않았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 ■ 자극적 제목·내용으로 호기심 자극…"전형적인 황색 저널리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시금 주목을 받은 과거 사건이 최소한의 사실 검증 없이 보도되고 다른 언론들이 이를 경쟁적으로 받아쓰면서 빠르게 확산하는 사태를 두고 전문가는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을 통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형적인 황색 저널리즘"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이서현 교수는 "기사를 보도하기 전에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중 하나다. 특히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보도에서는 사실 확인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교수는 " 이번 사례에서는 사실 확인 절차를 생략하고, 주목도와 조회 수만 중시했다는 점에서 언론의 책임을 방기했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단순히 사회적 불안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크다고 본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번 사태는 언론의 역할, 특히 가장 기본적인 '팩트체크'의 중요성, 그리고 책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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