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명, 그나마 0.6명”…나눌 손 없는 심리 상담 치료 현장

입력 2024.02.26 (21:46) 수정 2024.02.2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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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KBS 탐사 기획 '재난과 악몽' 다섯 번째 순서입니다.

정부가 마련한 법 체계에도 불구하고, 재난 심리 지원이 피해자들의 삶에 직접 가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피해자들과 마주할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은, 재난 심리 회복 수요를 감당하기엔 뚜렷한 한계를 보입니다.

안승길 기자입니다.

[리포트]

무너진 제방 넘어 차가운 흙탕이 마을을 삼킨 그 날.

평생 삶터이자 벗이던 강물은 공포가 되어 주민들을 쫓았습니다.

눈 감으면 조여오는 축축한 기억에 속내를 털고 마음을 살펴줄 치료 공간을 수소문했지만, 주민들을 맞이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2020년 섬진강 수해 피해자/음성변조 : "마을 어르신들 비만 오면 밤새 잠도 못 주무신다고 그러고…. (재난 심리 지원을) 국가에서 운영한다고 해서 연락했었죠. 계획이 없다. 예산이 세워져 있지 않아서 실행할 수 없다고…."]

이같이 다친 마음을 살피려 행정안전부는 시·도마다 한 곳씩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를 마련했습니다.

현장 부스를 세우거나 대면 상담 등을 맡는데, 적십자사에 위탁 운영하다 보니 구색만 갖췄단 지적이 끊이지 않습니다.

센터장을 적십자사 직원이 겸임해 밀도가 떨어지는 데다, 센터당 평균 상근 인력은 1.4명이 전부.

이 가운데 실제 심리 지원 교육을 받거나 재난 심리상담 경험이 있는 이는 0.6명에 불과합니다.

이마저도 낮은 처우의 계약직으로 채워져 이직이 잦고, 2년 마다 바뀌어 상담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초기 상담으로 극복이 힘든 중장기적 심리 외상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트라우마센터'를 통해 상담과 약물 치료가 함께 이뤄지는데, 이곳 역시 상황은 비슷합니다.

2021년 호남과 충청, 강원에 권역 센터가 생겨 모두 5곳이 됐지만, 비수도권 4곳엔 전임 정신건강 전문의가 한 명도 없습니다.

[○○트라우마센터 관계자/음성변조 : "경력을 쌓는 만큼의 어떤 보상이 이루어 지지가 않으니까, 열 몇 번을 전문 요원 공고를 냈는데도 안 오는 권역들도 있어요."]

올해 정부가 트라우마센터에 배정한 예산은 48억 5천여만 원.

현재 권역 체제를 갖춘 3년 전과 비교해 늘어난 금액은 6억 원에 못 미칩니다.

그사이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데다, 재난 유형과 범위가 확장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예산이 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최윤경/계명대 심리학과 교수/전 한국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장 : "재난이 발생했을 때만 그 인력들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재난이 없어도 계속해서 준비하고 필요한 인력들을 교육한다든가 지속적으로 재난 경험자들을 모니터링한다든가 이런 것들이 다 포함되는 거거든요."]

삶터와 가족을 잃은 텅 빈 마음을 차지한 트라우마의 극복.

아프단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회는 피해자들의 일상에 또 다른 재난일 수밖에 없습니다.

KBS 뉴스 안승길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김동균/그래픽:최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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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명, 그나마 0.6명”…나눌 손 없는 심리 상담 치료 현장
    • 입력 2024-02-26 21:46:36
    • 수정2024-02-26 22:02:16
    뉴스9(전주)
[앵커]

KBS 탐사 기획 '재난과 악몽' 다섯 번째 순서입니다.

정부가 마련한 법 체계에도 불구하고, 재난 심리 지원이 피해자들의 삶에 직접 가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피해자들과 마주할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은, 재난 심리 회복 수요를 감당하기엔 뚜렷한 한계를 보입니다.

안승길 기자입니다.

[리포트]

무너진 제방 넘어 차가운 흙탕이 마을을 삼킨 그 날.

평생 삶터이자 벗이던 강물은 공포가 되어 주민들을 쫓았습니다.

눈 감으면 조여오는 축축한 기억에 속내를 털고 마음을 살펴줄 치료 공간을 수소문했지만, 주민들을 맞이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2020년 섬진강 수해 피해자/음성변조 : "마을 어르신들 비만 오면 밤새 잠도 못 주무신다고 그러고…. (재난 심리 지원을) 국가에서 운영한다고 해서 연락했었죠. 계획이 없다. 예산이 세워져 있지 않아서 실행할 수 없다고…."]

이같이 다친 마음을 살피려 행정안전부는 시·도마다 한 곳씩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를 마련했습니다.

현장 부스를 세우거나 대면 상담 등을 맡는데, 적십자사에 위탁 운영하다 보니 구색만 갖췄단 지적이 끊이지 않습니다.

센터장을 적십자사 직원이 겸임해 밀도가 떨어지는 데다, 센터당 평균 상근 인력은 1.4명이 전부.

이 가운데 실제 심리 지원 교육을 받거나 재난 심리상담 경험이 있는 이는 0.6명에 불과합니다.

이마저도 낮은 처우의 계약직으로 채워져 이직이 잦고, 2년 마다 바뀌어 상담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초기 상담으로 극복이 힘든 중장기적 심리 외상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트라우마센터'를 통해 상담과 약물 치료가 함께 이뤄지는데, 이곳 역시 상황은 비슷합니다.

2021년 호남과 충청, 강원에 권역 센터가 생겨 모두 5곳이 됐지만, 비수도권 4곳엔 전임 정신건강 전문의가 한 명도 없습니다.

[○○트라우마센터 관계자/음성변조 : "경력을 쌓는 만큼의 어떤 보상이 이루어 지지가 않으니까, 열 몇 번을 전문 요원 공고를 냈는데도 안 오는 권역들도 있어요."]

올해 정부가 트라우마센터에 배정한 예산은 48억 5천여만 원.

현재 권역 체제를 갖춘 3년 전과 비교해 늘어난 금액은 6억 원에 못 미칩니다.

그사이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데다, 재난 유형과 범위가 확장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예산이 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최윤경/계명대 심리학과 교수/전 한국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장 : "재난이 발생했을 때만 그 인력들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재난이 없어도 계속해서 준비하고 필요한 인력들을 교육한다든가 지속적으로 재난 경험자들을 모니터링한다든가 이런 것들이 다 포함되는 거거든요."]

삶터와 가족을 잃은 텅 빈 마음을 차지한 트라우마의 극복.

아프단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회는 피해자들의 일상에 또 다른 재난일 수밖에 없습니다.

KBS 뉴스 안승길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김동균/그래픽:최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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